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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명의 말들 | 포도밭출판사
2018-12-21 출간 | 정가 13,000원 무선 | 216쪽 | 130*210mm | ISBN 979-11-88501-06-9(03300) 무명의 말들 지은이: 후지이 다케시 책소개 이 책의 글들은 후지이 다케시가 2014년 여름부터 시작해 2017년 겨울까지 3년여 동안 <한겨레>에 연재한 칼럼 44편과 사진집에 실은 해설 1편, 문학지에 실은 글 1편을 엮은 것이다. 『무명의 말들』은 그가 6년 만에 펴내는 단독 저작이다. 후지이 다케시의 글을 ‘빛나는 성찰과 날카로운 문체’ 정도로만 소개한다면 표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의 글은 다만 잘 쓴 글이 아니라, 힘이 느껴지는 글이고, 읽는 이를 각성하게 만드는 글이다. 문장을 이렇게 벼려서 쓸 수 있구나, 싶게 그는 글을 썼다. 그는 어설프게 쓰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길게는 4년 전에 적힌 글을 지금 읽어도 무딘 느낌을 조금도 찾을 수가 없다. 책의 서문을 펼쳐본 독자는 깜짝 놀랄 것이다. 서문의 첫 문장에 “이 책은 유고집이다”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유고집’인 까닭은 ‘글쓴이 후지이 다케시’가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을 버리고 ‘무명’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가 다른 이름으로 건너가는 길에 남은 흔적이다. 『무명의 말들』은 무엇보다 끝나지 않을 듯한 ‘흐린 날’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또각또각 새겨진 듯한, 그가 남긴 글들은 더없이 탁월하고, 또 감동적인 동행이 될 것이다. 보도자료 역사학자 후지이 다케시의 6년 만의 단독 저작이자 ‘유고집’ 이 책의 글들은 후지이 다케시가 2014년 여름부터 시작해 2017년 겨울까지 3년여 동안 <한겨레>에 연재한 칼럼 44편과 사진집에 실은 해설 1편, 문학지에 실은 글 1편을 엮은 것이다. 책의 서문을 펼쳐본 독자는 깜짝 놀랄 것이다. 서문의 첫 문장에 “이 책은 유고집이다”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유고집’인 까닭은 ‘글쓴이 후지이 다케시’가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을 버리고 아직은 모르는 이름을 새로이 짓기 위해서 ‘무명’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가 다른 이름으로 건너가는 길에 남은 흔적이다. 2000년 2월부터 올해 2018년까지 서울에서 살며 여러 연구와 집필, 연대 활동을 하다가 얼마 전 일본으로 떠난 후지이 다케시는, 성균관대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을 역임했다. 그사이 꾸준히 집필 활동을 했지만 단독 저작은 이승만 정권 초기, 해방 8년의 정치공간을 해부한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역사비평사, 2012) 단 한 권만을 펴냈다. 『무명의 말들』은 그가 6년 만에 펴내는 단독 저작이다. 이제 ‘글쓴이 후지이 다케시’가 펴내는 책은 이것이 마지막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다른 곳이 아닌 ‘무명’의 자리로 돌아갔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기대가 되는 면도 있다. 그는 자신의 글(「무명으로 돌아가기」)에서처럼 ‘아직 없는 이름’을 짓고 ‘아직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을 자신의 자리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훗날 그가 알려줄 새로운 ‘구호’가 벌써 궁금하다. 『무명의 말들』은 무엇보다 끝나지 않을 듯한 ‘흐린 날’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또각또각 새겨진 듯한, 그가 남긴 글들은 더없이 탁월하고, 또 감동적인 동행이 될 것이다. 힘이 느껴지는 그의 글 그의 글을 ‘빛나는 성찰과 날카로운 문체’ 정도로만 소개한다면 표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가 <한겨레>에 칼럼을 연재하는 동안 어느 비평가는 그를 두고 ‘칼럼 장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의 글은 다만 잘 쓴 글이 아니라, 힘이 느껴지는 글이고, 읽는 이를 각성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문장을 이렇게 벼려서 쓸 수 있구나, 싶게 그는 글을 썼다. 그는 어설프게 쓰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길게는 4년 전에 적힌 글을 지금 읽어도 무딘 느낌을 조금도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가 벼린 것은 문체만이 아니었다.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세상과 관계들에 대한 인식,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말하는가 등의 문제의식에 있어서도 그는 무딘 구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자신을 벼렸고, 그 날카로운 말들로 안락에 젖은 인식을 흔들어놓곤 했다. 『무명의 말들』에는 그가 쓴 칼럼들을 모두 모았다. 4·16 이후의 삶과 생각 칼럼 연재를 시작한 때는 2014년 6월 1일이다. 세월호가 바다에 침몰하고 한 달 반이 지난 때다. 우리를 하루 빨리 ‘일상’으로 복귀시키려는 권력의 의도가 4·16의 기억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내려는 것, 즉 망각을 요구하는 것임을 말하는 「멈춘 세월, 흐르는 시간」이 첫 글이다. 이후로도 후지이 다케시는 「진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명복을 빌지 마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으로 4·16를 말한다. 4·16을 겪으며 우리가 느낀 붕괴감이 쉽게 치유돼버리면 안 되기 때문에. 그리고 저 암담한 심정, 슬픔, 분노를 ‘망각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죽였고 그들을 구하지 않았기에” 모두 4·16의 가해자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되기에 이 책 전체에는 저 ‘가해 경험’을 끊임없이 기억하는 ‘가해 당사자’로서의 인식이 깔려 있다. ‘말할 수 없이 적은 소수자’의 시선 후지이 다케시는 매번 소수자의 시선으로 시대를 해석하고 논쟁하는 글을 발표했다. 특히 단지 ‘소수자’가 아닌 ‘말할 수 없이 적은 소수자’(극소수자)의 입장을 드러내며 안일한 인식을 흔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들. 2015년 6월 퀴어축제에 반대하는 퀴어 반대집회가 서울시청 앞에서 열렸을 때, 그가 바라본 것은 무대에서 북을 치고 춤을 추는 여성들이다. 퀴어축제보다 더 튀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반대집회 측에서 ‘동원’한 여성들. 저자는 이곳에서 여성들을 무대 위로 올려 보내고 그것을 ‘방역선’ 삼아 뒤로 빠지는 태극기 남성들의 치졸함을 본다. 그리고 퀴어축제와 반대집회에 동시에 거리를 두면서 ‘제3자적’ 입장에서 평론하는 이들도 저 ‘치졸한 남성들’과 다를 바 없다고 평한다. (「폐를 끼치며 살기」) ‘말할 수 없이 적은 소수자’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은 옥바라지골목 철거 강제집행에 대한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순국선열’들이 ‘영웅적인 투쟁’ 끝에 감옥에서 죽어갈 때, 형무소 근처에 머물며 그들을 옥바라지한 이들의 노고가 새겨져 있는 곳이 바로 옥바라지골목. 수감자들이 형무소 안에서 탄압을 받는 동안 담장 밖에서 그들을 옥바라지한 이들도 수감자의 옥중투쟁을 지키면서 함께 압제에 맞섰다. 때문에 저항하는 삶의 기억은 형무소보다 옥바라지골목에 더욱 많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후지이 다케시는 일깨운다. (「옥바라지 기억하기」)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후지이 다케시는 외국인으로서의 소외감을 고백한다. 시위에 참여한 주체를 번번이 ‘국민’이라고 호명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는 의문을 갖는다. “하지만 실제 광장에 모여 이 사회를 바꾸려고 싸우고 있는 것은 비단 국민뿐인가?” 그리고 민주노총 총파업대회에 참여한 이주노동자들을 떠올린다. 한국 자본주의의 밑바탕에서 그 혹독한 현실을 몸소 겪고 있는 이들. 이들을 포함해 세상을 바꾸려는 열망을 가진 이들이 어느 날 하나의 광장에 모였을 때, 그들을 움직이게 한 열망은 결코 균질하지 않을 것이다. 그 다양한 열망을 담기에 ‘국민’이라는 말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누가 싸우고 있는가」) 낯설고 불편한 말들 칼럼을 연재한 3년여 동안 한국 사회에는 숱한 사건들이 있었다. 416,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메르스 사태, 국정 교과서 논쟁, 최순실 사태, 촛불집회, 박근혜 탄핵, ‘메갈’ 논쟁, 문재인 대통령 당선 등이 모두 3년 사이에 있었던 사건들이다. 이 변화무쌍한 기간에 후지이 다케시는 계속 ‘낯설고 불편한’ 글들을 발표했다. 그는 불편한 말들을 통해 안락한 인식에 머물고자 하는 이들을 매번 흔들어놓았다. ‘헌법질서 수호’라는 논리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지적하고(「헌법재판소가 지키려는 것」), 학생들이 학교에 학비를 낼 게 아니라 임금을 요구하라고 말하며(「학생에게 임금을!」),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김기종 씨 사건에서는 “내가 김기종이다”라고 외치고(「내가 김기종이다」), 416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지 마라”고 외치며(「명복을 빌지 마라」). 선거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를 지적한다(「선거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 후지이 다케시는 “안전하지 않은 것이 안전하다”고 알려준다. 권력자들의 ‘안전’과 ‘우리’의 안전은 다르기에. 그래서 오히려 불편하길 선택하고 흔들리길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일깨운다. 저항과 해방 저항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편해야 함을 후지이 다케시는 강조한다. 「폐를 끼치며 살기」에는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푸른 잔디 모임’이라는 뇌성마비자단체를 소개하는데, 그들의 행동강령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우리는 문제 해결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안이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타협의 출발이 되는지 몸소 느껴왔다. 우리는 계속 문제제기를 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운동이라 믿고 행동한다.” 저 강령에 따라 단체가 벌인 행동 가운데 하나가 기차역 등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반대하는 운동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들은 혼자서도 이동할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정상인’들과 장애인들의 ‘만남’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저항이 어떻게 새로운 ‘사회관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예다. 그리고 이런 저항의 순간은 다름 아닌 해방의 순간이다. “해방의 순간이란 움직일 수 없는 자연법칙처럼 보였던 사회질서가 사실은 자의적이고 인위적인 것임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다시 말해, 그 순간부터 사물 같았던 질서가 사람들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_「시장에는 해방이 없다」 이양지와 김시종, 기억해야 할 재일조선인 문인들 후지이 다케시는 과거 <퍼슨웹>과 가진 인터뷰에서 90년대 일본에 있을 때 재일조선인 운동에 참여한 이야기를 했다. 당시 재일조선인 문학을 많이 읽었음을 고백하며,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준 문인으로 이양지 소설가와 김시종 시인을 언급한다. 그리고 칼럼에서도 그들을 새로이 소개하고 있다. 그들의 작품에서 후지이 다케시가 주목하는 것은 무엇일까. 재일조선인들은 ‘한국인’이라는 규범을 혼란시키기에 불편한 존재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양지의 대표작 『유희』는 그러한 혼란을 의도적으로 추구한 작품이라고 후지이 다케시는 평한다. ‘다수자’를 공격하는 ‘소수자’. 그들은 ‘다수자’를 공격하면서 ‘다수자’의 틀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바깥세상의 존재를 일깨운다. (「‘유희’를 떠올리며」) 그리고 일본에 대한 복수로서 날카로운 일본어를 구사한 시인 김시종의 시 역시 칼럼에 등장한다. 「명복을 빌지 마라」의 제목은 바로 김시종 시인의 시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작품들이 다시 한 번 읽히는 계기가 만들어진다면 큰 의미가 있으리라. 새로운 ‘우리’를 만들기 위하여 후지이 다케시의 글에는 따옴표로 묶인 ‘우리’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한다. 따옴표로 강조된 이 단어는 무엇을 말할까. 다양한 경계 안에서, 무수한 권력의 작동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후지이 다케시의 글에서 ‘우리’라고 강조된 말의 특징은, 무엇보다 그 안에서 관계가 고정돼 있지 않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주어진 이름을 반납하고 무명으로 돌아가는 일이 가능하듯, ‘우리’ 역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이 만들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 아닐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끊임없이 균질적이길 요구하는 답답한 세상에서 다른 ‘우리’를 만들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답답하고 흐린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술은 그런 것 아닐까. 저자는 흐른 날일수록 손을 내밀고, 잡은 손을 좀더 가까이 끌어당기자고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흐린 날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손을 내밀고, 잡은 손을 좀더 가까이 끌어당기자.” _「흐린 날에」 * 『무명의 말들』이라는 책 제목은 저자의 칼럼 「무명으로 돌아가기」에 실린 <무명통신> 이야기에서 가져왔다. <무명통신>을 만든 이들은 “자신을 가두는 껍데기”를 스스로 깨기 위해 “주어진 이름을 반납하고 무명으로 돌아간다”고 선언한다. ‘무명’은 아직 없는 이름을 짓기 위해 돌아가는 자리다. 지은이 소개 후지이 다케시 2000년 2월부터 서울에서 살았다. 성균관대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를 했으며 성균관대 사학과 BK연구교수,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다. 2018년 3월 일본으로 떠남. 지은 책으로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역사비평사, 2012), 옮긴 책으로 『번역과 주체』(이산, 2005), 『다미가요 제창』(삼인, 2011) 등이 있다. 책 속에서 4월 중순 이후 우울하게 보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밑바닥을 드러낸 이 사회 권력층의 ‘꼬라지’도 그 원인이긴 하지만, 단지 ‘저들’이 문제라면 분노하고 욕하면 되는 것이지, 사실 우울해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계속 마음이 무거운 이유는 ‘저들’만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자꾸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심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이며, 무엇보다도 거기에 나도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_13쪽 스콧이 권장하는 법규 위반은 ‘미래의 그날’을 위한 준비체조로 자리매김되어 있지만, 사실 이런 실천들 자체가 ‘미래의 그날’을 만드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누구나 한두 번은 그런 경험이 있을 텐데, 아무리 사소한 법규 위반이라도 자신의 판단으로 의식적으로 저지르게 될 때, 사람은 긴장감 속에서 많은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게 된다. 그때 이미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순간 속에 있다. 이 순간 정치는 시작된다. _39쪽 노동자가 임금을 요구하는 것이 자본가에 대한 구걸이 아니듯이, 노동력 상품 생산자인 학생은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당당하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비싼 등록금 문제가 무엇보다 학생들을 고립된 ‘개인투자자’로 만들어 배움이 지니는 사회성을 파괴하는 데 있다고 한다면, 학생들이 연대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고등교육의 사회성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다. _52쪽 퀴어축제에서 볼 수 있었던 어떤 모습은 불쾌감을 불러일으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불쾌감이 우리 몸에 새겨진 감각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 불쾌감은 오히려 새로운 사회관계에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서로 폐를 끼치기에 우리는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_74쪽 지옥 속에서 우리는 먼저 눈을 감아야 한다. 눈을 감아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더듬는 손끝에 감각을 집중시킨다. 그 손이 다른 손을 잡을 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어떤 문을 찾게 될 것이다._84쪽 차례 서문을 대신하여 멈춘 세월, 흐르는 시간 ‘현재’를 묻는다는 것 진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왜 그들은 기업을 폭파했나 헌법에 따른 역사교육? ‘서북청년단’이 의미하는 것 신호등 안 지키기 헌법재판소가 지키려는 것 시장에는 해방이 없다 학생에게 임금을! 내가 김기종이다 명복을 빌지 마라 선을 지키면 행복해져요? 흐린 날엔 폐를 끼치며 살기 인권에 예외는 없다 증오와 혐오 사이 헬조선의 동맹파업 ‘한-일 화해’는 다가왔다 ‘균형 잡힌’ 역사교육이란? 분서와 학문의 자유 갈대처럼 옥바라지 기억하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패배의 경험 “법대로” 세계 난민의 날에 혐오와 사드 모병제와 국민국가의 종언 공정성은 무엇을 지키는가 박근혜라는 스크린을 넘어 누가 싸우고 있는가 더 많은 광장을! 어리석은 자의 비 “말도 편하게 못하겠다” 무명으로 돌아가기 선거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 ‘유희’를 떠올리며 “안보입니다” 차별금지법과 촛불민주주의 민주주의의 국경 후 캔 스피크 조직을 지키는 것과 운동을 지키는 것 누가 국가를 두려워하는가 • 물에 빠진 개는 쳐라 정치적 올바름, 광장을 다스리다?
- 보통의 행복 | 포도밭출판사
2018-04-23 출간 | 원제 愛と欲望の雜談 | 정가 12,000원 | 156쪽 | 128*188mm | ISBN 9791188501021 보통의 행복 지은이: 아마미야 마미, 기시 마사히코 옮긴이: 나희영 책 소개 세상이 말하는 '여성성'과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하고 열등감에 빠지는 모습을 묘사한 자전적 에세이 <여자를 열등감에 빠지게 하여>로 여성 독자들의 전폭적인 공감과 사회적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가 아마미야 마미.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으로 사회적 주변인들의 삶을 세심히 응시하며 통상적인 사회학 방법론과 다른 방식의 새로운 사회학 글쓰기를 선보이며 2016 기노쿠니야 인문대상을 수상한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 두 사람은 2015년 4월 어느 날 지하철역 개찰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딱히 정해진 주제도 없이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우연처럼 시작된 둘의 대화는 오늘날 갈수록 힘을 잃어가는 주제인 '사랑과 욕망'에 대한 것으로 모아진다. 우리는 더 이상 사랑을 나누고 싶지 않은 건가? 이제는 욕망을 갖지 않는 것이 시대의 흐름인가? 타인과 마음을 나누기가 무서운 '혐오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사랑은, 연애는 정말 감정의 사치일까? 긴 대화를 나누면서 작가와 사회학자는 서서히 알아간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이어지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기 자신으로서 행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도자료 작가와 사회학자가 이야기하는 혐오 시대의 사랑과 연애 이십 대를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조사를 보면 “한 번도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고 답한 이가 20%에 이른다고 한다. 비혼율이 급상승한다는 통계 결과도 있다. 이를 보면 ‘사랑과 연애’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말이 사실인 듯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일까. 우리는 여전히 타자와의 만남을 원하지만, 세상이 타자와 만나기가 무서운 사회가 되어가는 탓은 아닐까. 아마미야 저는 고민 상담 연재를 두 개 하고 있는데요, 둘 다 “연애를 할 수 없다”는 고민이 엄청 많아요. 기시 오네트(일본에서 회원 수가 가장 많은 온라인 결혼중개업체)에서 발표한 ‘제20회 새내기 성년 의식 조사’에 의하면, 새내기 성년의 7할이 ‘교제 상대가 없다’, 5할이 ‘교제 경험이 없다’고 대답했다고 해요. 가장 재밌는 게 ‘한 번도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는 대답이 2할 정도였다는 거예요. 혈기왕성한 시기인 이십 대 얘기예요. 기본적으로 어느 조사를 봐도 성행동이나 연애행동 자체가 점점 줄고 있어요. 또는 몇 번이나 사귄 경험이 있는 사람과 한 번도 사귄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갈리고 있어요. - 본문 43~44쪽 타자와 만나기 무서운 사회, 연애는 할 수 있는 사람만 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사랑과 연애의 모습, 욕망의 풍경도 달라진다. 저자들은 1990년대만 해도 사회규범에서 벗어나는 일탈이 멋진 일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성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고 약물복용담을 자랑하는 것이 멋지게 보이던 시대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섹스에 탐닉하는 것은 물론, 술을 마시는 것조차 촌스럽다고 여기는 사회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뭔가에 도취되는 것을 멋있게 여기던 저때와 달리 지금은 특별한 체험에 휘둘리는 사람은 촌스러운 걸로 치부된다. 시대에 따라 우리가 품을 수 있는 욕망에 대한 평가도 다르게 인식되는 것이다. 특히 지금 시대에 느껴지는 큰 특징 하나는 타자에 대한 배외주의, 혐오 감정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아마미야 꼭 연애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타인과 관계 맺기가 어려워진 것 같아요. 친구가 생기지 않는 거죠. 다들 사람 사귀는 게 어렵다고 느끼는 듯해요. 기시 모두들 사람이 두려운 거겠죠. 두렵기 때문에 만나지 못해요. (…) 타자가 두렵기 때문에 혐오 발언 같은 배외주의적인 일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공격성의 이면에는 공포감이 있는 것이죠. 아마미야 틀림없이 뭔가를 빼앗기거나 손해를 입거나 끔찍한 일을 당할 거라는 느낌 때문에 공격적이 되는 거겠죠. 기시 (…) 전반적으로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어요. 그래서 뭐랄까, 극단적이에요. 타자가 두려워서 관계를 맺을 수 없다거나 (…) 주변 사람들을 보면 많이들 그래요. 모두 이미 친구나 연인을 만들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타자가 두려운 사회에 살고 있어요. - 본문 55~58쪽 연애는 꼭 해야 하나? 바람은 피면 안 되나? 도저히 타자와 마음을 나누기가 무서운 사회에서는 연애 감정 역시 꺼리게 된다. 실제로 그런 경향이 짙어지는 것이 오늘날의 풍조다. 하지만 연애가 없어지면서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없을까? 사랑이 옅어지면서 우리는 타자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능력도 같이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시 만나서 연애의 계기를 만드는 걸 이른바 ‘소셜 스킬’이라 하잖아요? 그건 말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요. 신체를 이용하면 폭력이 되고요. 단순히 “좋아해”라며 내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 상대가 나를 좋아하게끔 만들려면 엄청나게 복잡한 전술이 필요하거든요. 상대가 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건데, 이걸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죠. 실은 우리도 그렇고 이 사회가 언어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는 거예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해요. 아마미야 진정한 의미에서 연애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 거라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기시 공공연하게 개인적인 의사소통들은 하고 있지만 어딘가 서툰 점들이 있는 거죠. - 본문 32~33쪽 우리는 왜 만나고 사랑하고 혐오할까 보통의 행복, 그리고 생의 가능성 혐오 분위기가 높은 사회, 사회적 불평등이 심한 격차 사회에서는 인간관계도 연애도 불평등하게 조직된다. 이른바 ‘연애 격차 사회’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어떻게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저자들은 ‘보통의 행복을 얻으면 거기에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한다. ‘보통의 행복’이란 평범한 일상을 잘 가꾸는 삶을 뜻하는 말인 한편, 우리가 경계할 것들을 말하고 있다. 꼭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항상 대단해야 한다는 강박, 누구보다 압도적이어야 한다는 경쟁심 들을 비우고 다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도 행복할 것. 이렇게 자신이 머물 ‘보통’의 자리를 마련하고 그 존재의 자리를 긍지와 자부심으로 채워나가는 것. 이것이 저자들이 권하는 행복의 방향이며 생의 가능성이다. 기시 (…) 끝까지 파고들면 우리들의 욕망은 굉장히 뻔해요. 엄청난 집착을 가진 사람만 욕망이 있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도 욕망이 있는데, 사실 의외로 온건해요. 특별한 미인이 되지 않아도, 그렇게 부자가 되지 않아도 좋고요. 평범하고 아담한 곳에서 그럭저럭 살아나가기를 바라죠. 많은 사람이 타자의 욕망을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에 욕망도 평균치에 가깝게 온건해지는 거죠. 그래서 보통의 행복을 얻는다면, 거기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 본문 22쪽 저자 소개 아마미야 마미 (雨宮まみ) 작가. 여성의 자의식, 연애, 성 등을 주제로 독자와 소통하는 많은 글을 발표했다. 2011년 출간한 《여자를 열등감에 빠지게 하여 女子をこじらせて》가 사회 전반에 큰 화제를 일으켰고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지은 책으로 《성실하게 살면 손해입니까? まじめに生きるって損ですか?》 《방에서 느긋한 생활 自信のない部屋へようこそ》 《계속 독신으로 살 생각이야? ずっと獨身でいるつもり?》 《여자여 총을 들어라 女の子よ銃を取れ》 등이 있다. 기시 마사히코 (岸政彦) 1967년생으로 사회학자다. 오사카시립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를 수료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류코쿠(龍谷)대학을 거쳐 2017년부터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주제는 전후 오키나와의 노동력 이동과 아이덴티티, 도시형 피차별 부락의 구조와 변용, 생활사 방법론 등이고, 에스니시티(ethnicity), 차별, 사회 조사 실습 등을 가르치고 있다. 오사카 번화가를 자주 어슬렁거리며 재즈와 동네 산책을 좋아한다. 『동화와 타자화-전후 오키나와의 본토 취직자들(同化と他者化─戰後沖繩の本土就職者たち)』,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보통의 행복(愛と欲望の雜談)』(대담집), 『처음 만나는 오키나와(はじめての沖繩)』 등을 썼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으로 2016년 기노쿠니야 인문대상을 수상했고, 첫 소설 『비닐우산(ビニ-ル傘)』으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과 미시마 유키오상 후보에 올랐다. 옮긴이 나희영 대학에서 언론학을 공부했고, 현재 출판사에서 기획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차례 시작하며_ 아마미야 마미 첫 번째 만남_ 보통의 행복을 얻을 가능성 필연적인 상대와 우연히 만나고 싶다? 사람들이 탐내는 것을 나도 원한다 무분별한 욕망이 더 진실하다는 망상 ‘보통의 행복’을 바라는 시대 뿌리내리지 못하는 연애 웨딩드레스 입고 싶어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칭찬받고 싶다 “한 번도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아주머니는 사회에 꼭 필요하다 개인의 능력에 맡겨도 괜찮을까? 불륜율이 결혼율을 떨어뜨린다? 힘든 경쟁과 개인의 고통 차별의 역전 현실과 문자 메시지의 간극 부정적인 마음 길들이기 기분을 분명히 전한다 사이에_ 기시 마사히코 두 번째 만남_ 사람과 사람이 이어진다는 것 ‘포엠 장례’는 용서해! 규슈에는 포옹 문화가 없다! “결혼하지 않아도 좋으니 아이만은 낳아” 딸이 즐겁게 지내는 게 못마땅한 부모 무라카미 하루키여도 어림없는 ‘대출’ 집짓기란 어떻게 살지를 선언하는 것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결혼 ‘결혼 안 한다’고 결정하면 실례일까? 알콩달콩한 결혼에 대한 동경 바람피워도 들키지 않으면 OK? 결국, 남자가 싫은 거죠? 내가 싫으니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다 몸이 목적이면 왜 안 돼? 담쟁이덩굴 같은 다리털까지 너무 좋아 연애도 목표를 내걸고 매진해야만 하나? 사회학이 싫어진 건 그래서일까? 관계가 깊을수록 쓸 말은 줄어든다 마치며_ 아마미야 마미 · 기시 마사히코
-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 | 포도밭출판사
2016. 5. 10 / 121×188mm / 192쪽 / 13,000원 / ISBN 979-11-952770-6-3 (03380)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 지은이: 데이비드 그레이버 옮긴이: 나현영 “사회는 끊임없이 재탄생한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원리와 기술을 일깨우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되찾게 해주는 아나키스트 인류학이라는 ‘낮은 이론’ “자기 삶을 자유롭게 통치하는 세상을 이룩하려는 이들이 정말로 관심을 가질 만한 사회 이론은 무엇인가? 이것이 이 책의 핵심 주제다.” 20대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선거 결과를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갔습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평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선거 결과에 따라 (이를테면 ‘여소야대’냐 ‘여대야소’냐에 따라) 누군가의 삶에 당장 ‘희망’이 생기는 일은 희박합니다. 소외된 이들의 처지나 박해받는 현장의 상황은 여전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현실에서 살아남느라 힘겨운 이들에게 정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선거 이후 오히려 헛헛하다는 말이 많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자기 삶을 자유롭게 통치하는 세상을 이룩하려는 이들이 정말로 관심을 가질 만한” 탐구, 그리고 “사회는 끊임없이 재탄생한다”고 말하는 사회 이론을 읽어볼 만하지 않나 싶습니다. 인류학자이자 아나키스트 활동가인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이력을 시작한 초창기부터 바로 이를 주제로 연구와 활동을 해온 인물입니다. 이 책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에는 자율적인 사회와 정치를 가능케하는 조건에 대한 그의 핵심적 성찰들이 매우 선명하게 간추려져 있습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에 대하여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서구 사회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인물입니다. 최근 국내에도 그의 새로운 저작들까지 여럿(『가치 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부채, 그 첫 5,000년』, 『우리만 모르는 민주주의』, 『관료제 유토피아』) 출간되었습니다. ‘맨스플레인’이라는 말을 세계적으로 알린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저자 리베카 솔닛은 그레이버에게 “대단히 눈부시고 독창적인 정치 사상가”라는 찬사를 보냈고, 『21세기 자본론』의 저자 토마 피케티와 그레이버가 벌인 자본주의 시스템과 경제 문제에 관한 논쟁도 유명합니다. 그레이버는 특히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자주 소개됩니다. ‘직접행동 네트워크’ 모임과 ‘세계정의 운동’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였고, 그 탓에 예일 대학교 재임용이 거부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월가를 점거했던 오큐파이 운동에 깊이 참여하며 “우리는 99%다”라는 구호를 작성했던 활동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그레이버는 인류학을 통해 탐구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원리와 기술’을 사회 이론과 연결시키는 독보적인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교수이자 인류학자인 모리스 블로흐는 데이비드 그레이버를 두고 “이 시대 최고의 인류학 이론가”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왜 인류학인가 인류학 하면 흔히 민속 사료를 살펴보고 원시부족들을 관찰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인류학의 주요한 질적 연구방법인 민족지학(ethnography)은 실제로 특정 문화권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 생활상의 맥락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여기서 인류학 연구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소수의 엘리트만이 사유체계와 개념을 생산해낼 수 있”다는 식의 “고루한 헤게모니에 맞설 수 있는 최적의 학문”이 인류학이라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인류학이 “인간에 대한 숱한 통념들이 진실이 아님을 입증하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들을 제시하기 때문”이고, 나아가 “인류학이 중요한 것은 단지 통념을 깨뜨려서만이 아니다. 인류학은 우리는 왜 처음부터 정부와 감옥과 경찰을 갖고 있어야 하는지 묻게 한다”라고 말합니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의 핵심 주제인 “자기 삶을 자유롭게 통치하는 세상을 이룩하려는 이들이 정말로 관심을 가질 만한 사회 이론”을 탐구하는 데 있어 아나키즘의 방식과 인류학의 연구를 긴밀히 연결시켜나가는 이유입니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이란 무엇인가 ‘아나키스트 인류학’이라는 이름이 낯선 까닭은, 이 말 자체를 그레이버가 창안했기 때문입니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은 우선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미래의 어떤 시점에 존재하게 될지 모르는 어떤 급진적 이론”으로 구상되었습니다. 일종의 예시적 이론인 셈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이론은 아나키스트 운동의 주요 원리이기도 한 ‘예시적 정치’(즉,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형식의 사회성을 창출하여 이미 자유로운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직접행동의 원리”)와 나란히 진행될 이론이기도 합니다. ‘낮은 이론’을 찾아서 그레이버는 첫 장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학파와 아나키즘 학파의 특징적인 차이를 짚으며 “마르크스주의는 혁명 전략에 관한 이론적이고 분석적인 담론이 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아나키즘은 혁명적 실천에 관한 윤리적 담론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마르크스주의 학파와 달리 아나키즘에는 ‘고급 이론’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나키즘에서는 명확하고 총제적인 분석을 위한 고급 이론보다 여러 사람 사이에서 의사를 결정하고 합의를 구하는 과정에 관한 이론이 더욱 중요합니다. 아나키즘에 필요한 이론은 고급 이론이 아니라 “변혁을 위한 기획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론”으로서의 ‘낮은 이론’입니다. 이러한 아나키스트 이론은 “다른 사람의 기본 가정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대신 서로를 강화하는 기획”을 찾으려 합니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은 이러한 포부로 ‘낮은 이론’의 윤곽을 그리고 있습니다. 대항권력의 인류사, 그리고 사고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상상력 그레이버는 인간 사회는 항상 권력과 동시에 반(反)권력을 내포해왔다고 지적합니다. 어떤 사회든 권력이 존재하면 반권력도 항상 공존한다는 말입니다. 반권력은 ‘대항권력’이라고도 불리는데, 전형적인 정의로 보면 “자치 공동체에서 급진적 노동조합, 민병대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자본에 반대하는 사회제도”를 통칭하여 대항권력이라고 합니다. 권력과 반권력이 공존하며 대치하는 상태는 ‘이중권력’이라고 일컫습니다. 그레이버는 이중권력 상태에서 중요한 것은 “상충하는 원리와 모순된 충동들 자체가 아니라 이것들을 중재하는 조정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달리 말하면,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은 갈등 없는 사회라는 목표보다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이라는 말입니다. 그레이버가 제시하는 대항권력 이론의 요점은 “대항권력은 이미 깊숙이 우리들 사이에 배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급진적 변혁의 순간에 완전히 새로운 정치, 경제, 사회형태를 도입할 수 있게 하는 대중적 역량의 원천”입니다. 이것은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의 독창적인 점은, 대항권력을 이야기하며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 같은 서구의 ‘위대한 혁명’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피아로아족과 티브족과 말라가시 사람들의 사례, 즉 통념상 ‘근대 세계’에 속하지 않는 사회의 사례를 살펴본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탐구는 결국 우리가 알게 모르게 그 안에 갇혀 사고하는 틀, ‘사회’, ‘국가’, ‘국민국가’, ‘혁명’ 등에 대한 사고틀을 무너뜨려야 하는 이유를 일깨웁니다. 대항권력을 제대로 고찰하기 위해서도 통념을 깨는 상상력이 필요한데, 그레이버는 이를 “장벽 무너뜨리기”라고 부릅니다. 장벽 무너뜨리기는 사회적 대안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도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사고의 장벽에는 주로 ‘상상적 총체성’이라는 것들이 있습니다. 앞서 ‘사회’, ‘국가’, ‘국민국가’, ‘혁명’ 등의 개념을 언급했는데, 이에 더해 ‘민족’이나 ‘이데올로기’ 등도 마찬가지로 “총체적 체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에 근거한” 개념들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레이버는 이러한 ‘총체성’들은 실제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현실’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정확히 우리 상상적 구조 안에 결코 완전히 포괄되지 않는 무엇을 가리킨다. 특히 ‘총체성’은 언제나 상상의 산물이다. 민족, 사회, 이데올로기, 닫힌계 등등……. 이것들은 모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현실은 항상 무한히 더 복잡한 셈이다.” 그레이버가 강조하는 것은 ‘상상적 총체성’에 갇힌 통념들을 뒤집어보자는 것입니다. 특히나 사회의 대안을 사고할 때 우리는 지극히 저 총체성에 갇혀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근대 사회’가 아닌 인류 사회들의 모습들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의 현실을 다르게 해석할 근거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그레이버는 그 실질적인 방법으로서 ‘사고의 경첩’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이런 것. ‘혁명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이 있다고 할 때, 상상적 총체성에 근거해 혁명을 어떤 지각변동적 사건으로 이해하는 대신에 질문을 바꿔서 “혁명적 행동은 무엇일까?” 하고 자문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에 답하는 일이 가능합니다. “혁명적 행동은 특정한 권력 또는 지배 형태를 거부하고 그에 맞서 사회관계를 (그 집단 내부에서까지) 재구성하는 모든 집단행동을 일컫는다”라는 답이 가능합니다. 또한 “스스로를 구성하며, 공동으로 규칙이나 운영 원리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재검토하는 자율 공동체를 창조하려는 시도는 거의 혁명에 근접한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런 ‘혁명’이 반복되면 ‘거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것은 혁명적 행동의 목표가 반드시 정권 전복만일 필요는 없다는 점을 일깨웁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재탄생한다 인류학은 곧잘 옛날 얘기로 치부되고, 아나키즘은 자주 순진하고 낭만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합니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비전을 이야기하면, 이를테면, 갈등이 고도화되고 이전 시대의 상상을 초월하는 자본주의를 경험한 인류에게는 그런 순진한 비전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반박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레이버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삶은 양적으로는 변화했지만 질적으로는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는 이전에 존재했던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에 살고 있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다른 시간에 살고 있지도 않다. 공장이나 마이크로칩의 존재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가능성의 본질이 바뀌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해 서구가 몇 가지 새로운 가능성을 도입했다 해서 오래된 가능성이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나키스트 인류학이라는 예시적 사회 이론은 앞서의 원리들 속에서 “사회는 끊임없이 재탄생한다”고 말합니다. 그레이버는 이에 근거해 이 책에서 “자기 삶을 자유롭게 통치하는 세상을 이룩하려는 이들”을 위한 사회 이론의 조각들을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차례 서문 ‘낮은 이론’을 찾아서 그레이브스, 브라운, 모스, 소렐 이미 존재하는 것과 다름없는 아나키스트 인류학 장벽 무너뜨리기 존재하지 않는 학문의 기본 원리 ‘혁명 이후’의 시나리오 내가 배신할 수밖에 없는 인류학 추천의 글 – 아나키즘에 대한 오해와 진심 / 하승우 찾아보기 지은이 소개 데이비드 그레이버 David Graeber 인류학자이자 아나키스트 활동가. 뉴욕 주립대학교를 졸업하고 시카고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예일 대학교,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가르쳤고 현재는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9년부터 1991년 사이에는 마다가스카르 지역에서 현장연구를 실시했다. 이때의 경험은 이후 연구와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으로 돌아와 ‘직접행동 네트워크’ 모임과 ‘세계정의 운동’ 등에 참여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그 이력 탓에 예일 대학교 재임용이 거부되었을 때는 전 세계에서 서명 운동이 일기도 했다. 2011년에는 월가를 점거한 오큐파이 운동에 참여했다. 그레이버는 ‘우리는 99%다’라는 유명한 구호를 작성한 활동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저서로 『가치 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부채, 그 첫 5,000년』, 『우리만 모르는 민주주의』, 『관료제 유토피아』 등이 있다. 옮긴이 나현영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공역), 로버트 베번의 『집단 기억의 파괴』, 존 케이지의 『사일런스』, 지그문트 바우만의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등을 번역했다. 추천의 글 그레이버는 “사람들의 습관과 행동에 감춰져 있어 이들 스스로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아나키스트 인류학이라는 방법을 빌려온다. 아나키즘을 어떤 이론의 틀에 가두지 않고 혁명적 실천에 관한 윤리적 담론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이런 방법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기본 가정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대신 서로를 강화하는 기획”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 하승우(정치학자) 국가 없이 우리는 살 수 있을까? 그레이버는 이 질문 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우리는 이미 국가 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단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최근 몇 년 동안에 우리를 지켜줄 국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적지 않은 이들에게 이 책은 국가 없이 사는 기술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되찾게 해줄 것이다. – 후지이 다케시(역사학자) 책 속에서 일반적인 설명에서 아나키즘은 흔히 이론적으로는 한발 뒤처지지만 열정과 성실로 두뇌를 벌충하는 마르크스주의의 가난한 사촌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사실 이런 비유는 아무리 좋게 말해도 왜곡된 것이다. 19세기의 이른바 ‘창시자’들은 스스로 특별히 새로운 것을 창안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조직화, 자발적 결사, 상호부조와 같은 아나키즘의 기본 원리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한 인간 행동 양식이라고 생각했다. 국가 및 모든 형식의 구조적 폭력과 불평등과 지배를 거부해야 하며(아나키즘의 문자적 의미는 ‘지배자 없음’이다), 이 모든 형식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서로를 강화한다는 가정도 마찬가지였다. – 39~40쪽 아나키스트 이론은 다른 사람의 기본 가정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대신 서로를 강화하는 기획을 찾으려 한다. 어떤 점에서 통약불가능한 이론들이라 해서 존재할 수 없거나 서로를 강화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유일무이하고 통약불가능한 세계관을 가진 개인들이라 해서 친구나 연인, 공통의 기획에 힘쓰는 동료가 되지 말란 법은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아나키즘에 필요한 이론은 고급 이론보다 오히려 ‘낮은 이론’이라 부를 만한 것일지 모른다. 변혁을 위한 기획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론 말이다. – 46~47쪽 이 책의 제목을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이라 붙인 이유가 여기 있다. 나는 인류학이야말로 우리가 다루는 영역에 특별히 도움이 되는 입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계에 현존하는 자치 공동체와 비시장경제를 조사했던 이들이 사회학자나 역사학자보다 인류학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 민족지학 연구자는 사람들이 하는 일을 관찰하고 이들의 행동에 감춰진 상징적, 도덕적, 실천적 논리를 밝히려 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습관과 행동에 감춰져 있어 이들 스스로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의미를 발견하려 하는 것이다. 급진적 지식인이 맡아야 할 역할도 정확히 이와 같다. 지식인은 실현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관찰해 그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일의 더 큰 함축적 의미를 찾아낸 뒤, 그 이념을 처방이 아닌 기여로, 가능성으로, 곧 선물로 되돌려주어야 한다. – 50~51쪽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 봤자 원시인들 얘기 아냐?” 인류학을 어느 정도 연구한 아나키스트에게 이런 식의 주장은 매우 낯익다. 전형적인 대화는 주로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회의론자: 좋아, 아나키즘이 실제로 작동한다고 생각할 근거를 대면 아나키즘 사상 전체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정부 없이 존재하는 사회가 가능한 사례를 단 하나라도 들어 줄 수 있어? 아나키스트: 물론, 사례는 무수히 많아. 당장 떠오르는 이름만도 열 가지가 넘지. 보로로족, 바이닝족, 오논다가족, 윈투족, 에마족, 탈렌시족, 베조족……. 회의론자: 다들 그냥 원시인이잖아! 현대 과학기술 사회의 아나키즘을 얘기해달라니까. 아나키스트: 좋아. 성공적인 실험의 예는 아주 다양해.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 같은 노동자 자주관리 사례가 있는가 하면, 리눅스는 선물경제 이념에 기초한 경제 실험을 했지. 합의와 직접민주주의 원리 위에 세워진 갖가지 정치 조직이 있고……. 회의론자: 그래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그건 모두 소규모의 고립된 운동들 아냐. 나는 사회 전체에 대해 묻고 있다고. 아나키스트: 사회 전체의 변혁을 시도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야. 파리 코뮨이나 스페인 혁명만 해도……. 회의론자: 그래,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보라고! 다 죽었잖아! 무슨 수를 써도 결과는 똑같다. 이 말싸움에서는 이길 재간이 없다. 회의론자가 ‘사회’라고 말할 때 정말로 의미하는 것은 ‘국가’ 내지 ‘국민국가’이기 때문이다. – 87~89쪽 사실 이 곤봉을 든 남자는 우리가 사는 세계 어디나 침투해 있다. 대다수는 그가 만들어내는 무수한 경계와 장벽을 가로지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기에 그의 존재를 상기할 필요가 없을 뿐이다. 산더미처럼 음식이 쌓여 있고, 그 몇 발자국 옆에 굶주린 여인이 서 있는 광경을 보았다고 하자.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대다수가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광경이다. 그러나 당신은 여인에게 음식을 집어줄 수 없다. 그랬다간 십중팔구 곤봉을 든 남자가 나타나 당신을 때릴 것이기 때문이다. 대조적으로 아나키스트는 항상 곤봉을 든 남자의 존재를 상기시키려 한다. 버려진 군사기지를 무단 점거해 살고 있는 덴마크의 크리스티아니아 공동체에서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벌이는 의식이 좋은 예다. 크리스티아니아 사람들은 산타클로스 분장을 하고 백화점에서 장난감을 훔쳐 거리의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모두에게 경찰이 산타클로스를 때려눕히고 울부짖는 아이들에게서 장난감을 낚아채는 광경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 132~133쪽 새로운 운동의 핵심 용어는 ‘과정’이다. 여기서 과정은 ‘의사 결정 과정’을 뜻한다. 북아메리카에서 의사 결정은 거의 언제나 합의를 구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기에도 이데올로기적 억압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모든 바람직한 합의 과정은 타인의 관점 전체를 나와 똑같은 관점으로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합의 과정의 목적은 한 집단의 공동 행동 방침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안을 표결로 수락 또는 거부하기보다, 다듬고 또 다듬고, 폐기하거나 다시 고쳐 최종적으로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 151쪽 위의 사례들은 결국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민주주의(democracy)’는 본래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엘리트주의자들이 비방을 목적으로 만든 용어로, 문자적으로만 풀이하면 민중의 ‘힘’ 또는 ‘폭력’을 뜻한다. ‘아르코스(archos, 통치)’가 아닌 ‘크라토스(kratos, 힘)’인 것이다. 이 용어를 만든 엘리트주의자들은 민주주의가 단순한 폭동이나 폭민의 지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당연히 그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다른 누군가가 민중을 항구적으로 정복하는 것이었다. (…) ‘민주주의’가 ‘대의(representation)’의 원리를 포함하는 용어로 완전히 탈바꿈하다시피 한 것은 나중의 일이다. (한편 ‘대의’라는 용어는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가 지적하듯 그 자체로 매우 기이한 역사를 갖고 있는데, 이것은 원래 왕 앞에 선 민중의 대표를 뜻하는 말이었다. 즉, 스스로 힘을 행사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내부의 사절을 지칭하는 용어였던 것이다.) 어쨌든 민주주의는 이렇게 탈바꿈하고 나서야 명문가 출신 정치 이론가들에게 재조명되어 오늘날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 160~162쪽
- 관계와 경계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15-1 (03300) 출간일: 2021년 1월 28일 정가: 15,000원 제본: 무선 쪽수: 260쪽 판형: 130×210mm 분야: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생태/환경 국내도서 > 자연과학 > 생명과학 국내도서 > 인문 > 인류학 관계와 경계 엮은이: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 지은이: 이동신, 김정미, 권헌익, 김산하, 최태규, 조윤주, 천명선, 이형주, 이항, 황주선, 김기흥, 박효민, 박선영, 이인식, 주윤정 코로나로 인한 불안과 위기는 인간만의 것일까 팬데믹 1년, 동물들은 어떠한 위기에 처해 있는가 인간과 동물이 안전하게 공존할 방법은 무엇인가 국내의 대표적인 학자와 전문가, 활동가가 모여 인간-동물 관계에 대한 최신의 연구와 성찰을 나누다 국내에서 처음 코로나19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 딱 1년이 지났다. 1년 동안 전 세계는 전례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이런 사태를 만든 가해자와 피해자는 누구인가? 인간의 취약성과 동물의 취약성은 어떻게 얽혀 있으며 인간보다 훨씬 전염병에 취약한 동물들은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 있을까?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은 메르스, 구제역, 조류독감과 같은 인간-동물질병 방역의 경험으로부터 어떤 빚을 지고 있는가? 발생부터 대처에 이르기까지 코로나19는 인간과 동물이 맺고 있는 관계와 촘촘히 얽혀 있다.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를 침범하고 동물체험카페에서 진귀한 야생동물들과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는 사람들 한편에는 전염병의 원인으로 손가락질 당하며 마구 살처분되는 동물들이 있다. 인간이 함부로 좁힌 거리와 함부로 넓힌 거리, 그 사이 생태적으로 올바른 공존의 거리는 얼마일까? 이 책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국내 학자, 전문가, 활동가 등이 한데 모여 이룬 성과이다. 인간-동물 관계 연구의 최신 논의와 성찰을 담았다. ‘거리’의 중요성 ‘거리두기’라는 말은 코로나와 함께 우리에게 찾아왔다. 거리두기라는 말은 대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일컫는다. ‘사람끼리 밀집하지 말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과 동물의 거리, 나아가 동물과 동물의 거리는 어떨까.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를 그 어느 때보다 신경 쓰는 지금, 우리는 사람과 동물 간의 거리, 동물과 동물 간의 거리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을까. 체험동물원이나 동물체험카페 같은 공간을 만들어 야생동물을 만지고 쓰다듬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가. 병에 걸리지 않을 도리가 없을 만큼 가축들을 밀집해 키우는 지금의 공장식 사육방식은 과연 지속가능한가. 이런 질문들에 응답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팬데믹은 언제든 닥칠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의 ‘사이’를 생각하다 인간-동물 관계를 이전과 다르게 사유하기 위해 영문학자 이동신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고 제안한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이’를 고민하자는 말에는 ‘차이’에 집중하지 말자는 함의가 있다.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를 고민하기보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사유하자는 것이다. 이 책은 인간과 동물을 차이 혹은 동질성으로 파악하고 위계화하는 논의틀은 이제 버려야 할 때라고 말한다. 인간과 동물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동물의 ‘사이’를 고민하고 적당한 ‘거리’를 부여하는 실천이다. ‘인간중심주의’에 맞서다 만일 코로나19가 정말로 이전과 다른 ‘뉴노멀’ 시대를 가져온다면, 그 안엔 아마도 인간중심주의적인 현실과는 다른 현실을 만들라는 어려운 요구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15편의 글의 공통된 연구 주제는 ‘인간-동물 관계’이다. 인류학, 사회학, 수의학, 영문학 분야 연구자뿐 아니라 동물권 단체, 지역공동체, 동물원과 생태공원 등의 현장에서 일하는 활동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경과 영역을 가진 필자들이 참여했다. 코로나 시대의 반려동물은 물론 동물원 동물, 야생동물과의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부터, 가축과 인공육 그리고 해상양식동물에 대한 이야기, 인수공통감염병과 동물 관련법에 대한 이야기, 인간-동물 관계에 대한 철학적 혹은 사회학적 고민이 담긴 이야기 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 모든 이야기는 인간중심주의로 점철된 인간-동물 관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또 코로나로 현실이 급변하는 이 시기에 인간-동물 관계를 고민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일이 되고 있다는 절박함을 공유한다. 인간-동물 관계에 대한 논의가 직접적으로 동물을 접하는 영역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되기에,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의 모든 활동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에, 학제간 연구뿐만 아니라 학계와 현장의 교류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인간-동물 경계에 대한 새로운 서사 코로나19로 ‘거리’가 중요해진 이 순간은 사람들끼리의 사이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물, 그리고 동물과 동물 사이를 새롭게 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이’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인간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바라볼 기회인 셈이다. 이 책의 1부 에는 ‘사이’를 얘기하는 네 편의 글을 모았다. 이동신은 「차이에서 사이로: 인간-동물 관계와 거리두기」 에서 포스트 코로나의 ‘포스트’라는 단어를 문제 삼으며, 섣부르게 미래로 나가기보다 현재의 인간-동물 관계를 ‘차이’가 아닌 ‘사이’라는 관점으로 다시 써 나갈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김정미는 「근거리 입양: 파랑새 ‘짹이’ 이야기」 에서 파랑새와 우연히 같이 살게 된 경험을 통해 야생동물과의 공존을 고민하면서 ‘입양’이라는 말로 이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관계를 풀어 나가고 있다. 권헌익은 「원거리 입양: 코끼리 ‘마야’ 이야기」 에서 머나먼 거리를 두고도 동물과의 친밀한 사이를 만들어 가는 방식으로 원거리 입양을 제안한다. 권헌익은 제한적이고 고정된 친족 개념의 입양과 달리 유동적이면서 때로는 개방적인 입양 관습과 개념을 부족사회에서 찾으면서, 동물과도 유사한 입양 관계가 가능함을 이야기한다. 김산하는 「야생의 거리와 공존의 생태계」 에서 인간과 동물 사이를 고민하기 전에 자연상태에 있는 동물들 사이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사이에서 확인되는 물리적이고 생태적인 거리두기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자연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다시 야생성을 되찾도록 하는 ‘활생’이 중요하다. 인수공통감염병 상황에서 동물의 취약성 코로나19 팬데믹의 시작은 인간과 동물의 접점에 있었다. 그리고 팬데믹으로 위기를 겪는 것은 동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만을 걱정하고 인간만이 피해자인 듯 여기고 있다. 동물과 인간이 함께 걸릴 수 있는 인수공통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동물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까? 이 접점에서 인간과 동물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우리는 어떤 변화를 시도해야 할까? 2부 에서는 인수공통감염병 팬데믹 상황에서 동물이 가진 취약성을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를 정리했다. 최태규는 「팬데믹 상황의 동물원 동물들」 에서 야생동물이지만 인간이 만든 공간에 갇혀 있는 동물원 동물과 반려동물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누리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버려지고 잊히고 죽임을 당하는 유기 동물들의 상황을 살펴본다. 조윤주는 「팬데믹 상황의 보호소 동물들」 에서 확진된 보호자의 반려견과 반려묘에게서 코로나19 감염이 확인된 이후 사람들에게 퍼졌던 공포와 그로 인한 사회 현상을 살펴본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소외된 보호소의 운영상태 악화와 자원봉사자 감소가 우려되었지만 뜻밖의 국면도 있었다. 집에 고립된 사람들에게 반려동물이 주는 위로와 유대감이 새로운 가치로 떠오르면서 오히려 유기동물 입양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이다. 사람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틈을 동물이 메워 준 셈이다. 천명선은 「감염병 환자로서의 동물: 팬데믹 상황의 가축」 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수성이 있다고 알려진 개와 고양이, 동물원의 고양이과 동물, 농장의 밍크 등이 모두 사람으로부터 감염되었음에도 ‘환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동물은 병원체 그 자체로 여겨지거나,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인간에 대한 위험으로만 간주된다. 이형주는 「팬데믹 상황의 동물을 위한 법과 제도」 에서 인간 사회의 법과 제도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듯 동물을 위한 법과 제도 역시 이 취약성을 배려해야 함을 강조한다. 인간-동물의 질병에 대한 원헬스적 접근 이번 팬데믹의 중요한 책임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야생동물 서식지를 침범한 인간에게 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야생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증가하게 되면서 종간 장벽을 넘어 바이러스가 퍼질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급속도로 확산된 세계화와 도시로의 인구 집중은 감염병 확산에 더욱 취약한 조건으로 이번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에 이상적인 배양공간을 제공했다. 결국 코로나19는 단순히 인간의 질병도 동물의 질병도 아니다. 이것은 인간-동물의 접촉과 상호작용으로 일어난 질병으로 규정해야 하며 단순히 의학적·생물학적 문제로 국한할 수 없다. 인간-동물의 문제를 좀 더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게 다루려면 의학은 물론 수의학과 생태학 그리고 사회과학적인 접근이 결합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질병에 대한 포괄적 접근을 요구하는 흐름을 ‘원헬스 운동’이라 부르며, 이 운동은 지금까지 인간-동물로 분화되어 왔던 의학적 접근법을 광범위하게 통합할 것을 주장한다. 3부 에는 인간-동물의 관계에서 감염병의 지위를 고민하는 글 세 편을 실었다. 이항은 「팬데믹의 시작: 인간, 가축, 야생동물의 접점」 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인간-가축-야생동물이 조우하는 접점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 준다. 이항은 특히 한국적 상황에서 인간-가축-야생동물의 접촉이 일어날 수 있는 특수한 조건이 형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종감염병이 발생할 경우 생태적, 사회적, 경제적 혼란은 물론 안보에 엄청난 위협이 될 수 있다. 황주선은 「질병생태학: 야생동물 유래 신종감염병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 에서 야생동물에서 유래하는 신종감염병에 대한 생태학적 이해를 제공한다. 황주선은 ‘질병생태학’이라는 분야의 소개를 통해 병원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자연적이고 인위적인 얽힘 현상을 ‘생태’라고 규정한다. 질병생태학은 단순히 바이러스의 분자적 생물학적 단위로 질병을 파악하는 기존 생의학적 패러다임을 넘어 인간-가축-동물-생태환경까지 광범위한 요소들을 포괄하여 다룰 때 비로소 질병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기흥은 「한국 질병관리체계와 인간-동물질병의 공동구성」 에서 코로나19 방역정책을 고찰하며 한국 질병방역의 기본틀이 인간-가축-동물 질병의 주기적 발생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특히, 2000년 이후 발생한 인간(메르스, 사스)-가축(구제역, 조류독감)-동물(아프리카돼지열병) 질병의 방역경험이 현재 다른 서구국가들의 방역정책과 다른 특이한 대응방식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동물질병의 경험이 공동구성되는 과정이었다. 인간-동물 관계의 미래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인간과 동물의 삶에 전례 없는 영향을 끼치며 ‘포스트 코로나’ 담론이 전방위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터와 일상생활에서 어려움과 불편함을 겪고 있지만, 한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먼 미래에 가능할 것이라 여겨졌던 일들이 보다 빠르게 우리의 현실로 가능해지고 있거나, 현재 인류의 삶의 방식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4부 에서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앞으로의 인간-동물 관계에 어떤 가능성들이 열려 있을지, 혹은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을지 살펴본다. 박효민은 「육식의 미래와 인공육의 이슈」 에서 공장제 축산업에 기반한 육류 소비가 날로 증가하고 있지만 이는 환경적, 윤리적, 비용적 측면에서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축산업 기반 육식의 대안으로서 인공육의 문제를 다룬다. 이를 위해 현재의 기업적 축산업의 문제가 무엇이며 왜 지속가능하지 않은지, 그리고 기술적 측면에서 현재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는 인공육 중 특히 배양육의 발전 단계는 어디까지 왔는지를 살피고 인공 배양육의 장점과 기술적 난제, 사회적으로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짚어 본다. 박선영은 「마을과 바다의 새로운 관계: 지속가능성인증의 가능성」 에서 국제인증을 통한 지속가능한 어업의 가능성을 논의한다. 이 글은 한국의 전라남도 완도에서 책임수산물에 부여하는 에코라벨 프로그램 ASC 국제인증 심사를 받은 과정을 다루고 있다. 박선영은 이 글을 통해 코로나19를 계기로 현재 수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반성적으로 고찰할 필요성을 제기하며, ASC 인증 사례의 소개를 통해 향후 지속가능한 수산물을 위해 어떤 환경적,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이인식은 「우포늪 습지 복원과 생태적 전환,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 에서 필자가 오랜 시간 우포늪을 보전하는 활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생생하게 증언하며, 나아가 정부가 시행하는 그린뉴딜이 에너지산업을 중심으로 한 또 하나의 경제정책에 머무르지 않고, 생태계의 불균형과 생물다양성 감소를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는 혁신적인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윤정은 「코로나 시대의 생태적 전환과 실천들」 에서 코로나19가 드러내고 있는 현재 인간과 동물 관계의 취약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펼친다. 필자는 코로나 이후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놓고 많은 ‘포스트 코로나’ 담론이 횡행하고 있지만, 정작 대부분의 논의들이 경제와 산업의 측면에 치우쳐 있어 막상 이 팬데믹을 초래한 근본 문제를 고민하는 반성적 사유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문제점을 제기한다. 또 다른 형태의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코로나가 보여 준 인간과 동물 관계의 취약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수준에서의 대처가 필요하며, 특히 이 과정에서 인간이 자연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엮은곳 소개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는 2018년 “인간-동물 관계의 전환: 신사물론적 경계 허물기”라는 주제의 서울대학교 교내지원사업을 진행하는 연구팀으로 출발해, 2019년 “위계에서 얽힘으로: 포스트휴먼시대의 인간-동물 관계”라는 제목으로 교육부 인문사회기초연구사업에 선정된 후 현재까지 활동을 잇고 있는 연구팀이다.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등장한 생명과 생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인간-자연, 인간-동물의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관계와 규범을 넘어 ‘공존’과 ‘얽힘’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본 연구팀은 인문학(문학), 사회과학(사회학, 인류학), 자연과학(수의학, 생태학, 행동학) 연구자들로 구성된 융합 연구 네트워크이다. 이곳에서는 인간-동물 관계가 위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비판하며, 관계 속에 존재하는 다층적인 ‘얽힘’을 드러내려 한다. 그리고 포스트휴먼 시대 인간-동물 관계를 재구조화하기 위해 근거자료를 구축(동물인격, 동물인구, 동물인식)하고, 인간-동물 상호작용 과정을 분석하며, 생태정치 및 생태미학 사례를 조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은이 소개 이동신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A Genealogy of Cyborgothic: Aesthetics and Ethics in the Age of Posthumanism』 『영미 소설 속 장르』(공저) 『세계를 바꾼 현대 작가들』(공저) 『21세기 사상의 최전선』(공저)을 썼다. 주요 논문으로 「좀비 반, 사람 반: 좀비서사의 한계와 감염의 윤리」 「좀비라는 것들: 신사물론과 좀비」 「망가진 머리: 인공 지능과 윤리」 등이 있다.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 사회인류학 석좌교수. 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초빙석좌교수. 구소련 시베리아 원주민 사회의 환경사에 대한 여러 편의 논문을 썼다. 주요 저서로 『전쟁과 가족』 『또 하나의 냉전』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등이 있다. 김정미 서울대학교 인류학 박사과정 수료. 『테크놀로지, 창조와 욕망의 역사』 『100세 혁명』 『아마존의 성공비밀』 『관시(關係)와 비즈니스: 중국 비즈니스 문화의 심층 구조』 등을 번역했다. 김산하 야생 영장류학자. 인도네시아 자바 긴팔원숭이 연구로 박사학위. 영국 크랜필드 대학 디자인센터 연구원이자 현재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으로 활동한다. 『스톱 시리즈 1~9권』 『비숲』 『야생학교』 『습지주의자』 『살아있다는 건』 등을 썼고, 『무지개를 풀며』 『사회생물학』 『활생』 등을 번역했다. 최태규 에딘버러 대학 응용 동물행동학 및 동물복지학 석사. 청주동물원 수의사.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와 ‘휴메인벳’에서 활동한다. 천명선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인문사회학 교수. 『조선시대 가축전염병의 발생과 양상』 『근대수의학의 역사』 등을 썼고, 『동물은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번역했다. 주요 논문으로 「일제강점기 광견병의 발생과 방역」 「구제역 관련자들의 체험과 그 의미에 대한 질적 연구」 등이 있다. 조윤주 서정대학교 애완동물과 교수. 동물보호소의학(shelter medicine)과 관련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반려동물 보호자의 사육포기 중재방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도심 내 길고양이의 개체수 조절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형주 (사)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동물이라서 안녕하지 않습니다』(공저)를 썼다.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허핑턴포스트〉 〈월간비건〉 등에 동물에 대한 글을 기고했으며 현재 〈한국일보〉 〈네이버 동그람이〉에 고정 칼럼을 연재한다. 이항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의생명과학 박사학위. 야생동물 보전생물학과 정책 연구에 주력하면서 「한국표범의 계통 연구」 등 90여 편의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황주선 미국 조지아 주립대학에서 야생동물 질병생태학으로 박사학위. 『동물의 행동』(공저)을 썼고, 『윙~ 파리를 어떻게 잡을까』 『동물이 색으로 말해요』 『하마를 목욕시켜 주는 동물은?』 『야생동물의 질병』(공역)을 번역했다. 김기흥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Social Construction of Disease』 『광우병 논쟁』 『호모 메모리스』(공저)를 썼다. 〈중앙일보〉 과학분야 고정칼럼을 연재한다. 학술지 「과학기술학연구」 「EASTS East Asian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과학사학회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박효민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사회학과 교수. 공정성의 다양한 관점에 대해 사회심리학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청탁금지의 법과 사회』(공저) 『평화의 여러 가지 얼굴』(공저)을 썼다. 주요 논문으로 「Reward stability promotes group commitment」 「공정성이론의 다차원성」 「이주민 주거 밀집지역 내 내국인 인식 연구」 등이 있다. 박선영 경희대학교 정치학과 박사과정(국제정치전공) 수료. 2003년부터 국내환경단체에서 저어새, 두루미, 따오기 등 멸종위기조류 및 습지 보전 국제협력 업무를 담당했다. 보호지역, 생태관광, 지속가능한 어업을 중심으로 한 국제환경규범의 국내 적용과 실천에 관심을 두고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인식 우포자연학교 교장. 『비밀의 정원 우포늪』 『낙동강의 선물 주남저수지』 『우포늪의 생물』 등을 썼다. 우포늪 보전과 멸종된 따오기 복원 추진 사업을 주도했으며, 우포늪가에 살면서 야생동식물 보호와 서식처 확대를 위해 습지보전운동을 하고 있다. 주윤정 사회학자. 장애, 생명사회학, 인간-동물 관계, 사회운동 등을 연구했고 대표적인 연구는 시각장애인 연구이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보이지 않은 역사: 한국 시각장애인의 저항과 연대』 등을 썼고, 「상품에서 생명으로: 가축 살처분 어셈블리지와 인간-동물 관계」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책 속에서 만일 코로나19가 정말로 이전과 다른 ‘뉴노멀’ 시대를 가져온다면, 그 안엔 아마도 인간중심주의적인 현실과 다른 현실을 만들라는 어려운 요구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요구의 폭과 깊이를 진정으로 가늠하는 첫걸음은 바로 인간-동물 관계 연구에서 시작한다. - 9쪽 박쥐나 천산갑으로 전파된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말로 코로나19를 규정하며 특정 동물을 유해하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이 말의 틈새를 들여다보며 인간의 식습관이나 개발 욕구로 인해 뒤틀린 인간과 동물의 사이를 얘기할 때다. 인적이 뜸해진 거리에 나타난 동물을 야생동물이라고 부르며 신기해하기보다는, 이런 말로 동물과의 사이를 짐작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얘기할 때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고민하고 조정하는 것만큼, 동물들끼리의 사이가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얘기할 때다. - 15쪽 생태적인 공존의 기초는 다차원에 걸친 존재적 거리두기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 58쪽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에서 야생 멧돼지의 대규모 사살은 사상 최초로 문명 밖 야생의 영역에서 자행된 ‘야생 살처분’이자 인간과 야생동물 간의 평행관계를 파기한 사례이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발병한 병이 한반도에까지 도달한 것은 당연히 인간과 인간이 운송한 물자의 이동 때문이고, 한국의 멧돼지는 이것의 직접적인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문제의 원흉으로 낙인 찍혀 전국에서 사살되고 있다. - 60쪽 이제는 야생과의 관계를 재검토하고 새롭게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대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는 인간이 야생의 영역에 침투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위험의 가능성 중 한 가지 결과를 보여 줬을 뿐이다. - 60~61쪽 사람의 손으로 야생동물을 기르는 기관인 동물원은 그 존재의 의미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 사회는 동물원을 더 이상 동물을 함부로 이용하는 오락시설로 내버려 둘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 집단으로 모이는 장소에 야생동물을 가두어 구경시키는 일이 공중보건학적으로 너무 위험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 74쪽 바이러스가 야생동물에게서 왔기 때문에 인류가 ‘야생동물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별 문제없이 지내고 있던 야생의 바이러스를 우리 인류가 ‘억지로 끄집어내’ 우리 자신을 ‘자해’했다고 보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 130~131쪽 신종감염병을 두고 자연의 습격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저 드라마적 사고일 뿐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극히 건조하고 기계적이다. 미생물들은 그저 자신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 더 많은 숙주로의 노출을 적극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 148쪽 새로이 관계를 설정하고 종합적인 대응을 하는 과정에서 인간과 동물의 적절한 거리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현대사회는 계몽의 방식으로 자연을 정복한 이후 자연을 낭만화하거나 애완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자연과 단절된 도시의 삶을 보충하기 위해 자연의 대리물들을 건설해 야생과의 접촉점들을 증가시켜 왔다. - 246쪽 차례 서론 1부 사이 : 인간-동물 경계에 대한 새로운 서사 차이에서 사이로 : 인간-동물 관계와 거리두기 [이동신] 근거리 입양 : 파랑새 ‘짹이’ 이야기 [김정미] 원거리 입양 : 코끼리 ‘마야’ 이야기 [권헌익] 야생의 거리와 공존의 생태계 [김산하] 2부 동물 : 인수공통감염병 상황에서 동물의 취약성 팬데믹 상황의 동물원 동물들 [최태규] 팬데믹 상황의 보호소 동물들 [조윤주] 감염병 환자로서의 동물 : 팬데믹 상황의 가축 [천명선] 팬데믹 상황의 동물을 위한 법과 제도 [이형주] 3부 질병 : 인간-동물의 질병에 대한 원헬스적 접근 팬데믹의 시작 : 인간, 가축, 야생동물의 접점 [이항] 질병생태학 : 야생동물 유래 신종감염병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 [황주선] 한국 질병관리체계와 인간-동물질병의 공동구성 [김기흥] 4부 관계 : 인간-동물 관계의 미래 육식의 미래와 인공육의 이슈 [박효민] 마을과 바다의 새로운 관계 : 지속가능성인증의 가능성 [박선영] 우포늪 습지 복원과 생태적 전환,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 [이인식] 코로나 시대의 생태적 전환과 실천들 [주윤정] 후기 : 관계와 경계에 대해 덧붙이기
-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 포도밭출판사
지은이: 한인정 사진: 서재현 ISBN: 979-11-88501-29-8 (03300) 출간일: 2022년 7월 7일 정가: 13,800원 제본: 무선 쪽수: 160쪽 판형: 125×195mm 분야: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인권문제 국내도서 > 사회정치 > 사회비평/비판 > 인권/사회적소수자 문제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한국사회비평/칼럼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여성학/젠더 > 여성문제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지은이 : 한인정 책 소개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잘 살고 싶습니다. 지금 여기서.” 여기, 더 이상 차별과 편견과 혐오에 당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주여성들이 있다. 스스로 자신의 인권을 말하고, 혐오에 맞서겠다고 외치는 이들이 있다. 더는 친구를 잃지 않기로 다짐한 이들이 있다. 옥천군에 사는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나’로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누군가의 부인,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엄마일 때만 ‘존재 가치’를 인정받았던 이주여성들은 이제 ‘나’로 살아가겠다고 외친다. 그러기 위해 이들은 어려움을 겪는 이주여성들을 찾아내고 다가가고 손을 잡았다.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서로를 지탱하는 이들, 편견과 핍박에 맞서 싸우며 서로 보살피는 옥천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보도자료 이주여성들은 차별과 편견을 일상적으로 겪는다. 무례한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그들이 떠나온 본국이 얼마나 가난한지, 본가는 얼마나 가난한지, 얼마 받고 시집왔는지, 그래서 본가에 얼마씩 송금하는지...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이름을 부르지 않고 굳이 ‘베트남’, ‘월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처음 본 사이임에도 서슴없이 반말을 한다. 집에서는 모국어를 못 쓰게 한다. 모국어 사용을 금지당한 이주여성들은 자식에게도 자신의 모국어를 가르치지 못한다. 아이는 갈수록 한국말이 유창해지지만 이주여성은 한국말 익히기가 쉽지 않고, 결국 아이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는 단절이 생긴다. 아이는 점차 엄마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상당수 이주여성들은 과중한 노동에 시달린다. 집안일을 도맡는 것은 기본이고, 끊임없이 임금노동을 한다. 이들이 버는 돈은 시어머니나 남편 통장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자는 시간 빼고 대부분 시간을 노동하는 데 쓰지만 이들은 가진 것이 없다. 그럼에도 ‘본가에 그래서 얼마씩 송금하냐’는 무례한 말을 듣고 ‘돈 벌려고 몸 팔아 결혼했다’는 참기 힘든 모욕의 말을 듣는다. 한국 며느리들이 친정에 용돈 보내면 죄가 아닌데, 이주여성들은 친정에 아껴 모은 돈을 조금이라도 부치면 도둑 소리를 듣는다. 다문화센터라는 곳이 있다. 얼핏 보면 이주여성을 지원하는 곳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가 않다. ‘다문화가족’ 지원의 내용은 이주여성을 한국 가정에 동화시키는 과정이다. 한국 가정은 그대로이고, 이주여성만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한국 가정의 ‘법’에 순응하게끔 한다. 이주여성은 현재의 다문화센터 운영이나 다문화가족 정책 등이 자신들을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진다고 문제제기한다. 한쪽(이주여성)은 자기 문화를 버리고, 한쪽(한국가정)의 문화만 법처럼 따르는 게 어떻게 ‘다문화’인가. 지방선거 유세가 한창이던 때의 일이다. 이주여성들은 선거 후보자들에게 이주민 관련 공약을 요구하기 위해 관련한 인사들을 불러 모아 기자회견 및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다른 지역의 활동 사례 및 참고할 만한 조례 내용 등을 조사 정리하여 선거 입후보자들에게 전달했고 더불어 ‘이주여성 및 이주민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고발했다. 뜨거운 현장이었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자리에 참석한 후보자들의 발언에서도 편견은 심각하게 드러난다. 이주여성의 출산율이 6%나 되기 때문에 이들의 존재가 중요하다느니, 이들의 아이들 덕분에 지역의 작은학교들이 학생 수를 채우고 있으니 더욱 신경 써야 한다느니 등등. 이주여성을 누군가의 부인, 며느리, 엄마로서만 인정하고 이주여성의 존재 자체는 무시하는 인식은 끔찍할 만큼 굳건하다. 가정폭력을 당해서 경찰에 신고해도 도착한 경찰은 한국말이 통하는 남편 말만 듣고 돌아간다. 폭행을 당한 이주여성이 겁이 질려 서툰 한국말로 상황을 설명하려 해봐도, 경찰은 “좋게 좋게 푸세요. 아니, 남편이 감옥 가면 좋겠어요?” 같은 말을 하며 서둘러 떠나려 할 뿐이다. 이상의 내용들을 모든 이주여성들이 모두 겪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 중 하나의 상황도 겪은 적 없는 이주여성은 찾기 힘든 실정이다. 차별과 편견과 혐오로 엮인 그물망이 그만큼 촘촘하다. 여기, 차별과 편견과 혐오 같은 폭력에 더 이상은 당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주여성들이 있다. 스스로 자신의 인권을 말하고, 혐오에 맞서겠다고 외치는 이들이 있다. 더는 친구를 잃지 않기로 다짐한 이들이 있다. 옥천군에 사는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나’로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누군가의 부인,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엄마일 때만 ‘존재 가치’를 인정받았던 이주여성들은 이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겠다고 외친다. 그러기 위해 이들은 어려움을 겪는 이주여성들을 찾아내고 다가가고 손을 잡았다.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서로를 지탱하는 이들, 편견과 핍박에 맞서 싸우며 서로 보살피는 옥천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은이 소개 한인정 〈옥천신문〉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옥천 곳곳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기록했다. 그 속에서 소멸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를 봤다. 있지만 없던 이야기, 묵혀놓은 이야기들이 투명하던 강을 흐리게 만들면서 떠오르는 것을 봤다. 이는 혼란이 아니라 해방이었다. 이주, 페미니즘, 동물권, 기본소득 등에 관심을 두고서 지금은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 어스링스, 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등에서 학업과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우리네 삶이 각각 다름을, 동시에 서로에게 기대어 있음을 보여주는 활동들이다. 각자의 경계, 모두와의 경계에서 느슨한 공동체를 이루길 꿈꾼다. 책 속에서 이주여성은 누구인가. 이들은 자신을 이렇게 명명했다. ‘가난한 집 맏딸’. 익숙한 단어다. 산업화 시기 급격히 빈곤해진 농촌사회에서 서울로 돈을 벌러 간다던 한국의 ‘맏딸’들이 꼭 그랬었으니까. -17쪽 이주여성들은 한국 생활에 적응해가면서, 기대와 꿈이 좌절되는 경험을 하곤 한다. 이주를 통해 원 가족의 계층 상승을 도울 수 있다는 성공 신화, 드라마 속 삶을 살 수 있다는 환상이 산산조각 나는 경험이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속았다’는 표현을 한다. 하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나간다. 새로운 환경이지만, 자신의 삶을 바꿔나가기 위해 무급노동인 가사노동, 출산과 육아, 시부모 모시기, 가내노동(농사)을 수행하며, 동시에 생계비를 벌어오는 역할도 수행한다. - 21쪽 이주여성은 다문화가족의 일원이다. 다문화가족이란 말 그대로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는 가족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주여성들은 자신들의 생활이 다문화가족의 생활이 아니라고 말했다. 자신이 자라온 문화, 언어, 전통을 모두 버리고 한국문화에 동화되도록 강제당하기 때문이다. - 32쪽 “한국 왔으니까 한국법만 따르라고 해요. 베트남 언어 못 쓰게 하고. 베트남 방송도 못 보게 하고. 베트남 음식 못 먹게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집에서 한국 음식만 먹으라고. 한국 사람도 베트남 음식 좋아하지 않아요? 한국 사람은 다른 나라 갔다고 음식까지 다 바꾸지 않잖아요. 왜 맨날 무조건 베트남 사람한테만 음식이랑 언어랑 친구랑 다 바꾸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33쪽 “제가 좀 알아서 하게 두면 좋겠어요. 저 잔업 많이 해도 150만 원 받았거든요. 근데 남편이 돈을 안 버니까 그거 생활비로 써야 하는데. 그때 시어머니가 너 적금 안 하면 아기 안 보여준다고 해서 힘들어도 눈 딱 감고 매달 50만 원씩 적금했어요. 내 통장 아니고 시어머니 통장에. 시어머니가 확인해야 하니까. (...) 아예 제 생활은 없죠. 친정에는 아예 돈 못 보내고.” - 39쪽 “저 그냥 사람인데. 자꾸 저를 나쁜 눈으로 보는 느낌이에요. 그냥 돈을 주면 나를 살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시집온 건 그냥 한 사람과 잘 살아보려고 그리고 제 인생을 잘 살려고 한 거잖아요. 근데 이 사건만 봐도, 무슨 물건처럼, 자꾸 얼마 주면 살 수 있다는 식으로 하잖아요.” - 42쪽 “한국인 며느리라면 싸운 뒤에 막 화해시키려고도 하고 자기 아들 야단도 치고 그러는데, 베트남 며느리한테는 얼마 주면 되냐고, 그렇게 말하는 거야. 도망가는 것도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돈 주면 막 대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말했죠. 어머니 우리 돈 받으려고 결혼한 거 아니에요. 우리 돈 벌려고 한국 온 건 맞지만 남편이랑 결혼해서 더 잘 살아보려고 온 거예요. 그냥 결혼 대가로 얼마씩 돈 받으려고 그런 게 아니에요.” - 63쪽 “진짜 욕하고 때리는 일은 정말 많아요. 몇 대 치는 정도는 그냥 화나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요. 근데 그게 심해져요. 나중에 112 신고할 정도면 심각한 거예요. 목을 조르는데 정말 죽을 수 있다고 느끼는 거죠. 근데도 경찰이 와서 하는 말이 사이좋게 지내라고 해요. 몇 번이나 신고했는데도 맨날 와서 하는 말이 사이좋게 지내라는 거예요.” - 66쪽 “이혼하기 전에 개명을 했고 국적 받았어요. 그냥 그걸로 끝이에요. 남편은 안 쫓아내는 걸 다행으로 알라고 말하고. 돈이 없으니까 변호사를 따로 구할 수도 없고. 아기 얼굴이라도 보여준다고 하면 고마운 거예요. 어떤 친구는 남편이 때려서 이혼했는데도 아기 뺏겼어요. 맨날 아기 보고 싶어서 울어요.” - 68쪽 “친구는 평생 시어머니 밭에서 일했는데. 나갈 때 한 푼도 없어. 농작물 판 돈은 다 시어머니 통장으로 들어가요. 집에서 일하는 거니까 월급도 못 받아. 아이 키우고 싶은데 나가서 일해야만 아이 볼 수 있다고 해서 밭에서 매일 일했는데, 결국 헤어질 때 되면 빈손으로 나가는 거죠.” - 69쪽 “다문화가족협의회라고 있어요. 그런데 그 협의회가 남성 중심적이에요. 제가 그래서 회장에게 물어본 적도 있어요. 다문화가족협의회에서 여자는 임원이 될 수 없냐고. 그랬더니 그러더라고요. 여기는 남자만 임원 하는 거라고. 그래서 내가 남자만 의견을 내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차라리 다문화남편협의회라고 이름을 바꾸라고 비꼬기도 했어요.” - 86쪽 “다문화가족 지원이라는 것이 이주여성이 다문화가족 안에서 힘들어도 다문화가족 자체가 그냥 잘 굴러가면 괜찮다는 거잖아요. 그러다가 이주여성이 탈락하면, 그냥 이주여성만 고국으로 돌아가면 되는 거고요. 그러면 다시 이주여성 한 명 데려와서 다문화가족 안에 데려다놓고요. 그럼 나는 뭔가요. 나는 다문화가족의 평화를 위한 희생양인 건가요?” - 87쪽 “저는 제 이름 ○○○으로 살고 싶어요. 근데 다문화가족이란 이름으로 저를 누군가의 며느리, 부인, 엄마일 때만 지원하는 거잖아요. 제가 만약 그 위치를 벗어나면요. 저는 아무것도 지원받을 수 없어요. 저는 그냥 저로 살고 싶어요.” - 93~95쪽 “저는 이 자리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옥천 주민의 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지, 어떻게 하면 해결될 수 있는지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이기 전에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 100쪽 차례 Bắt đầu_ Vũ Thị Thanh Hoa sống ở huyện Okchoen 들어가며_ 옥천에 살고 있는 ‘부티탄화’ 간절한 마음으로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만, 잘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의 질서 낯선 공간, 낯선 향기, 낯선 언어, 낯선 시선 한국에선 한국법만 따르라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는 사람? 내가 내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나의 정체성(나라, 피부색, 종교)을 비하하지 마세요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 오늘도 공원 한 바퀴 얼마 주면 돌아오니? 친구 없었으면 미쳤을 거예요 112 신고해도 소용없어요 아이 없이 못 살아요, 이대로도 못 살아요 사랑하는 나의 아기, 내 마음 알고 있니? ‘나’로 살기 위한 싸움 우리들의 사이버마을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는 용기 하나의 힘으로 뭉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첫’ 기자회견 이주공동체를 꿈꾸며 잘 살고 싶습니다, 지금 여기서 이주여성이 살고 싶은 ‘공간과 관계’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 부티탄화 회장 인터뷰 우리, 여기서 ‘일’하고 있어요 외국인노동자 A씨 인터뷰 나가며_ 용감한 나의 언니들에게 <어딘가에는 @ 있다> 시리즈 소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처음 듣는 지명, 낯선 사람, 생소한 사물 들이 등장해도 놀라지 마세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이미 알던 것도 새롭게 보일 테니까요. 어쩌면 평소 접하지 못하고 또 그냥 지나치기 쉬운 사연들 속에 지금 내가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이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강원도 고성의 온다프레스, 충북 옥천의 포도밭출판사, 대전의 이유출판, 전남 순천의 열매하나, 경남 통영의 남해의봄날. 다섯 출판사에서 모은 반짝이는 기록들을 소개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어딘가에는’ 책들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보도자료 다운 받기
- 국가 없는 사회 | 포도밭출판사
2014-08-15 출간 | 원제 At The Cafe: Conversations on Anarchism | 정가 12,000원 | 반양장본 | 176쪽 | 137*210mm | ISBN : 9791195277025 국가 없는 사회 카페에서 만난 어느 아나키스트와의 대화 지은이: 에리코 말라테스타 옮긴이: 하승우 책소개 지금처럼 국가 혹은 정부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가 가득한 때에, 우리가 바라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실천적인 비전을 담고 있다. 1897년부터 1920년까지, 23년에 걸쳐 이탈리아 아나키스트인 에리코 말라테스타가 수배와 구속을 거듭 겪으며 집필한 원고들로,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씌어졌으며, 국가폭력의 본질을 고발하며 국가 없는 사회 구상의 비전을 그려낸다. 이 책의 집필 목적은 분명하다. 인민이 스스로 힘을 기르고, 생활의 수단을 가지고, 사회를 구성하자는 점을 설득하고 그러한 운동을 선전하기 위해서다. 이 목적을 위해 읽기 쉬운 대화 형식으로 글을 썼고, 다양한 입장을 대변하면서 아나키스트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자 치안판사, 부르주아지, 노동자, 자영업자, 공화주의자, 대학생, 군인 등을 대화 상대로 등장시켜 말을 시키고 있다. 보도자료 지금 근원적으로 되풀이되는 물음, 국가란 무엇인가 한 세기 전의 한 아나키스트가 일깨우는 통렬한 비전 아나키즘 정치 이론에 중대한 공헌을 한 역사적 문헌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23년에 걸쳐 씌어진 대화 아나키스트 조르조가 어느 모퉁이 카페에서 열일곱 밤에 걸쳐 다양한 인물들과 어울려 나누는 국가와 사회에 관한 거침없는 논쟁 “자본주의와 중앙집권화된 국가가 미치는 폭력의 정점에 사는 우리에게 이 책은 무엇이 사회의 근본인지를 잘 보여준다” 【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정부와 국가의 역할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시민들의 촛불집회 현장에서 “국가가 책임져라”, “누구의 정부인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글귀를 종종 접한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이 질문을 먼저 풀어야 했던 과거 한 아나키스트 선배의 이야기이다. 외국의 이야기로만 들을 수 없다. 봉건제도와 외세에 맞서 농민들이 무기를 들었던 갑오년이 120년을 돌아 지금 우리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당시 무장봉기했던 동학 농민군의 고민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을까? 우리는 당시의 농민들보다 더 나은 삶, 더 좋은 삶을 살고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여기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을 헛되이 되풀이하지 않는다. 인민의 삶을,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을, 그것을 구성하고 운영할 방법을 근원적으로 고민하게 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만들 수단을 가진 사회’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 『국가 없는 사회』(영어판 『At the Cafe: Conversation on Anarchism』, 2005)는 지금처럼 국가 혹은 정부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가 가득한 때에, 우리가 바라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실천적인 비전을 담고 있다. 이 책은 1897년부터 1920년까지, 23년에 걸쳐 이탈리아 아나키스트인 에리코 말라테스타가 수배와 구속을 거듭 겪으며 집필한 원고들로,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씌어졌으며, 국가폭력의 본질을 고발하며 국가 없는 사회 구상의 비전을 그려낸다. 이 책의 집필 목적은 분명하다. 인민이 스스로 힘을 기르고, 생활의 수단을 가지고, 사회를 구성하자는 점을 설득하고 그러한 운동을 선전하기 위해서다. 이 목적을 위해 읽기 쉬운 대화 형식으로 글을 썼고, 다양한 입장을 대변하면서 아나키스트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자 치안판사, 부르주아지, 노동자, 자영업자, 공화주의자, 대학생, 군인 등을 대화 상대로 등장시켜 말을 시키고 있다. - 에리코 말라테스타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그는 일찍이 학교를 떠나 혁명가의 길을 걸었고 여러 차례 감옥살이를 했으며, 무장봉기를 이끈 지도자, 총파업을 꿈꾸며 인민을 조직한 활동가이면서 평생 일을 멈추지 않은 노동자였다. 바쿠닌, 크로포트킨, 엠마 골드만과 함께 아나키즘 운동을 이끌었고, 사상과 행동, 설교와 실천이 일치하는 혁명가이자 상냥하고 따뜻한 심성의 인간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창 아나키즘 선전과 조직화가 왕성할 당시에는 ‘이탈리아의 레닌’(말라테스타는 자신은 결코 지배자, 폭군이 아니라며 그러한 표현을 거부했다)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이 짧은 책에는 그의 뜨겁고 치열하던 생애가 잘 녹아들어 있다. 말라테스타는 숱한 구속과 수배 생활에도 불구하고 삶의 노선이 굳건했다. 다름 아니라 국가 혹은 정부 권력을 바꾸는 혁명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치받는 욕구들이 자기 힘으로 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원리가 그의 노선이었다. 그리고 그 노선을 평생 일관된 목소리로 선전하고 조직 활동에서 실천했다. 그러한 하나의 사례가 바로 이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1897년에 쓰기 시작해, 구속과 수배 및 역사적인 사건들 때문에 중간중간 단절을 겪으며 1920년에야 현재의 구성으로 마무리되었으니 무려 23년 간 집필된 셈이다(그러던 사이 틈틈히 토막 원고들을 자신이 편집하는 잡지나 신문에 싣곤 했다). 앞서 적었듯, 말라테스타는 일생을 쉬지 않는 노동자로 일하면서 동시에 혁명가로 살았다. 크로포트킨과 만났을 때도 말라테스타는 어느 가게 벽에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하러 망치를 들고 사다리 위에 올라가 있었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생애는 그의 글과 활동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 분명하다. 말라테스타는 공허하고 추상적인 단어, 배운 척하는 어려운 단어나 인용구는 피하고 언제나 명확한 표현만을 사용하고자 했다. - ‘국가 없는 사회’라는 비전을 두고 우리가 논쟁을 시작한다면 어떤 대화들이 가능할까. 말라테스타는 이 책에서 우리를 그러한 논쟁으로 한껏 끌어당긴다. 이 책 속에서는 치안판사, 부르주아지, 노동자, 자영업자, 공화주의자, 대학생, 군인 등이 등장해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웅변하고 서로 논쟁한다. 여기서 치고받는 ‘질문’들이 지금의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과 행동을 기획할 지점들을 비춰준다. 최근 경찰과 국가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이 문제가 어디서 비롯되는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한 데 오히려 한 세기 전의 인물들이 나눈 대화와 통찰들에서 우리는 지금의 문제의 핵심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원고는 ‘가상 대담’ 형식으로 씌어졌는데, 사실 당시 카페 등에서 실제 벌인 토론의 기록이리라 짐작할 수 있다. 말라테스타는 원고를 집필하던 시기에 사람들과 격렬한 토론을 벌이다 다리에 총상을 입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 대화로 짐작하는 또다른 이유는, 말라테스타가 언제나 감시를 받던 신분임에도 자주 카페에 나와 토론을 이끌었다는 점이다. 그는 바라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방법은 끊임없이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과 대화하고 설득하여 뜻을 모으는 방법뿐이라고 굳게 믿은 혁명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옮긴이의 표현대로 말라테스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인민 속으로 파고든 선동가’라고 할 수 있다. - 이 책은 아나키즘 사회, 그리고 ‘자유로운 공산주의’라고도 표현하는 사회 구상을 목표로 삼는다. 책에서도 등장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한 가장 일차적인 반발은 무정부 사회의 무질서 상태를 어떻게 통제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말라테스타가 말하는 비전은 ‘자유로부터 질서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중앙집권화된 국가로 인한 사회 폭력의 정점에 사는 우리에게 이 책은 무엇이 사회의 근본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렇기에 근본적인 전환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좋은 참고점들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로 이 책은 새롭게 시작하는 사회 구상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도록, 그것이 옳고도 가능하다는 점을 믿을 수 있게 해준다. 아나키즘에 궁금증을 가지거나 아나키즘에 회의를 품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문헌이다. 차례 영어판 서문 23년에 걸친 대화로 완성한 위대한 팸플릿 5 첫 번째 대화 사회의 악은 왜 생기나 16 두 번째 대화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나 23 세 번째 대화 우리는 왜 가난한가 32 네 번째 대화 가진 자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39 다섯 번째 대화 소유란 무엇인가 49 여섯 번째 대화 누가 소유를 독점하나 57 일곱 번째 대화 자유로운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65 여덟 번째 대화 정부가 인민을 대변할 수 있나 77 아홉 번째 대화 자유로운 결사란 무엇인가 85 열 번째 대화 가족은 자유로운가 93 열한 번째 대화 범죄자의 자유도 존중되나 103 열두 번째 대화 혁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110 열세 번째 대화 인민의 의지가 대변될 수 있나 116 열네 번째 대화 정부 없이 혁명이 가능한가 123 열다섯 번째 대화 경찰은 왜 폭력적인가 130 열여섯 번째 대화 애국심은 왜 보수적인가 141 열일곱 번째 대화 누가 평화로운 변화를 가로막는가 151 옮긴이 후기 에리코 말라테스타, 인민 속으로 파고든 선동가 162 에리코 말라테스타 연보 170 저자 소개 에리코 말라테스타 (Errico Malatesta) 이탈리아 아나키스트. 일찍이 학교를 떠나 혁명가의 길을 걸었고 여러 차례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인민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평생 일을 멈추지 않은 노동자이자 무장봉기를 이끈 지도자, 총파업을 꿈꾸며 인민을 조직한 활동가였다. 바쿠닌, 크로포트킨, 엠마 골드만과 함께 아나키즘 운동을 이끌다 파시스트의 탄압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다. 사상과 행동, 설교와 실천이 일치하는 혁명가이자 상냥하고 따뜻한 심성의 인간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문과 잡지, 팸플릿 등 출판을 통한 선전에도 힘을 쏟았으며, 잡지 「선동L’Agitazione」, 「생각과 의지Pensiero e Volonta」와 최초의 아나키스트 신문 「신인류Umanita Nova」 등의 발행을 주도했다. 팸플릿 『아나키Anarchy』와 『카페에서Al caffe』를 출간했다. 옮긴이 하승우 녹색당 정책위원장, 더 이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역 권력을 바꾸는 일에 관심이 많고, 집요하게 자료를 뒤지는 일이 취미다. 《시민에게 권력을》 《껍데기 민주주의》 《민주주의에 반하다》 등을 썼고, 《국가 없는 사회》 등을 번역했다.
- 먼지의 말 | 포도밭출판사
지은이: 채효정 ISBN: 979-11-88501-22-9 (03300) 출간일: 2021년 9월 17일 정가: 16,000원 제본: 무선 쪽수: 272쪽 판형: 130×210mm 분야: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한국사회비평/칼럼 먼지의 말 지은이 : 채효정 책 소개 정치학자 채효정, 먼지로서 먼지에게 쓰다 이 책은 정치학자 채효정이 2018년부터 2020년 사이에 주로 페이스북에 쓴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채효정은 ‘마음이 견디지 못해, 가슴에서 돌멩이 하나를 빼내듯이’ 썼다고 말한다. 슬픔으로 쓴 글이 있고, 분노로 쓴 글이 있고, 함께 웃기 위해 쓴 글이 있다. 먼지로서 먼지에게 쓴 글들이다. 먼지란 ‘없지 않은 존재’를 일컫는다. 먼지는 ‘도래할 주체’들의 태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먼지의 말』은 없지 않은 존재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보도자료 2015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사 채효정은 학교로부터 이메일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이후 채효정은 부당한 해고에 항의하며 잔디밭에서 강의를 이어갔다. 나는 2016년 12월 겨울날, 그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마음으로 잔디밭 강의의 청강생이 되고자 그의 강의실(경희대학교 노천극장, 대운동장, 잔디밭 등지에서 강의가 이뤄졌다)을 찾아갔다. 추운 날이었지만 나와 같은 청강생이 제법 있었다. 채효정은 털장갑을 끼고, 털모자를 눌러 쓰고, 확성기를 얼굴에 바싹 붙이고 소리를 높여 강의했다. 그는 우리의 ‘빼앗긴 말’들을 주제로 강의했다. 2019년 소위 ‘조국 사태’ 초반에, 평소 정치사회 문제에 자주 의견을 내던 사람들도 왠지 말을 아꼈다. 신중함은 보통은 미덕이지만 이때의 신중함에는 껄끄러운 점이 있었다. 그들은 지켜보자고 했고, 조국을 아주 옹호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아직은 판단을 유보할 때라고도 했다. 나는 그 상황을 지켜보기가 매우 답답했고 어느 지점에서는 몸서리가 쳐졌다. 그때 내가 찾아 읽던 글 중에서 단연 선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며 조국 사태가 주는 무참함을 말하고, 조국 옹호 세력을 비판하는 글을 쓰던 사람이 채효정이었다. 중국의 탄압에 맞서며 홍콩 이공대에서 투쟁이 일어났을 때, 이공대에게 벌어지는 일을 상세히 보도하는 채널은 드물었다. 채효정은 역시 날마다 긴 글로 투쟁의 안팎을 전했고, 연대의 필요성을 일깨웠고, 당장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알려주었다. 돼지 ‘살처분’이 벌어질 때, 나는 여러 가지 입장들을 읽었다. 방역의 입장, 축산 농가의 입장, 산업의 입장… 돼지의 비명 소리가 꿈에서 들리는 괴로움 속에서도, 나는 내가 미처 다 알지 못하는 어떠한 ‘입장’들을 생각했다. 그때 채효정이 돼지의 입장을 써주었다. 나는 내가 돼지라는 걸 깨달았다. 돼지의 입장이 내 입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돼지인데, 누구의 입장을 걱정한단 말인가. 삼성 해고자 김용희를, 영남대의료원 해고자 박문진, 송영숙을 알리는 사람이 채효정이었다. 제주 청년 노민규의 제주 제2공항 반대 단식시위를, 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시위를, 경동 도시가스 가스 안전 점검원들의 시위를 알리는 사람이 채효정이었다. 나는 채효정의 글을 읽으며 훅 하고 숨통이 트이는 경험을 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채효정의 글을 읽고서야 푹 하고 비로소 숨이 쉬어지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채효정이 아무런 계획 없이 그저 ‘마음이 견디지 못해, 가슴에서 돌멩이 하나 빼내듯이’ 썼다는 이 글들을 페이스북에서 찾아 그러모았다. 처음에 200여 편을 모았는데, 그중 82편을 추렸다. 『먼지의 말』은 정치학자 채효정이 2018년부터 2020년 사이에 주로 페이스북에 쓴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슬픔으로 쓴 글이 있고, 분노로 쓴 글이 있고, 함께 웃기 위해 쓴 글이 있다. 채효정은 먼지로서 먼지에게 이 글들을 썼다. ‘먼지’는 무엇을 일컫는 말인가. 먼지는 ‘없지 않은 존재’이다. 그리고 먼지는 ‘도래할 주체’들의 태명 같은 것이다. 채효정은 서문 「왜 쓰는가」에서 왜 이 글들을 썼는지 돌아본다. 그는 무척 무거운 마음으로 자신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를 살펴본다. 쓸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한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무겁고 두려운 마음이지만, 간절했기에 썼다고 밝힌다. “여기 적힌 간절한 말들이 간절한 사람들에게 닿기를, 필요한 이들에게 필요한 말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전한다. 이 책에서 듣게 될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알려드린다. 목소리의 주인공이라 하면 인간만 떠올리기 십상인데, 이 목록에는 아래와 같이 물건도 있고 건물도 있고 동식물도 있다. 이들에게도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류센터 노동자 / 아파트 외벽 도색 노동자 / 돌봄 노동자 / 남극 세종기지 / 바이러스 / 빙하 / 녹색당 / 벌레 / 땅 / 나무 / 고양이 / 뱀 / 택배 노동자 / '근로자 A씨' / 이주 노동자 / 화재로 숨진 망원동 쌍둥이 형제 / 탄소 / 배달 노동자 / 간호사 / 콜센터 노동자 / 코로나 / 학생 / 비정규직 노동자 / 김용희 / 김용균 / 블루베리 / 간병인 / 청도 대남병원 / 김선일 / 김정희 / 하청 노동자 / 청소년 / 딜란 크루스 / 홍콩 이공대 시위대 / 자살자 / 광주 / 노민규 / 마을 / 안전로프 / 프롤레타리아 / 먼지 / 마트 노동자 / 쪽방촌 김씨 / 톨게이트 투쟁 노동자 / 돼지 / 박문진 / 송영숙 / 화물 트럭 노동자 / 할머니 / 청소 노동자 / 해고 강사 / 4월 16일 / 개 / 노란 조끼 등등. 지은이 소개 채효정 정치학자.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해직강사로 대학의 기업화와 비민주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수요집회와 잔디밭 강의 등 학내투쟁과 강사투쟁을 했고 그 경험을 기록하여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를 펴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이자 발행지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으로 잘못된 교육 시스템과 한국 사회 문제를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글을 꾸준히 써왔다. 2018년부터 월간 『워커스』에 노동, 정치, 교육, 돌봄, 기후위기 등 다양한 현안에 섬세한 고민과 물음을 던지며 ‘워커스 사전’을 연재하고 있다. 함께 쓴 책으로 『능력주의와 불평등』,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상상하라 다른 교육』, 『교육 불가능의 시대』 등이 있다. 현재 강원도 인제에서 글 노동자, 들 노동자로 산다. 지배하는 이들이 아니라 지배당하는 이들, 저항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연구자이자 함께 싸우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책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 “나는 이 세계에 지분이 없다.” - 「딜란 크루스」, 122쪽 ‘근로자’ 1명 이름은 ‘A씨’ ‘끝내 숨져’ 이름 없는 노동자가 혼자 작업하다 사고를 당하고 끝내 숨졌다는 소식 이 소식은 왜 날짜와 장소만 바뀐 채 늘 똑같은 문장으로 전송되는가 - 「근로자 1명 끝내 숨져」, 59쪽 ‘죽음의 외주화’란 그 말이다. 죽어라, 내가 안 보는 곳에서.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는다. 너의 불행한 죽음에 대해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게 사회의 도덕률이 되어버렸다. 안 보이는 곳에서 죽도록 일하고 안 보이는 곳에서 죽어라. - 「죽어라, 내가 안 보는 곳에서」, 254쪽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은 144명) 이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 「조용히」, 151쪽 “나쁜 짓을 안 하믄…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큰 돈을 모은대?” - 「민도」, 208쪽 질문은 ‘10년 후에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였다. 한 사람은 ‘먼지’라고 대답했다. 먼지… 갑자기 가슴이 쿵하면서 머리가 멍해졌다. “먼지라고요? 이 질문을 한 이후로 이렇게 시적인 대답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하니까 씩 웃는데, 그 웃는 모습이 참 좋았다. 다행히도. 친구들이 옆에서 “아, 뭐래” 하고 퉁을 줘도 의연하게 “왜 먼지가 어때서?”라고 되물었다. “너희들은 먼지가 안 될 것 같냐?”라고 하면서. 또 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있을 것 같다고 했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라니… 또 친구들은 옆에서 우와 그게 말이 되냐고 웃으면서 떠든다. - 「먼지의 말」, 156쪽 추석 연휴 전날 체불 임금을 받기 위해 한 노동자가 아파트 옥상 위로 올라갔다. 거의 완공된 아파트는 외벽 도색을 앞두고 있다. 하얗게 밑칠을 마친 외벽을 타고 내려오며 로프에 매달린 노동자는 한 자씩 글자를 써내려갔다 제 몸보다 큰 붉은 글씨를 한 자 한 자 읽어본다. 사 기 꾼 시 공 업 (체) 시 행 사 는 더 사 기 꾼 노 임 주 라 개 자 식 그는 로프를 알고, 칠을 아는 사람 추석 연휴 전날까지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는 자신이 쓸 수 있는 유일한 공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저 말을 쓰고 내려와 경찰에 ‘입건’되었다. - 「임금 주라」, 26쪽 숙련 택배 노동자의 한달 평균 택배 물량은 7,000~8,000개 지난 3개월간 10년차 택배기사인 정씨가 배송한 택배 상자는, 2월에 9,960개 3월에는 1만 1330개 4월에는 1만 288개 오전 6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휴식시간도 없이 하루 15시간 중노동 근무 어린이날 앞두고, 심정지로 돌연사 - 「돌연사」, 58쪽 “우리는 당신들이 미처 죽이지 못한 노동자의 자식들이다.” -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125쪽 숫자, 순위, 평균, 생략으로 ‘노동자의 삶’과 ‘노동의 현실’을 전하는, 뉴스. 그런데 그렇게 해도 너무나 끔찍한, 뉴스. - 「3,400명」, 184쪽 “싸움은 물러설 수 없는 곳에서 하는 것 같아요.” - 「물러설 수 없는 자리」, 258쪽 도살된 4,700여 마리의 돼지. 해고된 1,500여 명의 톨게이트 노동자. 24년 동안 사회적 죽임을 당한 채로 살아있는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올 1학기 해고당한 대학 강사는 7,834명. 그 외에도 또 어디서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삶의 벼랑 끝에서 떠밀려 내던져졌는지 모른다. 그 속에 나도 있다. ‘최소 비용, 최대 이익’을 위해 산 채로 매장되는 존재들. 살처분이나 해고나 생매장이긴 마찬가지다. 어느 날 홀연히 자기가 살던 사회에서 쫓겨나 산 채로 어둠 속에 사라진다. 존재를 부정당한 그 구덩이에서 기어 나오려고 날마다 안간힘을 쓴다. - 「돼지들이 죽던 날」, 201쪽 안전로프(구명줄)가 없었다. 엊그제 유리창 외벽 청소 중에 추락 사망한 노동자. 안전로프가 없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건 떨어지면 끝이라는 것. 누군가의 사랑하는 사람이고 누군가의 소중한 이였을 사람 누군가의 안전로프가 되었을 사람.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을 고용한 자기 자신의 사장님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조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왜 안전로프가 없었는지, 그걸 물어봐야만 하는데. - 「안전로프 없는 사회」, 148~149쪽 “거기서 잘렸으니, 거기로 돌아가야죠….” - 「물러설 수 없는 자리」, 258쪽 차례 서문_ 왜 쓰는가 이상한 점 죽었다 아니 죽였다 임금 주라 취향의 정치와 혐오의 정치 돌봄노동과 기후위기 에코 포르노그래피 자본주의에 반대하지 않는 그린 뉴딜이라니 수업료 땅 선생님과 나무 선생님 뉴딜의 한계 작은 평화 밭에서 돌연사 근로자 1명 끝내 숨져 산재는 막지 못한다고 우리들의 죽음 그린 뉴딜, 좋은 포장지 나중에 이윤보다 생명을 위기 이후 조용한 독재자 루카스 플랜 이 차이는 어디서 왔는가 그 사람이 점점 투명해진다 땅 병은 가난한 사람들부터 낚아챈다 탈노동 김선일을 기억하라 사람이 죽었다 다시는 로봇은 비싸고, 인간은 싸니까요 2명이 100명을 대표하는 세상 싸우는 청소년들 딜란 크루스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살아있어요 어떤 사람들의 전쟁 폭력에 지지 않는 사람들 성난 목소리 착시현상 ‘모두의 것’을 되찾는 일부터 안전로프 없는 사회 죽음의 사회적 전형 조용히 보이지 않는 사람들 먼지의 말 누가 돈을 가져가는가 힘의 기울기 쪽방촌 김씨 조국 이후 계급의 눈으로 촛불 다음 날 여성을 교환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 3,400명 숨을 못 쉬겠다 천만이 모여도 옳지 않다 노동자 숨져 다들 트라시마코스가 되기로 하였소? 돼지들이 죽던 날 고공으로 올라간다 졸면 죽음 『한겨레』 평기자 성명을 읽으며 민도 식자들 아무도 책임이 없다 역사 부르주아화와 관제 민족주의에 맞서 애국 ‘사라졌다’고 한다 구제 우리가 소멸하지 않겠다면? 강사법과 대학의 미래 원하는 것을 요구하자 4월 16일 밤 나는 후마니타스칼리지 해고 강사다 대학의 죽음 상상 이상의 대학 한 사람 죽어라, 내가 안 보는 곳에서 개를 버리는 방법 물러설 수 없는 자리 인간의 길 2018학년도 신입생 입학식 환영인사 편집자의 말 보도자료 다운 받기
- 오늘날의애니미즘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39-7 (93200) 출간일: 2024년 8월 30일 정가: 23,000원 제본: 무선 쪽수: 356쪽 판형: 145×210mm 분야: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류학/고고학 > 인류학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종교문화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국내도서 > 사회 정치 > 생태/환경 오늘날의 애니미즘 지은이: 오쿠노 카츠미, 시미즈 다카시 옮긴이: 차은정, 김수경 인류학과 불교학의 교차점에서 만나는 애니미즘 인류세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오늘의 사상으로서 애니미즘을 되살리다 폭넓은 경험과 시야를 가진 인류학자와 경이로울 만큼 명석하고 논리적인 불교학자가 서로의 이야기를 감싸며 새로운 존재론의 지평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흔하디흔한 존재로부터 펼쳐지는 장엄한 만다라 인류의 꽉 막힌 진로를 열기 위한 열쇠가 애니미즘에 있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와 보이지 않는 저편 세계는 어떻게 이어져 있을까? 만약 그 사이를 왕래하는 통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경험될까? 곰, 새, 엘크, 개구리, 풀, 나무 같은 다종의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인간은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을까? 인간 아닌 생명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며 무얼 말하고 싶은지, 이를 우리가 섣불리 환원하지 않고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상을 살다 문득 온갖 만물과 이어진 ‘신’을 느끼는 일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지평의 존재론과 연결될 때, 우리 삶과 세계의 흐름에는 어떤 변화가 생겨날까? 인류세의 특징들을 만든 고정된 이원론을 넘어서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시도는 무엇일까? 애니미즘은 우리가 자력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아님을 일깨우며, 우리를 무시무종의 세계로 이끄는 타력의 바람 속으로 안내한다. 그곳에서는 아주 작고 흔한 사물 혹은 생명에서도 저마다의 만다라가 피어난다. 어떤 존재든 영혼을 통해 여러 세계를 왕복 순환하고, 세상 만물은 저마다 독립해 있으면서도 서로를 포섭하며 잇달아 뒤얽힌다. 그렇게 흔하디흔한 존재로부터 장엄한 만다라의 그물망이 펼쳐진다. 인류는 우리 스스로 세계의 진로를 막아버린 과정을 냉철히 돌아보고 이제 막았던 통로를 열어야만 한다. 인류의 꽉 막힌 진로를 열기 위한 열쇠가 애니미즘에 있다. 인류학과 불교학의 교차 왕복하고 포섭하는 이야기들 『오늘날의 애니미즘』의 저자 오쿠노 카츠미는 인류학자이고 시미즈 다카시는 불교학자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은 힘을 합쳐 다양한 소재와 방법을 동원하고, 나아가 사유의 방법론 자체를 새로이 고안하면서 애니미즘이라는 거대한 주제와 씨름한다. 오쿠노 카츠미는 ‘존재론의 전환’이라 불리는 인류학 흐름을 연구하는 일본의 인류학자로서, 존재론의 인류학을 책, 잡지, 웹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왕성한 활동과 실력으로 일본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인류학자다. 시미즈 다카시는 불교학자이며 라이프니츠와 미셸 세르 연구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대승불교의 창시자인 나가르주나, 일본 헤이안 시대의 승려 구카이, 가마쿠라 시대의 승려 도겐 등의 불교 철학 연구에 몰두한다. 수려하고 묵직한 논리 구사로 정평이 난 학자다. 두 사람은 연구 이력도 성격도 상반되는데, 이 책에서는 이 점이 오히려 논의를 더욱 깊고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오쿠노 카츠미는 현장 연구 경험이 풍부한 인류학자답게 홋카이도의 아이누족, 인도네시아의 푸난족, 시베리아의 유카기르족 등의 민족지적 사례를 통해 애니미즘 존재론을 논의한다. 시미즈 다카시는 초기 불교부터 현대 철학에 이르는 사유 전통 속에서 이항대립 사고를 분석하는데, 특히 라이프니츠, 미셸 세르, 브뤼노 라투르, 그레이엄 하먼 등이 전개한 서양 철학을 분석적으로 끌어오는 한편 복수의 이항대립 조합을 사고하기 위해 ‘삼분법’을 제안한다. 삼분법이란 세 종류의 이항대립을 조합하여 그 연결을 변화시킴으로써 그것들의 이원성을 조정한다는 방법론이다. 초기 불교에서부터 이야기된 사구분별(四句分別)을 제4렘마, 혹은 테트랄레마로 해석하면서 초기 불교와 현대 철학의 교차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과 4장은 오쿠노 카츠미가, 2장과 5장은 시미즈 다카시가 썼으며, 3장과 6장에는 두 사람의 대담을 실었다. 오쿠노 카츠미가 애니미즘 존재론에서 왕복순환하는 영혼의 차원을 다룬다면, 시미즈 다카시는 상호포섭하는 세계의 차원을 다룬다. 두 사람이 각자 주목한 차원이 교차하며 애니미즘 지평의 구체성과 추상성은 더욱 풍성해진다. 동아시아 존재론으로서 애니미즘 이제 우리가 질문을 풀어갈 차례 이 책에서 불교 철학은 존재론의 위상을 갖는다. 동아시아의 불교 철학이 서양 철학과 동등한 형이상학의 지위를 갖는다는 뜻이다. 인류학과 불교학의 교차 속에서 새로운 인류학적 이론이 생성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우주론’을 논하기 위한 사상적 토대가 제시된다. 역자 차은정은 이 책이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음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이 책은 인류학과 불교의 만남에서 어떤 앎이 생성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서로를 포섭하고 또 포섭당하며 끝없이 펼쳐지는 또 다른 그물망의 세계다. 생성의 인류학이자 존재론의 불교학이다. 이러한 존재론들을 앞으로 인류학적으로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 이제 우리가 이 질문을 풀어갈 차례다.” 지은이 소개 오쿠노 카츠미 奥野克巳 일본의 인류학자. 1962년 규슈 북서부의 사가현(佐賀県)에서 태어났으며, 1998년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学)에서 「재앙의 설명과 재앙에 대한 대처: 보르네오 섬 카리스 사회에서 정령, 독약, 흑마술(災いの説明と災いへの対処─ボルネオ島カリス社会における精霊, 毒薬, 邪術)」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릿교대학(立教大学) 이문화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학 재학 중 멕시코 원주민 사회를 방문하고, 북아시아, 동남아시아, 멜라네시아, 유럽 등지를 떠돌아다닌 후 방글라데시에서 잠시 승려 생활을 했다. 보르네오 섬의 화전 경작민인 카리스 부족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한 이래 지금까지 카리스 족과 더불어 수렵 채집민인 푸난 족에 관한 현지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는 또한 다자연주의, 다종인류학에 기반한 일본 인류학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며 저술, 번역, 대중 세미나, 잡지 발간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에서 존재론적 인류학을 대표하는 인류학자 중 한 사람이다. 주요 저서로는 『사람과 동물, 흥정의 민족지(人と動物, 駆け引きの民族誌)』(2011), 『고마움도 미안함도 필요 없는 숲의 사람들과 살아가며 인류학자가 생각한 것(ありがとうもごめんなさいもいらない森の民と暮らして人類学者が考えたこと)』(2018), 『사물도 돌도 죽은 자도 살아있는 세계의 사람들에게 인류학자가 배운 것(モノも石も死者も生きている世界の民から人類学者が教わったこと)』(2020) 등이 있다. 시미즈 다카시 清水高志 일본의 불교학자이자 철학자. 1967년 혼슈 중부의 아이치현(愛知県)에서 태어났으며, 2005년 아이치대학(愛知大学)에서 「세르, 창조의 단자: 라이프니츠에서 니시다까지(セール, 創造のモナド─ライプニッツから西田まで)」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도요대학(東洋大学) 종합정보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라이프니츠, 미셸 세르, 브뤼노 라투르 등의 프랑스 철학을 연구했으며 최근에는 대승불교를 확립한 나가르주나(龍樹), 일본 불교의 기틀을 다진 구카이(空海) 등 사상가를 연구하며 불교를 동아시아의 형이상학이자 독자적인 존재론으로서 조명하며 그 논리를 탐구한다. 주요 저서로는 『다가올 사상사: 정보·단자·인문지(来るべき思想史─情報・モナド・人文知』(2009), 『미셸 세르: 보편학에서 행위자 연결망까지(ミシェル・セール─普遍学からアクターネットワークまで)』 (2013), 『밀려드는 실재(実在への殺到)』(2017), 『구카이론/불교론(空海論/仏教論)』(2023) 등이 있다. 옮긴이 소개 차은정 서울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규슈대학 한국연구센터 방문연구원과 히토쓰바시대학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숲은 생각한다』, 『부분적인 연결들』, 『부흥문화론』(공역), 『타자들의 생태학』,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공역),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공역) 등이 있다. 이름 없는 삶의 궤적에 관심을 두고 역사 인류학적 연구를 해왔으며 ‘식민지 조선에 태어나 일본으로 귀환한 일본인의 기억과 삶’에 관한 연구로 박사 논문을 작성했다. 지금은 해방 이후 한국의 생태 운동사를 좇으며 한반도의 생명 사상에 내재한 종교성을 규명하고 있다. 김수경 서울대에서 인류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 대학에서 「무덤의 금기와 경계: 부산 비석문화마을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역사박물관의 서울생활문화 자료조사 『시흥동: 서울 서남부 전통과 현대의 중심』, 파주 중앙도서관의 역사민속문화 기록화 사업 『파주 DMZ의 오래된 미래, 장단』, 『장파리 마을 이야기』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느끼는 다양한 방식들에 관심을 두고 현재는 무덤의 기술과 사자(死者)의 존재론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본문 중에서 애니미즘에는 이쪽과 저쪽 그 어느 쪽도 있을 수 있다는 〈뫼비우스의 띠〉 모양의 연결통로가 있었다. 사람이 곰을 보내주는 의례 속에 곰이 신의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면, 애니미즘이란 단지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보낸 것 자체가 언젠가 다시 돌아와주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32쪽 이와타 케이지는 푸난족(말레이시아 사라왁주 발람 강가에 사는 수렵민)의 한 남자가 바람총을 입에 물고 ‘훗’하고 숨을 불어넣는 모습을 목격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화살이 일직선으로 공중을 날아가 빠른 속도로 과녁에 적중하기를 기대했겠지만, 화살의 종적은 묘연한 채 작은 새가 파닥거리며 땅에 떨어졌다. 이를 본 이와타는 화살이 날아가 탁 하고 작은 새가 떨어진 인과율의 한순간이 아니라 그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42~44쪽 연결통로의 안쪽에는 무인과적 연결의 원리로 성립되는 동시 또는 무시의 기이한 시간이 묻혀 있다. 샤먼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우연한 계기에 그것을 엿보거나 경험한다. 애니미즘이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안팎의 구별이 없는 하나로 이어진 공간상의 무한루프일 뿐만 아니라 저쪽 어딘가에 동시 또는 무시가 잠재해 있다. 그리고 그 연결통로의 어디쯤에서 사람은 느닷없이 충격적인 형태로 신과 만난다. -52쪽 그[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이렇듯 어느 한 이항대립을 우선 상정하고 사태를 그 양극의 어느 쪽으로도 결코 환원하는 일 없이, 그 위에 다양한 이항대립을 조합함으로써 그것들의 대립을 조정하거나 변환한다는 사고는 인류 보편적인 것이다. -64쪽 여러 대립 이항, 예를 들어 인간과 자연, 주체와 대상 등을 분리해서 사고하거나 혹은 그것들의 상호작용이 불가분해서 각각을 독립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한쪽을 다른 한쪽으로 환원하거나 여하간 그것이 오로지 인간과 자연의 문제로만 고찰된다면 우리는 어디까지나 이원론적으로밖에 사물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리고 애당초 그러한 주제를 단독으로 다루고자 할 때 이미 실제로는 별개의 대립 이항까지 얽혀들어 작용하고 있다. -66~67쪽 ‘과학의 대상을 관계짓고 서술하는 주체가 처음부터 그 주체와 분리된 것으로 존재하는 대상에 관한 지식을 얻어가는 것이 과학’이라는 근대인의 사고는 사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주체와 대상, 하나와 여럿의 복잡한 교착 관계를 은폐하고 있으며 실태와는 크게 동떨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77쪽 나는 여기서 세 개의 이원성(이항대립)을 논했는데, 그것들을 모두 조합하면 확실히 일즉다 다즉일의 세계관으로 알려진 화엄불교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느껴집니다. 겉보기에 전혀 다른 영역인 과학 및 기술 분야에서 라투르가 분석한 것은 작금에 다다른 과학의 상황론이지만, 세르가 말하듯이 여러 학문이 서로 ‘그물망’ 모양의 총체를 이룬다면 그것 또한 일즉다 다즉일의 세계입니다. -109쪽 오쿠노 씨가 인용한 마츠오 바쇼의 ‘개구리와 파문’ 이야기인데요, 이것도 참 좋은 비유입니다. 시간이 멈추고 공간이 나타나고, 그 공간에 구멍이 있어 그곳으로 시간이 스며든다. 시간이 스며든다는 것은 순환한다는 것이지요. 동시성이 있으면서 순환이 있다는 것. 이것들이 교차하는 세계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적 사건 모두 마침내 테트랄레마의 세계로 변해간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141쪽 예를 들어 보르네오의 이반(Iban)족은 절구와 절굿공이를 사용해 매일 아침 쌀을 찧어 정미합니다. 사실 그 절구는 바닥에 일종의 장치가 있어 악기가 되기도 하는데, 그들에게는 그 소리를 듣는 것이 생활의 구심력이 됩니다. 벼의 신도 그 소리를 기뻐하며 구름이나 빗물이 되어 다시 논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쌀을 먹는 것인지 쌀에 먹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도 했지만, 그러한 시작도 끝도 없는 세계는 또한 순환의 세계이기도 해서 그것을 매개하는 것이 정미(精米) 소리라는 것이지요. 거기에 사람들과 그 하루하루의 삶이 있습니다. -145쪽 이와타는 수수께끼 같은 그림을 즐겨 그렸습니다. 수묵화풍의 감귤이 다섯 개 그려진 그림이 나오는데요, 보통 여백은 그림의 하얀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와타는 그림에서 감귤을 오려내면 뻥 뚫린 구멍이 생기고, 그 잘려나간 부분 이외는 전부 여백이라고 합니다. 하얀 부분은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누구라도 평면에서 감귤과 그 옆의 공간을 이항적으로 파악한 평면적 시각에서 하얀 부분을 여백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것을 포섭하는 삼차원의 공간이 있어서 거기에도 감귤이 아닌 부분, 즉 여백이 있다. 전부 연속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게 참 재미있는 사례 같아요. -153~154쪽 애니미즘이란 자신과 자신의 주변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를 항상 열어두는 것이다. 즉, 우리가 사물과 생명에 주의를 기울이면 사물과 생명 그리고 세계로부터의 작용에 응할 수 있는 기제가 작동한다. “거대한 ‘타력’을 느끼면서 ‘자력’을 잊지 않는 것, 이렇듯 자유롭고 활기 넘치는 사상으로서 ‘타력’을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여기서 말하는 애니미즘이다. -185~186쪽 이항대립들 사이의 이러한 조합 조작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20세기 후반 인류학계와 철학계를 휩쓴 포스트모던 논의가 어떠했는지를 상기해보면 역으로 한층 더 명확해질 것이다. 서양적 주체와 그 문명, 그와 대비된 외부적 타자라는 이원론적 가치관을 상대화하는 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에 다양한 형태로 주창되었는데, 이것은 이미 복수의 이항대립—‘주체/대상’, ‘안/밖’(피포섭과 포섭)—이 무분별하게 결부되는 양상을 보였다. -222쪽 [포스트모던의 상대주의는] 복수의 이항대립 조작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소 빗나간 서양문명 비판이 행해졌고, 비서양의 문명적 뿌리를 가진 우리까지 그러한 시선에서 서양문명의 상대화를 목표로 할 수밖에 없어서 우리 스스로 문명의 독자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225쪽 애니미즘 사상이란 이 세계 자체에 대한 응답이며 부름이기도 한, 표현과 함께 경험되는 다양한 정념과 진배없다. -248쪽 통일된 주체를 획득하기 위해 ‘주체/대상’의 이원론에서 끝까지 대상을 부정하려는 것 혹은 ‘이마고’의 매혹에 끝없이 유인되는 것은 애니미즘의 세계관으로 보면 속임수에 속아서 포획되는 사냥감의 심성이다. 즉, 근대인이라는 의미에서 주체적이고자 하는 것은 유카기르족에서는 오히려 동물인 것, 포획물인 것, 그저 고기인 것이다. -256쪽 결국 나 자신이 삼분법으로 사고하게 된 것은 인류가 정말로 보편적으로 사고해온 문제의 가장 근저에 있는 것은 세계의 다양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 지역에는 한정된 하나의 생활방식이 있고, 잠시 잠깐이라도 그것과 모순되지 않는 형태로 풍부한 다양성이 있다는 것. 이것이 인류에게 가장 큰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애니미즘의 근저에 있는 사고방식이 아닐까요? -282쪽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최초의 근본적인 이원론, 즉 하나와 여럿의 이항대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돌아가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느 한쪽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양극이 양극을 서로 포섭하는 모델을 생각해야 합니다. -284~285쪽 차례 들어가며 1장 애니미즘, 무한의 왕복 순환과 붕괴하는 벽 2장 삼분법, 선, 애니미즘 3장 대담Ⅰ 4장 타력론의 애니미즘 5장 애니미즘 원론—‘상의성’과 정념의 철학 6장 대담Ⅱ 나오며 역자 후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보도자료 파일
- 책 만들기 책 (개정판) | 포도밭출판사
2018-10-17 출간 | 정가 17,000원 | 무선 | 120쪽 | 170*240mm | ISBN 979-11-88501-05-2(13580) 샘플 원고 다운로드 책 만들기 책 개정판 지은이: 최진규, 김민희 보도자료 실패 없이 차근차근! 쉽고 정확한 안내로 종이책부터 전자책까지! 책을 디자인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어도비(adobe)사의 인디자인(indesign)인데요. 기존에 인디자인 교재가 많이 나와 있지만, 인디자인의 수많은 기능이 빼곡히 망라된 책은 아무래도 초심자로서는 살펴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책 만들기 책>은 인디자인의 많은 도구와 기능 중에서 핵심적인 것을 간추려서 소개합니다. 뿐만 아니라 복잡한 편집 디자인 작업에서 생기기 쉬운 실수나 작업상의 오류를 줄일 수 있는, 바람직한 작업 과정에 따라 기능들을 소개합니다. 실패하는 일 없이 쉽고 정확하게 작업물을 완성하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개정판 소개 <책 만들기 책> 초판을 낸 뒤 인디자인 강의를 섭외받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덕분에 많은 지역을 다니며 여러 분들을 만났어요. 인디자인을 처음 접하는 분, 인디자인으로 간단한 사진 앨범 등을 만들어본 분, 인디자인은 안 해봤지만 포토숍이나 일러스트레이터에는 익숙한 분 등 다양한 분들을 만나며 책에서 보완하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점들이 있었습니다. 개정판에서는 강의 경험을 토대로 보다 정확한 설명을 적었습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는 작업 설명이 부족하거나 애매한 곳들을 손봤고요. 이에 더해 특별히 세 가지 부분에서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1. 전자책 편 전면 개정 <책 만들기 책> 1쇄 말미에 전자책 만들기 내용을 담았는데, 아주 간단한 전자책 제작에는 유용했으나 스타일시트로 서체를 적용하는 등의 기능 및 완성한 전자책을 유통하는 방법 같은 소개가 없어서 아쉽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개정판에서는 전자책 편 집필을 위해 공동필자 분을 모셨습니다. <시작은 전자책>이라는 타이틀로 전자책 입문서를 출간한 김민희 님입니다. 김민희 님 덕분에 전자책 편 내용이 두 배로 알차졌어요! 2. 설명 화면 : CS6 → CC 기존 1쇄에서는 튜토리얼 이미지(작업 설명 화면)가 CS6 버전의 화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인디자인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분들은 대부분 CC 버전으로 시작하시지요. 그래서 <책 만들기 책> 개정판에서는 튜토리얼 이미지를 모두 CC 버전으로 수정했습니다. CC 버전을 사용하시는 분들은 훨씬 보시기 편하겠지요? (참고로, 버전이 바뀌면서 설명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 기존 CS6 이하 버전을 쓰시더라도 책 활용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3. GREP 활용법 추가 작업하다 보면 간혹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 문단 끝줄에 한 글자가 딱 보기 안 좋게 넘치는 경우를 한번에 정리할 수 없을까. - 각주가 많이 달린 원고인데, 각주 첨자 스타일을 일괄 조정할 수 없을까. - 영문 병기, 한자 병기 단어들의 스타일을 본문과 다르게 조정하는 쉬운 방법 없을까. - 한글 문서 프로그램에서 작성한 원고에 이탤릭체, 볼드체 등을 표시했는데 인디자인으로 '가져오기'한 후 빠짐없이 표시를 되살리는 방법은 무얼까. 등등. 이런 내용들은 어쩌면 입문 수준 이상일 수 있어서 초판에는 넣지 않았는데, 문의를 받는 일이 종종 있어서 개정판에는 위와 같은 작업을 쉽게 하는 방법을 실었습니다. GREP을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분량이 있는 책을 만드시는 분들에게 유용한 팁이 될 거예요! 차례 서문 시작하기 전에 step 1_ 얇은 책(중철제본) step 2_ 두꺼운 책(무선제본) step 3_ 리플릿 / 웹자보 step 4_ 전자책 지은이 소개 최진규 충북 옥천에서 포도밭출판사를 운영하고 책을 펴낸다. 편집자로 출판일을 시작했고, 책 디자인을 같이한 지는 6년째다. 땡땡책협동조합에서 조합원으로 활동하며 출판물 및 웹사이트 디자인을 협업하고, 인디자인 배움 강좌를 진행한다. 지은 책으로 『출판, 노동, 목소리』(공저)가 있다. 김민희 잠 자고 남는 시간에 책 만드는 자유 일꾼. ‘유머는 여자의 무기’를 모토로 여성 코미디언의 에세이를 코믹 릴리프 시리즈로 펴내고 있다. 옮기고 만든 책으로 『미란다처럼』 『예스 플리즈』가 있고 지은 책으로는 『시작은 전자책』(전자책)이 있다. 잡기술 익히기를 좋아해서 뭐든 몸으로 직접 때우다 보니 전자책도 만들게 되었고, 가끔씩 강의도 하고 있다. 땡땡책협동조합 조합원이 된 후 책과 사람 사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며, 브런치에서 위클리 매거진 ‘이것도 출판이라고’를 연재했다. 브런치 : https://brunch.co.kr/@ brunch8m3s 한정수량 사은품 <핵심 과정 한눈에 보기> 크기 : 340×240mm 작업하다 보면 간혹 저조차도 정확한 방법을 확인하기 위해 책을 다시 펼칠 때가 있습니다. 아래한글 프로그램 문서를 가져오기가 가능한 문서 형식으로 변환할 때나 중첩 스타일 입력 사항이 헷갈릴 때 등이죠. 그럴 때마다 작업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강의를 다니면서는 그러한 필요를 더욱 느꼈죠. 수업을 들으시는 분들이 과정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눈이 책과 컴퓨터 화면을 바쁘게 오가다 보면 순간 길을 잃기가 쉽습니다. 어디까지 했더라, 무엇할 차례더라, 이렇게 헤매기 쉽죠. 그럴 때 위와 같은 표가 있으면 자신의 작업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잘 알 수 있지요.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간단한 종이책 한 권 만들기 작업의 시작부터 pdf 만들기, 마지막으로 패키지 파일로 백업하기까지. 핵심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했습니다. 물론 전자책 만들기 내용도 수록했습니다.
-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 | 포도밭출판사
지은이: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옮긴이: 존재론의 자루 ISBN: 979-11-88501-28-1 (93380) 출간일: 2022년 10월 12일 정가: 21,000원 제본: 무선 쪽수: 252쪽 판형: 145×210mm 분야: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류학/고고학 > 인류학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문화연구/문화이론 국내도서 > 인문 > 철학/사상 > 인간론 국내도서 > 인문 > 철학/사상 > 형이상학 국내도서 > 역사 > 아메리카사 > 중남미사 월딩 시리즈 2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 16세기 브라질에서 가톨릭과 식인의 만남 지은이: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옮긴이: 존재론의 자루 책 소개 20세기 유럽 철학의 탈근대적 전환뿐만 아니라 인류학의 ‘존재론적 전회’를 주도해온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의 대표작! 다자연주의와 퍼스펙티브주의로 나아가는 교두보 아마존에서 퍼 올린 21세기의 인간학! 참조한 번역 판본이 5종, 옮긴이 7인의 집단 번역의 성과 이 책은 16세기 브라질 해안에서 일어난 가톨릭 선교사들과 식인부족 간의 ‘존재론적 만남’에 대한 탐구이다.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는 이때의 사건을 역사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우리의 시점을 16세기 브라질로 이동시킨다. 카스트루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원주민들의 ‘변덕’에 주목했던 사실에서 출발하여 역사적 관점에서 이 존재론적 만남의 의미를 추적해나간다. 아마존 원주민들은 선교사들이 전하는 가톨릭 복음을 무척 순순히 받아들이면서도 교리가 금지하는 전쟁과 복수와 식인 풍습 등은 멈추려 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아마존 원주민을 ‘변덕스럽다’고 기록한 유럽인 선교사들의 문헌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 이 탐구는 원주민의 우주론에 대해 전혀 뜻밖의 차원과 맥락들을 밝혀낸다. 보도자료 《월딩 시리즈》 두 번째 책은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의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이다. 카스트루는 인류학의 ‘존재론적 전회’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학자이며 인류학계뿐만 아니라 지식계 전반에서 사상적 전환을 주도하는 인물로서 명성이 높다.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은 그가 이끄는 사상적 전환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자 할 때 맨 처음으로 살펴보기에 매우 알맞은 책이다. 카스트루가 아마존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에서 근대유럽의 형이상학 비판으로 연구 범위와 영역을 확장하는 시점에 교두보 같은 역할을 한 책이기 때문이다. 카스트루는 이 책을 일컬어 “가장 좋아하는 논문 중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의 원출처가 되는 논문은 1992년에 포르투갈어로 처음 출간되었고, 이듬해인 1993년에 프랑스어로 번역된 이후, 2002년에 간행된 카스트루의 논문집에 다시 수록되었고, 2017년에 한 번 더 신판으로 발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꾸준히 수정과 보충이 이루어졌는데, 이처럼 30년 동안 판본을 달리 하며 계속 재출간되었다는 것은 이 논의의 시의성이 여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참고로 밝히면,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의 한국어판 역자들은 부가 설명 단락과 저자 각주 등의 편집이 언어별 번역본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는 탓에 총 5종의 번역 판본을 대조하며 한국어 번역을 진행했고 7인의 집단 번역으로 이를 완성해냈다. 이 책은 16세기 브라질 해안에서 일어난 가톨릭 선교사들과 식인부족 간의 ‘존재론적 만남’에 대한 탐구이다. 카스트루는 이때의 사건을 역사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우리의 시점을 16세기 브라질로 이동시킨다. 카스트루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원주민들의 ‘변덕’에 주목했던 사실에서 출발하여 역사적 관점에서 이 존재론적 만남의 의미를 추적해나간다. 더불어 문화와 종교의 관계에 대한 인류학적 논쟁과 관련한 놀라운 통찰을 이끌어낸다. 16세기에 브라질로 건너온 유럽 선교사들은 그들이 남긴 문헌에서 반복적으로 ‘야만인은 변덕스러운 자’라고 기록한다. ‘변덕스러움’은 유럽인이 규정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특질인 것이다. 원주민들이 변덕스럽다고 기록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아메리카를 찾아온 유럽인들의 최우선 목표는 바로 ‘선교’였다. 그들은 원주민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심어주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에 반해 성과는 미미했는데, 이는 원주민들이 다른 신을 섬기거나 기독교 신앙에 반대해서가 아니었다. 원주민들은 오히려 기독교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진심으로 감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문제는, 원주민들이 “믿는 것도 아니면서 믿음을 거부하지 않”았고, “믿게 된 후에도 믿음이 없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었다. 원주민들은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이면서도 기독교가 금지하는 것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 이들은 숭배와 복종을 몰랐으며 유럽인들과 달리 신앙의 이름으로 무엇에 복속되는 일이 없었다. 반면 이들이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것은 전쟁과 복수였다. 그리고 유럽의 선교사들이 그토록 근절하고 싶어 한 것, 바로 식인 풍습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전쟁과 복수와 식인과 음주 같은 이른바 ‘악습’을 멈추지 않으려 한 아마존 원주민의 우주론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러다가 결국 식인 풍습을 잃었을 때, 이들은 과연 무엇을 영영 잃게 된 것이었을까. 투피남바 족을 ‘변덕스럽다’고 기록한 유럽인 선교사들의 문헌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 이 탐구는 원주민의 우주론에 대해 전혀 뜻밖의 차원과 맥락들에 대한 깨달음을 준다. 그리고 이 깨달음으로 인해 이 책이 종국에는 투피남바 족의 변덕스러움을 ‘예찬’하며 마무리되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지은이 소개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Eduardo Viveiros de Castro 인류학자, 민족학자. 1951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폰티피시아 가톨릭 대학 사회과학부에서 사회학을 배운 후 1974년에 브라질국립박물관 대학원 과정에 진학했다. 1974년에 아마존 내륙의 야왈라피티(Yawalapiti) 족을 현지 조사하기 시작했고 1977년에 그에 관한 민족지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1년부터는 투피계 인디오인 아라웨테(Araweté) 부족을 현지 조사하여 1984년에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이 논문은 『아라웨테: 식인의 신들 Araweté: os deuses canibais』(1986)로 간행되었다. 이후 아마존 원주민의 우주론을 논한 『적의 관점에서: 아마존 사회의 인간성과 신성성 From the Enemy’s Point of View: Humanity and Divinity in an Amazonian Society』(1992)과 「우주론적 직시와 아메리카 원주민의 퍼스펙티브주의 Cosmological Deixis and Amerindian Perspectivism」(1998) 등을 통해 그의 인류학적 사상이 유럽의 인류학계뿐만 아니라 철학계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아마존 원주민의 우주론을 다자연주의와 퍼스펙티브주의로 이론화하는 한편 유럽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인 ‘나르시시즘적 중심주의’를 지적하고 그것의 탈식민화를 제기함으로써 20세기 유럽 철학의 탈근대적 전환뿐만 아니라 21세기 인류학의 사상적 전환 운동인 ‘존재론적 전회’를 이끌고 있다. 2009년에 프랑스판으로 출간된 『식인의 형이상학: 탈구조적 인류학의 흐름들』(한국어판은 2018년 출간)에서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적 사유와 들뢰즈의 생성철학을 횡단하며 아마존의 우주론에 기초한 그의 사상을 놀라운 필치로 펼쳐냈다. 지금까지 그는 브라질국립박물관 교수로 재직하면서 유럽과 영미의 주요 대학에서 강연 활동을 전개해왔고, 120여 편의 논문과 10여 권의 책을 출간했다. 옮긴이 소개 〈존재론의 자루〉 이 책을 집단 번역한 〈존재론의 자루〉는 서울대 인류학과 석박사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존재론적 전회’ 공부 모임이다. 2019년 1월에 시작하여 현재까지 ‘존재론적 전회’의 주요 저작들을 강독해왔으며 최근에는 레비스트로스의 저서들을 함께 읽고 그것의 인류학적 사상을 상술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권혜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 졸업. 석사논문은 「지리산국립공원과 마을 주민의 자연 보호 관념과 실천」이다. 한국 내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맺음에 관심을 갖고 있다. 김성인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박사과정 수료. 논문으로는 「필연적 만남, 방법 없는 이별: 한국전쟁 피난민의 ‘비공식적’ 이산가족 상봉 이야기 내 만남과 이별의 재현」 등이 있다. 현재 한국 내 시각장애를 가진 아동의 초기 사회화에 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작성 중이다. 김지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논문으로는 「한국의 양식 산업 속 적조와 인간의 관계: 작은 것들의 카리스마, 적조」, 「줄줄이 매달아 굴 기르기」(공저)가 있으며, 『한편 4호 동물』에 「플라스틱 바다라는 자연」을 기고했다. 해양쓰레기에 대항하는 해양 보전과 해양 공간의 재발명에 관한 학위 논문을 작성하여 졸업을 앞두고 있다. 이경빈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 석사 졸업. 석사논문은 「실향민 공동체의 시간과 위기: 이북5도청과 도민조직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이다. 기지촌 여성의 구술을 다룬 『영미 지니 윤선: 양공주, 민족의 딸, 국가 폭력 피해자를 넘어서』를 공동 저술했다. 탈식민과 냉전, 이데올로기와 상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손성규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박사과정 수료. 논문으로는 「The Nurturing of a Communal Self in an Elementary School Home Class」가 있으며, 『다시개벽』(2021년 여름호)에 「불확실성의 시대를 조망하는 인류학적 사고: 가상의 힘을 마주한 상징계, 그리고 상징 너머의 인류학」을 기고했다. 현재 고등학교에서 한국 교육열의 지속과 변화에 관한 현지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차은정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대학원 박사 졸업. 논문으로는 「인류학에서의 탈서구중심주의: 데스콜라의 코스몰로지와 스트래선의 탈전체론을 중심으로」 등이 있고, 저서로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 식민지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들의 탈향, 망향, 귀향의 서사』가 있으며 번역서로 『숲은 생각한다』, 『부분적인 연결들』, 『부흥문화론』(공역) 등이 있다. 최경선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과정 수료. 간호사들의 ‘태움’ 관행과 그 관계의 억압적 구조에 관심을 갖고 있다. 시리즈 소개 월딩 시리즈 월딩(worlding)은 있기(being)에서 하기(doing)로 삶의 문제의식을 전환합니다. 《월딩 시리즈》는 지구생명체 간의 공생 속에서 새로운 지식과 실천을 모색하는 인류학 저서들을 소개합니다. 1. 『타자들의 생태학』 필리프 데스콜라 지음 / 차은정 옮김 2.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지음 / 존재론의 자루 옮김 3. 『라인스』 (근간) 팀 잉골드 지음 / 김지혜 옮김 4. 『오늘날의 애니미즘』 (근간) 오쿠노 가츠미, 시미즈 타카시 지음 / 차은정, 김수경 옮김 책 속에서 선교사들은 구세계 이교도들 가운데 자기들이 극복해야 할 저항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우상과 성직자, 예배와 신학, 즉 자기 것이라고 할만한 배타적인 것은 거의 없으면서도 그 이름에 가치를 두는 종교 말이다. 이에 반해 브라질에서는 한쪽 귀로는 신의 말을 열심히 받아들이고 다른 한쪽 귀로는 무심하게 흘려보냈다. 여기서 선교사들이 싸워야 할 적은 다른 교의가 아니라 교의에 대한 무관심, 선택의 거부였다. 변덕, 무관심, 망각. “이 땅의 사람들은 전 세계의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야수 같고 가장 은혜를 모르며 가장 변덕스럽고 가장 비뚤어져 있고 가장 가르치기 어려운 자들이다”라고, 그들에게 환멸을 느낀 비에이라는 그처럼 도발적인 단어들을 늘어놓았다. - 14~15쪽 반복해서 말하면, 예수회 수사들이 화가 난 이유는 ‘브라질 사람들’이 다른 신앙의 이름으로 복음에 대한 적극적 저항을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신앙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이 사람들이 복잡다단한 관계를 품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누리고자 했다. 선교사들이 그들을 거두었다고 생각한 순간, 그들은 거꾸로 ‘구습이라는 토사물’(Anchieta 1555: Ⅱ, 194) 속으로 되돌아갔다. - 23쪽 따라서 문제는 투피남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태도, 즉 유연함과 완고함, 순종과 불복종, 열광과 무관심이 뒤섞여 있는 이 혼합의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다. 이는 ‘빈약한 기억력’과 ‘의지의 결여’로 보이는 인디오들의 신앙심 없는 믿음 너머를 보려는 것이다. 결국 타자가 되고자 하는, 그러나 자기만의 관점대로 되고자 하는(여기에 미스터리가 있다.) 저 모호한 욕망의 대상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 30쪽 따라서 우리는 브라질 사람들의 세 가지 ‘구성적 부재’에 상호 인과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디오들에게 신앙이 없었던 이유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며, 법이 없었던 이유는 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언어에는 소리(F, L, R의 발음)도 의미도 없었다. 참된 믿음은 지배에 대한 지속적인 복종을 전제하고, 이는 결국 군주에 의한 강압의 행사를 전제한다. 왕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사제들을 믿었다. 이와 같은 (터무니없는) 논리로─왕이 없었기 때문에─그들은 믿을 수 없었다. - 65쪽 내가 말하는 바는 투피남바 철학이 본질적인 존재론적 불완전함을 확증한다는 것이다. 사회성의 불완전함, 일반적으로는 인간성의 불완전함 말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내부성과 동일성이 외부성과 차이에 위계적으로 종속된, 생성과 관계가 존재와 실체보다 우위에 있는 질서였다. 이러한 유형의 우주론에서 타자는 문제─유럽의 침략자들은 타자를 문제로 삼았지만─이전에 해답이다. 은매화는 대리석이 알 수 없는 논리들을 가지고 있다. - 67쪽 인디오들이 적어도 한 영역에서 매우 철저하게 일관적이며 또 어떤 것에 대해 “오래 견지할 만한 세심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면, 그것은 복수에 관한 모든 사태와 얽혀있었다. - 77쪽 브라질 민족은 목숨을 바칠만한 우상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다른 것을 위해 죽었고 죽였다. 바로 ‘뿌리 깊은 관습’을 위해서였다. 이것은 왜 그들의 관습이 예언의 샤먼들보다 개종에 더 근본적인 장애물이었는지를 말해준다. 전사의 복수는 모든 악습의 근원에 자리한다. 식인, 일부다처, 만취, 이름 수집, 명예. 이 모든 것들이 복수의 테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 79쪽 적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잡아먹히는 것은 부패하기 쉬운 사람의 일부를 승화시켜 달성하는 불멸화(immortalization)다. (...) 그러나 투피남바 사람들이 적을 먹어치운 것은 애도가 아닌 복수와 명예를 위해서였다는 것도 분명하다. 여기서 내가 근본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학적인 동기와 마주한다. 이 동기는 부패하는 것과 부패할 수 없는 것에 관한 인격론적인 테마보다도 더 깊은 어떤 것─그리고 개종을 위한 선교사들의 노력에 식인주의 이상으로 저항한 어떤 것─을 가리킨다. 적의 죽음과 적의 손에 의한 죽음을 허락한 것은 바로 복수의 영속화 자체였다. - 87쪽 투피남바 전사의 복수는 사회의 중추적 가치로서 그 자체를 구성함으로써 근본적인 존재론적 불완전성, 근본적으로 긍정적인 불완전성을 표현했다. 일관성과 변덕스러움, 개방성과 완고함은 단 하나의 진리가 가진 두 얼굴이다. 그 진리란 외재적 관계의 절대적 필요, 다시 말해 타자 없는 세계의 사고 불가능성(Deleuze 1969)이다. - 101쪽 인디오에 대한 무자비한 전쟁을 통해 침략자의 신학-정치적 장치는 마침내 인디오 전쟁을 길들일 수 있었고, 사회적 목적의 특성을 제거하여 침략자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매체로 변형시켰다. 요컨대 투피남바 족은 전쟁에서 패배했고, 또 전쟁을 잃었다. - 109쪽 식인은 사교성의 완전한 결여가 아니라 사교성의 과잉을 표현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식인의 중단은 어떤 의미에서 투피남바 사회의 근본적인 차원의 상실을 뜻할 것이다. 근본적인 차원이란 적과의 ‘동일화’, 말하자면 근본적인 변성(alteration)의 조건으로서 ‘타자’를 통한 자기규정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식인이 상대적으로 쉽게 포기된 것이 실은 유럽인의 도래에 의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식인은 오로지 혹은 주로 유럽인이 식인을 혐오하고 탄압했기 때문에 포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럽인이 투피 사회에서 적의 위치와 기능을 점하게 되었기 때문에 포기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139쪽 아라웨테 족은 16세기 투피 족의 식인적 사회학으로부터 자그마치 식인적인 종말론을 개발했다. 적들은 신들로 탈바꿈했다. 아니, 오히려 우리 인간은 이제 적의 자리를 차지하고서 죽음을 통해 우리의 적/인척인 신들로 변신하기를 희망한다. 마이란 어떤 면에서 옛 투피남바가 신으로 모습을 바꾼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투피 족의 변덕스러운 혼은 아직도 식인주의라는 문제와 연루되어있다. - 141쪽 차례 감사의 글 1부 16세기 브라질에서 불신앙의 문제 종교체계로서의 문화 지옥과 영광에 대하여 낙원에 있는 구분 믿음의 어려움에 관하여 2부 투피남바는 어떻게 전쟁에 패했는가? 시간을 이야기하다 오래된 법 기억의 즙 완강한 식인자들 변덕스러움을 예찬하며 미주 대담 ‘엑스트라 모던’의 형이상학 옮긴이 후기 아마존에서 퍼 올린 21세기의 인간학 참고문헌 찾아보기 보도자료 다운 받기
-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10-6 (03910) 출간일: 2019년 11월 25일 정가: 15,000원 제본: 무선 쪽수: 276쪽 판형: 135×210mm 분야: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한국학/한국문화 > 한국인과 한국문화 - 인문 > 인문일반 > 인문/교양 일반 - 역사/문화 > 문화일반 > 음식문화 - 역사 > 한국사/한국문화 > 한국문화 - 가정/요리/뷰티 > 음식 이야기 - 요리 > 요리에세이 - 추천도서 > 외부/전문기관 추천도서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제작지원 > 2019년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음식문헌 연구자 고영이 읽고 먹고 생각한 것들 지은이: 고영 [2019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 우리는 지금 왜 이렇게 먹고사는가 음식문화사 백 년의 충격을 들여다보며 오늘의 밥 한 끼를 생각하다 일상의 끼니는 무너지고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 대한 선망과 환상만 가득한 오늘 이곳에서 줏대 있는 한 끼를 먹기 위하여 책소개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는 고전문학을 공부한 저자가 음식과 미각에 깃든 문화와 역사, 음식문화일대 풍경을 탐구한 기록이다. 저자는 특히 최근 백 년 사이 현대의 충격과 함께 급변해온 음식문화사를 살펴본다. 이 책은 오늘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왜 먹는지를 질문하면서 일상의 식생활 풍경 속으로 파고든다. 또한 미식에 대해 선망이 어떻게 생겨나며 음식산업이 이에 어찌 대응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 어떠한 대중문화 현상이 발생하는지를 종횡무진 살핀다. 지역별, 계절별, 재료별 각양각색 김치들, 빵과 과자의 기본기술, 옛사람들의 떡국 조리법, 소금 한 톨이 만들어지는 이야기 등등이 오늘 우리 밥상 위 음식을 다시 바라보고 새로이 감각하도록 이끈다. 보도자료 당신은 오늘 무엇을 먹고 있습니까? 미식과 먹방의 시대다. 티브이를 켜면 항상 요리 쇼가 나오고 맛집이 소개된다. 다음 날이면 전날 방송에 나왔던 가게 앞에는 긴 줄이 선다. 대단한 한 끼를 먹기 위한 열정이 뜨겁다. 아니 열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왜 먹는지 잘 고민하고 있을까. 가령 이런 장면을 돌아보자. 숟가락 들 시간조차 없이 바빴던 일과를 마치고 퇴근길에 ‘편의점 도시락’ 하나를 산다. 티브이를 켜니 ‘호화 셰프 군단’의 요리 쇼가 펼쳐지고, 같은 시간 SNS에는 어느 유명 셰프의 레스토랑에서 ‘파인다이닝’을 즐기는 친구의 사진이 올라온다. 고개를 돌려 내가 입에 밀어 넣고 있던 음식들을 바라본다. 나는, 그리고 너는 과연 잘 먹고 있는 것일까. 미식과 먹방의 시대, 줏대 있는 밥 한 끼를 위하여 음식문헌 연구자 고영은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을, 그리고 음식을 둘러싼 매체와 대중문화 현상을 잘 따져보길 권한다. 일상의 끼니는 무너지는데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 대한 선망과 환상만 키우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고 말한다. 내 앞에 차려지는 밥 한 그릇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그것이 어떤 역사와 문화의 과정인지 모르고서 미식에, 탐식에, 맛집 사냥에 길들여질 때 그 결과가 누구에게 좋은 일이 되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음식도 ‘거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자고 말한다. 아무렇게나 먹고살지 않으려면, 음식에서도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행동의 시작은 바로 ‘공부’다. 그런데 음식 공부에도 이정표가 필요하다. 저자는 낭설을 수집하고, 일화를 나열하고, “옛날에는 그랬지”만 되풀이하는 음식 공부는 사양하고, 줏대 있게 밥 한 끼를 먹기 위한 구체적인 접근으로서의 음식 공부를 시작하자고 말한다. 음식은 거저 오지 않는다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는 고전문학을 공부한 저자의 음식문화사 기록이다. 저자는 최근 백 년 사이 현대의 충격과 함께 급변해온 음식문화사를 들여다본다. 그는 말한다. “최근 백 년 사이 세상이 바뀌었다. 사람의 감각도 바뀌었다. 실내로 들어온 연료, 상하수도, 전기 동력과 조명에 힘입어 배가 터지도록 먹고, 먹으면서 만인이 만인에 대해 음식평론가 노릇을 하게 되었다”고. 실로 지난 음식문화사 만 년 동안 인류가 먹을거리를 겨우 마련해 간신히 먹고살았다면, 음식문화에 상상력과 쾌락과 행복감이 본격적으로 끼어들고, 그로 인해 대중문화까지 발생한 지는 불과 백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오늘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왜 먹는지를 멈춰서 돌아보게 한다. 일상의 식생활 풍경 속으로 파고들면서 미식에 대한 현대인의 선망과 음식 산업의 대응과 대중문화 현상 들을 살펴본다. 「간단하게 국수나?」에서 소개하듯 국수 한 그릇을 지금처럼 ‘뚝딱’ 차려 후루룩 먹게 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 김치 하면 통배추 김치로 각인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 우리가 빵을, 과자를 지금처럼 먹게 된 지도, ‘빙수’를 한여름에 누구든 즐기게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시킨다. 이로써 이 책은 어떠한 문화적 적응을 거쳐, 음식이 어떤 노동을 통해, 어떠한 감각을 통과해 마침내 우리 앞에 놓이는지를 곱씹게 한다. 음식문헌을 펼치다 저자는 음식문화사 탐구를 위해 다양한 문헌과 매체에 파고든다. 고조리서는 물론 각종 증언 기록들, 소설, 시, 신문기사, 잡지기사, 영화, 광고 등등이 모두 참고문헌이고 이정표다. 다채로운 ‘먹는 소리’들과 ‘먹는 행위’의 묘사들이 다 음식의 문화와 역사와 정체를 말해주는 공부거리가 된다. 저자는 다만 객쩍은 음식점 일화, 지금 감각할 수도 없는 탐식가의 허풍, 먹방에 가까운 한담은 경계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 기록 속에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그 상상력에 오늘의 자원과 기술을 더해가는 시도이지, 의미 없는 선망이나 환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식의 본질에 대한 생각 저자는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가 여러 의미에서 최악이라고 평가한다. 때문에 이 책에는 한식 세계화 사업에 대한 비판이 곳곳에 담겨 있다. 한식 세계화 사업이 ‘외국인에게 칭찬받겠다는 강박’ 아니냐는 누군가의 말에 저자는 이렇게 맞장구친다. 권력자들의 그릇된 욕망에서 시작돼, 그들의 자기 홍보에 그친 한식 세계화 사업은 실로 ’서구 백인에게 아첨하는 짓’에 불과했다고. 「한식 세계화 유감」 꼭지에는 한식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빼놓고 우스꽝스럽게 전개된 한식 세계화 사업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면서 요리사 애진과 나눈 인터뷰가 소개된다. 그렇다면 지금 한식을 이끄는 것은 누구일까. 제대로 주목받아야 할 이들은 누구일까. 저자는 ‘솁솁거리기’가 유행인 세태를 비판하며, 셰프라는 이름에 지워진 이들, 바로 ‘찬모’들에 주목한다. 한식의 본질 역시 뜬구름 속에서 찾을 게 아니라 제일선에 있는 찬모들을 바라보며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담하고 정갈한 ‘먹는 소리’에 침이 고인다 이 책의 ‘먹는 소리’들은 화려한 수사와 자극을 동반한 먹방들과 달리 소담하고 정갈하다. ‘귀한 자원을 귀하게 매만지고 귀하게 먹어온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가 주목하는 문헌 속 ‘먹는 소리’들은 어떤가. 우리 안에 자고 있는 감각, 방법, 감수성, 태도 들을 살살 깨우며 침이 고이게 만든다. 지역별, 계절별, 재료별 각양각색 김치들, 빵과 과자의 기본기술, 옛사람들의 떡국 조리법, 소금 한 톨이 만들어지는 이야기 등등이 오늘 우리 밥상 위 음식을 다시 바라보고 새로이 감각하도록 이끈다.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는 잔뜩 침이 고인 채 내 앞의 음식을 새로이 보게 하는, 오늘의 음식문헌이다. 지은이 소개 고영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고전문학 작품을 번역하던 중, 밥 한 끼 짓고 먹기 위해 사람들이 해온 행동에 대해 무지함을 깨달았다. 이후 먹을거리와 연료의 획득에서 조리 기술에 이르는 음식의 실제에 파고들게 되었다. 해온 공부를 바탕으로 대중매체에 음식에 관한 글을 쓰는 한편 음식 관련한 대중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펴낸 책으로 〈다모와 검녀〉 〈샛별 같은 눈을 감고 치마폭을 무릅쓰고 심청전〉 〈아버지의 세계에서 쫓겨난 자들 장화홍련전〉 〈높은 바위 바람 분들 푸른 나무 눈이 온들 춘향전〉 〈게 누구요 날 찾는 게 누구요 토끼전〉 〈반갑다 제비야 박씨를 문 내 제비야 흥부전〉 〈허생전 공부만 한다고 돈이 나올까〉 〈거짓말 상회〉(김민섭·김현호와 공저)가 있다. 이 가운데 ‘토끼전’은 2016년 세종도서에, ‘허생전’은 2017년 올해의청소년도서에 선정되었다. 책 속에서 ‘설렁탕의 설렁설렁한 맛’. 여기 이르러 절로 무릎을 탁 친다. 조선 임금이 선농단에서 제를 올리고 끓인 선농탕에서 설렁탕이 유래했다는, 이제 음식 문화사 공부하는 사람들은 거론하지 않는 낭설이 다 부질없어지고, 조선 시대 몽골어 학습서인 〈몽어유해〉 속에서 곰탕에 해당하는 몽골어 ‘슈루’의 흔적 더듬기도 하릴없다. ‘설렁설렁’이랬다. 설렁설렁이란 바람이 가볍게 자꾸 부는 모양을 드러내는 부사다. 커다란 솥에서 탕국이 끓어오르며 가볍게 이리저리 이는 물결을 수식할 때에도 딱이다. 팔이나 꼬리를 가볍게 자꾸 흔들 듯이 가벼운 움직임, 가벼운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을 수식하는 말도 ‘설렁설렁’이다. 설렁탕은 커다란 가마솥에서 설렁설렁 끓고, 사람들은 설렁설렁 밤길을 걸어가, 설렁탕 한 뚝배기 설렁설렁 해치운다. - 「설렁설렁 설렁탕」에서 [20~21쪽] 다시 〈산가요록〉 앞으로 다가앉는다. 우리가 익히 아는 동치미, 나박김치, 물김치 계통이 550년 전에 이미 오롯하다. 책장을 더 넘기니 과일을 소금에 절여 풍미를 증폭하고, 꿀로 단맛을 끌어올리고 수분까지 넉넉하게 잡은 복숭아김치, 살구김치가 등장한다. 살구김치에는 생강과 차조기로 풍미를 더하기도 했다. 이윽고 수박김치에 이르러서는 침샘이 터질 지경이다. 문헌으로 보거나, 칠순 어르신께 한 세대를 건넌 이야기를 듣거나 참 아깝다. 그 계절 감각, 지역 감각, 다양한 맛의 기획이 아깝다. 아까워하는 그 마음으로 김치라는 음식을 헤아린다. 문헌 속에서 한 가지 김치라도 더 확인하고, 세대가 다른 분들로부터 하나라도 더 듣자고 달려든다. - 「김치 회상」에서 [37쪽] 한여름 하늘 아래, 얼음과 꽃잎과 과일을 기다리던 사람이 살았고, 고추장에 파뿌리가 고마운 사람이 살았다. 여름은 이전에도 상하귀천을 갈랐다. 갈라도 이렇게 극명히 갈랐다. 모두에게 빙수 한 그릇, 빙과 한 조각이라도 돌아간 지 얼마 안 된다. - 「빙수 한 그릇」에서 [46쪽] 국수의 시작이란 전에는 소면 한 뭉치 사오기, 밀가루 한 포 사오기가 아니었다. 시작은 자가제분이었다. 그것도 동력 장치의 힘을 빌릴 수 없는, 하루 종일 여성 노동으로 감당한 제분이 시작이었다. 그래서 조선 시대 조리서 속의 국수 항목을 보면 국수를 어떻게 맛나게 말아라, 반죽에 어떻게 맛을 들여라 하는 소리 이전에, 흰 가루 얻기부터 설명한다. - 「간단하게 국수나?」에서 [49쪽] 내가 빵집에서 실제로 빵을 집었는지 과자를 집었는지 돌아보자. 우리는 실은 빵으로 오해한 과자를 먹으며, 당과 유지를 잔뜩 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는 간식을 먹겠다면서 밥 몇 공기 열량의 식빵 한 덩어리를 앉은자리에서 해치우기도 한다. 빵과 과자가 뒤섞인 감각의 혼란이 분식에서 주식과 기호식의 뒤섞임으로 나타나는지도 모른다. - 「빵과 과자는 다릅니다」에서 [52쪽] 오늘 우리가 이렇게 먹고 살고, 하필 이렇게 유난스러운 음식 담론에 다다른 내력을 음미하는 가운데, 우리는 인류와 사람과 나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실마리의 끝이라도 쥘 수 있지 않을까. - 「음식이 만든 풍경들」에서 [114쪽] 그동안 우리는 다만 “옛날에 그랬다”만 되풀이하는 음식 문헌 읽기를 할 뿐이었고, 논증 불가능한 영역에서 복원을 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살았다. 이제는 좀 달라질 때도 됐다. 기록 속에서 내 상상력을 발휘하고, 그 상상력을 바탕으로 조리의 실제에서 오늘의 자원과 오늘의 기술을 십분 활용해 다양한 시도를 해봄 직하다. - 「떡국 단상」에서 [122쪽] 오늘날 저마다가 심노숭이다. 제 기호와 취향을 드러내는 연출 방법과 말글의 수사에서 그렇고, 그 드러냄을 통해 음식에 대한 제2, 제3의 욕망과 선망을 만들어가는 데서도 그렇다. 문자를 뛰어넘는 영상 덕분에 심노숭보다 더한 점도 있다. 그러고서는, 기호와 취향을 드러낸 다음은 여전히 공백이다. 모색과 상상력의 미봉이 그의 찬란한 수사 덕분에 더욱 또렷해진다. 아쉬움이 이정표다. 옛글을 펼쳐놓고 미봉한 채로 흐른 200년을 음미한다. - 「심노숭 생각」에서 [136쪽] 그러고는 백 년쯤 흐른 오늘, 카스테라는 누구나 한마디씩 하는 나쁜 화제로 떠올랐다. ‘대만카스테라’가 유행할 때에도, 그 유행이 지나서도, 이제 누가 무슨 말을 부치든 애초에 나쁜 화제를 만든 쪽만 좋은 일 시키고 있다. 대만카스테라를 팔고 빠진 쪽에서는 이미 빼 먹을 것 다 빼 먹었다. 이후에 카스테라는 원래 이래 하면서 훈수 두는 이들의 경우라면, 적당히 한마디하면서 제 조회수를 올리기나, 카스텔라 및 카스테라에 대한 지식을 자랑하면 그만이다. 어느 쪽이든 기획한 쪽에서 바란 ‘노이즈 마케팅’은 승리했다. - 「아리고 쓰린 카스테라 담론」에서 [139쪽] 저번보다 낫다니. 몇 차례 와인을 접한 사이에 관능의 비교를 행하는 데 이르렀다. 입에 넣고, 목구멍 지나서의 관능까지 묘사하고 있다. 영어권에서 말하는 finish, 와인에 관한 한국어 표현에서 요즘 뒷맛이니 끝 맛이니 하는 지점이다. 보다 섬세해진 관능 평가를 바탕으로 이기지는 와인에 절대적인 평가를 내렸다. 경장옥액이라고 하면 이른바 신선의 음료다. 그러니 경장옥액과 같은 음료라면 사람의 관능 표현이 이루 다 그려낼 수 없는 좋은 풍미를 쥐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경장옥액보다 와인이 낫다고 했다. 감각이 불어남에 따라 미각, 관능 표현의 수사도 이렇게 불어났다. - 「이기지,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에서 [157~158쪽] 셰프. 텔레비전과 인터넷과 온갖 매체에서 먹방과 맛집 사냥이 넘치고, 솁솁거리기가 울려 퍼지면서 너도 나도 이 말에 감염되었다. 셰프란 말은 한순간에 요리사 또는 제과사, 찬모, 주방장이란 말을 지워버렸다. 동시에 새벽 첫 차를 타고 장을 보러 가고, 실제로 하루 열두 시간은 업장을 지켜야 하는 식당 일의 세계, 구체적인 주방 노동의 세계를 가렸다. - 「계란찜은 서비스고 수플레는 만 원이냐?」에서 [229쪽] 사람은 내게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음식을 만든다. 이때 자원이란 농업을 기본으로 인간과 자연과 국제관계와 과학기술 등등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결과다. 날것 상태의 자원이 먹을 수 있는 밥, 빵, 국수에서 장, 젓갈, 과자, 일품요리 등등이 되기까지 인류는 어마어마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고 주고받고 이어왔다. 자원의 한계를 다만 감수할 뿐 아니라, 탐구하고 대응하는 가운데 교육도 문화도 인간다움도 태어났다. 음식은 사람답게 살아남기 위한 기본기술이자 1만 년 농업사와 함께 이어진 문화의 꽃이다. 그 꽃은 갖가지 모양과 빛깔로 피어나 오늘에 이른다. 위도마다 대륙마다 민족 저마다 서로 다른 일상의 식생활은 지구 곳곳의 거대한 강줄기, 산맥, 또는 해양 못잖은 일대장관이다. - 「한식의 제일선에 있는 그 사람, 찬모」에서 [232쪽] 차례 서문 아, 침이 고인다 융도, 두 자의 뭉클함 설렁설렁 설렁탕 냉면 먹방 아, 침이 고인다 김치 회상 빙수 한 그릇 간단하게 국수나? 빵과 과자는 다릅니다 한국 빵 문화사의 원형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하루쯤은 달콤하고 싶다 비빔밥 한 그릇 앞에서 소금 한 톨에 깃든 사연 음식이 만든 풍경들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 떡국 단상 소 한 마리 허균, ‘먹방의 추억’ 심노숭 생각 아리고 쓰린 카스테라 담론 이기지,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 외래술과 피개화 맥주나 한 잔 사케, 청주, 정종 소주 한 병의 풍경 겨울이 깊어가는 대설 새봄을 기다리는 동지 봄의 절정 청명 가을걷이를 내다보는 입추 온전한 밥 한 그릇 계란찜은 서비스고 수플레는 만 원이냐? 한식의 제일선에 있는 그 사람, 찬모 ‘밥하는 아줌마 망언’에 부쳐 한국인은 돼지고기를 사랑한다고? 복날 먹는 거? 아직 잘 써본 적이 없는 상상력 차례 앞두고 기억할 말, 가가례 한식 세계화 유감 온전한 밥 그릇을 누리는 삶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찾아보기
- 뒷자리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37-3 (03300) 출간일: 2024년 1월 31일 정가: 16,000원 제본: 무선 쪽수: 240쪽 판형: 140×210mm 분야: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노동문제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뒷자리 : 어떤 일을 한 뒤의 흔적 지은이 : 희정 책 소개 싸움의 앞자리가 아닌 뒷자리를 기록한 책 사건의 지난 흔적을 되짚는 기록이자 세상의 뒷자리에서 삶의 뒷자리를 더듬는 기록 기록노동자 희정이 쓴 『뒷자리: 어떤 일을 한 뒤의 흔적』이 출간되었다. 싸움의 앞자리가 아닌 뒷자리를 기록한 책이다. 사건의 지난 흔적을 되짚는 기록이자 세상의 뒷자리에서 삶의 뒷자리를 더듬는 기록. 그래서 책 제목이 『뒷자리』이다. 저자 희정이 만난 사람들은 이렇다. 모두들 싸움이 다 끝났다고 선언하고 떠나는 곳에 여전히 남아 문제와 맞서고 있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뒷자리에서도 더욱 그늘진 자리에서 보다 치열하게 싸운 사람들, 목소리는 묵살당하고 꼭 그림자처럼 대우받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1부, 2부, 3부에 담았다. 1부는 ‘여전히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송전탑이 세워진 밀양, 무려 50년간 미공군의 폭격 훈련장으로 쓰이다가 반환된 매향리, 월성원전과 거의 닿아 있어 방사능 피폭과 원전 사고의 위험을 안고 사는 마을인 나아리. 희정은 이곳들을 찾아가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싸움 이후’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리고 그들이 과연 무엇을 지키고 이루려 하는지 살펴본다. 2부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숨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냈지만, 누군가 그들의 존재를 지우고 감추고 잊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약하다’며 지워지고 ‘덜 중요하다’며 감춰지고 ‘사소하다’며 잊힌 이들, 그리고 이들의 싸움. 2000년 롯데호텔 직장 내 성희롱 집단소송 투쟁과 2018년 용화여고 창문에 커다랗게 ‘ME TOO’라고 적으면서 교사의 성희롱과 성폭력을 세상에 알린 학생들의 투쟁을 지금 다시 기록하는 것은 이 싸움들이 여전히 우리 눈앞에 더 드러나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치열하게) 싸운 건 아무도 몰라”라고 말하는 114 번호 안내원들의 산재 투쟁도 다시 기록했다. 114 번호 안내원들의 투쟁을 기록한 뒤에는 당연하게도 콜센터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이들의 투쟁 사이에는 2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이야기는 이어져 있다. 3부는 ‘그늘로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희정의 말에 따르면, 세상에는 미적지근하게 취급받는 일들이 있다. ‘노년노동’이 그렇고, ‘이주노동’이 그렇고, ‘여자노동’이 그렇다. 중심이 아닌 소위 주변으로 밀려난 생애를 세상은 미적지근하게 취급한다. 그리고 되도록 눈에 띄지 않도록 장막으로 덮어두려 한다. 희정은 그 장막을 들춰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공단의 높은 담벼락 아래에서 일하는 노년 노동자들을 만나고, 변두리 공단의 저임금 인력으로 유배된 고려인들을 만나고, 경영에 반드시 필요한 전문적 업무를 맡으면서도 ‘잡일 노동’ ‘아가씨 노동’으로 함부로 취급당하는 경리 노동자들을 만났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바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1차 하청업체의 경리 노동자 출신 강미희가 전하는 말이다. 부당 해고에 맞선 복직 투쟁을 하는 동안 티셔츠에 “경리는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적어 입고 다녔던 강미희의 말. “설사 승리를 못하더라도, 아무것도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뭐든 다 해봤어요. 저는 제가 기특해요. 잘했어. 기특해. 난 내가 너무 자랑스러워.” 지은이 소개 희정 기록노동자.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한다. 저서로는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2011), 『노동자, 쓰러지다』(2014), 『아름다운 한 생이다』(2016),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2019), 『여기, 우리, 함께』(2020), 『두 번째 글쓰기』(2021),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2022), 『일할 자격』(2023), 『베테랑의 몸』(2023)이 있다. 그리고 『밀양을 살다』(2014), 『섬과 섬을 잇다』(2014), 『기록되지 않은 노동』(2016), 『416 단원고 약전』(2016), 『재난을 묻다』(2017), 『회사가 사라졌다』(2020), 『숨을 참다』(2022),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2022), 『당신은 나를 이방인이라 부르네』(2023),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2023)을 함께 썼다. 책 속에서 후회 없이 살고 싶다. 이 말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살면서 깨닫는다. 후회 없이 사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우리는 후회를 예감하며 한 발을 내딛고 자신이 감당할 만한 후회를 삼키며 살아간다. 어떤 일을 겪어낸 이들에게서 내가 본 의지와 끈기 같은 것, 그러니까 저력이라 불렀던 것은 숱한 후회를 감수하면서도 발을 내딛는 사람들의 마음이자, 후회를 뒤로 감춘 채 내주는 품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사건의 뒷자리에서도 여전하다. 어떤 흔적을 뒤적여도, 아무리 오래된 사건과 만나도, 여전히 움직이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움직였기에 나 또한 아주 천천히 몸을 틀 수 있었다. 공단 담벼락 안에 가두어도 “우리에게 봄이 올까요?” 묻는 이들이 있다. 머나먼 여정 끝에 낯선 땅에 와서도 지치지 않고 도시로 가고 싶다는 이가 있다. 건전지처럼 갈아 끼워지면서도 자신들의 일이 귀하게 대우받는 날이 올 때 그 자리에 있고 싶다고 하는 이가 있다. 사람들이 모르는 싸움을 했지만 “우리 그때 정말 잘 싸웠지?”라고 신명나게 말하는 이가 있다. 나는 그저 지나간 일의 흔적을 좇으려 했을 뿐인데, 이들은 그곳에서도 크고 작은 것을 감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이들을 책에 담았다. 이것은 사건이 지나간 후, 그 뒷자리에서 내가 하는 일이다. - 9~10쪽 나는 누군가 악을 쓰며 싸우는 소리를 느지막이 듣는 사람이다. 귀 밝은 이들이 앞서 달려간 곳을 더디게 따라가면, 그곳에는 무언가를 막아내기 위해 인생의 많은 부분을 감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제야 나도 자리를 잡고 기록을 한다. 그러는 사이 싸움이 끝나, 이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들은 ‘이겨서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만, 돌아가는 길목에 늘 승리가 있는 건 아니다. 이긴다… 그것이 과연 이뤄질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고 나면 ‘이긴다’는 행위는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진다. 온전히 외쳐지는 요구도 없거니와 온갖 상흔과 감정이 쌓이는 까닭에 승리의 의미는 굴곡지거나 그 속을 채우는 내용이 달라진다. 누구든 싸움판으로 첫발을 디딜 때는 많은 다짐과 결심, (희망과 단념을 동시에 품는) 계산과 예측을 하지만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면 처음 예상한 것이 무엇이든 그 마음만으로는 버틸 수 없게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싸우는 걸 보면 분명 무언가 있다. 나는 그 무언가를 좇는 사람이지만, 때로 싸움이 지나고 난 자리를 생각한다. 싸움이 끝났다고 말하는 자리에 여전히 남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 15~16쪽 송전탑이 완공된 지 3년이 지나 기사 하나를 보았다. 3년이면 기억이 잊힐 만한 시간이다. 사건이 잠잠해질 시간이다. 그런데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지금이 제일 힘들다〉 - 19쪽 국가는 소박한 삶들로부터 승리했다. 밀양은 국책사업 의지를 천명하는 장이 됐다. 산업의 기반인 전기가 전 국토에 깔려야 한다고 했다. 산업발전 앞에 다소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불가피한’ 희생에서 비롯하는 저항은 돈으로 메웠다. 비용은 적을수록 좋았다. 정당한 보상과 민주적 합의에는 큰 비용이 든다. 선로를 변경하는 일에도, 다른 대안을 찾는 일에도 돈이 든다. 그래서 하지 않았다. 지역민들이 입은 정신적·신체적 피해는 조사되지 않았다. 피해는 몇 푼의 보상금으로 영구 은폐됐다. 덕분에 우리의 전기는 밝고 저렴했다. - 28쪽 “포탄이 하루 몇 개 떨어지는지 아세요? 적게는 400개 많게는 700개. 진짜 실탄이 떨어졌으면 몇 번 만에 섬이 다 폭발했을 텐데. 훈련용이라 그나마 남아 있는 거예요. 옆에 섬 하나를 완전히 없애고, 2000년에 폭격이 멈춰 농섬은 살아남은 거예요.” 마을 주민이 들려준 이야기. 전투기와 공격용 헬기가 매향리 인근을 저공 비행하다 인근 섬들(농섬, 웃섬, 구비섬 등)을 목표물로 삼아 폭격을 가한다. 폭격장의 면적은 700만 평. 평일이면 아침부터 밤늦도록 총성과 포탄 떨어지는 굉음이 이어졌다. - 49쪽 나아리 주민 황분희 씨는 “여긴 모든 게 오염된 거라. 사람마저도.” 하며 자신의 가슴께를 가리켰다. 하지만 한수원의 말은 다르다. “우리 손녀가 학교 갔다 와서 그러는 거라. ‘반 친구가 그러는데 원자력은 절대 사고 안 난다고 해요’ 내가 ‘그래, 그 친구가 어디 사는 친구냐’ 하고 물으니까. 한수원 사택에 사는 친구라고. 그러면 그럴 수 있다. 다음에 그 친구하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후쿠시마는? 일본 사고는 어떻게 일어났냐’ 하고 물어봐라 그랬어요.” - 76쪽 “요즘 산란기야? 왜 이렇게들 임신을 해.” 모 임원이 임신한 여성 직원들을 가리켜 한 말이라고 했다. 가해자의 인성뿐 아니라 일터가 임신부 노동자를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농담’이라 했다. 농담으로 하는 소리이니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말이 문제로 인식된 것은 한참 뒤였다. 롯데호텔 파업이 없었다면, 평생 오지 않을 순간이었다. - 108~109쪽 아무리 입을 막아도 말하는 여성들이 있고, 아무리 내보내려 해도 나가지 않는 여성들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 당시 어느 직장이건, 임신해도 그만두지 않던 선배를 원망하다가 본인이 임신을 하면 저 선배가 ‘눈칫밥’ 먹으며 버텨준 덕에 자신도 다닐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하나둘이 남아 여럿이 되면, 임신부에 관한 매뉴얼이나 사내규칙이 변경됐다. “그때는 몰랐는데.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한 거였어요. 임신하고도 회사를 계속 다니고 그런 것이, 나중에 보니.” - 118쪽 교육부의 변명이겠지만, 학교장들이야 당연하고 교직원들도 전수조사를 불편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사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한다는 이유도 있었다. 내가 롯데호텔 사건에서 용화여고 미투 사건을 떠올린 것은, 단지 무언가를 써서 붙인다는 행위 때문이 아니었다. 롯데호텔에서 ‘재계약은 없다’며 엄포를 놓던 관리자와 “생활기록부를 쥔 채로 미래를 망쳐주겠다고 엄포를 놓던” 교사의 모습이 닮았기 때문이다. 모든 교사가 가해자라는 말이 아니라, 교사가 지닌 위력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 136쪽 성폭력 사건에는 가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만 있지 않다. ‘모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20년 전으로 돌아가면, 롯데호텔에도 가해자 그룹이 섬처럼 따로 있던 것이 아니다. 직장 내 성희롱은 일상적으로 이뤄졌고, 그 일상을 모른 척하던 이들이 있었다. 이들 중에는 정말 ‘모르는’ 사람도 있었을 텐데, 눈을 돌리지 않으면 모르고 사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게 기수가 탄 말처럼 앞만 바라보고 가는 생활이 이어진다. - 137쪽 늦가을이 되어서야 조계사 농성은 마무리 되고, 114 노동자들은 일터로 복귀했다. 산재 대상자들을 향한 퇴사 종용을 멈추고, 개인이 원할 시 타부서로 재배치한다는 약속을 회사로부터 받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골병이었으나, 이들은 싸움 끝에 성과를 만들어냈다. 자신들의 싸움을 누가 알려나 하지만, 그 투쟁을 뚜렷이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그녀들 자신이다. “우리 정말 잘 싸웠다”라는 말이, 그 시절을 증명했다. 하지만 농성을 마무리하고 일터로 돌아갔을 때, 이들을 기다린 것은 익숙하고도 새로운 위기였다. 그들의 노동을 ‘잉여’ 취급하는 일터는 바뀌지 않았다. - 156쪽 기록을 보니, 관리자가 야간 근무 조회 시간에 여성 직원들에게 “참아보자! 참아보자!”라는 구호를 외치게도 했다. 그때는 드러내면 안 되고, 참아 넘겨야 하는 일로 여겨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로부터 십여 년 후 그가 일했던 일터인 KT 114는 첫 멘트로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말하게 했다. 그게 진상과 성희롱 고객이 흘러들어오는 입구가 되었고, 몇 년 후에는 콜센터로 전화를 하면 수화기 너머에서 이런 멘트가 흘러나왔다. “산업안전보건법에 고객응대 근로자 보호조치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폭언, 성희롱 시 관련 법령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 177쪽 “내가 없으면 회사가 일을 못 합니다. 작년에 고무호스를 끼우다가 산재가 났는데. 한 달 회사를 못 갔어요. 내 없을 때 회사에서는 이 사람도 넣어보고 저 사람도 넣어보고. 못해요. 고무 모형이 10개 20개가 아니고, 1,000개가 넘어요. 그만큼 다양하게 있다는 겁니다. 저도 다 몰라도 800개 정도는 아는데. 며칠 와서 일하는 사람이 그걸 다 기억할 수가 없어요. 내가 없으면 안 된단 말이에요. 회사도 알고는 있는데, 그래도….” 회사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인정하지 않는다. 저렴하기에 사용하는 노동력이다. 그 노동을 인정하는 순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없어진다. - 192~193쪽 남편을 따라 광주 고려인 마을에 온 이는 안산으로 가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여기를 떠나고 싶어요?”라고 묻자 일자리 이야기를 한다. “여기는 일이 없어요.” 생산직 일자리만 만연한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댁 이야기도 슬쩍 한다. 가족이 많은 것이 갑갑하다고 했다. 한국인들로부터 고려인은 가족이 소중하다는 이야기만 들어온 터라, 그렇게 감정을 털어놓는 이가 반가우면서도 반가운 기색이 드러날까 봐 조심스러웠다. 한국에 처음 와선 안산 고려인 식당에서 홀서빙을 보았다고 했다. 그때를 그리워한다. 지역을 떠나고 도시로 가고 싶은 욕망이 한국 지역사회 여성들의 서울 이주 욕망과 겹쳐 보여, 나는 진지하게 그 이야기를 듣는다. 이주라는 조건 속에서도 저마다의 결대로 뿌리를 내린다. 이들이 한민족이라 이 땅에 뿌리는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다. 어디서 누구로 단 한 순간을 살아도 뿌리를 땅에 박아야 하는 것이 삶일 뿐이다. - 217~218쪽 ‘여직원’ ‘아줌마’ 이들은 인터뷰 내내 자신을 이렇게 불렀다.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아가씨 자리’. 아가씨 자리에서 일하는 아줌마라. 다른 명칭도 나왔다. “제일 싫어하는 말인데, 우리는 잡부였어요. 오만 잡일 다 하는.” 이들의 직업은, 경리다. 명함 한 장이 없다. 명함이 있다 해도 새길 직책이 없다. 사람들은 사무실로 전화해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아가씨, 남자 바꿔.” - 219쪽 신자유주의 운명의 수레바퀴는 잔혹도 하다. 수레바퀴의 가속을 저지하는 방법을 애써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너랑 나랑 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늙은 노동자의 말일 수도 있겠다. “빗길에 미끄러지며 일하는 주차관리 요원”을 돌아보는 마음일 수도 있겠다. 차이를 두어 일하는 사람을 쪼개고 나누려는, 결국은 버려지는 속도만 다른 소모품으로 만들려는 기업에 대응하는 길에 무엇이 따로 있을까. 나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일. 소모품이 아니라 우리로 살려고 애쓰는 일. 법의 편리와 기업의 필요에 의해 나뉘고 쪼개진 자신들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그녀’들의 싸움을 응원했다. 아니 응원한다. “설사 승리 못 하더라도, 아무것도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뭐든 다 해봤어요. 저는 제가 기특해요. 잘했어. 기특해. 난 내가 너무 자랑스러워.” (강미희) - 236쪽 차례 들어가며 1부. 여전히 남은 사람들 1. 송전탑이 세워져도 마을의 시간은 가고 밀양을 기억한다는 것은 2023년. 남어진과의 대화 2. 평화란 “아침까지 푹 잘 수 있는 것” 미공군 폭격장 반환 이후, 매향리를 가다 2023년. 전만규와의 대화 3. 방사능 피폭 위험지대에 들어오셨습니다 월성원전 최인접 마을에 가다 2023년. 황분희와의 대화 2부. 우리 싸움은 누가 기억하지? 1. 우리가 구호를 외쳤잖아요 롯데호텔 파업과 성희롱 집단 소송 사건 20년 후. 스쿨미투 끝나지 않는 이야기 2. 통증에도 위계가 있어 114 한국통신 안내원들의 근골격계 투쟁 20년 후. 10명 중 7명이 나가는 곳에서 3부. 들리지 않아도 목소리는 존재한다 1. 봄이 올까요 공단에 숨겨진 노년 노동자의 꿈 2. 뿌리내리는 이들을 만나다 고려인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3. 가장 늦게 잘리는 자, 경리 아가씨 노동의 실체를 보다 참고도서 및 참고자료 보도자료 다운 받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