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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 포도밭출판사

    2018-10-12 출간 | 정가 13,000원 | 200쪽 | 128*188mm | ISBN 979-11-88501-04-5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지은이: 김정선 책 소개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소설의 첫 문장>의 작가 김정선의 첫 소설. 앞서 적은 책들의 저자이면서 스스로 소개하듯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 혹은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 원고를 최소한 세 번 이상 그것도 연이어 꼼꼼히 봐야 하는 일"을 20년 넘게 해온 교정 교열자인 김정선이 우울감에 빠져들 때마다 펼쳐 읽은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대한 리뷰와 자신의 삶이 응축된 이야기를 뒤섞어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그래서 '리뷰소설'이라는 이름을 단 이 원고가 만들어졌다. 작가는 우울이 찾아들면 늦은 시간까지 불을 켜는 도서관 구석 자리나 밤늦은 시간에도 앉을 자리가 있는 24시간 카페 귀퉁이를 찾아 셰익스피어 작품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햄릿』 <헨리 4세>, <오셀로>, <십이야>,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심벨린>, <리어 왕>, <템페스트>의 주인공들과 자신이 함께 등장하는 인생극장을 적어나갔다. 이 책은 독서가이자 서평가이며, 섬세한 솜씨의 문장 수리공인 김정선의 새로운 도전이며, 그의 진수가 담긴 특이점이다. 추천사 이름 모를 포도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읽었다. 완벽히 충족되지 않는데 그렇다고 관둬지지도 않아서 일생 동안 나를 고단하게 만드는 욕망들을 해석해주는 것 같았다. 나와 당신과 우리와 그들의 우울에 이름을 지어주는 것 같기도 했다. 쓸쓸하고도 황홀한 독서였다. 저자의 꿈에서처럼 비단길이었다가 자갈밭이기도 한 삶을 엉덩이로 찧으며 달려가는 기분이다. 그가 안내하는 비극과 희극의 세계가 너무 어지럽고 즐거웠다.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조르고 싶지만 이렇게 아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리 자주 쓰일 수 없지 않을까. 혼자인 밤에 이 책을 또 다시 꺼내볼 듯하다. - 이슬아 (「일간 이슬아」 저자) 책을 읽는 내내 깊고 깊은 마음의 수렁을 생각했다. 그 속에서 나는 아주 작게 있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 등을 말고 웅크려 있는 나. 좋았다. 짙은 어둠이 투명해지는 순간, 울컥하는 고요를 바라보며 뜻하지 않은 위로를 받았으니까. 그 흔한 반성도 다짐도 없는, 경이와 환멸의 삶 한가운데 내가 있음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이아림(<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저자) 저자 소개 김정선 단행본 교정 교열 일을 오래 해오고 있다.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 혹은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 원고를 최소한 세 번 이상 그것도 연이어 꼼꼼히 봐야 하는 일이다. 30년 정도 하면 미치거나 돌이 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멀쩡하다면 일을 제대로 안 한 걸 테니까. 그러니 30년이 되기 전에 이 무간지옥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이런 고민을 제법 진지하게 할 무렵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책들을 읽게 되었는데, 그 결과가 이런 책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하긴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소설의 첫 문장』 등도 다 그렇게 낸 책들이니 말해 뭐하랴. 보도자료 ‘문장 수리공’ 김정선의 첫 소설 그의 진수가 담긴 특이점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소설의 첫 문장』의 작가 김정선의 첫 소설. 앞서 적은 책들의 저자이면서 스스로 소개하듯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 혹은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 원고를 최소한 세 번 이상 그것도 연이어 꼼꼼히 봐야 하는 일”을 20년 넘게 해온 교정 교열자인 김정선이 우울감에 빠져들 때마다 펼쳐 읽은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대한 리뷰와 자신의 삶이 응축된 이야기를 뒤섞어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그래서 ‘리뷰소설’이라는 이름을 단 이 원고가 만들어졌다. 사실 김정선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로 이름을 얻기 한참 전부터 자신이 읽은 책들의 서평을 써왔고 그의 글을 각별히 여기는 독자가 적지 않았다. 그는 2009년부터 수년간 인터넷서점에서 운영하는 서평 블로그에서 ‘후와’라는 닉네임으로 왕성한 활동을 했고, 그때 적은 글들을 추려 2013년에는 『이모부의 서재』를 임호부라는 필명으로 내기도 했다. 교정 교열자로 일한 시간만큼, 아니 그보다 오랜 시간 그는 많은 책을 읽었고, 간혹 건강이 나빠져 글쓰기가 힘들었던 시기를 빼면 항상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왔다. 이 책은 뛰어난 독서가이자 서평가이며, 섬세한 솜씨의 문장 수리공인 김정선의 새로운 도전이며, 그의 진수가 담긴 특이점이다. 우울한 밤들에 읽은 10편의 셰익스피어 희곡 그는 일하는 시간에는 책을 만들고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책을 읽는 삶을 산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가 오래해온 일과가 있다. 심장 수술 이후 뇌병변 장애를 얻은 어머니의 간병이다. 10년도 훌쩍 넘는 짧지 않은 기간, 그는 여타의 일들을 뒤로 하고 홀로 어머니를 모셨다. 한편 오래 전부터 자신을 괴롭혀온 지병인 ‘탈장’과도 싸웠다. 내 몸속 장기 중 하나는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 눈물을 흘리는 대신, 끊임없이 내 몸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애쓰곤 했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 그 장기가 제 위치를 벗어나는 걸 느끼고 손끝을 이용해 몰래 몸 안으로 밀어 넣기를 반복해야 했다. (…) 내 몸속 장기 또한 내 팔다리처럼 중력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해야 하는 건 결코 달가운 경험이랄 수 없었다. 어린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내 몸속 장기가 흘린 눈물이 내 양 볼을 적실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대신, 몸 밖으로 밀고 나오려고 애쓰는 부분만이라도 잘라내버릴 수는 없을까, 고민했었다. 내 손이 아주 예리한 날을 가진 칼이 되는 꿈을 꾸곤 했던가. _36~37쪽 그가 시달려야 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우울감에 깊게 빠져드는 날들. 일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생활조차 어렵게 만드는 우울이 그를 덮쳤다. 여기에 더해 안구건조증마저 심해지자 결국 그는 당분간 교정 교열 일을 쉬겠다고 일터에 통보하고 거의 난생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나타나 그를 붙잡은 것이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그는 셰익스피어를 다시 꺼내 읽게 된 계기를 책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빼 든 책의 첫 문장을 읽고 나는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온몸이 굳어버리는 걸 느꼈다.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 1막 1장의 첫 문장이자 안토니오의 대사. (…) 아마 그때부터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으리라.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라고 중얼거리면서. _105~106쪽 이렇게 시작한 셰익스피어 읽기는 꽤 오랜 시간 이어진다. 그는 『햄릿』 『헨리 4세』 『오셀로』 『십이야』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심벨린』 『리어 왕』 『템페스트』를 차례로 읽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셰익스피어 소설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인생극장’이 그의 머릿속에서 상영되기 시작한다. 그때 작가가 머문 장소는 늦은 시간까지 불을 켜는 도서관 구석 자리일 때도 있고, 밤늦은 시간에도 앉을 자리가 있는 24시간 카페 귀퉁이일 때도 있었다. 이 책은 20년 넘게 교정 교열자로 일해온 저자가 우울감에 시달리는 밤마다 도서관 구석을, 카페 귀퉁이를 찾으며 10편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어나간 오롯한 기록이다.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인생극장’ 속 우울한 나의 분신을 바라보기 다른 작가의 작품이 아닌 ‘셰익스피어’였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작가는 머리말에서 굳이 셰익스피어를 선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뭘 알아서 쓴 글도, 뭔가를 알고 싶어서 쓴 글도 아니다. 다만 내 우울감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쓴 글일 뿐.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책들 또한 마찬가지다. 뭘 알아서 그 책들의 내용에 대해 아는 체를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아는 체를 하고 싶어서 그리 한 것뿐이다. 가끔은 그런 나를 보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을까. _4쪽 ‘그냥 아는 체를 하고 싶어서’ 셰익스피어를 골랐다고 심드렁한 투로 고백하지만 물론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작가는 기념비적인 ‘인생극장’을 창조해 우리에게 선보인 셰익스피어이지만, 정작 셰익스피어 자신은 깊이 우울해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작가는 『로미오와 줄리엣』 4막 2장에 나오는 캐풀릿 가문의 하인에 잠시 주목해본다. 연극을 통틀어 딱 한 번 등장하는 그는 “캐풀릿에게 곧 열릴 결혼식 초청장을 받아 들고 맥없이 나가는 역”을 맡았다. “아주 잠깐 등장하는데다 대사도 없어, 어떤 연구자들은 셰익스피어가 자신이 맡을 깜냥으로 집어넣었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역할이다. 작가는 “모두들 무대 위에서 자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걸 즐길 때, 혼자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그 하인”의 존재에 대해 유심히 생각한다. 그의 존재가 꼭 셰익스피어의 분신 같고, 또한 우울한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아서다. 아니다. 그런 게 아닐지 모른다. 셰익스피어는 우울했던 것이다. 너무 우울했던 나머지, 우울해하는 자신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연극에서 한 음절의 대사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쓸쓸히 무대 밖으로 퇴장하는 자신의 뒷모습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이렇게 중얼거렸으리라. 나는 너를 모른다, 너의 이름도 모르고, 너를 본 적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 또한,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졌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에게. _15쪽 사랑의 맥락, 가족의 맥락 작가는 셰익스피어 리뷰와 자신의 이야기를 두 개의 부에 나누어 담았다. ‘1부 사랑’, ‘2부 가족’이다. 이는 자신의 우울감의 정체를 두 개의 맥락을 통해 반추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사랑의 서사와 가족의 서사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서도 이 두 가지 맥락을 발견한다. 그래서 『햄릿』 『헨리 4세』 『오셀로』 『십이야』 『맥베스』는 사랑의 맥락으로,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심벨린』 『리어 왕』 『템페스트』는 가족의 맥락으로 독해한다. 여기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작가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사랑보다 가족의 맥락에 초점을 두어 독해하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을 통해 자신들의 ‘주어’가 눈뜨도록 했어야 했다. 비록 그 사랑이 호르몬의 장난에 불과한 것이었더라도 말이다. (…) 철천지원수로만 알았던 상대 가문의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면, 그리고 그 사랑이 단지 호르몬의 장난질만은 아니었다면, 그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새롭게 눈을 떴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부여된 ‘주어’의 역할을 다하면서 고통을 감수하고 치욕을 떠안으며 두 가문의 거짓된 화해라도 이끌어냈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 둘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든 죽음을 택하든 그건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하지만 세상에 작별을 고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떠나버림으로써, 그들이 속한 두 가문은 물론 공동체 또한 원죄에 의한 거짓된 화해와 협력이라는 탁한 피를 부여받게 만들었다. 이거야말로 비극이다. 그들에게도 공동체에게도. _97~98쪽 작가의 셰익스피어 독해에는 통상의 접근법 혹은 관점에 반하는 해석이 종종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암세포 같은 인간’이며 ‘불협화음의 소리를 내는 대표격’이자 ‘돈밖에 모르는 더러운 유대인’ 샤일록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떤가. 그러나 샤일록은 안토니오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에겐 정당화를 위협하는 하나의 도전이자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던 셈이다. 샤일록을 제외하면 다른 인물들은 하나같이 결함을 가진 존재들이다. 안토니오는 여러 척의 선단을 한꺼번에 띄우는 무리수를 두고도 태평하기만 한 한심한 사업가이고, 바사리오는 포셔의 사랑을 얻기 위한 여비마저 친구인 안토니오에게 꾸어야 할 만큼 대책 없는 루저다. 한편 포셔는 아버지의 유언을 받든다는 핑계로 순전히 운에 의지해서 자신의 사랑을 결정짓는 몽상가에 불과하다. 이들에 비한다면 샤일록은 온전한 어른이다. 저들이 내뱉는 욕설과 침을 고스란히 맞아가며, 상권이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 돈과 다이아몬드를 움켜쥐고 이자로 자신의 생명을 늘려가는 것만이 스스로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은 존재다. 이 희곡에서 다른 인물들과 달리 지극히 산문적이고 독립적인 대사를 내뱉는 유일한 존재. (…) 뭔가 결함을 가진 존재들은 샤일록이라는 도전을 함께 해결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_113~114쪽 ‘주어’와 ‘술어’의 존재론 이 소설에서 김정선 작가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지점 하나는 자주 ‘주어’를, ‘술어’를 언급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문장을 분석하기 위해 저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읽기 위해 ‘주어’와 ‘술어’를 활용한다. 20년 넘게 교정 교열자로 일한 까닭일까. 그는 주어나 술어, 혹은 동사, 형용사 같은 품사를 도구로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곤 한다. 셰익스피어 작품 주인공들의 서사를 읽을 때는 물론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도 저 도구들이 사용된다. 누군가들의 문장을 오래 들여다본 생애의 주인공인 작가는 ‘주어’나 ‘술어’에 대한 분석을 그저 문장론이 아니라 존재론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햄릿]는 국내외의 모든 갈등과 분쟁을 자신의 왕궁으로 향하게 만든 셈이다. 자신의 왕국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거나 돌파함으로써 대문자 주어 중에서도 가장 크고 강력한 대문자 주어가 될 만반의 준비를 마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강력한 대문자 주어는커녕 자신이 거느려야 할 술어와 내쳐야 할 술어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분열적인 주어가 되고 말았다. _21~22쪽 나 또한 처음부터 이렇게 살려던 건 아니었다. 누군들 우울하고 슬픈 삶이 좋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되고 말았다. 어쩌겠는가. 내가 밤새 주물럭거리는 문장처럼 지우고 다시 쓸 수도 없는 것을. (…) 다만 한 가지 깨달은 건 있다. ‘행복’은 ‘사랑’과 달라서 내가 온전히 주도할 수 없다는 것. ‘사랑하다’는 동사여서 주어인 내가 그 시작과 끝, 처음과 마지막을 온전히 주재할 수 있지만, ‘행복하다’는 형용사여서 주어인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 나는 다만 그 ‘행복한’ 형용, 즉 행복한 그림 안에 들어 있을 때 행복을 느끼고, 그렇지 않을 땐 행복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사랑과 달리 행복은 내가 추구할 수 없으며, 단지 그 상태를 누리고 오래도록 기억할 수밖에 없다는 것. _195~196쪽 “삶은 엉덩이다” 작가를 오래 사로잡은 꿈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엉덩이 꿈’이다. 이 꿈이 알려주는 것은 삶이 비단길만도 아니고 자갈길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삶은 엉덩이다”라는 깨달음을 준다.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희극 10편을 펼쳐놓고 그 위를 내달린 독서의 끝에 남는 깨달음도 그와 같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인생극장 속에서 때로 하염없이 미끄러지고 때로 울퉁불퉁한 바닥을 구른다. 이때 삶이 다만 엉덩이의 문제라는 사실은 곤란함인가 다행스러움인가. 이틀간 앓으면서 나는 내내 똑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 이제까지 꾼 꿈 중에서 그나마 선명하게 기억하는 유일한 꿈이다. 다시 꾸고 싶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꿈이기도 하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꿈. 등장인물은 나 혼자고 배경이랄 만한 것도 없다. 비단을 깔아놓은 듯 매끄러운 바닥을 엉덩이로 하염없이 미끄러지다가 자갈밭처럼 울퉁불퉁한 바닥을 엉덩이를 쿵쿵쿵 찧으며 달려가는 꿈이었다. 비단길이었다가 자갈밭이었다가 다시 비단길이었다가 자갈밭이었다가. 꿈은 말하고 있었다. 네 삶은 비단길이었다가 자갈밭이었다가 다시 비단길이었다가 자갈밭일 것이다. 아니, 꿈이 전한 말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삶은 엉덩이다. 알겠느냐? _29쪽 차례 머리말 • 4 1부 사랑 ‘장기 적출’ 커플 • 10 진눈깨비 • 13 한밤의 셰익스피어 • 16 h와 H 사이에 놓인 남자-『햄릿』 • 19 피리 • 23 포도주 • 27 나는 네가 누구인지 모른다 - 『헨리 4세』 • 31 적출 혹은 누출 • 34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내 몸속 장기가 흘린 눈물이 내 양 볼을 적실 수 있을까 • 36 사랑하는 나와 사랑받는 나 - 『오셀로』 • 40 가면 • 43 “그대는 내게 진실을 말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 48 목소리 • 52 “저는 제가 아니에요” - 『십이야』 • 55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 60 사과꽃이 떨어지는 소리 • 65 만남 • 70 삶에 묶인 끈을 당길 때 • 73 “내 행위를 알려면 나를 몰라야 할 것이오” - 『맥베스』 • 77 내 조바심과 불안을 가져간 여인 • 86 2부 가족 주삿바늘을 피해 숨는 혈관 • 92 관상동맥 - 『로미오와 줄리엣』 • 95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 101 흰 건반과 검은 건반 - 『베니스의 상인』 • 107 결론에서 결론으로 우리를 이끄는 이야기들 • 119 시작과 끝, 그리고 처음과 마지막 • 127 치명적인 맥락, 가족 • 132 아버지의 발바닥 - 『심벨린』 • 137 다시 ‘장기 적출’ 커플 • 141 처음을 위한 깜빡과 마지막을 위한 깜빡 • 149 ‘밖’이 ‘안’이 되고, ‘안’이 ‘밖’이 되는 - 『리어 왕』 • 157 감수성이 균열을 감지할 때 • 164 나처럼은 살지 않겠다 • 170 ‘우리’와 ‘그들’ • 177 ‘우리’가 되기 위해선 마법이 필요하다 - 『템페스트』 • 181 마법의 섬과 거기서 거기인 삶 • 186 나쁜 꿈 • 191 “다음에 다시 봐요 우리” • 195 참고하거나 인용한 책들 • 19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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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11-3 (03800) 출간일: 2020년 7월 10일 정가: 20,000원 제본: 무선 쪽수: 420쪽 판형: 128×188mm 분야: - 문학 > 장르소설/여성소설/과학소설(SF) - 문학 > 비평/창작/이론 - 인문학 > 영미문화론 - 인문학 > 인문비평 ​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 지은이: 조애나 러스 옮긴이: 나현영 ​ ​ “조애나 러스의 글들은 어처구니없는 관습과 편견에 맞선 20세기 장르 문학사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아직도 유효한 현재형의 질문이자 선언이다” - 듀나 (SF 작가) ​ “조애나 러스는 어째서 여성이 SF를 사랑하는가를 거침없이 말한다. 여성은 SF라는 매개체를 통해 실재하는 다른 세계를 꿈꾼다. 어느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는 세상을. 모든 규칙이 달라진 세상을.” - 김보영 (SF 작가) ​ ​ 책소개 ​ SF 작가이자 비평가, 페미니스트이자 퀴어 활동가였던 조애나 러스의 SF 비평집. SF 장르를 새롭게 정의했으며, 현대 문명과 페미니즘, 여성의 글쓰기와 같은 주제를 SF 장르를 통해 사유한 조애나 러스의 대표적인 글들을 모았다. 거침없는 분석들이 주는 깨달음과 즐거움, 그 속에 가득한 위트와 유머가 독보적이다. 러스는 SF가 젠더 역할과 문화의 구속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정한 ‘놀이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책은 억압과 굴레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여성들, 그리고 SF를 통해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모든 SF 작가와 독자 들에게 남겨진 귀중한 유산이다. 보도자료 ​ 낡은 관념들을 박살내는 ‘환상적인 분노’의 통쾌함 ​ “당신의 분노에서는 혁명의 냄새가 납니다. 아니, 아주 오래 묻혀 있다가 막 폭발하려고 부글거리는 화산의 냄새가 나요.” ― 1973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조애나 러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 조애나 러스가 SF 장르에, 특히 페미니스트로서 SF 장르에 기여한 바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뉴욕 타임스》는 2011년의 부고 기사에서 그를 “SF의 가장 낯선 외계 생명체, 즉 여성에게 SF를 전달해 준 작가”라고 칭했다. 러스는 페미니즘 SF의 선구자이며 1970년대에 꽃 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이끈 대표적인 작가다. 그는 자신의 소설과 비평을 통해 SF 장르를 새롭게 정의했으며, 현대 문명과 페미니즘, 여성의 글쓰기와 같은 주제를 SF라는 양식을 통해 사유했다. 조애나 러스의 문장은 명징하다. 그리고 명징한 문장은 명징한 사고와 짝을 이룬다. 그는 난독을 부르는 애매모호함을 경멸하며 이 애매모호함이 결국은 남성 연대와 남성 신화를 강화하는 신비화의 전략임을 폭로한다. 러스는 예리하고 엄밀한 분석으로 이 신비화된 낡은 신화들을 해체하는 데 열정을 쏟는다. 러스의 작업은 독자에게 깨달음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안긴다. 거침없는 분석들이 주는 깨달음과 즐거움, 그 속에 가득한 위트와 유머는 조애나 러스의 비평이 가진 독보적인 성격이다. 또 우리는 러스로부터 특별한 열정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앎과 삶을 연결시키려는 열정이다.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기’, 경험한 세상을 ‘다시 보기’, 그리고 이렇게 인지하게 된 현실을 명징한 언어를 통해 표현하기. 이는 러스가 자신의 비평에서 실천해 온 것들이다. 러스는 이 작업을 하면서 드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고 또 당연히 분노해야 함을 일깨웠다. SF를 비평하면서 각종 차별과 배제들,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신비화, 젠더 고정관념과 여성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남성 신화들에 분노하고 저항한 것은 러스에게 있어 SF 장르 역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실천들의 장이었던 까닭이다. 미래를 바라보는 양식으로서의 SF가 과거의 억압과 굴레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이들의 ‘놀이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은 러스가 여성들에게, 그리고 SF를 통해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모든 SF 작가와 독자 들에게 남긴 귀중한 유산이다. ​ ​ SF를 무대로 일어난 1970년대의 성 전쟁 노출증 환자들의 승리 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 “성차별주의적인 이야기는 소설 속 등장인물이 모두 베텔게우스계 행성에 사는 결정형 생명체라 해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인간이 아니더라도 작가와 독자는 인간이니까요.” - 페미니즘 계간지 《퀘스트(Quest)》와의 1975년 인터뷰에서 ​ 페미니즘 SF 비평은 본격적으로 조애나 러스로부터 시작되었다. 러스 이전에도 작가 개인이나 SF 전반의 성차별주의적 경향을 비판하는 남성 비평가들은 있었으나 이들은 1970년대부터 어슐러 K. 르 귄과 조애나 러스, 마지 피어시 등이 불을 댕긴 긴급한 문학적 변화들을 당대의 혁명적 언어인 페미니즘으로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러스는 제아무리 먼 미래와 먼 은하를 배경으로 경이로운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펼쳐 보이는 SF라도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있어서는 교외에 사는 백인 중산층 가정의 젠더 고정관념을 답습함을 비판하면서, 이를 SF적 상상력의 ‘실패’로 규정한다. ​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의 충돌은 SF 공동체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당시에는 남성 작가로 알려져 있던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작품을 제외하고) 안티페미니즘의 입장에서 성 전쟁을 다룬 10편의 작품을 비판하는 “4장 사랑은 여자를 정복한다: SF에서 일어난 성 전쟁”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활화산 같은 러스의 분노가 이 어리석은 ‘부족’들을 활활 태우는 현장을 보게 된다. 여성이 지배하는 부패하고 무능력한 세계에서 남성 성기라는 ‘성물’의 소유자들이 ‘자연의 승리’를 하게 되어 있는 이 작품들에 러스는 ‘성기 노출증 환자들의 소설’이라는 절묘한 이름을 붙인다. ​ “10장 최근 유행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 대하여”에서는 같은 성 전쟁을 다루면서도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모니크 위티그의 《게릴라들》, 어슐러 K. 르 귄의 《빼앗긴 자들》, 마지 피어시의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와 같은 이 작품들은 새뮤얼 딜레이니의 《트리톤》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 작가가 썼으며, 계급과 정부가 없고, 생태주의적이며 동성애, 이성애, 난혼, 한 여성이 다른 여성과 함께 아기를 갖게 하는 재생산 기술 등 다양한 출산과 양육의 방식이 있는 사회를 보여 준다. 러스는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SF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며, 유토피아를 향한 충동 뒤에는 누군가의 고통이 감춰져 있다고 말한다. 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의 주인공들은 계급과 성, 인종차별을 포함하는 현실의 고통과 대면하며 저항한다. 우리가 맛볼 수 있는 것은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 평행진화해 급진적 유토피아주의로 폭발한 여성 문화의 진수다. ​ ​ 문화의 성은 남성이다. 낡은 신화를 이용하는 한 여자는 쓸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신화라면? ​ “그것은 내 무게 중심을 ‘그(Him)’에게서 ‘나(Me)’로 옮기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난 이것이 예술가가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인 당신이 여성이라면 말이에요.” - 페미니즘 계간지 《퀘스트(Quest)》와의 1975년 인터뷰에서 ​ 1부가 주로 SF와 관련된 비평들을 담고 있다면 2부에서는 여성의 글쓰기를 주제로 SF와 모던 고딕이라는 여성 로맨스 장르, 윌라 캐더와 샬럿 퍼킨스 길먼 같은 여성 작가들을 다룬다. ​ “7장 여주인공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는 여자는 왜 글을 쓸 수 없는가”에서 러스는 서구 문학의 플롯은 사실 거의 모두 남자 주인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사나운 짐승을 때려눕히고 자신의 남자다움을 증명하는 이야기, 영웅적인 전투에서 승리하는 이야기, 순진한 여자를 유혹해 임신을 시키는 나쁜 남자의 이야기,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으나 술독에 빠져 지내다 요절한 전설이 되고 마는 시인의 이야기는 모두 남성의 신화다. 즉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문화의 남자와 여자는 단일한 관점에서 문화를 상상한다. 바로 남성의 관점이다.” ​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 페이, 헤밍웨이의 소설 〈프랜시스 매컴버의 짧았던 행복〉에 등장하는 매컴버의 아내, “6장 소년과 개: 최종 해결”에서 할란 엘리슨 원작의 동명의 영화에 등장하는 퀼라 준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여자 주인공들은 결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여자의 이미지에 불과하다. ‘잡년 여신’이 아니면 처녀 희생자로 이분되는 이 여주인공들에게는 어떤 내면도, 동기도 없는데, 이는 이들이 실은 인격이 아니라 투사된 소망이나 두려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남성 신화를 이용하기를 거부한 여성 작가들은 어떤 소설을 쓸 수 있는가? 러스는 버지니아 울프처럼 플롯 없이 서정적인 구조를 쌓아올리거나 샬럿 브론테의 《빌레트》처럼 자기 삶에서 길어 올린 구조를 모델로 삼는 사례들을 소개한다. 여성 작가들은 “11장 ‘여자처럼’ 글쓰기”의 윌라 캐더처럼 자신의 주인공에게 남성의 ‘가면’을 씌우는 전략을 택하기도 한다. ​ 그리고 “9장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에서 우리는 여성 작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약속하는 신화가 태어나는 순간을 목격한다. 메리 셸리는 견딜 수 없는 현실에서 전력을 다해 도망치는 도피자였기에 지금 여기를 담을 수 없거나 담으려 하지 않는 감수성의 통로를 찾아 헤맸다. 바로 《프랑켄슈타인》과 《최후의 인간》의 세계, 오늘날의 우리가 SF라 부르는 사변적이고 미래적인 세계로 이동하는 통로다. 그래서 메리 셸리는 ‘비유기체적 생명체의 탄생’과 ‘자연스러운 파국으로 상상된 세계의 종말’이라는 현대 산업화 시대의 거대한 두 신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러스의 말처럼 “SF에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있었던 셈”이다. 러스의 글에서 우리는 오늘날 한국에서 여성 작가들이 쓴 SF가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SF는 “남자로서의 남자, 여자로서의 여자를 다루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지능과 적응 능력을 다루는 신화”이며, 젠더 역할과 문화의 구속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정한 놀이터이기 때문이다. ​ 지은이 소개 ​ 조애나 러스 Joanna Russ SF 작가이자 비평가, 페미니스트이자 퀴어 활동가였던 조애나 러스는 1937년 뉴욕에서 태어나 10대 때부터 SF와 공포소설을 즐겨 읽으며 장르 소설에 담긴 자유와 상상력을 흡수했다. 코넬 대학교에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제자로 영문학 학사 학위를 받고 예일 대학교 드라마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워싱턴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영문학을 가르쳤다. 러스가 막 활동을 시작했던 1960년대에 SF는 소위 ‘백인 이성애자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제2의 물결 페미니즘의 태동으로 가부장적 사회 구조를 전복하고 남성이 규정한 여성성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여성들에게 기성 문학의 규범에서 벗어난 SF는 자신들의 상상력을 실험할 수 있는 새로운 영토로 여겨졌다. 러스는 〈그들이 돌아온다 해도〉(1972), 《알릭스》(1976), 그녀의 가장 큰 문제작인 《여자남성》(1975) 등을 통해 젠더 고정관념에 도전하며 어슐러 K. 르 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마지 피어시 등과 함께 1970년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의 부흥을 이끌었다. 러스는 페미니즘과 영문학, SF, 퀴어 비평까지를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서 소설만큼이나 도발적이고 문제적인 이론서들을 다수 발표했다. 〈SF 속 여성의 이미지〉(1971)에서는 미래나 우주를 무대로 한 실험적인 작품에서마저 젠더 문제에 있어서는 백인 중산층 가정의 고정관념을 답습하는 남성 SF 작가들을 비판했고, 《여성의 글쓰기를 억압하는 법》(1983)에서는 여성의 글쓰기를 무시하고 예외적으로 취급해 온 영문학의 역사를 비판했다.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1995)는 러스가 SF와 여성의 글쓰기를 주제로 쓴 대표적인 글들을 모은 비평집으로 SF 작가로서 그의 목소리가 가장 직접적이고 생생하게 드러나는 책이다. 분노는 그녀가 글을 쓰고 대중 앞에 나서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었지만 말년에는 만성 피로 증후군과 심한 요통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했다. 2011년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 ​ ​ ​ 옮긴이 소개 ​ 나현영 매주 수요일 연남동 카페 본주르에서 ‘여성 작가가 쓴 SF 읽기’ 모임을 하고 있다. 조애나 러스의 책을 시작으로 포도밭출판사의 나선형 시리즈에서 SF, 퀴어, 페미니즘 등에 관한 다양한 책을 기획하고 소개할 예정이다. 옮긴 책으로 《유토피아 실험》, 《무정한 빛》,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 《사일런스: 존 케이지의 강연과 글》, 《낭만주의의 뿌리》(공역) 등이 있다. ​ ​ 책 속에서 ​ 전적으로 낯선 이야기를 만들어 낸 SF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전적으로 친숙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 SF는 SF가 아니다. 다시 말해, 어떤 작품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참조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과 연결된 모든 참조점이 지나치게 분명하고 직접적일 때, SF적인 특성을 잃은 이 작품은 불신의 유예가 끝난 ‘정직한’ 소설이 되고 말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렇다. “SF는 불가능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아야 한다.” -70~71쪽 ​ 〈스타워즈〉에서 욕구는 자부심과 쾌락이다(나는 이것이야말로 ‘재미’가 상징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이것들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은 거칠게 말해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이성애 중심주의, 경쟁과 마초적 특권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특권은 바로 〈스타워즈〉의 관객 대부분이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세계, 자신들이 욕구하는 흥분과 쾌락에 접근하지 못하는 세계를 만들고 있는 주범이다. -89쪽 ​ 여기서 ‘광기’라는 말의 의미는 사람들의 삶의 구체적 조건으로부터 유리된 추상적 개념만을 곱씹는 태도를 말한다. ‘광인’들은 왜 이렇게 행동할까. 다른 사람들이 그를 위해 노동해 주는 덕분에 자기 삶의 견고하고 실천적인 세부사항들로부터 격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삶에 대해 생각할 때 이런 실천적인 세부사항을 생략하거나 사소하다고 전제하며 시작한다. 웨스트는 이에 대응하는 여성적 결점을 ‘어리석음’이라 불렀다. 어리석음은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넘어 더 큰 패턴을 보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다. 어리석음은 양말을 깁고, 변기를 닦고, 들판에서 일하는 것이 하늘이 부여한 네 천직이고, 어쨌든 아무도 네가 진짜 결정을 내리도록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들어 온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92~93쪽 ​ 테크노필리아와 테크노포비아는 둘 다 가진 자의 태도다. 테크노필리아의 경우 자신이 권력을 갖고 있거나 권력자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테크노포비아의 경우 비록 권력을 잃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어쨌든 자신에겐 권력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 스스로 무력하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이들―여성, 비백인, 빈곤층―은 테크노필리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테크노포비아도 되지 않는다. -98쪽 ​ 여기서 논의되는 모든 이야기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다〉를 제외하고) 남성 성기를 자신들의 성물로 삼는다. 이것을 소유한 자에겐 성 전쟁에서의 승리가 보장된다. 따라서 이 승리는 자연의 승리이며, 지성, 성격, 인간성, 겸손, 통찰력, 용기, 계획, 감각, 기술, 심지어 책임감마저 없이 전쟁에 승리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111~112쪽 ​ 그리고 공포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리치의 말처럼) 누군가 여기까지 와 본 적이 있으며, 넌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파괴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것들, 섬뜩하고 악마적인 것들을 한사코 부정하는 문화에서 자라난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는 중요한 메시지죠. -154쪽 ​ 영화에서 퀼라 준이 사악한 인물로 보인다면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빅의 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 부드러워 쓰다듬어 주고 싶은 여자라는 생물의 애호가들을 기다리는 무시무시한 소식은 여자가 남자의 의견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의견을 갖고 있으며, 섹스를 이용해 남자를 지배할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퀼라의 의존성은 개가 사람에게 의존하는 모습의 패러디다. 퀼라는 빅에게 충성을 바치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가 되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교활하고 기만적이기만 하다. -183쪽 ​ 문화의 성은 남성이다. -193쪽 ​ 가부장제는 남성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상상하고 그린다. 여성의 문화가 있지만 그것은 지하에 있는 비공식적인 소수 문화로, 우리가 공식적으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 생각하는 것의 작은 구석을 차지한다. 우리 문화의 남자와 여자는 단일한 관점에서 문화를 상상한다. 바로 남성의 관점이다. -194쪽 ​ “…… 소름 끼치는 한 남자의 환영이 누워 있다가 어떤 강력한 기관의 작동으로 생명의 징후를 보이더니 불안정하지만 반쯤 살아 있는 것처럼 요동친다.” 《10억 년의 잔치》에서 (그 역시 SF 작가인) 브라이언 올디스는 위 구절을 인용하며 덧붙인다. “요동치던 것은 바로 SF라는 장르 그 자체였다.” -296쪽 ​ 추천사 ​ 1960년대와 70년대의 격동기를 거치며 영어권 장르 문학 안팎에서 맹렬하게 투쟁한 페미니스트 작가와 비평가 들의 당시 속내를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조애나 러스의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만큼 좋은 책은 찾기 어렵다. 어떠한 외교적 제스처 없이 정당하기 짝이 없는 날것의 분노를 날카로운 위트에 섞어 기관총처럼 쏘아 대는 러스의 글들은 어처구니없는 관습과 편견과 맞선 20세기 장르 문학사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아직도 유효한 현재형의 질문이자 선언이기도 하다. ― 듀나 (SF 작가) ​ 조애나 러스는 SF 장르를 특정 성별만이 즐긴다는 통념에 명쾌하게 반박하며, 어째서 여성이 SF 장르를 사랑하는가를 거침없이 말한다. 편견과 차별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달리, 여성은 SF라는 매개체를 통해 실재하는 다른 세계를 꿈꾼다. 어느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는 세상을. 모든 규칙이 달라진 세상을. 꿈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창조하며 선언한다. 우리가 아는 모든 현실은 변할 수 있고 또한 변해야 한다고. 그 세계는 바로 이렇게 손에 잡히는 곳에 있다고. 러스는 서문에서 분명하게 선언한다. ‘내가 SF에 특별한 애정을 갖는 것은 SF가 현실을 바꿈으로써 현실을 분석하기’ 때문이라고.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는 바로 그 지점을, SF의 세계가 비유나 은유가 아닌 점을 확실히 말한다. SF의 세계는 ‘문자 그대로 변화한 세상’이며, 물리적으로 실존하는 진실한 세계라는 것을. 이곳은 과거에 없어진 세상도 아니며 현실에 천착하는 세상도 아니다. 여성은 바로 그렇기에 이 세계를 사랑하노라고. ‘문화의 성은 남성’이며 ‘모든 오래된 플롯은 남성적이기에’, 여성은 자신만의 완전히 새로운 플롯을 만들기 위해 SF의 세계로 떠난다. 새로운 사회구조를 향해, 고리타분한 전통과 가치와 문화가 사라지고 바닥부터 새로 창조된 세계를 향해, 때로는 현존하는 젠더 역할이 모두 변화된 세계를 향해. 1930년대에 태어난 작가가 1970년대에 주로 쓴 비평집인데도 불구하고, 이 책의 여러 관점이 현대 한국에 얼마나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가를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SF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영문학과 교수만 빼고.’, 혹은 ‘성차별주의적인 문학의 여성은 오직 불필요하거나 의도적인 행동만을 한다’는 포복절도할 비판은 현대 한국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러스가 분노하며 비판한 각종 성차별적인 판타지를 극단적으로 드러낸 SF들은 지금 현대 한국에서도 계속 경계하며 싸워야 할 것들이기도 하다. 단지 이런 소설들은 한국에서는 SF 유행이 다소 늦어진 덕에 출간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계속 물밑에서만 머물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해 본다. 러스가 레즈비언으로서 말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또한 지극히 현재적이다. 러스는 내가, 내 성별을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부터, 이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을 인지하기도 전부터, 어째서 이 세계에 이토록 매혹되었는지를 격렬하게 일깨워준다. SF는 인생의 모든 순간에, 모든 불합리와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는 순간에, 어딘가 다른 세상이 있으며, 그 세계는 문학적인 은유나 상징 따위가 아니라 실재하는 현실이라고 말해주었다고. 현실이 안락해 마지않은 사람들이 이 세계를 허무맹랑하다며 조롱하기 바쁠 때에 누군가는 그 모든 책에서 매양 세계의 변혁을 꿈꾸었노라고. ― 김보영 (SF 작가) ​ 차례 ​ 세라 레퍼뉴의 서문 저자 서문 ​ 1부 1장 SF의 미학에 관해 2장 사변: SF에서 가정이란 무엇인가 3장 신비화로서의 SF와 테크놀로지 4장 사랑은 여자를 정복한다(Amor Vincit Foeminam) : SF에서 일어난 성 전쟁 5장 공포소설의 매혹, 러브크래프트 6장 소년과 개: 최종 해결 ​ 2부 7장 여주인공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는 여자는 왜 글을 쓸 수 없는가? 8장 누군가 날 죽이려 하는데 그게 아무래도 내 남편인 것 같아 : 모던 고딕 9장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 10장 최근 유행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 대하여 11장 ‘여자처럼’ 글쓰기 : 윌라 캐더 작품에서 정체성은 어떻게 변형되는가 12장 〈누런 벽지〉에 대하여 13장 여학생들끼리의 사랑은 성애적인가? 14장 수전 코플먼에게 보내는 편지 ​ 미주 찾아보기 ​ ​

  • 소개 | 포도밭출판사

    포도밭출판사는 충북 옥천에 있는 작은 출판사입니다. 2014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옥천에 포도 농가가 많아서 저희 이름도 ‘포도밭출판사’라고 지었습니다. 인문, 사회과학, 인류학, 문학, 예술 분야의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나선형’ 시리즈를 통해서 SF 작품을 꾸준히 펴낼 계획입니다. 한여름 포도밭의 이랑을 걷다 보면 포도송이에 알이 빽빽하게 찬 게 보이지요. 송이에 든 알이 너무 빽빽하면 한 알 두 알 빼내어 알이 골고루 넉넉하게 크도록 솎는데, 그런 식으로 포도송이를 살피고 매만지며 이랑 이쪽에서 저쪽으로 왔다갔다 하는 포도밭의 노동이 종이에 빼곡히 적힌 글자들을 훑고 다듬어 책으로 내놓는 출판사의 노동과 닮은 데가 있다고 믿으며, 그래서 포도밭출판사라는 이름을 좋아합니다. ​ ​ 포도밭출판사 / 나선형 Podobat Publishing Company / Spiral ​ 29049 충북 옥천군 옥천읍 성신로 16, 필성주택 202호 Unit 202, 16 Seongsin-ro, Okcheon-eup, Ogcheon, Chungcheongbuk-do, Korea 전화. 070-7590-6708 팩스. 0303-3445-5184 이메일. podobatpub@gmail.com 홈페이지. podobat.co.kr

  • 우리는군대를거부한다 | 포도밭출판사

    2014-05-15 출간 | 정가 10,000원 | 반양장본 | 264쪽 | 140*225mm | ISBN : 9791195277018 우리는 군대를 거부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53인의 소견서 엮은이: 전쟁없는세상 책소개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53인의 소견서들을 원고로 엮었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14년에 걸친 기록들이다. 2001년 오태양 씨의 병역거부선언이 있기 전까지, 이들의 병역거부는 주로 ‘집총 거부’의 의지로만 부각되었다. 그러나 병역거부의 이유로 선언된 것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한국의 병역거부운동이 병영국가 한국의 곪아 터진 여러 부분들에 제각기 얼마나 힘차게 맞서왔는지를 알게 된다. 개인의 신원을 인권 침해 이상으로 심각하게 구속하는 군사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만이 아니다. 미국의 명분 없는 침략전쟁이었던 이라크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한 정부, 죄 없는 시민들을 폭력으로 진압하도록 지시하는 군대, 평택 대추리, 제주 강정, 그리고 밀양에서 국가 폭력을 자행하는 불의의 권력,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얼룩진 부당한 현실 등이 모두 이들 ‘병역거부자’들이 맞서 싸워온 상대들이다. ​ 보도자료 ​ “언제까지 총으로 살인을 연습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 젊은이들이 감옥에 가야 합니까?” “인간을 이렇게 단순하고, 복종적이고, 극단적으로 만드는 일이 강제적으로 일어나도 괜찮은 것일까? 이것이 과연 어쩔 수 없는 문제인가?” “우리가 이루고 있는 공동체는 우리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져야 합니다” 병영국가 한국에 정면으로 반(反)하는 ‘용감한 겁쟁이’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53인의 소견서 군대 대신 감옥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호와의증인 신자들 외에도 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그리고 반군사주의 및 반국가주의 신념에 따라, 또한 소수자운동, 인권운동, 생명사상 등의 맥락에서 입영을 거부하는 이들이다. 이 책은 이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중에서 53인이 작성한 소견서들을 원고로 엮었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14년에 걸친 기록들이다. 2001년 오태양부터 2014년 최근 강길모까지, 시대와 정체성 들에 따른 다양한 변화 2001년 오태양 씨의 병역거부선언이 있기 전까지, 이들의 병역거부는 주로 ‘집총 거부’의 의지로만 부각되었다. 그러나 병역거부의 이유로 선언된 것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한국의 병역거부운동이 병영국가 한국의 곪아 터진 여러 부분들에 제각기 얼마나 힘차게 맞서왔는지를 알게 된다. 개인의 신원을 인권 침해 이상으로 심각하게 구속하는 군사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만이 아니다. 미국의 명분 없는 침략전쟁이었던 이라크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한 정부, 죄 없는 시민들을 폭력으로 진압하도록 지시하는 군대, 평택 대추리, 제주 강정, 그리고 밀양에서 국가 폭력을 자행하는 불의의 권력,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얼룩진 부당한 현실 등이 모두 이들 ‘병역거부자’들이 맞서 싸워온 상대들이다. 부당한 국가 현실에 대한 치밀한 기록, 스스로 처벌과 차별이 따르는 삶에 뛰어든 청년들의 격정적 말과 사유 이 책을 엮은 평화단체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인 여옥 씨는 말한다. “어느 것 하나 쉽게 적힌 글이 없다. 수감을 앞두고 두려움과 걱정에 망설이고 또 망설이는 그 마음,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며 고민으로 지새우는 수많은 밤, 읽을 사람들의 표정과 질문을 상상하며 수도 없이 고친 노력들이 소견서마다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글들은 그 모든 걱정과 고민과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은 숨길 수 없었던 고백이자 도전이고,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설레고 긴장되는 편지들이다.” 2005년에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감옥에 다녀온 이용석 씨는 이렇게도 말한다. “살면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글 하나를 쓰기 위해 그렇게 많은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 하나하나에 신경을 쏟아붓는 일은 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무겁고, 비장하지만, 그게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병역거부자들이 짊어진 역사의 무게가 아닌가 한다.” 이 소견서들을 접한 한 독자는 “이 글들이 바로 우리 시대의 가장 뜨거운 시(詩)가 아닐까”라고 말한다. 자신이 품은 생각과 실천하려는 바를, 강고한 현실 앞에서 떨리는 심정을 견디며 우렁차게 외친 말들이기에, 다른 어떤 글들과 비교할 수 없는 감상이 가능해지는 듯하다. 병역거부운동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가야할 길 「세계인권선언」에 적힌 ‘사상·양심·종교의 자유’에 따르자면, 병역을 거부하는 뜻을 가진 이들에게 대체복무 혹은 사회복무의 기회가 있어야 하지만, 국내 상황은 아직도 요원하다. 그리하여 현재에도 ‘총으로 살인을 연습할 수 없다’는 이들은 ‘사상·양심·종교의 자유’를 구속당하며 철창에 갇히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내외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병역거부자를 예외 없이 감옥으로 보내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그런 이유 탓에 전 세계 병역거부 수감자 중 한국의 수감자 수가 압도적이다. 안전장치 없이 급격히 기울어만 가는 한국사회에서, 서로를, 나아가 생명과 공동체를 지키려는 이들의 행보는 이토록 힘겹다. 이들은 굳건한 외침을 통해, 전쟁 및 국가폭력이 낳고 있는 무참한 현실을 다시금 돌아보길 요구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이들이 내딛는 ‘평화의 행보’에 동참하면서, 더이상 철창에 갇히는 양심이 없도록 제도개혁에 힘써야 할 것이다. 다가오는 5월 15일은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또 한번의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엮은이 소개 전쟁없는세상 평화주의자.반군사주의자들의 네트워크. 2003년에 병역거부자들의 모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군사 주의와 전쟁에 저항하는 다양한 활동(병역거부 캠페인, 비폭력 프로그램, 무기거래 반대 캠페인, 제주해군기지 건설 저지 캠페인 등)을 하고 있다. 모든 전쟁은 인간성을 파 괴하는 범죄일 뿐이며,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 더 많은 문제들을 발생시킨다고 생각한다. 전쟁이 일상적인 차별과 착취의 결과물이듯, 평화 역시 일 상적인 노력의 결과물이다. 전쟁없는세상은 전쟁을, 그리고 전쟁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을 우리 일상과 사회구조에서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홈페이지 http://www.withoutwar.org ) ​ 차례 책을 엮으며.4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란 무엇인가.8 2001 ~ 2005 병역거부선언.13 2006 ~ 2009 병역거부선언.93 2010 ~ 2014 병역거부선언.167 ​ ​

  • 사회적경제의 발견 | 포도밭출판사

    정가 13,000원 | 264쪽 | 135*210mm | ISBN : 9791195277032 사회적경제의 발견 ​나중이 아니라 지금 행복한 경제! 엮은이: 충남연구원 보도자료 ​ 경제 규모는 커지는데 왜 삶은 점점 더 빈곤해질까? 우리는 언제까지 자신을 희생하며 불행하게 살아야 할까? 우리의 행복, 우리 스스로 돌보며 살 수 없을까? 삶 속의 사회적경제를 발견하라! 시장경제는 빙산의 일각! 이것이 진짜 경제다 우리는 시장경제가 압도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빠르고 편리한’ 온갖 서비스가 제공되고, 지갑만 열면 ‘싸고 다양한’ 물건을 언제든 구할 수 있는 세상이다. 지갑이 두툼하기만 하면 아쉬울 것이 없는 세상. 하지만 지갑을 채우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만만치 않다. 지갑이 얄팍해졌을 때 마주치는 현실은 더 엄혹하기만 하다. 그래서 개인들은 돈벌이를 멈추면 곧 끝장날 것처럼 위태로운 심정마저 느낀다. 어느덧 ‘경제’란 돈벌이를 성공적으로 추구하지 못하는 사람을 궁지로 모는 현실의 속성이 되었다. 이러한 경제에 압도된 사회는, 정치든 문화든 손쉽게 돈벌이의 수단으로 환원시켜나간다. 이는 어느 어두운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의 일면이다. 그런데 이렇게 불길한 힘이 가속화돼가는 와중에 ‘진짜 경제’를 성찰하고 실험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가 압도돼 있는 시장경제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반전(反轉)을 전파하는 이들, 자기 자신과 주변에서부터 ‘상호성’ ‘호혜성’ ‘신뢰’ ‘관계’ ‘순환’ 등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이들. 삶 속에서 사회적경제를 발견하고 구현해가는 이웃들이다. 사회적경제를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생활하려면 많은 물건과 서비스가 필요하다. 혼자나 가족이 물건과 서비스를 직접 장만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교환하거나 구매할 수도 있다. 시장과 경제가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 아닐까? 이 책에서 다뤄지는 사례들은 흔히 우리가 경제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나 돈으로만 매개했던 삶을 다른 방식으로 꾸려간 사례들이다.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기존의 시장 구매와는 다른 방식으로 마련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와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며 사회를 바꿔가고 있는 이야기들이다.”(13쪽, <들어가며>에서) ​ 『사회적경제의 발견』은 사회적경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소개한다. 사회적경제의 실천 사례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란 무엇인가’란 논의가 활발한 와중에 이 책은 오히려 이론에서 눈을 돌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그 모습을 찾는다. 그 이유는 사회적경제가 애초에 삶 속에서 능동적으로 가꿔지는 것이지 이론을 좇아 구성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사회적경제 사례들을 ‘돌보다 / 알리다 / 먹다 / 낫다 / 만들다 / 다니다 / 일하다 / 배우다 / 만나다 / 묵다 / 벌다 / 헤어지다’라는 구분을 통해 소개한다. 이 구분은 생애의 흐름 속에서 마주치는 기본적인 필요들이기도 하다. 여기 소개하는 사회적경제 사례들은 인간의 기본적 필요들을 시장경제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충족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으며 각각 공동육아, 지역언론, 로컬푸드, 대안의료, 적정기술, 공정여행, 사회적 일자리, 마을학교, 네트워킹 공간, 대안주거, 지역금융, 협동장례 등의 방식으로 대표된다. 흔히 사회적경제 영역이라고 하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을 우선 떠올리는데, 이 책의 사례 중에는 주식회사의 이야기도 두 편이나 들어 있다. ‘(주)옥천신문사’와 ‘(주)즐거운밥상’이다. 사업체의 형태가 무엇이냐를 따지기에 앞서 ‘사람을 중시하며, 민주적인 운영을 통해, 공동체의 공공성과 지속성을 강화하는가’라는 기준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돈이 아니라 이웃을 선택하라 “하늘과 땅만 보고 농사만 지으면 되는 줄 알았지요. 땀 흘려 지은 농산물 어데로 가는지도 모르고 누구한테 얼마에 파는지도 도무지 알 수 없었지요. 내 이웃이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것이 우리네 농산물이었지요. 같이 나누고 싶은데, 믿음으로 건네고 싶은데, 대도시의 공판장과 유통회사들은 가격을 후려치면서 모양 좋은 것만 가져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연과 사람을 생각하는, 옥천의 친환경농업하시는 분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습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던 거지요. 우리가 농사짓는 땅이 있는 곳, 옥천을 살려내고 싶었습니다. 땅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고 그렇게 지역도 살리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름하여 ‘옥천살림’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84~85쪽, <옥천살림협동조합> 편에서) 돈의 힘이 압도하는 세상에서 다시금 우리의 행복을 우리 스스로 돌보며 사는 방법. 이 책에 담긴 사례들이 보여주는 선택지는 바로 ‘이웃’이다. 나아가 ‘지역’이고 ‘공동체’다. 우리가 잘 아는 말로 “한 아이가 자라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온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우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온 마을을 가꾼다. “만인은 일인을 위해, 일인은 만인을 위해”라는 사회적경제의 주요한 이념에도 그러한 뜻이 잘 담겨 있다. 책에 실린 사례 중 한 곳인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사명은 “자신을 돌보라, 서로를 돌보라 그리고 공동체를 돌보라”라고 한다. 돈이 아니라 이웃을 선택한다는 것은, 우리가 삶에서 충족하고자 하는 다양한 필요를 저 메마른 돈에만 맡기지 않고 더 능동적으로 가꾸겠다는 ‘의지’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웃의 삶을 고민하기 시작하고, 구체적인 만남을 도모하면서 일어난 변화의 예시들이 바로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이웃들과 직접 만든 공동육아어린이집, 살기 불편한 데도 전월세 인상 때문에 주인 눈치만 보던 청년들이 함께 만든 주택협동조합, 지역의 건강한 먹거리를 우리 지역부터 공급하자며 세운 로컬푸드협동조합, 학교와 지역을 연결하며 지역과 공동체를 재생하려는 교육사회적기업, 일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교류를 넘어 일터를 공유하며 자원과 삶의 재분배를 꿈꾸는 동네협동조합, 여행자와 주민이 서로 배우고 생각하며 지속 가능한 삶을 모색하는 여행협동조합, 중앙언론이 알려주지 않는 지역 주민을 위한 소식을 스스로 전파하는 지역신문,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지역경제의 디딤돌을 만드는 신용협동조합, 지역 자원을 활용해 에너지 복지를 실현하는 적정기술협동조합, 병의 치료를 넘어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려는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복마전이 되어버린 장례 문화를 바로잡고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는 공제조합 등의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적극적인 선택과 의지가 필요할 때다 시장경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얼굴을 맞댈 기회를 줄이지만 사회적경제는 그런 기회를 더욱더 늘리려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삶을 좌우하지 않도록 사회적경제는 일하고 소비하는 손들이 서로를 드러내고 만나길 원한다. 만나고, 서로의 처지를 공유하고, 다른 선택지를 찾는 과정에서 또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가 다르게 살 수 있는 힘을 배양한다. 하지만 사회적경제의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현실 속에서 사회적경제는 시장경제와 함께 존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시장경제의 힘이 압도적으로 세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경제의 영역을 넓히고 그 힘을 키운다는 건 중립이 아니라 어느 편을 정해서 서는 우리들의 선택을 필요로 한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사례들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현실이다. 이미 존재하기에 좋은 길잡이가 되고, 최소한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살펴볼 좌표가 되어준다. 그리고 ‘나중이 아니라 지금의 행복’을 추구하는 (때로는 험난한) 발자취들이다. 그런데 이 길은 당연히 홀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이 책이 독자를 설득하고자 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함께하자, 같이 살자.” 차례 발간사 “사회적경제라는 말이 너무 어려워요” • 5 들어가며 사회적경제란 무엇일까 / 하승우 • 10 돌보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자라는 공동육아 공동육아협동조합 모여라어린이집 / 강윤정 • 21 알리다 믿을 만한 신문, 아무리 봐도 없다고요? (주)옥천신문사 / 정순영 • 42 먹다 마을과 농민의 만남, 먹거리를 지켜라 옥천살림협동조합 / 권단 • 69 낫다 동네에 마음 편히 찾아갈 ‘주치의’가 있나요?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 조세종 • 90 만들다 건강한 에너지를 직접 만드는 ‘작은 손’ 작은손적정기술협동조합 / 박춘섭 • 109 다니다 허물없이 드나들며 순환하는 공정여행 너나드리협동조합 / 김억수 • 126 일하다 우리의 일터, 이곳의 진짜 주인은 우리죠 (주)즐거운밥상 / 장효안 • 139 배우다 마을이 성장시키는 학교, 그 안에서 자라는 아이들 충남교육연구소 / 조성희 • 166 만나다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마을 공간 공간 사이 / 김종수, 장동순 • 187 묵다 집세 버느라 집에 있을 시간이 없다고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 홍은일 • 204 벌다 일인은 만인을, 만인은 일인을 위하는 금융 논골신용협동조합 / 유영우 • 222 헤어지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 지혜로 뭉친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 / 배한호 • 238 나오며 백견, 불여일행 / 하승우 • 253 ​ ​ 지은이 소개 강윤정 천안NGO센터 센터장, 사회적기업 북카페산새 이사, 천안아산한겨레두레협동조합 이사, 충남사회경제네트워크 이사, 천안시 작은도서관협의회 운영위원. 정순영 <옥천신문> 전 편집국장. 옥천순환경제공동체 사무국장. 권단 옥천 주민. 조세종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대전사회적기업협의회 회장,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교육위원. 박춘섭 충남연구원 충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책임연구원. 김억수 너나드리협동조합 전 대표이사, (사)서천생태문화학교 상임이사. 장효안 충남연구원 충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전 책임연구원. 협동조합 우리동네 이사. 조성희 충남교육연구소 사무국장. 김종수 충남연구원 충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센터장. 장동순 천안아산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협동조합 우리동네 사무국장, 공간 사이 총괄 매니저. 홍은일 충남연구원 충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연구원. 유영우 논골신용협동조합 이사장, 한국협동사회경제연대회 공동대표, 서울협동조합협의회 이사 겸 조직위원장. 배한호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한 한의사. 천안아산한겨레두레협동조합 이사장,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연합회 감사. 하승우 땡땡책협동조합 이사장, 교육공동체 벗 이사. 자치와 자급의 삶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 ​

  • 오후 네 시의 풍경 | 포도밭출판사

    지은이: 김정선 ISBN: 979-11-88501-07-6 (03810) 출간일: 2019년 4월 5일 정가: 13,000원 제본: 반양장 쪽수: 272쪽 판형: 128×188mm 분야: 에세이 > 한국에세이 오후 네 시의 풍경 지은이: 김정선 ​ 책소개 ​ 오후 네 시에, 우리는 ‘누구’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오후 네 시’를 응시하다 살아 있다는 것이 어색한 이들에게 보내는 신호 ​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의 저자 김정선이 5년간 쓴 60편의 에세이. 저자는 ‘평생을 남의 삶을 살 듯, 시차 적응에 실패한 여행자처럼 살아온’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시간이 오후 네 시라고 말한다. 하루를 마감하기엔 이르고, 뭔가를 다시 시작하기엔 이미 늦은 시간. 살아 있으나 죽은 시간. 그런 오후 네 시마다 그는 고개를 들고 풍경을 보았다. 그리고 쓸 수 있을 때마다 한 자 한 자 썼다. 이 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오후 네 시의 존재’인 그가 응시하는 세상의 이야기다. 그리고 오후 네 시면 어색하게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는, 문득 살아 있다는 것을 어색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보내는 찌릿찌릿한 신호다. 보도자료 ​ 살아 있음이 어색한, ‘오후 네 시의 존재’들에게 보내는 신호 ​ 사람들은 내게 혼자 일하니 외롭겠다고 말하지만, 혼자 일하긴 해도 그 때문에 외로운 건 아니다. (…) 저자나 번역자, 편집자는 물론 디자이너까지 자신의 창의성이나 아이디어를 책에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지만 교정 교열자인 나는 그럴 수 없다. 내가 일한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되니까. 마치 그 옛날 빈방에 홀로 앉아 까맣게 잊혔던 그때처럼, 나는 존재하면서도 존재감이 없어야 한다. 혼자라고 느끼기에 맞춤한 조건이 아닌가. —「홀로, 나와 함께」 중에서, 64쪽 ​ 저자는 누군가의 원고를 서너 번 이상 꼼꼼히 들여다봐야 하는 교정 교열자로 일한다. 하지만 타고난 성정은 지독한 덤벙이임을 고백한다. 심장 수술 후유증으로 몸 한쪽이 자유롭지 않은 어머니 간병은 그에게 주어진 중요한 일과다. 그는 왜인지 여럿이 함께 있을 때면 혼자라고 느끼고, 마침내 혼자가 되면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 든다. 책과 타인의 문장들은 그에게 자주 소외감을 안기지만, 이제 그것들은 여러 의미에서 떠날 수 없는 거처나 다름없다. 그는 오랫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살았다고 회고한다. ‘존재하면서도 존재감이 없어야 하는’ 교정 교열 작업처럼 자신의 정체성도 그렇게 닮아온 걸까. 늦게 잠들고 늦게 깨는 일상 탓에 그에게는 ‘오후 네 시’ 즈음이 특별하다. 오후 네 시는 어떤 시간인가. 하루를 마감하기엔 이르고, 뭔가를 다시 시작하기엔 이미 늦은 시간. 살아 있으나 죽은 시간. 그래서 어색한 시간. 하지만 가만 보면 의외로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 작가는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시간이 오후 네 시라고 말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오후 네 시에 나는, 너는 어떤 존재인가. 그것이 궁금한 작가는 이 ‘특별한 유형지’ 같은 오후 네 시의 풍경들을 응시한다. 그리고 자신이 본 세상의 이야기를 발신한다. 오후 네 시면 어색하게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는, ‘오후 네 시의 존재’들을 향해. ​ ​돌아보면 내게 집은 늘 어두웠고 거리는 필요 이상으로 밝았다 돌아보면 내게 집은 늘 어두웠고 거리는 필요 이상으로 밝았다. 하여 나는 집에선 불행한 척해야 했고, 거리에선 행복한 척해야 했다. 나는 그게 내게 주어진 삶에 적응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집으로 가는 길」 중에서, 98쪽 ​ 김정선 작가는 ‘아침형 인간이었던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 낮에는 어머니 간병을 하고, 늦은 오후부터 교정 교열 일을 시작한다. 간병 뒷정리와 이런저런 집안일을 겸하며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 찾아온다. 적막을 쫓으려고 때 지난 오락 프로그램 재방송을 소리를 낮춰 틀어두기도 한다. 자세를 고쳐 앉고 교정지 위로 시선을 떨구다 문득 시계를 보면 어느새 새벽녘. 늦게 잠들고 늦게 눈을 뜬다. 다른 생활을 선택할 방도는 잘 없다. 어머니를 모실 사람이 자신뿐이라서. 그러다 2010년경에 인터넷 서점 블로그를 시작했다. 남의 삶을 살다가 비로소 자기 삶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드는 무렵이 ‘오후 네 시’여서일까. 블로그 이름은 ‘오후 네 시의 풍경’이라고 지었다. 오후 네 시. 일반적으로는 근무 시간의 말미. 뭔가를 끝내기도 뭔가를 시작하기도 애매한 느낌이 지배하는 시간. 작가는 ‘오후 네 시’를 창구 삼아 5년 가까이 차곡차곡 글을 썼다. 집의 어둠과 거리의 밝음, 그리고 그사이의 어스름을 응시하는 자신에 대해서. ​ ​슬픔에 붙들린 자는 하염없이 나열한다 슬픔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나열하는 것이다. 예고 없이 찾아드는 오열로 슬픔을 처리하지 못하고 오랜 슬픔에 붙들려 있는 자는 무언가를 하염없이 나열한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나열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나열한다. 그것은 의미 없는 행위에 불과하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중심을 뺏는 것이랄까. 분노나 희열에 사로잡힌 자가 중심에 집착하는 것과 달리 슬픔에 잠긴 자는 그 중심이 버겁기만 하다. —「나열하는 자의 슬픔」 중에서, 176쪽 ​ 쓰는 행위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오열로 슬픔을 처리하지 못하고 오랜 슬픔에 붙들려 있는 자’는 작가 자신이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나열하기’다. 특별한 의미를 담지 않고 나열하기. 하지만 이로써 버겁기만 한 ‘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슬픔에 잠겼을 때, 슬픔에 짓눌리지 않기 위한 행위로 작가가 글쓰기를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 ​26년째 교정 교열자로 살고 있지만 사실은 지독한 덤벙이 ​ 워낙 멍한 채로 지내기 일쑤여서 이것저것 잃어버리는 게 장기 아닌 장기던 시절이었다. 실내화 주머니에 실내화는 물론 우산이며 필통, 장갑 등등 그 당시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모두 모으면 문구점 하나는 거뜬히 차렸을 것이다. (…) 물론 지금도 그러는 건 아니다.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까. 글쎄, 그보다는 남이 쓴 글을 한 자 한 자 확인해야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게 맞지 싶다. 그사이에 다시 확인해보고 따져보고 점검해보고 그래도 안심하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를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며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는 일이 습관이 된 탓이리라. —「신발 한 짝」 중에서, 168~169쪽 ​ 누군가 쓴 원고를 한 자 한 자 꼼꼼히, 못해도 서너 번 이상 거푸 들여다봐야 하는 교정 교열 일. 그 일을 26년째 하고 있으며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등의 책을 내며 ‘교정의 숙수’ ‘문장 수리공’ 등의 이름까지 얻은 저자는 의외로 자신이 지독한 덤벙이라고 고백한다. 어릴 적 학교에 갔다가 어딘가 신발 한 짝을 벗어두고 맨발로 집에 돌아왔을 정도로. 밖에 나가면 무엇이든 잃어버리고 돌아오기 일쑤이던 아이. 그는 ‘나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를 속으로 연발하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다고 한다. ‘괜찮다고,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뿐만 아니라 같이 신발 한 짝을 벗어버리고 나란히 터덜터덜 걸어보겠다고 한다. 본성대로 살지 못하고 가슴 졸이는 삶이 얼마나 아픈지 알기 때문에. ​ ​타인의 문장들 속 세상이 외롭고, 좋았다 나중에 고등학생이 되어 읽은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에서 나는 이런 문장과 만났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신기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신기하게 만드는 것이 글인 줄 알았더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거꾸로다. 모든 글은 신기한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신기한 것이다. —「소설 이야기, 둘」 중에서, 194~195쪽 ​ 리베카 솔닛은 그의 책 『멀고도 가까운』에서 글쓰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라고. 언뜻 불가능한 일, 하지만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가는 행위가 다름 아니라 글쓰기다. ‘책’은 그 신기하고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 벌어지는 현장이다. 독자이자 교정 교열자로서 김정선 작가는 많은 시간을 그 현장에 머문다. 그리고 스스로도 글을 쓴다. 외롭고, 어색하고, 좋은 순간들에 대해. ​ ​ 지은이 소개 ​ 김정선 아침형 인간이었던 적이 없다. 내 인생에서 오전은 대개 비몽사몽간에 지나가버린 시간들이었다. 그렇다고 밤의 삶을 흥겹게 산 것도 아니니, 내 삶을 굳이 규정하자면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오후의 삶 정도가 되지 않을까. 교정 교열자로 살면서 5년 가까이 ‘오후 네 시의 풍경’이라는 인터넷 서점 블로그를 운영한 적이 있다.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소설의 첫 문장』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등의 책을 냈다. ​ ​ 추천사 ​ 김정선 작가를 내 맘대로 하나의 표현에 집어넣을 수 있다면 ‘어색함’이라는 단어를 고르겠다. 그는 어색해하는 사람이다. 모든 것이 어색해서,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서, 모든 것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 자기 자신을 꼭 닮아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채로 어색할 뿐인 오후 네 시라는 시간 속에 자신의 모든 어색한 순간을 담아 놓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한 일은 생뚱맞지만 오후 네 시에 알람을 맞추는 것이었다. 한동안 매일 오후 네 시가 되면 알람이 울리고, 알람이 울리면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금 내 앞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는지를 살폈다. 출출해서 누룽지를 끓여 먹는데 알람이 울리기도 했고, 지하철 안에서 졸다가 알람에 깨기도 했다. 보통 알람은 대단치 않은 순간들에 울렸다. 그래도 그때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살아 있다’는 것이 되게 어색하게 느껴져서 시시한 순간에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자주 짓곤 했다. 그러던 지난 일요일에는 ‘리스본’이라는 작은 책방에서 친구에게 선물할 시집을 고르고 있는데 알람이 울렸다. 고개를 드니 통유리 밖으로 푸른 하늘이 보였고 그 아래로 모처럼 화창한 오후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의 발걸음이 유유하게 움직였다. 마침 손에 들려 있던, 친구를 위한 선물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시집 위로 고개를 떨구며 나는 ‘살아 있다는 거 너무 좋은 거네’라고 생각했다. 김정선 작가의 다른 책들을 읽을 때처럼 이번에도 나는 그가 무심한 듯 흘린 활자들을 그냥 천천히 따랐다. 이제 이 책은 다 읽어버렸지만, 하루 한 번 고개를 들고 나의 세계를 어색하게 바라보는 이 책이 남긴 규칙은 계속 이어가 보려고 한다. 알람이 울린다. 고개를 들 시간이다. - 요조(뮤지션, 책방무사 대표) ​ ​ 책 속에서 ​ 성인이 되어서도 여럿이 함께 있을 때 오히려 혼자라고 느끼고, 마침내 내 거처로 돌아와 혼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혼자에서 벗어났다고 느끼는 버릇은 여전했다. (…) 일을 하다가 쉴 때나 하루 일을 마치고 내 거처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혼자인 상태에서 벗어나 ‘나’와 단둘이 있게 되는데, 물론 이런 상황이 좋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외로움이란 나와 단둘이 남은 상황을 어색해하는 정서고, 고독감이란 그 상황을 즐기는 정서라고 한다면, 외로움을 느낄 때도 적지 않으니까. —「홀로, 나와 함께」 중에서, 64~65쪽 ​ 나는 그 사내가 마치 세상의 멱살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몸을 부여잡고 흔들며 묻고 싶어졌다. 어떻게 살면 되는 건데요, 대체 난 뭘 하면 되냐구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멱살을 내게 내어준 채로 외려 나를 흔들어댈 것만 같았다. 그걸 몰라서 물어? 정말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고? —「키키키」 중에서, 81쪽 ​ 어지간해서는 거짓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다. 윤리적 기준에 따라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 말하자면 정직함이란, 밖에서 나를 바라보는 무수한 눈들을 당당히 마주보는 것이다. 반면 솔직함은 내 안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단 하나의 눈과 마주하는 것이고. 이건 또 하나의 나인 경우도 있고 나조차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저 시선 그 자체인 경우도 있다. 밖에서 나를 보는 무수한 눈들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지만(눈 한번 질끈 감으면 그만이다), 내 안의 시선은 눈을 감는 순간 더 선명하게 보인다. —「과연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까?」 중에서, 88쪽 ​ 일에 지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새벽길, 문득 올려다본 감청색 하늘에 달이 떠 있다. 대보름달이라 유난히 밝고 둥그런 달. 아, 달이구나. 나는 하루 종일 글자를 들여다보느라 잔뜩 충혈이 된 눈으로 달을 보았다. 진짜 달이었다.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산다는 이야기 속의 달이 아니라 진짜 달. (…) 너무 동그래서 외려 달 같지 않아, 그저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지는 달. 갑자기 내가 세상 모든 이야기의 바깥에 슬쩍 비켜서 있는 것만 같았다. —「달을 보았다」 중에서, 101쪽 ​ 간혹 도서관에서 교정지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혹은 도서관 밖 벤치에 앉아 있다가, 그 자세 그대로 내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더 이상 내가 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는 두려움에 휩싸이는 것이다. 어떤 때는 삼십 초에 불과하지만, 어떤 때는 오 분 가까이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고개를 약간 기울이거나 세운 채로 혹은 펜을 손에 쥔 채로, 아니면 다리를 꼰 채로 영원히 그대로 굳어질 것만 같다. 그러다가 나는 깨닫는다. 내가 마침내 스스로를 나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아니, 슬픔이 나를 나열하고 있다는 것을. —「나열하는 자의 슬픔」 중에서, 176~177쪽 ​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갔을 때 나는 무섭도록 말이 없는 학생이 되었다. 그냥 멍한 표정으로 학교와 집을 왔다 갔다 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걷다가 하굣길에 선배에게 경례를 붙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뺨을 맞기도 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해 겨울 아버지는 또 양복값을 받지 못했고, 60권짜리 한국문학전집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이광수에서 시작되는 그 책들을 나는 겨울방학 동안 한 권씩 읽어나갔다. 그리고 교보문고를 다니며 용돈으로 책을 사기 시작했다. 톨스토이로 시작되는 소설책들을. —「소설 이야기, 하나」 중에서, 192~193쪽 ​ ​ 차례 ​ 여는 글 ​ 1장 오늘은 우는 날 ​ 탈장 10초 비는 사람의 마음과 부딪칠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왜 죽였냐고요? “하늘에게도 정이 있다면 하늘 역시 늙을 것이다” 책 이야기 총각무와 김 그리고 숭늉 냅킨과 절편 오늘은 우는 날 홀로, 나와 함께 찌릿찌릿 전파사 중독, 그 교차로에 갇히다 키키키 악마는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상의 한 점 ​ 2장 깜빡 잊었다 ​ 과연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까? 세 번이나 살아야 한다고? 머릿속의 벽돌 집으로 가는 길 달을 보았다 나와 우리 안과 밖 우체국에서 악마가 말했다, 내가 아니라 깜빡 잊었다 기억의 집 수건 공동체 가을 풍경 잡스러움에 대하여 어려운 일과 힘든 일 ​ 3장 질문과 답 ​ 엄지손가락 우거지된장국 문상 이등병 신발 한 짝 메커니즘 칠집 김씨 나열하는 자의 슬픔 치욕과 사랑 소설 이야기, 하나 소설 이야기, 둘 소설 이야기, 셋 우울한 편지 질문과 답 곤경에서 벗어나다 ​ 4장 아름다운 구석 ​ 사랑의 감수성, 하나 사랑의 감수성, 둘 사랑의 감수성, 셋 고량주와 까마귀 황두수 이야기 낮과 밤 국어사전의 사랑법 “나는 휴일마다 죽을 것이다” 가장 감동적인 서문 세상에서 가장 짧은 주문 다른 것이 없지는 않다 외주 교정자로 살아가기 감자전과 김치죽 어떤 것들 아름다운 구석 ​ ​

  • 대학공간에서의인권 | 포도밭출판사

    엮은곳: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지은이: 아드리안 홉킨스, 치사토 키타나카, 데이비드 카프, 데보라 투르크하이머, 구미영, 김엘림, 신윤진, 이성용, 이주영, 주윤정 ISBN: 979-11-88501-31-1 (03300) 출간일: 2022년 9월 30일 정가: 15,000원 제본: 무선 쪽수: 216쪽 판형: 130×210mm 분야: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사회문제 일반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사회과학계열 > 사회학 대학 공간에서의 인권 엮은곳: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지은이: 아드리안 홉킨스, 치사토 키타나카, 데이비드 카프, 데보라 투르크하이머, 구미영, 김엘림, 신윤진, 이성용, 이주영, 주윤정 책 소개 ​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에 인권을 통합하기 대학 공간에서 인권이 제대로 존중되고 보호되려면, 나아가 대학이 인권의식을 갖춘 구성원을 양성할 수 있으려면,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에 인권을 통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바탕이 마련되어야 대학 구성원들이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문화를 형성할 수 있고, 인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로 인한 피해를 보다 잘 파악할 수 있으며, 피해자를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들을 쌓아나갈 수 있다. 이 책은 2022년 1월 서울대학교 인권센터가 개최한 네 번의 웨비나에서 발표·토론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학문연구, 교육, 업무 등이 이루어지는 대학 공간 곳곳에 인권의 가치가 스며들기를, 그 효과로 실질적 변화들이 대학 공간에서 이뤄지기를 바라며 이 책을 출간한다. ​ 보도자료 ​ 2022년 3월부터 모든 대학이 인권센터를 반드시 두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학내 구성원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인권센터나 성평등센터와 같은 기구를 운영하는 대학들이 있었지만, 2021년 2월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이제 인권센터 설치는 모든 대학에 의무사항이 되었습니다. 대학이 구성원의 인권 보호를 위한 전담기구를 필수적으로 두게 된 것은 고무적입니다. 성희롱·성폭력이나 부당한 업무지시, 차별, 괴롭힘과 같은 인권침해를 겪는 구성원들이 찾아 도움을 요청하고 해결을 모색할 수 있는 기구가 마련되고, 이미 인권센터가 있는 대학의 경우 더 효과적으로 기능하도록 개선을 촉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인권이 제대로 존중·보호되고 인권의식을 갖춘 인재를 양성할 수 있으려면, 대학 인권센터 설치·운영 이상의 것이 요구됩니다. 즉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에 인권을 통합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바탕이 마련되어야, 대학 구성원들이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문화를 형성하고, 인권 문제가 발생할 때 그로 인한 피해가 무엇인지를 더 잘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피해자를 보호·지원하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들을 쌓아나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은 2022년 1월 서울대학교 인권센터가 개최했던 네 번의 웨비나에서 발표·토론되었던 내용을 엮은 것입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아드리안 홉킨스, 일본 히로시마 대학 하라스먼트 상담실의 치사토 키타나카, 미국 샌디에이고 대학 리더십 및 교육과학 대학의 데이비드 카프,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 로스쿨 데보라 투르크하이머를 발표자로 초청해 이야기를 들었고, 각 세미나별로 국내 여러 연구자들이 대담자로 참여해 한국 사회 및 대학에 가지는 시사점을 짚으며 토론해 주셨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구미영 연구위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김엘림 교수,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 국립평화분쟁연구소의 이성용 교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신윤진 교수,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의 이주영 교수,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주윤정 교수 등입니다. 이 책을 통해 대학에서 어떻게 하면 인권을 더 잘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리의 사유와 행동의 지평이 넓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대학의 인권센터나 다양성·포용성위원회에서 일하면서 매일 인권, 평등, 다양성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는 책이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대학이 더욱 인권친화적이고 포용적인 방식으로 학문연구, 교육, 업무가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를 바라는 모든 분들에게 생각거리를 주기를 기대합니다. 대학 인권센터의 법적 제도화가 단순히 형식적 발전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대학 내 구성원들의 관계가 변화하고 학문연구와 교육의 과정에 인권의 가치가 스며들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기대합니다. 인권침해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법적 잣대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판단하는 데에만 치중하기보다, 피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피해자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자리로 잘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닦는 일에도 인력과 자원이 배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책에서의 대화와 토론이 그러한 과정에서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1. 평등, 다양성, 포용성의 추구 아드리안 홉킨스의 「평등, 다양성, 포용성의 추구」는 대학이 교육, 연구, 교·직원 인사, 학생 선발을 포함한 대학 운영 전반에서 인권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우리의 사유의 폭을 넓혀줍니다. 홉킨스는 대학 내에서 평등, 다양성, 포용성을 어떻게 실현하려고 노력하는지, 그것이 탁월한 연구와 교육이라는 대학 본연의 목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경험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평등은 누구나 공평한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다양성은 사람들이 지닌 차이가 존중되고 그 가치가 인정되고 수용되어야 한다는 것, 포용성은 공동체 내 기회와 자원을 동등하게 누리며 그 공동체에 소속감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대학 내 하라스먼트 개념과 대응 치사토 키타나카는 「대학 내 하라스먼트 개념과 대응」에서 대학 자치가 마치 강의실이나 연구실에 관한 한 전적으로 교수에게 재량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되곤 하는 일본 대학에서 어떻게 그러한 인식의 장벽을 넘어 캠퍼스 내 하라스먼트에 대한 대응이 발전해 왔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소개합니다. 키타나카는 대학 차원의 하라스먼트 대응을 요구하고 변화를 관찰해 온 젠더사회학자로서, 하라스먼트 상담 조직을 만들고 사건조사를 해서 끝내는 것으로는 하라스먼트 대책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키타나카는 피해가 지속되거나 악화되지 않도록 조기에 소속 학과나 기관과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3. 회복적 정의와 대학 데이비드 카프는 「회복적 정의와 대학」에서 대학 구성원들이 옳고 그름에 대해 생각하고 타인의 관점과 경험을 생각하면서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관계를 강화하고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회복적 정의를 대학에 적용하는 데 필요한 1차적 단계라고 제시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인권친화적인 대학 만들기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카프는 사람들을 같이 대화하고 배울 수 있는 존재로 대하면서, 중요하지만 어려운 도덕적 쟁점에 대해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도덕적 능력을 갖춘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4. 신빙성의 불균등한 배분 데보라 투르크하이머는 「신빙성의 불균등한 배분」에서 여성, 유색인, 장애인, 성소수자, 이민자 등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발언이 자주 무시되고 진실성이 부정당하는 ‘신뢰성 폄하 현상’을 성폭력 피해자의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피해자들은 어떤 일이 발생했고, 그 일은 옳지 않고, 가벼이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처럼 피해자들의 말이 부당하게 무시되거나 평가절하되는 일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피해자의 말이 항상 진실인 것만은 아니지만, 투르크하이머는 피해자의 말에 진실한 증거로서의 효력을 전혀 부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어떤 사건을 판단해야 할 때,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는 입증 원칙’, ‘증거의 우월성 원칙’,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의 원칙’ 등 제도와 맥락에 따라 요구되는 확신의 수준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황에서 형사절차상의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는 입증 원칙’이 요구되는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투르크하이머는 지적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대학에서도 일어납니다. 투르크하이머는 우리의 인식과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법과 문화에 성차별과 권력불균형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 지은이 소개 아드리안 홉킨스(Adrienne Hopkins) 아드리안 홉킨스는 12년간 영국 옥스팜Oxfam에서 국제개발 경력을 쌓은 후 2012년 성평등 전문위원으로 옥스퍼드 대학의 평등과 다양성 팀The Equality and Diversity Unit에 합류하여 2019년부터 동 기관의 수장으로 재직 중이다. 치사토 키타나카(Chisato Kitanaka) 치사토 키타나카는 일본 히로시마 대학의 하라스먼트 상담실 준교수로 하라스먼트 피해자를 상담하고 문제해결을 지원한다. 사회학자로서 주요 연구 주제는 사회학적 젠더 이론, 여성 폭력, 학내 괴롭힘 등이다. 2017년 『아카데믹 하라스먼트 해결: 대학의 상식을 다시 묻기アカデミック・ハラスメントの解決: 大学の常識を問い直す』를 출간했다. 데이비드 카프(David Karp) 데이비드 카프는 미국 샌디에이고 대학 리더십 및 교육과학 대학의 교수로 『대학을 위한 회복적 사법 소책자 The Little Book of Restorative Justice for Colleges and Universities』를 포함하여 공동체의 신뢰 회복과 학내에서의 회복적 사법 등의 연구 주제에 관한 다수의 저서와 학술논문을 출판했다. 샌디에이고 대학의 회복적 사법 센터장을 역임하고 있다. 데보라 투르크하이머(Deborah Tuerkheimer) 데보라 투르크하이머는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 로스쿨 교수로 형사법과 증거법, 페미니스트 법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뉴욕 지방검찰청에서 5년간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사건 전담 검사로 재직하였으며, 2021년 『신빙성: 왜 우리는 피해자를 의심하고 가해자를 보호하는가Credible: Why We Doubt Accusers and Protect Abusers』를 출간했다.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노동법, 젠더법을 연구한다.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젠더법학의 연구, 교육, 실행에 주력한다. 신윤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국제인권규범과 헌법 및 초국경적 인권문제를 연구한다. 이성용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 국립평화분쟁연구소 교수. 분쟁 해결, 협상 중재, 전후 복구, 평화구축 관련 주제들을 연구한다. 이주영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 부교수. 국제인권규범, 인권이론 및 사회권, 평등을 연구한다. 주윤정 부산대 사회학과 조교수. 인권사회학, 소수자/장애, 생태평화를 연구한다. ​ 차례 발간사 서문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에 인권을 통합하기 평등, 다양성, 포용성의 추구 [아드리안 홉킨스 / 토론 구미영·이주영·주윤정] 대학 내 하라스먼트 개념과 대응: 일본 대학의 사례 [치사토 키타나카 / 토론 김엘림·이주영·주윤정] 회복적 정의와 대학 [데이비드 카프 / 토론 이성용·이주영·주윤정] 신빙성의 불균등한 배분 [데보라 투르크하이머 / 토론 신윤진·이주영·주윤정] ​ ​ ​보도자료 다운 받기 ​ ​

  • 정치의 약속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08-3 (03340) 출간일: 2019년 6월 28일 정가: 14,000원 제본: 무선 쪽수: 232쪽 판형: 130×210mm 분야: 사회과학 > 사회운동 / 정치학 정치의 약속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믿(으려)는 당신에게 지은이: 하승우 ​ 책소개 ​ “괜히 힘 빼지 마, 너만 다쳐” 냉소와 체념이 압도하는 시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정치학 ​기울어진 정치사회 현실과 가파른 일상에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을 위한 책. 열정을 빼앗고 냉소와 체념만 주는 현실을 어찌할 것인가. 앞으로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이대로 더 빨리 소멸할 것인가? 시간을 벌며 전환의 기회를 잡을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닥친 지금, ‘뭐라도 해보려는 이들’에게 공존의 신호를 보내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정치의 무대’로 초대한다. 아나키스트 정치학자였다가 2년여 녹색당에서 당직자로 일하고 다시 연구활동가의 자리로 돌아오며 ‘숙성의 시간’을 보낸 저자. 원외정당의 자리에서 바라본 기성정치제도의 한계와 전환의 기회를 열기 위해 우리가 꼭 풀어야 할 정치적 의제들을 꼼꼼히 짚어냈다. 보도자료 ​ “오늘 이렇게 소진돼버리면 내일 깨어날 수 있을까?” ​ 요새는 아침에 눈떠 미세먼지 농도부터 체크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지진, 태풍 같은 자연재해나 대형 재난사고도 먼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전 세계 어디나 사회 불평등은 심화되어가고, 버는 돈은 그대로인데 나날이 지출하는 생활비용은 오르기만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해고 문자가 날아올까 봐 두렵고, 성폭력이나 몰카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도 여전하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기분이다. ‘생존’을 염려하며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덜컥 ‘내일 깨어날 수 있을까’ 싶다. 해법을 찾아야 할 정치는 자기들 기득권을 키우는 데만 열중한다. 심지어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위기’가 밀려오건만, 지금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을 죄다 낡은 시대의 정치인들이다. ‘나’와 세계관도 이해도 다른 저들이 과연 도움이 될까. 지금 사회가 닥친 위기들을 몸소 겪어야 할 당사자는 ‘나’인데, 정작 나에게는 아무 권력도 주어지지 않고, 낡은 정치인들만 권력을 고수한다. 뭐라도 해보려고 나서고 싶지만, 주변 반응은 무관심보다 더 심한 냉소가 대다수다. 이 절망을 어찌할 것인가. ​ ​​ “당직자로 활동한 2년의 시간을 통해 누적된 고민들” ​ 『정치의 약속』의 저자 하승우는 '풀뿌리 공론장에 대한 이론적 고찰'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2006년부터 대학에서 정치학 강의를 하다가 돌연 '학교를 관두고' 자치와 자립, 시민정치, 아나키즘, 공공성 등을 주제로 독립적인 공부모임을 만들어 활동했다. 아나키스트 정치학자로 불린 것도 이즈음. 2014년에는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기획하고 수도권을 떠나 충북 옥천으로 집을 옮겼다. 2016년에는 ‘덜컥’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을 맡으며 당직자가 되었다. 정당정치 연구자였다면 조금은 자연스러울 수 있었겠으나 풀뿌리운동, 아나키즘을 연구한 이력에 비춰보면 그의 정당정치 입문은 다소 의외이기도 했다. ‘우연찮게’ 당직을 맡아 2년을 보내고 다시 연구활동가의 자리로 돌아온 그는 ‘숙성의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정당은 정치의 중요한 매개임을 확인하는 한편, 원외정당이라는 변경에서 기성정치의 한계를, 그리고 한국 정치제도의 온갖 문제점을 몸으로 부딪치며 깨달은 까닭이다. ​ ​“기득권 정치세력이 이길 수밖에 없도록 승패가 정해진 경기장” ​ 흔히 한국사회의 불공평함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부르는데, 이에 저자는 그보다 더욱 심각한 수준이며 아예 ‘승패가 정해진 경기장’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정치의 약속』 1부에서는 철저하게 기득권의 이해관계를 보장해주면서 공정하다고 우기는 것이 실상인 정치 관련 법제도의 문제를 꼼꼼히 따진다. 1부에서는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 기득권에게만 유리하게 맞춰진 선거운동법, 근거 없는 선거연령 제한, 착복이 심각한 특수활동비/업무추진비, 불공정한 정치자금과 재정민주주의 훼손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지적한다. 소위 힘 있고 빽 있으면 모든 게 쉽고 그 반대면 세상이 내게 등을 돌렸다고 느껴질 만큼 야박한 현실은 이토록 뒤틀린 정치사회 제도들로부터 기인한다. 이 부당한 현실은 우리에게 냉소와 체념을 주고, 정당한 열정마저 빼앗는다. ​ ​“위기의 징후를 간파하라” ​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비집고 들어간 틈”이라고. 당최 틈이 없다고 믿기 쉽지만, 결국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틈을 내고 틈을 바꾸는 전략’이 더욱 중요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틈’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다. 지금을 사는 우리를 위한 전략과, 사회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의제들을 정리한 것이 『정치의 약속』의 2부이다. 2부에서는 탈토건, 탈부패, 탈미세먼지, 탈핵, 안전한 노동, 자기결정권, 탈성장, 성평등, 기본소득, 식량주권, 1인 가구, 공공성 등 21세기의 새로운 상황과 조건에서 우리가 꼭 풀어야 할 의제들을 제시하고 설명한다. 이들 각각의 의제도 중요하지만 하나씩 떼놓고 접근하다 보면 추상적으로만 느껴질 수 있기에, 구체적인 일상의 문제로 실감하도록 의제들의 연관성을 밝히는 데도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의제 간의 연관성을 밝히다 보면 현 문재인 정부 정책의 문제점도 선명해진다. 차별은 반대하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시기상조라 하고, 탈핵은 하지만 핵발전소는 수출하겠다고 하고, 성평등은 지지하지만 낙태죄는 폐지하지 않겠다고 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지만 경제성장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는 등의 정책 기조가 얼마나 ‘모순’인지가 분명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이 ‘갈팡질팡’이라고 지적한다. ​ ​​ “경제성장주의, 승자독식주의를 뒤집을 탄소제로 녹색공존 전략” ​ 「나오는 글」에서는 정부가 발표한 ‘제4차 국가균형발전 5개년계획’ 내용을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저자는 정부의 균형발전 계획에 대해 “균형은 거들 뿐 여전히 개발, 발전, 성장이 전략의 중심에 있다”고 비판한다. 선거 때만 되면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퍼지는 ‘균형발전’이라는 말. 대부분이 시설 확충이나 지원 같은 개발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인데 이를 ‘균형발전’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지금이 시설을 늘이고 확충하는 것만 필요한 때인가? 시설이 아닌 사람에게 혜택이 가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균형 발전은 고사하고 일단 안전하고 평온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먼저”라고 일갈한다. 이 목표를 위해서는 정치사회적 전환이 필요하다. 『정치의 약속』은 ‘탄소제로 녹색공존 전략’을 제시하며 전략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한다. 이는 지금껏 ‘발전’에만 초점을 맞춘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논의이자, 새로운 출발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믿(으려)는 당신에게” ​ 생존이 버겁고 사회마저 냉소와 체념을 떠안기는 탓에 우리의 일상이 가파르기만 한 것은 사실이다. 정치는 청와대나 국회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동네, 학교, 직장 같은 생활 속에서 더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정치는 강자보다 약자에게 더 절실하게 필요함을 느끼지만, 현실에서 용기를 내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치의 무대는 점차 사라진다. 정치가 사라진 세계에서 다시 정치의 토대를 다지고 기둥을 세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저자는 “뭐라도 해보려는 사람”들이 더욱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세계에 함께 살고 있다는 인식, ‘정치의 무대’ 위에서 서로를 동등한 배우로 인정하는 인식의 부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더 다양한 ‘정치적 연습’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뭐라도 해보자’는 것은 어렵지만 용기를 내보자는 말인 동시에 ‘한걸음’씩 내딛다 보면 그 한걸음 덕분에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역설하는 ‘정치의 약속’이며, 독자에게 보내는 열망의 신호이다. 지은이 소개 ​ 하승우 정치를 배우고 실천하는 연구활동가. 세상의 변화에 비관적이지만 뭐라도 해보려는 사람들의 열정에 기대어 낙관을 보충해왔다. 쉬운 일보다 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했고, 선수들의 속도전보다 평범한 시민들의 느린 변화에 희망을 거는 편이다. 그렇지만 기후위기나 경제위기를 방치하고 초래해온 기득권 세력에게는 강력한 압박과 공격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정치의 장을 넓히고 활성화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땡땡책협동조합 공동대표, 더 이음 연구위원 등의 직책을 맡아왔다. 지은 책으로 『최저임금 쫌 아는 10대』, 『시민에게 권력을』, 『민주주의에 反하다』, 『내가 낸 세금, 다 어디로 갔을까?』(공저), 『껍데기 민주주의』(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없는 사회』, 『아나키스트의 초상』 등이 있다. 책 속에서 ​ 우리의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틈이다.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 한걸음씩 걸어가는 것이다. 정치의 약속은 그 걸음을 함께할 사람이 조금 떨어진 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 그 타자를 통해 나와 우리를 인식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이 세계가 조금 더 지속할 수 있다는 신호이다. -10쪽 ​ 즉 만 25세 이상이 아닌 사람은 어떤 선거에서도 후보로 나올 수 없다. 왜 정치에 나이가 중요한 걸까? 나이를 먹어야 연륜이 쌓이고 정치적인 감각이 생긴다는 얘기도 있지만, 반대로 그렇게 하다 보면 연줄이 생기고 이해관계도 복잡해져 부패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리고 지금 우리 시대는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을 내리는 것이 오류를 범하기 쉬운 시대이다. 그만큼 새로운 윤리,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져야 하고, 그런 일은 당사자들이 주도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그런 젊은 정치가 출현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37쪽 ​ 문재인 정부를 믿어야 한다고만 외치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답답함은 정책을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책결정과정에 개입된 수많은 요인들을 보지 않고 특정 개인에 대한 신뢰로 정치과정을 환원시키는 건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72쪽 ​ 근본적으로 토건국가는 더 많은 건설을 위한 에너지 중독사회, 자연과 약자를 희생시키는 끊임없는 성장중독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든다. 그리고 토건국가는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고 타자와 약자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정서를 형성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제는 토건과 부패냐, 깨끗하고 숨통이 트이는 삶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탈토건을 통해서만 우리는 다른 사회로 이행할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다. -116쪽 ​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최대한 싼 비용으로 무조건 빨리 빨리’라는 기업 경영과 ‘너희 말고도 일할 사람은 많아’라는 기본적인 노동조건에 대한 무시가 이런 비극을 부른다. 이런 논리는 핵발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최대한 싼 비용으로 무조건 많이’라는 핵발전의 논리와 ‘알아서 잘 대처하라’는 안전불감증이 비극을 부를 수 있다. 핵발전소의 문만 닫는다고 이런 문제들이 자동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한국사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핵발전소이고 외주화된 위험들로 터지기 일보직전인 원자로이다. -133쪽 ​ 가치로는 자족이나 절제를 생각했을지언정 경제적인 삶으로는 한 번도 성장을 포기한 적이 없는 한국사회가 탈성장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까? 무척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는 탈성장이 경제보다 환경보호나 생태학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러나 경제학(economy)과 생태학(ecology)의 어원은 eco, 희랍어로는 oikos로 동일하고, 둘 모두 우리가 생활하는 가계/세계를 다룬다. 생태학과 환경운동이 탈성장 ‘운동’의 추진력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탈성장은 사실 자본주의 경제에 관한 이론이기도 하다. -155~156쪽 ​ 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성장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군대식 ‘재건’ 이데올로기이기도 했다. 5·16 쿠데타 이후 군사혁명위원회가 내세운 6개의 혁명공약 중 하나는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였다.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민생고는 가상의 상황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관료나 기업주의 부패와 맞물린 ‘근본적인 빈곤’은 사람들의 마음에 무조건적인 성장에 대한 욕구를, 그런 발전이 강력하고 일사불란한 조직을 통해 가능하리라는 믿음을 깊이 심어놓았다. -160쪽 ​ 낙태죄 폐지 요구는 낙태를 권하는 게 아니라 낙태를 처벌하는 것에 대한 반대이고 여성을 신체의 권리주체로 보는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낙태죄는 낙태의 문제를 여성에게만 죄로써 묻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가 아닌 자유로운 주체로 본다면, 체외수정기술을 비롯한 보조생식기술의 발달로 확장되는 재생산권을 고려하면, 그와 관련된 정보들이 제공되고 시민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을 보장해야 한다. 죄로 규정되면서 불법으로 임신중단을 해야 하는 것 자체가 시민의 권리와 건강을 위협하는 행위이다. -177쪽 ​ 2019년 6월 6일, 제주도의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이 모임을 만들고 제주 제2공항과 동물테마파크 등 대형개발사업을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도지사와의 면담을 공개 신청하며 일주일에 한 번 등교 거부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우리는 그저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갈 제주를 지키고 싶은 청소년”이라 소개하며 “같은 생각을 가지고 숨죽이며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모아 행동에 나설 것”이라 선언했다.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비관하거나 냉소하기에 앞서 이 선언에 응답부터 하자. 이미 누가 나섰지 않은가. -231쪽 차례 ​ 들어가는 글_ 미래를 여는 투쟁으로서의 정치 ​ 1부 냉소와 체념을 주는 것들 ​ 1. 정치판인가, 도박판인가? 이상한 선거제도 2. 공정인가, 밀어주기인가? 기득권에게만 유리한 선거운동 3. 보통인가, 곱빼기인가? 요상한 선거연령 4. 세금인가, 쌈짓돈인가? 어둠의 특수활동비/업무추진비 5. 정치의 발전인가, 퇴보인가? 불공정한 정치자금 6. 자유인가, 관리인가? 무척이나 어려운 정당 만들기 7. 권력인가, 사유물인가? 부당한 정책결정 8. 정부인가, 기업인가? 팔려나가는 공공성 ​ 2부 세상이 나아지려면 ​ 1. 탈탈탈(탈토건 - 탈부패 - 탈미세먼지) 털어내자! 2. 탈핵 - 안전한 노동 - 자기결정권 3. 탈성장 - 성평등 - 기본소득 4. 식량주권 - 1인 가구 - 공공성 ​ 나오는 글_ 고탄소 균형발전에서 탄소제로 녹색공존으로 마치며_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믿(으려)는 당신에게 ​ ​

  • 타자들의생태학 | 포도밭출판사

    지은이: 필리프 데스콜라 옮긴이: 차은정 ISBN: 979-11-88501-27-4 (93380) 출간일: 2022년 10월 12일 정가: 18,000원 제본: 무선 쪽수: 184쪽 판형: 145×210mm 분야: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류학/고고학 > 인류학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문화연구/문화이론 국내도서 > 사회 정치 > 생태/환경 > 생태/환경 일반 국내도서 > 사회 정치 > 사회비평/비판 > 환경문제 월딩 시리즈 1 타자들의 생태학 자연과 문화의 이원론을 넘어서는 인류학 지은이: 필리프 데스콜라 옮긴이: 차은정 책 소개 ​ 새로운 지식과 실천을 모색하는 인류학 총서 《월딩 시리즈》 첫 책 레비스트로스의 계승자로서 현대 인류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론가 필리프 데스콜라의 저서 국내 첫 번역 출간! 『숲은 생각한다』 저자 에두아르도 콘과의 대담 수록 ​ 현대 인류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론가인 필리프 데스콜라의 책. 그는 이 책에서 자연과 문화를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관점과 그것에서 비롯하는 이론들의 양상을 비판적으로 논평하면서, 그 자신이 ‘자연의 인류학’이라 부르는 학문적 기획에 대해 논한다. 데스콜라는 이 책을 통해 근대사회와 과학기술의 존재 양식을 재고함으로써 자연과 문화의 이원론을 넘어서는 인류학을 주창하고, 인간과 비인간존재(‘타자’) 간의 ‘관계의 생태학’에서 나타나는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을 주지시키며,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앎과 실천을 통한 존재론적 구성의 변화를 통해 지구 환경과 인류가 처한 위기를 해결할 방향을 모색한다. 보도자료 《월딩 시리즈》를 시작하며 내놓는 첫 책은 필리프 데스콜라의 『타자들의 생태학』이다. 필리프 데스콜라는 레비스트로스의 계승자로 손꼽히는, 현대 인류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론가 중 한 사람으로서 그의 대표작인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2005)가 출간되었을 때 레비스트로스는 이렇게 극찬했다. “이 책은 인류학적 성찰에 새로운 출발점을 제공하며, 앞으로 수 년 동안 우리의 모든 논쟁에 필수적인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타자들의 생태학』은 데스콜라가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를 출간한 후 2년이 지난 2007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초청 강연을 위해 작성한 원고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데스콜라는 서두에서 밝히기를 자신이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에서는 “인간과 비인간 간 관계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일반 모델을 개발”하여 ‘관계의 생태학’을 주창했다면, 『타자들의 생태학』에서는 자신이 ‘자연의 인류학’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논하겠다고 밝힌다. 데스콜라는 현 세기의 가장 중요한 학문적 과제는 자연과 문화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데스콜라는 자연과 문화를 별개의 것으로 구분 짓는 이원론적 관점에서 비롯한 자연 대 문화의 논쟁들을 요약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20세기 인류학에서 ‘말없이’ 있던 자연을 전면에 내세우는 문제의식의 전환을 통해 21세기 새로운 인류학을 전개한다. 데스콜라는 이 학문적 기획을 ‘자연의 인류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데스콜라가 ‘자연의 인류학’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계의 생태학’이라 부르는 것, 이 두 가지는 실로 그가 학자로서 초지일관 천착해온 주요 이론이고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데스콜라는 이 책에서 특히 사회와 환경의 관계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법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자신이 지닌 관점의 인식론적 기반을 명확히 하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전개하는 ‘자연의 인류학’과 ‘관계의 생태학’의 핵심과 맥락을 이해하고자 할 때 『타자들의 생태학』은 더없이 탁월한 안내서 역할을 할 것이다. 『타자들의 생태학』은 어느 평자의 말처럼 “작지만 큰 타격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인간중심주의’를 무너뜨리는 근본적 전환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연과 문화를 구분 짓는 서구적 이원론 개념에서 벗어나 종국에는 그러한 구분마저 무너뜨리고자 하는, 데스콜라가 ‘자연의 인류학’을 내세워 전개하는 강력한 기획을 응축해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데스콜라는 이 책을 통해 근대사회와 과학기술의 존재 양식을 재고함으로써 자연과 문화의 이원론을 넘어서는 인류학을 주창한다. 또한 인간과 비인간존재(‘타자’) 간의 ‘관계의 생태학’에서 나타나는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을 주지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앎과 실천을 통한 존재론적 구성의 변화를 통해 지구 환경과 인류가 처한 위기를 해결할 방향을 모색한다. ​ ​ 지은이 소개 필리프 데스콜라 Philippe Descola 인류학자. 1949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히스패닉 역사학자인 장 데스콜라가 그의 부친이다. 데스콜라는 생클루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파리대학 고등연구원에서 레비스트로스의 지도하에 에콰도르와 페루 국경의 아추아르 족을 현지 조사하여 민족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6년 9월부터 만 3년간의 일정이었고 아내이기도 한 인류학자 앤크리스틴 테일러와 함께한 현지 조사였다. 아추아르 족은 1970년대 당시 아마존 열대우림의 동부지역에 기반한 지바로 족 중 거의 유일하게 바깥 세계와 접촉하지 않은 부족이었다. 데스콜라는 아추아르 족이 인간과 비인간 동식물을 ‘사람’이라는 동일한 차원에서 사고하며 인공적인 구조물과 자연물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여 서양의 우주론과는 별개의 아마존의 애니미즘적 우주론을 정립했다. 이 연구는 『길들인 자연: 아추아르 족의 상징주의와 실천 La Nature domestique: symbolisme et praxis dans l'écologie des Achuar』(1986)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1987년에 프랑스 사회과학 고등연구원 교수로 임명되었고, 2000년 6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콜레주드프랑스에서 ‘자연의 인류학’의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2001년에는 레비스트로스가 설립한 사회인류학연구소(LAS) 소장으로 임명되어 2013년까지 운영했다. 2012년에 국립과학연구원(CNRS)으로부터 금메달을 수여받았고 2014년에 국제 코스모스상을 수상했다. 그는 『자연의 사회에서: 아마존 원주민의 생태학 In the Society of Nature: A Native Ecology in Amazonia』(1994)에서부터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 Par-delà nature et culture』(2005)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주요 저작을 통해 다양한 우주론의 실천적 전개를 가로막는 자연과 문화의 이원론을 넘어서서 인간과 비인간 간 ‘관계의 생태학’을 주창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지식과 실천이론을 제시해왔다. 그는 지금까지도 지구 생태계를 위한 인문학을 모색하며 21세기 ‘존재론의 인류학’을 이끌고 있다. ​ 옮긴이 소개 차은정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규슈 대학 한국연구센터 방문연구원과 히토쓰바시 대학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숲은 생각한다』, 『부분적인 연결들』, 『부흥문화론』(공역)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 시리즈 소개 월딩 시리즈 월딩(worlding)은 있기(being)에서 하기(doing)로 삶의 문제의식을 전환합니다. 《월딩 시리즈》는 지구생명체 간의 공생 속에서 새로운 지식과 실천을 모색하는 인류학 저서들을 소개합니다. ​ 1. 『타자들의 생태학』 필리프 데스콜라 지음 / 차은정 옮김 2.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지음 / 존재론의 자루 옮김 3. 『라인스』 (근간) 팀 잉골드 지음 / 김지혜 옮김 4. 『오늘날의 애니미즘』 (근간) 오쿠노 가츠미, 시미즈 타카시 지음 / 차은정, 김수경 옮김 책 속에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입장의 대립은 다음과 같다. 한쪽에서는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소위 천연자원의 사용과 통제와 변형이 초래하는 제약의 측면에서 고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보다도 자연이 그 한계와 기능 방식에서 동질적이라고 해도 상징적인 측면에서는 이질적이므로 자연의 상징적 조작의 특수성을 통해 인간과 환경의 관계에 접근하자는 사람들이 있다. 두 입장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들은 모두 자연과 사회의 이원성에 관해 같은 전제를 공유하고 있고 게다가 이 전제에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전제가 인류학적 접근의 여러 단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함으로써 이 전제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 12~13쪽 ​ 우리는 이 난관들을 어떻게 헤쳐갈지를 자문할 것이다. 자연과 사회, 인간과 비인간, 개인과 집단을 이전과 다른 새로운 아상블라주(assemblage)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 (...) 관계의 생태학은 이러한 재구성을 통해 조성될 것이다.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그 조짐의 근거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며, 인류학은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는 데에 동의해야만 그러한 재구성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 14쪽 ​ 나는 왜 인류학계에 불었던 ‘유물론’과 ‘유심론’의 대립적인 논쟁을 이토록 파고드는 것일까? 내가 채택한 이 단순한 용어는 미국을 한때 훑고 지나간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 학문 분야는 곤경에 처하자 지적 수단을 찾아 난관을 극복했고, 나는 그저 지난 국면을 트집 잡을 뿐이지 않은가? 전혀 아니다. 자연주의적 환원주의와 기호론적 관념론은 여전히 건재하고,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모든 이들이 놓일 수밖에 없는 인식론적 연속체의 양 축을 형성하고 있다. - 45쪽 ​ 연속체의 한쪽 끝에서는 자연이란 인지적 보편성, 유전적 인자, 생리적 욕구, 지리적 제약 등을 마구잡이로 수집할 수 있게 하는 편리한 포괄용어이며 문화는 그러한 자연의 산물이라고 단언할 것이다. 반대쪽 끝에서는 자연이란 내버려두면 언제까지나 말이 없고 그 자체로는 불가사의하며 문화가 자연에 부착하는 기호와 상징으로 번역될 때에만 유의미한 현실로서 존재하게 된다고 역설할 것이다. - 46쪽 ​ 자연적인 문화에서 문화적인 자연으로 이어지는 직선 축에서는 평형점을 결코 찾을 수 없고 단지 어느 한쪽 극에 가까운 타협점을 찍을 뿐이다. 근대사상의 여식인 인류학은 요람에서부터 이 문제를 알았고 그 후 지금까지 풀려고 애써왔다. 마셜 살린스가 『문화와 실천이성』(1976)에서 이야기한 비유를 빌어 말하면, 이 과학[인류학]은 지성의 제약과 관습적 실천의 결정성이라는 사방의 벽에 갇혀 한 세기 이상 감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일 뿐인 죄수와 같다. - 48~49쪽 ​ 이를테면 레비스트로스는 루소의 공로가 자연과 문화의 관계를 문제시함으로써 민족학 분야를 창설한 것이라고 인정한다. 미셸 푸코가 『말과 사물』(1966)에서 “모든 민족학의 일반 문제는 바로 자연과 문화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문제”라고 썼을 때, 그는 레비스트로스의 관점과 공명한다. (...) 나 또한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글을 써왔기 때문에 저들의 운명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나는 「자연의 사회들과 사회의 자연」(2002)이라는 논문에서 “사회적 실재의 구축 원리는 기본적으로 인간 존재와 그의 자연환경 간의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라고 썼다. - 55~56쪽 ​ 우리가 알던 자연은 인간이 이해하고 통제하려 하고 그 인간에게 변덕을 부려 고통을 주면서도 가치, 관습, 이데올로기가 설 자리가 없는 자율적인 규칙성의 장을 구성하는 영역이었다. 이 환상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지구 온난화, 오존층 파괴, 특화된 줄기세포 배양 등을 둘러싸고 자연은 어디서 멈출 것이며 문화는 어디서 시작될 것인가? 확실히 이런 질문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 - 115~116쪽 ​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통한 사회생활의 일반적 지식으로서 이해되는 인류학은 이렇듯 다양한 접근법을 한데 엮는 데에서 특히 유리한 위치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첫째 인류학이 어떤 면에서 자연과 문화의 관계에 관한 철학적 문제의식을 계승해왔기 때문이다. - 118쪽 ​ 요컨대 내가 집념하는 자연과 문화의 대립에 대한 비판은 자연적 대상과 사회적 존재의 관계성을 다루기 위해 사용된 개념적 도구의 광범위한 재작업을 시사한다. 이 대립이 수다한 비근대적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또는 서구 사상의 발전 과정에서 뒤늦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근대 세계의 자연주의(naturalism)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동떨어진 문화를 판단하는 기준을 구성하기는커녕 세계와 타자의 객관화를 지배하는 더욱 일반적인 스키마의 가능한 표현 중 하나일 뿐이다. 자연주의는 그러한 새로운 분석적 장에 통합할 필요가 있다. -121쪽 ​ 세계의 구성요소와의 관계를 정의하기 위해 인류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스키마는 정신 구조의 형태로 존재하며 그중 일부는 선천적이고 일부는 사회생활의 속성에서 유래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조가 모두 서로와 양립할 수는 없으므로, 모든 문화 시스템 그리고 사회적 조직화의 각 유형은 비록 우발적이지만 역사 속에서 종종 비슷한 결과와 함께 반복되는 여과 및 분류와 조합의 산물이다. 이 요소들의 성질을 명시하고 그 구성의 규칙을 해명하고 그 배열의 유형학을 작성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류학이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과제이다. - 122쪽 ​ ​ 차례 영어판 서문 서문 1장 조개 논쟁 사이펀의 적절한 사용에 관하여 이론상의 생태학 레비스트로스의 두 자연 2장 인류학적 이원론 능산적 자연, 소산적 자연 대상의 역설 논란과 수렴 - 환원의 궤도 - 번역의 궤도 3장 각자의 자연 속으로 진실과 신념 근대인의 미스터리 일원론과 대칭성 보편주의와 상대주의 결론 대담 횡단하는 우주론과 혼의 윤리학 옮긴이 후기 자연의 인류학과 관계의 생태학 찾아보기 ​ ​보도자료 다운 받기​

  • 숨통이 트인다 | 포도밭출판사

    2015. 12. 21 출간 / 135×210mm / 196쪽 / 10,000원 숨통이 트인다 ​녹색 당신의 한 수 지은이: 황윤·이계삼·김주온·구자상·신지예·김은희·남우근·이유진·장서연·하승수·한재각 ​ 보도자료 ​ 절망의 시대에 부르는 희망의 노래 참담한 권력정치를 ‘삶의 정치’로 바꾸려는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다섯 명의 진솔한 출사표 뒤집힌 세상을 바로잡고 막힌 숨통을 트이게 할 녹색당의 열 가지 ‘신의 한 수’ 내년 2016년 4월 13일은 제20대 총선일. 숨통을 옥죄는 갑갑한 세상을 바꾸려는 녹색당은 이미 준비된 행보를 시작했다.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를 다섯 명 선출하고 당의 핵심 정책 의제들을 정리했다. 한국 정치사를 통틀어 봐도 유례없는, 그 어느 정당보다 빠른 행보이다. 준비된 정당, ‘정당다운 정당’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은 새로운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다섯 명의 희망의 출사표와 세상을 뒤집을 실력을 가진 정당으로서 녹색당이 펼칠 핵심 정책 의제들을 집약한 한 권의 책이다. 이권에 눈멀어 아귀다툼이나 하는 정치를 뒤집으려는 녹색당의 ‘꿈’과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정책과 비전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녹색당의 실질적인 ‘방법’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소신과 체험을 진솔하게 드러낸, 참으로 생소한 출사표 2012년 3월에 창당한 녹색당은 이제 창당 4년째다. 4년 동안 정당으로 활동했지만 원외정당이라 활동이 쉽지 않았다. 제20대 총선에서 녹색당은 원내정당이 되고자 벼르고 있다. 그리하여 가장 먼저 비례대표후보를 선출하고 후보와 정책 알리기에 돌입했다. 녹색당은 2012년 창당하자마자 치렀던 제19대 총선에서는 0.4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10만 표를 조금 넘는 득표였다. 이후 녹색당은 한국 정치사에 드문 대안 정당으로서 권력다툼을 일삼는 타 정당들과 다르게, ‘정치의 부재’로 고통 받는 곳들을 찾아다녔으며, 탈핵, 기본소득, 동물권, 소수자, 기후변화 의제 등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해온 영역을 널리 알리며 숨통 트이는 역할을 해왔다. 그간의 눈에 띄는 활약 덕분에 이번 총선에서는 뚜렷한 비약이 기대된다. 그래서 제20대 총선이 녹색당의 주요한 디딤돌이 될 전망이다. 그 주요한 역할에 선출된 사람들이 영화감독 황윤(1번), 밀양765kV 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 이계삼(2번),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운영위원 김주온(3번), 부산시민햇빛에너지협동조합 이사장 구자상(4번), 오늘공작소 대표 신지예(5번) 후보이다. 정당들에게 비례대표 후보 선출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이때마다 갈등이 격화되는 일도 나타난다. 이때가 되면 전략공천이니 우선공천이니 하는 말도 들려온다. 녹색당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녹색당은 당원들의 추천으로 예비후보를 정하고, 그렇게 정해진 예비후보들이 지역 순회 토론회를 다니며 당원들을 만나고, 이후 당원 누구나 참여하는 선거를 통해 공정하게 후보를 선출했다. 그렇게 선출된 다섯 명이 『숨통이 트인다』에 정치인으로서의 출사표를 밝힌 다섯 명의 후보이다. 이들의 출사표가 참으로 생소한 것은, 그 진솔함 때문이다. 우리는 정치인으로부터 자기 당을 세상을 어떻게 바꾸겠다거나 사회를 어떻게 이끌겠다는 등, 목청 높인 말들을 흔히 접해왔다. 녹색당 후보들의 출사표에는 그들이 살아온 삶과 그들의 품어온 소신이 진솔하고도 강렬하게 담겨 있다. 권력정치가 아닌 ‘삶의 정치’를 하려는 이들다운 ‘참으로 생소한 출사표’이다. 정치의 부재, “우리는 환대받지 못했습니다” 국가에 배반당한 밀양 주민들은 ‘정치’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국회의원이 밀양 현장을 찾으면 어르신들은 그들 앞에서 넙죽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살려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이 싸움에 들어와 활동하던 지난 4년 내내 저는 단 하루도 이 나라의 정치를, 정확히 말하면 ‘국회’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저는 지난 4년 동안 수십 차례나 어르신들과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자료를 들고 국회 의원회관을 누비며 호소하고 또 호소하였습니다. 때로는 진상조사단 구성을 촉구하면서, 때로는 공사 재개를 막아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때로는 밀양 주민들이 한 목소리로 반대했지만 밀양 싸움을 잠재울 비장의 무기처럼 선전되던 이른바 ‘밀양법’(송·변전시설 주변지역 지원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약칭 ‘송주법’) 제정을 막아내고자, 국회의원이 안 되면 보좌관이라도 만나기 위해 의원실을 누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환대받지 못했습니다. ‘정치의 부재’로 고통 받고 있는 주권자들이 주권을 위임받은 자들에게 아주 작은 책임이라도 질 것을 부탁하는 자리에서 외판원처럼, 옹송거리며, 고개 조아리며, 굽신거려야 했습니다. 어르신들과 일정을 마치고 국회를 떠나올 때마다 저는 진한 비애를, 외로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수십 번 국회를 다녔지만, 단 한 번도 이런 감정 속에 빠지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 <이계삼 – ‘정치政治’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에서 “지금 대한민국에 ‘정치’가 있는가?” 이것은 중요한 물음이다. 국회의원들은 기득권 유지에만, 정확히 말하면 ‘재선’에만 관심이 쏠려 있고, 그들에게 역할을 위임한 국민들을 위한 정치는 실종되었다. ‘옹송거리고 고개 조아리고 굽신거려도’ 선거 때가 아니면 쉽게 만날 수조차 없는 이들이 국회의원이다. 우리가 체감하는 삶의 문제는 높은 곳에서 군림하는 청와대, 기득권 싸움에 혈안된 기성 정당들의 눈먼 다툼 탓에 갈수록 정치로부터 배제되고 있다. 이러한 ‘정치의 부재’ 덕분에 우리 삶은 더욱 가파르게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저들의 정치’가 계속 횡횡하게 내버려두면, 우리의 자리는 점점 가팔라지고 살 만한 세상은 더욱 멀어질 것이 자명하기에 결국 “가장 정치와 멀리 있을 법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다. 이들이 하려는 것은 다름 아닌 ‘환대의 정치’, ‘우리들의 정치’다. 기존의 정치에서 지워지고 배제되어온 목소리들을 끌어당기고 그를 위해 목청을 울리는 정치, 그리하여 ‘저들’의 탐욕이 아닌 ‘우리’의 권리를 위해 힘쓰는 정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우리들의 정치, 삶의 정치’, 새로운 정치의 청사진 녹색당의 실질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한편에서는 녹색당이 당위를 넘어 정책 의제를 실행할 실력이 있는지를 궁금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녹색당은 오히려 지금을 녹색당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로 삼고 있다. 실제 녹색당은 2012년 창당 당시부터도 ‘정책 의제가 가장 훌륭한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창당 후 4년 간은 ‘의제를 선도하는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세부적인 정책과 로드맵에서도 녹색당은 다른 정당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시민사회단체와 풀뿌리 지역 네트워크들과의 결합도 탄탄하여 녹색당 의제들을 실행할 자원도 어느 정당 이상으로 갖추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숨통이 트인다』에서 재원 마련 방안부터 단계별 실행안의 개요를 소개하고 있는 기본소득 의제다(117~121쪽). 1단계에서는 중산·서민층의 직접적인 세부담을 증가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재원을 마련한다. 왜곡된 조세제도를 정상화하고 불로소득과 탈세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한편, 예산낭비를 줄여 재원을 마련한다. 이렇게 마련한 재원 103조 원으로 만 15세~만 29세의 청소년·청년, 만 65세 이상 노인, 장애인, 농·어민에게 월 40만 원의 기본소득을 우선 지급할 수 있다. 만 15세부터 지급하는 방안을 제안하는 것은 그 시점이 의무교육이 종료되는 시점이고, 알바노동 등 저임금·불안정노동이 시작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농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이유는 농산물시장개방으로 인해 농가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본소득 같은 정책 없이는 농업 자체가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경우에는 경제활동참가율이 38.7%로 국민 평균인 62.1%에 비해 한참 낮은 실정이고, 장애인연금제도가 있지만, 요건이 까다로워서 장애인 중에 소수만 받고 있고, 금액도 낮은 실정이다(2015년에 20만2,600원). 따라서 장애인에게도 기본소득을 우선지급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1단계에서 생태세를 시범적으로 도입하여 부분적으로 생태배당을 실시한다. (…) 2단계에서는 1단계에서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보편적인 소득세 증세와 생태세의 전면도입을 통하여 추가재원을 마련해나간다. 2단계에서는 전 연령대에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숨통이 트인다#5 – 기본소득>에서 ‘고래 뱃속의 이물질’이 되고자 고래 뱃속의 이물질. 이계삼 후보가 비례대표 예비후보에 출마한 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는 녹색당이 국회의원을 당선시킨다한들, 현실적으로 고작 한두 명에 불과한 국회의원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겠냐는 회의론에 대한 나름의 답변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물질은) 당장 고래 전체의 궤도를 좌우하지는 못해도, 끝없는 저항으로써 고래를 괴롭히는 불량스러운 존재로서 고래에 영향을 준다.” 이처럼 작지만 큰 존재감을 끼쳐서 한국 정치와 사회 그리고 민초들의 삶이 이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다. 녹색, 당신의 한 수! 녹색당, 신의 한 수! 지금 한국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먹고살기’가 힘든 파국으로 다가가고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삶의 질이 추락하고 있으며 기득권이 득세하는 사회 구조에서 각자생존을 강요당하고 있다. 기후변화 문제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를 덮칠 재난으로써 날로 심각해져간다. 이런데도 특히 한국 사회는 아직도 ‘경제성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결과로 FTA 및 TTP, 수출 증대, 대기업 중심의 성장안, 대규모 토건 개발, 노동법 개악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진정 “함께 살자”고 외치는 정당, 공생을 위해 목소리를 모으고 전략을 세우는 정당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숨통이 트인다』는 함께 사는 ‘그날’을 위한 ‘당신의 한 수’를 제안한다. 그리고 꿈과 실력을 가진 정당으로서 ‘녹색당’이 우리의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책 속에서 꿈꾸지 않으면 변화가 없습니다. 반대로 꿈꾸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실이 됩니다. 이 책은 녹색의 꿈을 꾸며 정치를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사람들이 바라는 변화를 담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겪는 모든 삶의 문제들은 정치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풀려면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숨통이 좀 트인다’는 이야기가 우리들 입에서 절로 나오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그날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 정치의 변화를 위해 당신이 놓을 한 수는 무엇인가? 당신의 실천은, 당신의 한 표는 어디로 갈 것인가? 너무 늦지 않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는 글>에서 이 나라가 죽음의 땅이 되어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약자 중의 약자인 아이들을 위해, 비인간 동물들을 위해, 여성들을 위해, 농민과 노동자들을 위해, 소수자들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유일한 서식지인 지구를 위해, 저는 이 나라 국회에서 마이크를 들고 목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황윤 – 뭇 생명을 돌보는 살림의 정치>에서 제게는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머리’ 속에서 나와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해보자’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에서 나와 ‘나 자신이 이렇게 해보려 하는 것’이 바로 희망”이라는 것을 저는 문자 그대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의 정당이 바로 녹색당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녹색당이 국회로 들어가 저들의 법령과 제도가 구축한 성채에 부딪쳐 싸워야 합니다. <이계삼 – ‘정치政治’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에서 녹색당의 제안은 기존에 없던 것이기 때문에 상상하기 어렵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엄두조차 못 내던 것입니다. 이는 제가 기본소득을 이야기해오며 늘 마주치던 현실과 닮았습니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원전을 멈춰도 전기가 있다고? 현금 소득이 조건 없이 보장되어도 일을 할 거라고? 청소년들이 정치에 참여한다고? 말도 안 돼. 상상할 수 없어’라는 현실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어렵다고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시도해야 합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일지라도 용기 내어 걸어야 합니다. <김주온 – 떠날 수 없는 이들의 정치>에서 석유로 조직된 사회의 모든 종류의 불평등은 빛나는 태양경제, 생태경제의 틀 속에서 해체되고 재조직되어 새로운 생명 감각의 토대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럴 때 모두가 자유(自由), 즉 ‘자기의 이유’를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구자상 – 강과 바다, 태양의 정치>에서 저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지역재생이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 내의 공동체 안에서 공유(共有)를 통해 삶의 규모를 조절하고, 가족과 이웃을 돌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낡은 주택을 부수고, 새로운 아파트를 짓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동네를 돌보며 가꾸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개인의 삶은 바뀌더라도 시스템을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틀, 즉 자기통치의 기술로서의 정치를 실현해나갈 때에야 가능합니다. <신지예 – 더불어 사는 자립의 정치>에서 차례 여는 글 숨통 트이는 정치를 위해 – 하승수 황윤 <뭇 생명을 돌보는 살림의 정치> [숨통이 트인다 #1 동물권]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품위 있는 나라를 만들자 – 장서연 [숨통이 트인다 #2 먹거리·농업]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먹거리, 식량주권과 농업 지키기 – 한재각 이계삼 <‘정치政治’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숨통이 트인다 #3 탈핵] 전기가 남아돈다, 탈핵은 가능하다 – 한재각 [숨통이 트인다 #4 민주주의] 스스로 다스리는 시민, 가장 보통의 민주주의 – 김은희 김주온 <떠날 수 없는 이들의 정치> [숨통이 트인다 #5 기본소득] 국민소득 4만 달러 대신 월 40만 원 기본소득을! – 하승수 [숨통이 트인다 #6 성평등·인권] 차별 없는 나라 만들기, 성평등과 성소수자인권을 구현하자 – 장서연 구자상 <강과 바다, 태양의 정치> [숨통이 트인다 #7 기후·에너지]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위협, 석탄화력발전과 자동차를 줄이자 – 이유진 [숨통이 트인다 #8 노동·일자리] 노동시간 단축과 녹색 일자리, 인간다운 삶과 자연을 되찾자 – 남우근 신지예 <더불어 사는 자립의 정치> [숨통이 트인다 #9 주거] 집은 모두를 위한 공유재, 머무를 권리와 토지정의 – 김은희 [숨통이 트인다 #10 교육] 교육의 판을 다시 짜자 – 김은희 지은이 소개 황윤 영화감독 이계삼 밀양765kV 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 김주온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운영위원 구자상 부산시민햇빛에너지협동조합 이사장 신지예 오늘공작소 대표 김은희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남우근 녹색당 정책위원 이유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녹색당 소수자인권특별위원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한재각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소개(출처:녹색당 논평) 황윤 다큐멘터리 영화 <작별>, <침묵의 숲>, <어느 날 그 길에서>로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의 삶, 두만강 백두산 유역 야생동물들의 위기, 로드킬 등의 문제를 한국사회에 제기하는 역할을 했고, 2015년 개봉한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공장식 축산과 지나친 육식의 폐해를 일깨우며 동물권 운동사에 큰 획을 그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초청되었고,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우수상, 부산국제영화제 운파상(최우수 한국다큐멘터리상), 서울환경영화제 대상,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 환경예술인 대상 등을 수상했다. 이계삼 2001년부터 11년간 중등 국어교사로 재직했던 교육자이자 교육운동가이다. 또한 <녹색평론>, <우리교육> 등 각종 매체에서 빛나는 필치로 독자들을 감동시켰던 문필가이며, 2009년 풀뿌리협동조직인 ‘밀양두레기금너른마당’을 창립한 풀뿌리 운동가이다. 2012년 2월 교직을 그만두고 농업학교를 준비하던 도중 밀양송전탑반대 주민의 분신 사망을 계기로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김주온 한국 기본소득 운동의 대표적인 활동가로 꼽힌다. ‘모든 시민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올해 3월 녹색당 대의원대회에서 당론으로 공식 채택된 바 있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2015년 6월에는 15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총회에 참가해 <한국 청년들의 불안정한 삶과 기본소득>을 발표했다. 대학원에서 여성주의 문화연구를 공부 중이다. 구자상 ‘환경’, ‘생태’보다 ‘공해’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던 1985년 한국공해문제연구소 부산지부 간사를 맡았으며 부산환경운동연합에서 사무처장과 대표를 거쳤다. 녹색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지난 2012년 총선 부산 해운대·기장을에 출마해 ‘핵발전소 폐쇄’를 역설했다. 현재 부산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며, 부산시민햇빛에너지협동조합 이사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신지예 지역운동과 결합된 서울시 마포구의 사회적기업 ‘오늘공작소’ 대표다. 사회적기업 ‘이야기꾼의 책공연’에서도 재직했다. 2004~2005년 한국청소년모임 대표를 지내며 청소년인권운동, 두발자유운동을 전개했다. 현재 서울시 청년정책위원회 주거분과위원장으로도 활동 중이며, ‘사회적경제’, ‘풀뿌리운동’, ‘청소년인권’, ‘주거권’ 등을 화두로 활약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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