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 41개의 아이템
- 대학공간에서의인권 | 포도밭출판사
엮은곳: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지은이: 아드리안 홉킨스, 치사토 키타나카, 데이비드 카프, 데보라 투르크하이머, 구미영, 김엘림, 신윤진, 이성용, 이주영, 주윤정 ISBN: 979-11-88501-31-1 (03300) 출간일: 2022년 9월 30일 정가: 15,000원 제본: 무선 쪽수: 216쪽 판형: 130×210mm 분야: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사회문제 일반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사회과학계열 > 사회학 대학 공간에서의 인권 엮은곳: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지은이: 아드리안 홉킨스, 치사토 키타나카, 데이비드 카프, 데보라 투르크하이머, 구미영, 김엘림, 신윤진, 이성용, 이주영, 주윤정 책 소개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에 인권을 통합하기 대학 공간에서 인권이 제대로 존중되고 보호되려면, 나아가 대학이 인권의식을 갖춘 구성원을 양성할 수 있으려면,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에 인권을 통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바탕이 마련되어야 대학 구성원들이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문화를 형성할 수 있고, 인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로 인한 피해를 보다 잘 파악할 수 있으며, 피해자를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들을 쌓아나갈 수 있다. 이 책은 2022년 1월 서울대학교 인권센터가 개최한 네 번의 웨비나에서 발표·토론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학문연구, 교육, 업무 등이 이루어지는 대학 공간 곳곳에 인권의 가치가 스며들기를, 그 효과로 실질적 변화들이 대학 공간에서 이뤄지기를 바라며 이 책을 출간한다. 보도자료 2022년 3월부터 모든 대학이 인권센터를 반드시 두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학내 구성원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인권센터나 성평등센터와 같은 기구를 운영하는 대학들이 있었지만, 2021년 2월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이제 인권센터 설치는 모든 대학에 의무사항이 되었습니다. 대학이 구성원의 인권 보호를 위한 전담기구를 필수적으로 두게 된 것은 고무적입니다. 성희롱·성폭력이나 부당한 업무지시, 차별, 괴롭힘과 같은 인권침해를 겪는 구성원들이 찾아 도움을 요청하고 해결을 모색할 수 있는 기구가 마련되고, 이미 인권센터가 있는 대학의 경우 더 효과적으로 기능하도록 개선을 촉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인권이 제대로 존중·보호되고 인권의식을 갖춘 인재를 양성할 수 있으려면, 대학 인권센터 설치·운영 이상의 것이 요구됩니다. 즉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에 인권을 통합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바탕이 마련되어야, 대학 구성원들이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문화를 형성하고, 인권 문제가 발생할 때 그로 인한 피해가 무엇인지를 더 잘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피해자를 보호·지원하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들을 쌓아나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은 2022년 1월 서울대학교 인권센터가 개최했던 네 번의 웨비나에서 발표·토론되었던 내용을 엮은 것입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아드리안 홉킨스, 일본 히로시마 대학 하라스먼트 상담실의 치사토 키타나카, 미국 샌디에이고 대학 리더십 및 교육과학 대학의 데이비드 카프,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 로스쿨 데보라 투르크하이머를 발표자로 초청해 이야기를 들었고, 각 세미나별로 국내 여러 연구자들이 대담자로 참여해 한국 사회 및 대학에 가지는 시사점을 짚으며 토론해 주셨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구미영 연구위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김엘림 교수,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 국립평화분쟁연구소의 이성용 교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신윤진 교수,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의 이주영 교수,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주윤정 교수 등입니다. 이 책을 통해 대학에서 어떻게 하면 인권을 더 잘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리의 사유와 행동의 지평이 넓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대학의 인권센터나 다양성·포용성위원회에서 일하면서 매일 인권, 평등, 다양성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는 책이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대학이 더욱 인권친화적이고 포용적인 방식으로 학문연구, 교육, 업무가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를 바라는 모든 분들에게 생각거리를 주기를 기대합니다. 대학 인권센터의 법적 제도화가 단순히 형식적 발전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대학 내 구성원들의 관계가 변화하고 학문연구와 교육의 과정에 인권의 가치가 스며들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기대합니다. 인권침해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법적 잣대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판단하는 데에만 치중하기보다, 피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피해자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자리로 잘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닦는 일에도 인력과 자원이 배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책에서의 대화와 토론이 그러한 과정에서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1. 평등, 다양성, 포용성의 추구 아드리안 홉킨스의 「평등, 다양성, 포용성의 추구」는 대학이 교육, 연구, 교·직원 인사, 학생 선발을 포함한 대학 운영 전반에서 인권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우리의 사유의 폭을 넓혀줍니다. 홉킨스는 대학 내에서 평등, 다양성, 포용성을 어떻게 실현하려고 노력하는지, 그것이 탁월한 연구와 교육이라는 대학 본연의 목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경험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평등은 누구나 공평한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다양성은 사람들이 지닌 차이가 존중되고 그 가치가 인정되고 수용되어야 한다는 것, 포용성은 공동체 내 기회와 자원을 동등하게 누리며 그 공동체에 소속감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대학 내 하라스먼트 개념과 대응 치사토 키타나카는 「대학 내 하라스먼트 개념과 대응」에서 대학 자치가 마치 강의실이나 연구실에 관한 한 전적으로 교수에게 재량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되곤 하는 일본 대학에서 어떻게 그러한 인식의 장벽을 넘어 캠퍼스 내 하라스먼트에 대한 대응이 발전해 왔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소개합니다. 키타나카는 대학 차원의 하라스먼트 대응을 요구하고 변화를 관찰해 온 젠더사회학자로서, 하라스먼트 상담 조직을 만들고 사건조사를 해서 끝내는 것으로는 하라스먼트 대책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키타나카는 피해가 지속되거나 악화되지 않도록 조기에 소속 학과나 기관과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3. 회복적 정의와 대학 데이비드 카프는 「회복적 정의와 대학」에서 대학 구성원들이 옳고 그름에 대해 생각하고 타인의 관점과 경험을 생각하면서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관계를 강화하고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회복적 정의를 대학에 적용하는 데 필요한 1차적 단계라고 제시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인권친화적인 대학 만들기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카프는 사람들을 같이 대화하고 배울 수 있는 존재로 대하면서, 중요하지만 어려운 도덕적 쟁점에 대해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도덕적 능력을 갖춘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4. 신빙성의 불균등한 배분 데보라 투르크하이머는 「신빙성의 불균등한 배분」에서 여성, 유색인, 장애인, 성소수자, 이민자 등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발언이 자주 무시되고 진실성이 부정당하는 ‘신뢰성 폄하 현상’을 성폭력 피해자의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피해자들은 어떤 일이 발생했고, 그 일은 옳지 않고, 가벼이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처럼 피해자들의 말이 부당하게 무시되거나 평가절하되는 일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피해자의 말이 항상 진실인 것만은 아니지만, 투르크하이머는 피해자의 말에 진실한 증거로서의 효력을 전혀 부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어떤 사건을 판단해야 할 때,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는 입증 원칙’, ‘증거의 우월성 원칙’,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의 원칙’ 등 제도와 맥락에 따라 요구되는 확신의 수준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황에서 형사절차상의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는 입증 원칙’이 요구되는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투르크하이머는 지적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대학에서도 일어납니다. 투르크하이머는 우리의 인식과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법과 문화에 성차별과 권력불균형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은이 소개 아드리안 홉킨스(Adrienne Hopkins) 아드리안 홉킨스는 12년간 영국 옥스팜Oxfam에서 국제개발 경력을 쌓은 후 2012년 성평등 전문위원으로 옥스퍼드 대학의 평등과 다양성 팀The Equality and Diversity Unit에 합류하여 2019년부터 동 기관의 수장으로 재직 중이다. 치사토 키타나카(Chisato Kitanaka) 치사토 키타나카는 일본 히로시마 대학의 하라스먼트 상담실 준교수로 하라스먼트 피해자를 상담하고 문제해결을 지원한다. 사회학자로서 주요 연구 주제는 사회학적 젠더 이론, 여성 폭력, 학내 괴롭힘 등이다. 2017년 『아카데믹 하라스먼트 해결: 대학의 상식을 다시 묻기アカデミック・ハラスメントの解決: 大学の常識を問い直す』를 출간했다. 데이비드 카프(David Karp) 데이비드 카프는 미국 샌디에이고 대학 리더십 및 교육과학 대학의 교수로 『대학을 위한 회복적 사법 소책자 The Little Book of Restorative Justice for Colleges and Universities』를 포함하여 공동체의 신뢰 회복과 학내에서의 회복적 사법 등의 연구 주제에 관한 다수의 저서와 학술논문을 출판했다. 샌디에이고 대학의 회복적 사법 센터장을 역임하고 있다. 데보라 투르크하이머(Deborah Tuerkheimer) 데보라 투르크하이머는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 로스쿨 교수로 형사법과 증거법, 페미니스트 법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뉴욕 지방검찰청에서 5년간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사건 전담 검사로 재직하였으며, 2021년 『신빙성: 왜 우리는 피해자를 의심하고 가해자를 보호하는가Credible: Why We Doubt Accusers and Protect Abusers』를 출간했다.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노동법, 젠더법을 연구한다.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젠더법학의 연구, 교육, 실행에 주력한다. 신윤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국제인권규범과 헌법 및 초국경적 인권문제를 연구한다. 이성용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 국립평화분쟁연구소 교수. 분쟁 해결, 협상 중재, 전후 복구, 평화구축 관련 주제들을 연구한다. 이주영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 부교수. 국제인권규범, 인권이론 및 사회권, 평등을 연구한다. 주윤정 부산대 사회학과 조교수. 인권사회학, 소수자/장애, 생태평화를 연구한다. 차례 발간사 서문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에 인권을 통합하기 평등, 다양성, 포용성의 추구 [아드리안 홉킨스 / 토론 구미영·이주영·주윤정] 대학 내 하라스먼트 개념과 대응: 일본 대학의 사례 [치사토 키타나카 / 토론 김엘림·이주영·주윤정] 회복적 정의와 대학 [데이비드 카프 / 토론 이성용·이주영·주윤정] 신빙성의 불균등한 배분 [데보라 투르크하이머 / 토론 신윤진·이주영·주윤정] 보도자료 다운 받기
- 정치의 약속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08-3 (03340) 출간일: 2019년 6월 28일 정가: 14,000원 제본: 무선 쪽수: 232쪽 판형: 130×210mm 분야: 사회과학 > 사회운동 / 정치학 정치의 약속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믿(으려)는 당신에게 지은이: 하승우 책소개 “괜히 힘 빼지 마, 너만 다쳐” 냉소와 체념이 압도하는 시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정치학 기울어진 정치사회 현실과 가파른 일상에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을 위한 책. 열정을 빼앗고 냉소와 체념만 주는 현실을 어찌할 것인가. 앞으로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이대로 더 빨리 소멸할 것인가? 시간을 벌며 전환의 기회를 잡을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닥친 지금, ‘뭐라도 해보려는 이들’에게 공존의 신호를 보내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정치의 무대’로 초대한다. 아나키스트 정치학자였다가 2년여 녹색당에서 당직자로 일하고 다시 연구활동가의 자리로 돌아오며 ‘숙성의 시간’을 보낸 저자. 원외정당의 자리에서 바라본 기성정치제도의 한계와 전환의 기회를 열기 위해 우리가 꼭 풀어야 할 정치적 의제들을 꼼꼼히 짚어냈다. 보도자료 “오늘 이렇게 소진돼버리면 내일 깨어날 수 있을까?” 요새는 아침에 눈떠 미세먼지 농도부터 체크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지진, 태풍 같은 자연재해나 대형 재난사고도 먼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전 세계 어디나 사회 불평등은 심화되어가고, 버는 돈은 그대로인데 나날이 지출하는 생활비용은 오르기만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해고 문자가 날아올까 봐 두렵고, 성폭력이나 몰카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도 여전하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기분이다. ‘생존’을 염려하며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덜컥 ‘내일 깨어날 수 있을까’ 싶다. 해법을 찾아야 할 정치는 자기들 기득권을 키우는 데만 열중한다. 심지어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위기’가 밀려오건만, 지금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을 죄다 낡은 시대의 정치인들이다. ‘나’와 세계관도 이해도 다른 저들이 과연 도움이 될까. 지금 사회가 닥친 위기들을 몸소 겪어야 할 당사자는 ‘나’인데, 정작 나에게는 아무 권력도 주어지지 않고, 낡은 정치인들만 권력을 고수한다. 뭐라도 해보려고 나서고 싶지만, 주변 반응은 무관심보다 더 심한 냉소가 대다수다. 이 절망을 어찌할 것인가. “당직자로 활동한 2년의 시간을 통해 누적된 고민들” 『정치의 약속』의 저자 하승우는 '풀뿌리 공론장에 대한 이론적 고찰'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2006년부터 대학에서 정치학 강의를 하다가 돌연 '학교를 관두고' 자치와 자립, 시민정치, 아나키즘, 공공성 등을 주제로 독립적인 공부모임을 만들어 활동했다. 아나키스트 정치학자로 불린 것도 이즈음. 2014년에는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기획하고 수도권을 떠나 충북 옥천으로 집을 옮겼다. 2016년에는 ‘덜컥’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을 맡으며 당직자가 되었다. 정당정치 연구자였다면 조금은 자연스러울 수 있었겠으나 풀뿌리운동, 아나키즘을 연구한 이력에 비춰보면 그의 정당정치 입문은 다소 의외이기도 했다. ‘우연찮게’ 당직을 맡아 2년을 보내고 다시 연구활동가의 자리로 돌아온 그는 ‘숙성의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정당은 정치의 중요한 매개임을 확인하는 한편, 원외정당이라는 변경에서 기성정치의 한계를, 그리고 한국 정치제도의 온갖 문제점을 몸으로 부딪치며 깨달은 까닭이다. “기득권 정치세력이 이길 수밖에 없도록 승패가 정해진 경기장” 흔히 한국사회의 불공평함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부르는데, 이에 저자는 그보다 더욱 심각한 수준이며 아예 ‘승패가 정해진 경기장’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정치의 약속』 1부에서는 철저하게 기득권의 이해관계를 보장해주면서 공정하다고 우기는 것이 실상인 정치 관련 법제도의 문제를 꼼꼼히 따진다. 1부에서는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 기득권에게만 유리하게 맞춰진 선거운동법, 근거 없는 선거연령 제한, 착복이 심각한 특수활동비/업무추진비, 불공정한 정치자금과 재정민주주의 훼손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지적한다. 소위 힘 있고 빽 있으면 모든 게 쉽고 그 반대면 세상이 내게 등을 돌렸다고 느껴질 만큼 야박한 현실은 이토록 뒤틀린 정치사회 제도들로부터 기인한다. 이 부당한 현실은 우리에게 냉소와 체념을 주고, 정당한 열정마저 빼앗는다. “위기의 징후를 간파하라”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비집고 들어간 틈”이라고. 당최 틈이 없다고 믿기 쉽지만, 결국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틈을 내고 틈을 바꾸는 전략’이 더욱 중요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틈’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다. 지금을 사는 우리를 위한 전략과, 사회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의제들을 정리한 것이 『정치의 약속』의 2부이다. 2부에서는 탈토건, 탈부패, 탈미세먼지, 탈핵, 안전한 노동, 자기결정권, 탈성장, 성평등, 기본소득, 식량주권, 1인 가구, 공공성 등 21세기의 새로운 상황과 조건에서 우리가 꼭 풀어야 할 의제들을 제시하고 설명한다. 이들 각각의 의제도 중요하지만 하나씩 떼놓고 접근하다 보면 추상적으로만 느껴질 수 있기에, 구체적인 일상의 문제로 실감하도록 의제들의 연관성을 밝히는 데도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의제 간의 연관성을 밝히다 보면 현 문재인 정부 정책의 문제점도 선명해진다. 차별은 반대하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시기상조라 하고, 탈핵은 하지만 핵발전소는 수출하겠다고 하고, 성평등은 지지하지만 낙태죄는 폐지하지 않겠다고 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지만 경제성장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는 등의 정책 기조가 얼마나 ‘모순’인지가 분명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이 ‘갈팡질팡’이라고 지적한다. “경제성장주의, 승자독식주의를 뒤집을 탄소제로 녹색공존 전략” 「나오는 글」에서는 정부가 발표한 ‘제4차 국가균형발전 5개년계획’ 내용을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저자는 정부의 균형발전 계획에 대해 “균형은 거들 뿐 여전히 개발, 발전, 성장이 전략의 중심에 있다”고 비판한다. 선거 때만 되면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퍼지는 ‘균형발전’이라는 말. 대부분이 시설 확충이나 지원 같은 개발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인데 이를 ‘균형발전’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지금이 시설을 늘이고 확충하는 것만 필요한 때인가? 시설이 아닌 사람에게 혜택이 가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균형 발전은 고사하고 일단 안전하고 평온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먼저”라고 일갈한다. 이 목표를 위해서는 정치사회적 전환이 필요하다. 『정치의 약속』은 ‘탄소제로 녹색공존 전략’을 제시하며 전략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한다. 이는 지금껏 ‘발전’에만 초점을 맞춘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논의이자, 새로운 출발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믿(으려)는 당신에게” 생존이 버겁고 사회마저 냉소와 체념을 떠안기는 탓에 우리의 일상이 가파르기만 한 것은 사실이다. 정치는 청와대나 국회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동네, 학교, 직장 같은 생활 속에서 더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정치는 강자보다 약자에게 더 절실하게 필요함을 느끼지만, 현실에서 용기를 내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치의 무대는 점차 사라진다. 정치가 사라진 세계에서 다시 정치의 토대를 다지고 기둥을 세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저자는 “뭐라도 해보려는 사람”들이 더욱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세계에 함께 살고 있다는 인식, ‘정치의 무대’ 위에서 서로를 동등한 배우로 인정하는 인식의 부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더 다양한 ‘정치적 연습’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뭐라도 해보자’는 것은 어렵지만 용기를 내보자는 말인 동시에 ‘한걸음’씩 내딛다 보면 그 한걸음 덕분에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역설하는 ‘정치의 약속’이며, 독자에게 보내는 열망의 신호이다. 지은이 소개 하승우 정치를 배우고 실천하는 연구활동가. 세상의 변화에 비관적이지만 뭐라도 해보려는 사람들의 열정에 기대어 낙관을 보충해왔다. 쉬운 일보다 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했고, 선수들의 속도전보다 평범한 시민들의 느린 변화에 희망을 거는 편이다. 그렇지만 기후위기나 경제위기를 방치하고 초래해온 기득권 세력에게는 강력한 압박과 공격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정치의 장을 넓히고 활성화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땡땡책협동조합 공동대표, 더 이음 연구위원 등의 직책을 맡아왔다. 지은 책으로 『최저임금 쫌 아는 10대』, 『시민에게 권력을』, 『민주주의에 反하다』, 『내가 낸 세금, 다 어디로 갔을까?』(공저), 『껍데기 민주주의』(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없는 사회』, 『아나키스트의 초상』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우리의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틈이다.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 한걸음씩 걸어가는 것이다. 정치의 약속은 그 걸음을 함께할 사람이 조금 떨어진 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 그 타자를 통해 나와 우리를 인식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이 세계가 조금 더 지속할 수 있다는 신호이다. -10쪽 즉 만 25세 이상이 아닌 사람은 어떤 선거에서도 후보로 나올 수 없다. 왜 정치에 나이가 중요한 걸까? 나이를 먹어야 연륜이 쌓이고 정치적인 감각이 생긴다는 얘기도 있지만, 반대로 그렇게 하다 보면 연줄이 생기고 이해관계도 복잡해져 부패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리고 지금 우리 시대는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을 내리는 것이 오류를 범하기 쉬운 시대이다. 그만큼 새로운 윤리,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져야 하고, 그런 일은 당사자들이 주도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그런 젊은 정치가 출현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37쪽 문재인 정부를 믿어야 한다고만 외치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답답함은 정책을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책결정과정에 개입된 수많은 요인들을 보지 않고 특정 개인에 대한 신뢰로 정치과정을 환원시키는 건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72쪽 근본적으로 토건국가는 더 많은 건설을 위한 에너지 중독사회, 자연과 약자를 희생시키는 끊임없는 성장중독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든다. 그리고 토건국가는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고 타자와 약자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정서를 형성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제는 토건과 부패냐, 깨끗하고 숨통이 트이는 삶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탈토건을 통해서만 우리는 다른 사회로 이행할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다. -116쪽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최대한 싼 비용으로 무조건 빨리 빨리’라는 기업 경영과 ‘너희 말고도 일할 사람은 많아’라는 기본적인 노동조건에 대한 무시가 이런 비극을 부른다. 이런 논리는 핵발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최대한 싼 비용으로 무조건 많이’라는 핵발전의 논리와 ‘알아서 잘 대처하라’는 안전불감증이 비극을 부를 수 있다. 핵발전소의 문만 닫는다고 이런 문제들이 자동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한국사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핵발전소이고 외주화된 위험들로 터지기 일보직전인 원자로이다. -133쪽 가치로는 자족이나 절제를 생각했을지언정 경제적인 삶으로는 한 번도 성장을 포기한 적이 없는 한국사회가 탈성장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까? 무척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는 탈성장이 경제보다 환경보호나 생태학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러나 경제학(economy)과 생태학(ecology)의 어원은 eco, 희랍어로는 oikos로 동일하고, 둘 모두 우리가 생활하는 가계/세계를 다룬다. 생태학과 환경운동이 탈성장 ‘운동’의 추진력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탈성장은 사실 자본주의 경제에 관한 이론이기도 하다. -155~156쪽 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성장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군대식 ‘재건’ 이데올로기이기도 했다. 5·16 쿠데타 이후 군사혁명위원회가 내세운 6개의 혁명공약 중 하나는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였다.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민생고는 가상의 상황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관료나 기업주의 부패와 맞물린 ‘근본적인 빈곤’은 사람들의 마음에 무조건적인 성장에 대한 욕구를, 그런 발전이 강력하고 일사불란한 조직을 통해 가능하리라는 믿음을 깊이 심어놓았다. -160쪽 낙태죄 폐지 요구는 낙태를 권하는 게 아니라 낙태를 처벌하는 것에 대한 반대이고 여성을 신체의 권리주체로 보는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낙태죄는 낙태의 문제를 여성에게만 죄로써 묻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가 아닌 자유로운 주체로 본다면, 체외수정기술을 비롯한 보조생식기술의 발달로 확장되는 재생산권을 고려하면, 그와 관련된 정보들이 제공되고 시민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을 보장해야 한다. 죄로 규정되면서 불법으로 임신중단을 해야 하는 것 자체가 시민의 권리와 건강을 위협하는 행위이다. -177쪽 2019년 6월 6일, 제주도의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이 모임을 만들고 제주 제2공항과 동물테마파크 등 대형개발사업을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도지사와의 면담을 공개 신청하며 일주일에 한 번 등교 거부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우리는 그저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갈 제주를 지키고 싶은 청소년”이라 소개하며 “같은 생각을 가지고 숨죽이며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모아 행동에 나설 것”이라 선언했다.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비관하거나 냉소하기에 앞서 이 선언에 응답부터 하자. 이미 누가 나섰지 않은가. -231쪽 차례 들어가는 글_ 미래를 여는 투쟁으로서의 정치 1부 냉소와 체념을 주는 것들 1. 정치판인가, 도박판인가? 이상한 선거제도 2. 공정인가, 밀어주기인가? 기득권에게만 유리한 선거운동 3. 보통인가, 곱빼기인가? 요상한 선거연령 4. 세금인가, 쌈짓돈인가? 어둠의 특수활동비/업무추진비 5. 정치의 발전인가, 퇴보인가? 불공정한 정치자금 6. 자유인가, 관리인가? 무척이나 어려운 정당 만들기 7. 권력인가, 사유물인가? 부당한 정책결정 8. 정부인가, 기업인가? 팔려나가는 공공성 2부 세상이 나아지려면 1. 탈탈탈(탈토건 - 탈부패 - 탈미세먼지) 털어내자! 2. 탈핵 - 안전한 노동 - 자기결정권 3. 탈성장 - 성평등 - 기본소득 4. 식량주권 - 1인 가구 - 공공성 나오는 글_ 고탄소 균형발전에서 탄소제로 녹색공존으로 마치며_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믿(으려)는 당신에게
- 타자들의생태학 | 포도밭출판사
지은이: 필리프 데스콜라 옮긴이: 차은정 ISBN: 979-11-88501-27-4 (93380) 출간일: 2022년 10월 12일 정가: 18,000원 제본: 무선 쪽수: 184쪽 판형: 145×210mm 분야: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류학/고고학 > 인류학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문화연구/문화이론 국내도서 > 사회 정치 > 생태/환경 > 생태/환경 일반 국내도서 > 사회 정치 > 사회비평/비판 > 환경문제 월딩 시리즈 1 타자들의 생태학 자연과 문화의 이원론을 넘어서는 인류학 지은이: 필리프 데스콜라 옮긴이: 차은정 책 소개 새로운 지식과 실천을 모색하는 인류학 총서 《월딩 시리즈》 첫 책 레비스트로스의 계승자로서 현대 인류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론가 필리프 데스콜라의 저서 국내 첫 번역 출간! 『숲은 생각한다』 저자 에두아르도 콘과의 대담 수록 현대 인류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론가인 필리프 데스콜라의 책. 그는 이 책에서 자연과 문화를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관점과 그것에서 비롯하는 이론들의 양상을 비판적으로 논평하면서, 그 자신이 ‘자연의 인류학’이라 부르는 학문적 기획에 대해 논한다. 데스콜라는 이 책을 통해 근대사회와 과학기술의 존재 양식을 재고함으로써 자연과 문화의 이원론을 넘어서는 인류학을 주창하고, 인간과 비인간존재(‘타자’) 간의 ‘관계의 생태학’에서 나타나는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을 주지시키며,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앎과 실천을 통한 존재론적 구성의 변화를 통해 지구 환경과 인류가 처한 위기를 해결할 방향을 모색한다. 보도자료 《월딩 시리즈》를 시작하며 내놓는 첫 책은 필리프 데스콜라의 『타자들의 생태학』이다. 필리프 데스콜라는 레비스트로스의 계승자로 손꼽히는, 현대 인류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론가 중 한 사람으로서 그의 대표작인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2005)가 출간되었을 때 레비스트로스는 이렇게 극찬했다. “이 책은 인류학적 성찰에 새로운 출발점을 제공하며, 앞으로 수 년 동안 우리의 모든 논쟁에 필수적인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타자들의 생태학』은 데스콜라가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를 출간한 후 2년이 지난 2007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초청 강연을 위해 작성한 원고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데스콜라는 서두에서 밝히기를 자신이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에서는 “인간과 비인간 간 관계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일반 모델을 개발”하여 ‘관계의 생태학’을 주창했다면, 『타자들의 생태학』에서는 자신이 ‘자연의 인류학’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논하겠다고 밝힌다. 데스콜라는 현 세기의 가장 중요한 학문적 과제는 자연과 문화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데스콜라는 자연과 문화를 별개의 것으로 구분 짓는 이원론적 관점에서 비롯한 자연 대 문화의 논쟁들을 요약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20세기 인류학에서 ‘말없이’ 있던 자연을 전면에 내세우는 문제의식의 전환을 통해 21세기 새로운 인류학을 전개한다. 데스콜라는 이 학문적 기획을 ‘자연의 인류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데스콜라가 ‘자연의 인류학’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계의 생태학’이라 부르는 것, 이 두 가지는 실로 그가 학자로서 초지일관 천착해온 주요 이론이고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데스콜라는 이 책에서 특히 사회와 환경의 관계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법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자신이 지닌 관점의 인식론적 기반을 명확히 하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전개하는 ‘자연의 인류학’과 ‘관계의 생태학’의 핵심과 맥락을 이해하고자 할 때 『타자들의 생태학』은 더없이 탁월한 안내서 역할을 할 것이다. 『타자들의 생태학』은 어느 평자의 말처럼 “작지만 큰 타격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인간중심주의’를 무너뜨리는 근본적 전환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연과 문화를 구분 짓는 서구적 이원론 개념에서 벗어나 종국에는 그러한 구분마저 무너뜨리고자 하는, 데스콜라가 ‘자연의 인류학’을 내세워 전개하는 강력한 기획을 응축해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데스콜라는 이 책을 통해 근대사회와 과학기술의 존재 양식을 재고함으로써 자연과 문화의 이원론을 넘어서는 인류학을 주창한다. 또한 인간과 비인간존재(‘타자’) 간의 ‘관계의 생태학’에서 나타나는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을 주지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앎과 실천을 통한 존재론적 구성의 변화를 통해 지구 환경과 인류가 처한 위기를 해결할 방향을 모색한다. 지은이 소개 필리프 데스콜라 Philippe Descola 인류학자. 1949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히스패닉 역사학자인 장 데스콜라가 그의 부친이다. 데스콜라는 생클루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파리대학 고등연구원에서 레비스트로스의 지도하에 에콰도르와 페루 국경의 아추아르 족을 현지 조사하여 민족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6년 9월부터 만 3년간의 일정이었고 아내이기도 한 인류학자 앤크리스틴 테일러와 함께한 현지 조사였다. 아추아르 족은 1970년대 당시 아마존 열대우림의 동부지역에 기반한 지바로 족 중 거의 유일하게 바깥 세계와 접촉하지 않은 부족이었다. 데스콜라는 아추아르 족이 인간과 비인간 동식물을 ‘사람’이라는 동일한 차원에서 사고하며 인공적인 구조물과 자연물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여 서양의 우주론과는 별개의 아마존의 애니미즘적 우주론을 정립했다. 이 연구는 『길들인 자연: 아추아르 족의 상징주의와 실천 La Nature domestique: symbolisme et praxis dans l'écologie des Achuar』(1986)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1987년에 프랑스 사회과학 고등연구원 교수로 임명되었고, 2000년 6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콜레주드프랑스에서 ‘자연의 인류학’의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2001년에는 레비스트로스가 설립한 사회인류학연구소(LAS) 소장으로 임명되어 2013년까지 운영했다. 2012년에 국립과학연구원(CNRS)으로부터 금메달을 수여받았고 2014년에 국제 코스모스상을 수상했다. 그는 『자연의 사회에서: 아마존 원주민의 생태학 In the Society of Nature: A Native Ecology in Amazonia』(1994)에서부터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 Par-delà nature et culture』(2005)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주요 저작을 통해 다양한 우주론의 실천적 전개를 가로막는 자연과 문화의 이원론을 넘어서서 인간과 비인간 간 ‘관계의 생태학’을 주창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지식과 실천이론을 제시해왔다. 그는 지금까지도 지구 생태계를 위한 인문학을 모색하며 21세기 ‘존재론의 인류학’을 이끌고 있다. 옮긴이 소개 차은정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규슈 대학 한국연구센터 방문연구원과 히토쓰바시 대학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숲은 생각한다』, 『부분적인 연결들』, 『부흥문화론』(공역)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시리즈 소개 월딩 시리즈 월딩(worlding)은 있기(being)에서 하기(doing)로 삶의 문제의식을 전환합니다. 《월딩 시리즈》는 지구생명체 간의 공생 속에서 새로운 지식과 실천을 모색하는 인류학 저서들을 소개합니다. 1. 『타자들의 생태학』 필리프 데스콜라 지음 / 차은정 옮김 2.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지음 / 존재론의 자루 옮김 3. 『라인스』 (근간) 팀 잉골드 지음 / 김지혜 옮김 4. 『오늘날의 애니미즘』 (근간) 오쿠노 가츠미, 시미즈 타카시 지음 / 차은정, 김수경 옮김 책 속에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입장의 대립은 다음과 같다. 한쪽에서는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소위 천연자원의 사용과 통제와 변형이 초래하는 제약의 측면에서 고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보다도 자연이 그 한계와 기능 방식에서 동질적이라고 해도 상징적인 측면에서는 이질적이므로 자연의 상징적 조작의 특수성을 통해 인간과 환경의 관계에 접근하자는 사람들이 있다. 두 입장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들은 모두 자연과 사회의 이원성에 관해 같은 전제를 공유하고 있고 게다가 이 전제에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전제가 인류학적 접근의 여러 단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함으로써 이 전제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 12~13쪽 우리는 이 난관들을 어떻게 헤쳐갈지를 자문할 것이다. 자연과 사회, 인간과 비인간, 개인과 집단을 이전과 다른 새로운 아상블라주(assemblage)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 (...) 관계의 생태학은 이러한 재구성을 통해 조성될 것이다.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그 조짐의 근거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며, 인류학은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는 데에 동의해야만 그러한 재구성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 14쪽 나는 왜 인류학계에 불었던 ‘유물론’과 ‘유심론’의 대립적인 논쟁을 이토록 파고드는 것일까? 내가 채택한 이 단순한 용어는 미국을 한때 훑고 지나간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 학문 분야는 곤경에 처하자 지적 수단을 찾아 난관을 극복했고, 나는 그저 지난 국면을 트집 잡을 뿐이지 않은가? 전혀 아니다. 자연주의적 환원주의와 기호론적 관념론은 여전히 건재하고,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모든 이들이 놓일 수밖에 없는 인식론적 연속체의 양 축을 형성하고 있다. - 45쪽 연속체의 한쪽 끝에서는 자연이란 인지적 보편성, 유전적 인자, 생리적 욕구, 지리적 제약 등을 마구잡이로 수집할 수 있게 하는 편리한 포괄용어이며 문화는 그러한 자연의 산물이라고 단언할 것이다. 반대쪽 끝에서는 자연이란 내버려두면 언제까지나 말이 없고 그 자체로는 불가사의하며 문화가 자연에 부착하는 기호와 상징으로 번역될 때에만 유의미한 현실로서 존재하게 된다고 역설할 것이다. - 46쪽 자연적인 문화에서 문화적인 자연으로 이어지는 직선 축에서는 평형점을 결코 찾을 수 없고 단지 어느 한쪽 극에 가까운 타협점을 찍을 뿐이다. 근대사상의 여식인 인류학은 요람에서부터 이 문제를 알았고 그 후 지금까지 풀려고 애써왔다. 마셜 살린스가 『문화와 실천이성』(1976)에서 이야기한 비유를 빌어 말하면, 이 과학[인류학]은 지성의 제약과 관습적 실천의 결정성이라는 사방의 벽에 갇혀 한 세기 이상 감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일 뿐인 죄수와 같다. - 48~49쪽 이를테면 레비스트로스는 루소의 공로가 자연과 문화의 관계를 문제시함으로써 민족학 분야를 창설한 것이라고 인정한다. 미셸 푸코가 『말과 사물』(1966)에서 “모든 민족학의 일반 문제는 바로 자연과 문화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문제”라고 썼을 때, 그는 레비스트로스의 관점과 공명한다. (...) 나 또한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글을 써왔기 때문에 저들의 운명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나는 「자연의 사회들과 사회의 자연」(2002)이라는 논문에서 “사회적 실재의 구축 원리는 기본적으로 인간 존재와 그의 자연환경 간의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라고 썼다. - 55~56쪽 우리가 알던 자연은 인간이 이해하고 통제하려 하고 그 인간에게 변덕을 부려 고통을 주면서도 가치, 관습, 이데올로기가 설 자리가 없는 자율적인 규칙성의 장을 구성하는 영역이었다. 이 환상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지구 온난화, 오존층 파괴, 특화된 줄기세포 배양 등을 둘러싸고 자연은 어디서 멈출 것이며 문화는 어디서 시작될 것인가? 확실히 이런 질문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 - 115~116쪽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통한 사회생활의 일반적 지식으로서 이해되는 인류학은 이렇듯 다양한 접근법을 한데 엮는 데에서 특히 유리한 위치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첫째 인류학이 어떤 면에서 자연과 문화의 관계에 관한 철학적 문제의식을 계승해왔기 때문이다. - 118쪽 요컨대 내가 집념하는 자연과 문화의 대립에 대한 비판은 자연적 대상과 사회적 존재의 관계성을 다루기 위해 사용된 개념적 도구의 광범위한 재작업을 시사한다. 이 대립이 수다한 비근대적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또는 서구 사상의 발전 과정에서 뒤늦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근대 세계의 자연주의(naturalism)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동떨어진 문화를 판단하는 기준을 구성하기는커녕 세계와 타자의 객관화를 지배하는 더욱 일반적인 스키마의 가능한 표현 중 하나일 뿐이다. 자연주의는 그러한 새로운 분석적 장에 통합할 필요가 있다. -121쪽 세계의 구성요소와의 관계를 정의하기 위해 인류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스키마는 정신 구조의 형태로 존재하며 그중 일부는 선천적이고 일부는 사회생활의 속성에서 유래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조가 모두 서로와 양립할 수는 없으므로, 모든 문화 시스템 그리고 사회적 조직화의 각 유형은 비록 우발적이지만 역사 속에서 종종 비슷한 결과와 함께 반복되는 여과 및 분류와 조합의 산물이다. 이 요소들의 성질을 명시하고 그 구성의 규칙을 해명하고 그 배열의 유형학을 작성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류학이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과제이다. - 122쪽 차례 영어판 서문 서문 1장 조개 논쟁 사이펀의 적절한 사용에 관하여 이론상의 생태학 레비스트로스의 두 자연 2장 인류학적 이원론 능산적 자연, 소산적 자연 대상의 역설 논란과 수렴 - 환원의 궤도 - 번역의 궤도 3장 각자의 자연 속으로 진실과 신념 근대인의 미스터리 일원론과 대칭성 보편주의와 상대주의 결론 대담 횡단하는 우주론과 혼의 윤리학 옮긴이 후기 자연의 인류학과 관계의 생태학 찾아보기 보도자료 다운 받기
- 숨통이 트인다 | 포도밭출판사
2015. 12. 21 출간 / 135×210mm / 196쪽 / 10,000원 숨통이 트인다 녹색 당신의 한 수 지은이: 황윤·이계삼·김주온·구자상·신지예·김은희·남우근·이유진·장서연·하승수·한재각 보도자료 절망의 시대에 부르는 희망의 노래 참담한 권력정치를 ‘삶의 정치’로 바꾸려는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다섯 명의 진솔한 출사표 뒤집힌 세상을 바로잡고 막힌 숨통을 트이게 할 녹색당의 열 가지 ‘신의 한 수’ 내년 2016년 4월 13일은 제20대 총선일. 숨통을 옥죄는 갑갑한 세상을 바꾸려는 녹색당은 이미 준비된 행보를 시작했다.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를 다섯 명 선출하고 당의 핵심 정책 의제들을 정리했다. 한국 정치사를 통틀어 봐도 유례없는, 그 어느 정당보다 빠른 행보이다. 준비된 정당, ‘정당다운 정당’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은 새로운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다섯 명의 희망의 출사표와 세상을 뒤집을 실력을 가진 정당으로서 녹색당이 펼칠 핵심 정책 의제들을 집약한 한 권의 책이다. 이권에 눈멀어 아귀다툼이나 하는 정치를 뒤집으려는 녹색당의 ‘꿈’과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정책과 비전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녹색당의 실질적인 ‘방법’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소신과 체험을 진솔하게 드러낸, 참으로 생소한 출사표 2012년 3월에 창당한 녹색당은 이제 창당 4년째다. 4년 동안 정당으로 활동했지만 원외정당이라 활동이 쉽지 않았다. 제20대 총선에서 녹색당은 원내정당이 되고자 벼르고 있다. 그리하여 가장 먼저 비례대표후보를 선출하고 후보와 정책 알리기에 돌입했다. 녹색당은 2012년 창당하자마자 치렀던 제19대 총선에서는 0.4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10만 표를 조금 넘는 득표였다. 이후 녹색당은 한국 정치사에 드문 대안 정당으로서 권력다툼을 일삼는 타 정당들과 다르게, ‘정치의 부재’로 고통 받는 곳들을 찾아다녔으며, 탈핵, 기본소득, 동물권, 소수자, 기후변화 의제 등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해온 영역을 널리 알리며 숨통 트이는 역할을 해왔다. 그간의 눈에 띄는 활약 덕분에 이번 총선에서는 뚜렷한 비약이 기대된다. 그래서 제20대 총선이 녹색당의 주요한 디딤돌이 될 전망이다. 그 주요한 역할에 선출된 사람들이 영화감독 황윤(1번), 밀양765kV 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 이계삼(2번),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운영위원 김주온(3번), 부산시민햇빛에너지협동조합 이사장 구자상(4번), 오늘공작소 대표 신지예(5번) 후보이다. 정당들에게 비례대표 후보 선출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이때마다 갈등이 격화되는 일도 나타난다. 이때가 되면 전략공천이니 우선공천이니 하는 말도 들려온다. 녹색당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녹색당은 당원들의 추천으로 예비후보를 정하고, 그렇게 정해진 예비후보들이 지역 순회 토론회를 다니며 당원들을 만나고, 이후 당원 누구나 참여하는 선거를 통해 공정하게 후보를 선출했다. 그렇게 선출된 다섯 명이 『숨통이 트인다』에 정치인으로서의 출사표를 밝힌 다섯 명의 후보이다. 이들의 출사표가 참으로 생소한 것은, 그 진솔함 때문이다. 우리는 정치인으로부터 자기 당을 세상을 어떻게 바꾸겠다거나 사회를 어떻게 이끌겠다는 등, 목청 높인 말들을 흔히 접해왔다. 녹색당 후보들의 출사표에는 그들이 살아온 삶과 그들의 품어온 소신이 진솔하고도 강렬하게 담겨 있다. 권력정치가 아닌 ‘삶의 정치’를 하려는 이들다운 ‘참으로 생소한 출사표’이다. 정치의 부재, “우리는 환대받지 못했습니다” 국가에 배반당한 밀양 주민들은 ‘정치’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국회의원이 밀양 현장을 찾으면 어르신들은 그들 앞에서 넙죽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살려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이 싸움에 들어와 활동하던 지난 4년 내내 저는 단 하루도 이 나라의 정치를, 정확히 말하면 ‘국회’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저는 지난 4년 동안 수십 차례나 어르신들과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자료를 들고 국회 의원회관을 누비며 호소하고 또 호소하였습니다. 때로는 진상조사단 구성을 촉구하면서, 때로는 공사 재개를 막아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때로는 밀양 주민들이 한 목소리로 반대했지만 밀양 싸움을 잠재울 비장의 무기처럼 선전되던 이른바 ‘밀양법’(송·변전시설 주변지역 지원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약칭 ‘송주법’) 제정을 막아내고자, 국회의원이 안 되면 보좌관이라도 만나기 위해 의원실을 누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환대받지 못했습니다. ‘정치의 부재’로 고통 받고 있는 주권자들이 주권을 위임받은 자들에게 아주 작은 책임이라도 질 것을 부탁하는 자리에서 외판원처럼, 옹송거리며, 고개 조아리며, 굽신거려야 했습니다. 어르신들과 일정을 마치고 국회를 떠나올 때마다 저는 진한 비애를, 외로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수십 번 국회를 다녔지만, 단 한 번도 이런 감정 속에 빠지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 <이계삼 – ‘정치政治’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에서 “지금 대한민국에 ‘정치’가 있는가?” 이것은 중요한 물음이다. 국회의원들은 기득권 유지에만, 정확히 말하면 ‘재선’에만 관심이 쏠려 있고, 그들에게 역할을 위임한 국민들을 위한 정치는 실종되었다. ‘옹송거리고 고개 조아리고 굽신거려도’ 선거 때가 아니면 쉽게 만날 수조차 없는 이들이 국회의원이다. 우리가 체감하는 삶의 문제는 높은 곳에서 군림하는 청와대, 기득권 싸움에 혈안된 기성 정당들의 눈먼 다툼 탓에 갈수록 정치로부터 배제되고 있다. 이러한 ‘정치의 부재’ 덕분에 우리 삶은 더욱 가파르게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저들의 정치’가 계속 횡횡하게 내버려두면, 우리의 자리는 점점 가팔라지고 살 만한 세상은 더욱 멀어질 것이 자명하기에 결국 “가장 정치와 멀리 있을 법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다. 이들이 하려는 것은 다름 아닌 ‘환대의 정치’, ‘우리들의 정치’다. 기존의 정치에서 지워지고 배제되어온 목소리들을 끌어당기고 그를 위해 목청을 울리는 정치, 그리하여 ‘저들’의 탐욕이 아닌 ‘우리’의 권리를 위해 힘쓰는 정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우리들의 정치, 삶의 정치’, 새로운 정치의 청사진 녹색당의 실질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한편에서는 녹색당이 당위를 넘어 정책 의제를 실행할 실력이 있는지를 궁금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녹색당은 오히려 지금을 녹색당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로 삼고 있다. 실제 녹색당은 2012년 창당 당시부터도 ‘정책 의제가 가장 훌륭한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창당 후 4년 간은 ‘의제를 선도하는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세부적인 정책과 로드맵에서도 녹색당은 다른 정당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시민사회단체와 풀뿌리 지역 네트워크들과의 결합도 탄탄하여 녹색당 의제들을 실행할 자원도 어느 정당 이상으로 갖추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숨통이 트인다』에서 재원 마련 방안부터 단계별 실행안의 개요를 소개하고 있는 기본소득 의제다(117~121쪽). 1단계에서는 중산·서민층의 직접적인 세부담을 증가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재원을 마련한다. 왜곡된 조세제도를 정상화하고 불로소득과 탈세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한편, 예산낭비를 줄여 재원을 마련한다. 이렇게 마련한 재원 103조 원으로 만 15세~만 29세의 청소년·청년, 만 65세 이상 노인, 장애인, 농·어민에게 월 40만 원의 기본소득을 우선 지급할 수 있다. 만 15세부터 지급하는 방안을 제안하는 것은 그 시점이 의무교육이 종료되는 시점이고, 알바노동 등 저임금·불안정노동이 시작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농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이유는 농산물시장개방으로 인해 농가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본소득 같은 정책 없이는 농업 자체가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경우에는 경제활동참가율이 38.7%로 국민 평균인 62.1%에 비해 한참 낮은 실정이고, 장애인연금제도가 있지만, 요건이 까다로워서 장애인 중에 소수만 받고 있고, 금액도 낮은 실정이다(2015년에 20만2,600원). 따라서 장애인에게도 기본소득을 우선지급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1단계에서 생태세를 시범적으로 도입하여 부분적으로 생태배당을 실시한다. (…) 2단계에서는 1단계에서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보편적인 소득세 증세와 생태세의 전면도입을 통하여 추가재원을 마련해나간다. 2단계에서는 전 연령대에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숨통이 트인다#5 – 기본소득>에서 ‘고래 뱃속의 이물질’이 되고자 고래 뱃속의 이물질. 이계삼 후보가 비례대표 예비후보에 출마한 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는 녹색당이 국회의원을 당선시킨다한들, 현실적으로 고작 한두 명에 불과한 국회의원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겠냐는 회의론에 대한 나름의 답변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물질은) 당장 고래 전체의 궤도를 좌우하지는 못해도, 끝없는 저항으로써 고래를 괴롭히는 불량스러운 존재로서 고래에 영향을 준다.” 이처럼 작지만 큰 존재감을 끼쳐서 한국 정치와 사회 그리고 민초들의 삶이 이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다. 녹색, 당신의 한 수! 녹색당, 신의 한 수! 지금 한국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먹고살기’가 힘든 파국으로 다가가고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삶의 질이 추락하고 있으며 기득권이 득세하는 사회 구조에서 각자생존을 강요당하고 있다. 기후변화 문제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를 덮칠 재난으로써 날로 심각해져간다. 이런데도 특히 한국 사회는 아직도 ‘경제성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결과로 FTA 및 TTP, 수출 증대, 대기업 중심의 성장안, 대규모 토건 개발, 노동법 개악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진정 “함께 살자”고 외치는 정당, 공생을 위해 목소리를 모으고 전략을 세우는 정당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숨통이 트인다』는 함께 사는 ‘그날’을 위한 ‘당신의 한 수’를 제안한다. 그리고 꿈과 실력을 가진 정당으로서 ‘녹색당’이 우리의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책 속에서 꿈꾸지 않으면 변화가 없습니다. 반대로 꿈꾸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실이 됩니다. 이 책은 녹색의 꿈을 꾸며 정치를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사람들이 바라는 변화를 담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겪는 모든 삶의 문제들은 정치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풀려면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숨통이 좀 트인다’는 이야기가 우리들 입에서 절로 나오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그날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 정치의 변화를 위해 당신이 놓을 한 수는 무엇인가? 당신의 실천은, 당신의 한 표는 어디로 갈 것인가? 너무 늦지 않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는 글>에서 이 나라가 죽음의 땅이 되어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약자 중의 약자인 아이들을 위해, 비인간 동물들을 위해, 여성들을 위해, 농민과 노동자들을 위해, 소수자들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유일한 서식지인 지구를 위해, 저는 이 나라 국회에서 마이크를 들고 목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황윤 – 뭇 생명을 돌보는 살림의 정치>에서 제게는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머리’ 속에서 나와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해보자’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에서 나와 ‘나 자신이 이렇게 해보려 하는 것’이 바로 희망”이라는 것을 저는 문자 그대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의 정당이 바로 녹색당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녹색당이 국회로 들어가 저들의 법령과 제도가 구축한 성채에 부딪쳐 싸워야 합니다. <이계삼 – ‘정치政治’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에서 녹색당의 제안은 기존에 없던 것이기 때문에 상상하기 어렵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엄두조차 못 내던 것입니다. 이는 제가 기본소득을 이야기해오며 늘 마주치던 현실과 닮았습니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원전을 멈춰도 전기가 있다고? 현금 소득이 조건 없이 보장되어도 일을 할 거라고? 청소년들이 정치에 참여한다고? 말도 안 돼. 상상할 수 없어’라는 현실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어렵다고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시도해야 합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일지라도 용기 내어 걸어야 합니다. <김주온 – 떠날 수 없는 이들의 정치>에서 석유로 조직된 사회의 모든 종류의 불평등은 빛나는 태양경제, 생태경제의 틀 속에서 해체되고 재조직되어 새로운 생명 감각의 토대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럴 때 모두가 자유(自由), 즉 ‘자기의 이유’를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구자상 – 강과 바다, 태양의 정치>에서 저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지역재생이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 내의 공동체 안에서 공유(共有)를 통해 삶의 규모를 조절하고, 가족과 이웃을 돌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낡은 주택을 부수고, 새로운 아파트를 짓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동네를 돌보며 가꾸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개인의 삶은 바뀌더라도 시스템을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틀, 즉 자기통치의 기술로서의 정치를 실현해나갈 때에야 가능합니다. <신지예 – 더불어 사는 자립의 정치>에서 차례 여는 글 숨통 트이는 정치를 위해 – 하승수 황윤 <뭇 생명을 돌보는 살림의 정치> [숨통이 트인다 #1 동물권]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품위 있는 나라를 만들자 – 장서연 [숨통이 트인다 #2 먹거리·농업]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먹거리, 식량주권과 농업 지키기 – 한재각 이계삼 <‘정치政治’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숨통이 트인다 #3 탈핵] 전기가 남아돈다, 탈핵은 가능하다 – 한재각 [숨통이 트인다 #4 민주주의] 스스로 다스리는 시민, 가장 보통의 민주주의 – 김은희 김주온 <떠날 수 없는 이들의 정치> [숨통이 트인다 #5 기본소득] 국민소득 4만 달러 대신 월 40만 원 기본소득을! – 하승수 [숨통이 트인다 #6 성평등·인권] 차별 없는 나라 만들기, 성평등과 성소수자인권을 구현하자 – 장서연 구자상 <강과 바다, 태양의 정치> [숨통이 트인다 #7 기후·에너지]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위협, 석탄화력발전과 자동차를 줄이자 – 이유진 [숨통이 트인다 #8 노동·일자리] 노동시간 단축과 녹색 일자리, 인간다운 삶과 자연을 되찾자 – 남우근 신지예 <더불어 사는 자립의 정치> [숨통이 트인다 #9 주거] 집은 모두를 위한 공유재, 머무를 권리와 토지정의 – 김은희 [숨통이 트인다 #10 교육] 교육의 판을 다시 짜자 – 김은희 지은이 소개 황윤 영화감독 이계삼 밀양765kV 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 김주온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운영위원 구자상 부산시민햇빛에너지협동조합 이사장 신지예 오늘공작소 대표 김은희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남우근 녹색당 정책위원 이유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녹색당 소수자인권특별위원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한재각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소개(출처:녹색당 논평) 황윤 다큐멘터리 영화 <작별>, <침묵의 숲>, <어느 날 그 길에서>로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의 삶, 두만강 백두산 유역 야생동물들의 위기, 로드킬 등의 문제를 한국사회에 제기하는 역할을 했고, 2015년 개봉한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공장식 축산과 지나친 육식의 폐해를 일깨우며 동물권 운동사에 큰 획을 그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초청되었고,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우수상, 부산국제영화제 운파상(최우수 한국다큐멘터리상), 서울환경영화제 대상,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 환경예술인 대상 등을 수상했다. 이계삼 2001년부터 11년간 중등 국어교사로 재직했던 교육자이자 교육운동가이다. 또한 <녹색평론>, <우리교육> 등 각종 매체에서 빛나는 필치로 독자들을 감동시켰던 문필가이며, 2009년 풀뿌리협동조직인 ‘밀양두레기금너른마당’을 창립한 풀뿌리 운동가이다. 2012년 2월 교직을 그만두고 농업학교를 준비하던 도중 밀양송전탑반대 주민의 분신 사망을 계기로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김주온 한국 기본소득 운동의 대표적인 활동가로 꼽힌다. ‘모든 시민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올해 3월 녹색당 대의원대회에서 당론으로 공식 채택된 바 있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2015년 6월에는 15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총회에 참가해 <한국 청년들의 불안정한 삶과 기본소득>을 발표했다. 대학원에서 여성주의 문화연구를 공부 중이다. 구자상 ‘환경’, ‘생태’보다 ‘공해’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던 1985년 한국공해문제연구소 부산지부 간사를 맡았으며 부산환경운동연합에서 사무처장과 대표를 거쳤다. 녹색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지난 2012년 총선 부산 해운대·기장을에 출마해 ‘핵발전소 폐쇄’를 역설했다. 현재 부산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며, 부산시민햇빛에너지협동조합 이사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신지예 지역운동과 결합된 서울시 마포구의 사회적기업 ‘오늘공작소’ 대표다. 사회적기업 ‘이야기꾼의 책공연’에서도 재직했다. 2004~2005년 한국청소년모임 대표를 지내며 청소년인권운동, 두발자유운동을 전개했다. 현재 서울시 청년정책위원회 주거분과위원장으로도 활동 중이며, ‘사회적경제’, ‘풀뿌리운동’, ‘청소년인권’, ‘주거권’ 등을 화두로 활약하고 있다.
- 화학물질, 비밀은 위험하다 | 포도밭출판사
135×210mm┃336쪽┃17,000원┃ 2017년 11월 17일 출간┃ ISBN 979-11-88501-01-4 (03330) 화학물질, 비밀은 위험하다 지은이: 김신범 보도자료 “화학물질로 인한 재앙은 앞으로 더 많이, 더 크게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 중에 또 무엇이 우리를 죽일지 모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면 말이죠” 인류가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종류와 사용량이 계속 늘고 있다. 우리 주변의 화학물질은 벌써 수만 종에 이르고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난다. 이제 이 물질은 누구도 피할 수 없을 만큼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그런데 자칫 생명을 앗아갈 만큼 치명적이기도 한 화학물질들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일일이 독성을 파악하고, 용도에 맞게, 올바른 방식으로 쓰도록 규제되고 있을까. 짐작하듯이 그렇지 못하다. 문제가 좀 심각하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지울 수 없는 큰 아픔과 상처는 물론,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숱한 과제를 드러냈다. “도대체 정부는 뭘 했단 말입니까?” 이렇게 따지는 것도 한계를 드러냈다. 스스로 신경 쓰지 않으면 아무도 돕지 않는다. 그런데 화학물질은 워낙 새로운 물질이다 보니 개인이 혼자 똑똑해져서 위험을 피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같이 안전해져야 한다. 문제는 그 길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 이윤에 눈 먼 기업들이 진실을 감추기 위해 펼쳐드는 ‘비밀’이라는 방패가 그것이다.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밀과의 싸움’이 필요한 것이 그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도 그런 싸움을 해온 사람이 있다. 수은 공장 노동자인 문송면의 죽음이 계기가 되고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의 결과로 세워진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창설 때부터 일해온 김신범 실장이다. 《화학물질, 비밀은 위험하다》에는 그가 바라보는 한국 사회 화학물질 관리 실태의 취약점들과 ‘같이 안전한 사회’를 위해 나부터 할 일들이 안내되어 있다.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하길 바라는 모두를 위한 ‘화학물질 이야기’다. 화학물질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우리 최초의 합성치약인 오돌(Odol)이 판매된 것은 1903년이었고 합성세제 퍼실(Persil)이 등장한 것은 1907년이다. 가정용 합성페인트의 등장은 1930년대였고, 플라스틱이 장난감과 주방용품, 가구 등에 사용된 것도 이때부터다. 미국에서의 합성농약 사용량은 1947년에 1억2천4백만 파운드였다가 1960년에는 무려 6억2천7백만 파운드로 늘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인류의 화학물질 생산과 소비는 급증했다. 한국은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의 시작과 함께 화학물질 생산이 본격화되었고, 일상생활 속으로 화학물질과 그 제품이 확산된 것은 1970년대 이후라 할 수 있다. 그로부터 얼마 안 된 1988년에 문송면의 수은 중독과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사건이 터졌다. 2011년에는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일어났다. 화학물질 생산과 소비가 급증하는 만큼 그로 인한 피해 또한 급증한다. 이 추세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더욱 심각한 상황을 맞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면 말이다. 안전한 일상을 위한 변화의 길목을 가로막는 큰 방해물들이 있다. 그것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에서 드러났듯, 안전에 무감하고 탐욕에 눈 먼 기업들 및 그들을 비호하는 정치권력이다. 이제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까. 국내 화학물질 관리 체계의 중요한 변곡점을 이끈 주역이자 오랫동안 사회적 약자들의 안전한 노동을 위해 활동해온 저자는 《화학물질, 비밀은 위험하다》에서 그 길을 신중히 안내한다. 화학물질 관리 실태를 보라 환경부는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화학물질을 4만 4천여 개로 추정하는데, 이중에 독성이 파악된 것은 15%에 불과하다. 나머지 3만 7천여 개의 물질은 독성 파악조차 안 된 실정이다. 독성을 모른 채 그냥 쓰고 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사실 이것은 비단 우리만의 실정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화학물질 관리가 이뤄지던 초기인 1970년대 미국에서부터 계속돼온 실정이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이 상황을 어렵다고 놔둘 게 아니라 보다 효과적인 정책과 엄밀한 규제를 통해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일례로 말하는 것이 유럽의 REACH(Registration, Evaluation, Authorization, and Restriction of Chemicals) 같은 제도다. 이 제도의 핵심은 “노 데이터, 노 마켓(No Data, No Market)”으로 표현된다. 독성과 용도에 대한 데이터 없이는 화학물질과 그 제품을 시중에 내놓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화학물질로 인한 위험은 유럽뿐만이 아니라 인류 공통이다. 당연히 한국에서도 화학물질 관리 수준을 정비하자는 사회적 요구가 있었고 그 결과 2013년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화평법(화학물질의등록및평가등에관한법률) 제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법이 어떤 세력들에 의해 그만 무력화된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위험하게 만드는가 가습기살균제, 살충제 달걀, 발암물질 생리대… 이 사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팔기 이전에 안전을 충실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다. 무슨 소린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말이지? 답은 간단하다. 우리 사회는 기업에게 사전에 위험을 파악하고 안전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정책과 체계가 없다. 앞서 적었듯, 이른바 화관법과 화평법이 2013년에 제정되었다. 그런데 이때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기업들은 대놓고 “이제까지 법을 안 지켜도 되었는데 갑자기 법을 지키라고 하면 망하란 소린가” “제품 내 화학물질 독성을 일일이 다 파악하라고 하면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논리로 이에 맞섰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기업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라’고 강력하게 지시하고 나서면서 화학물질을 제대로 관리하겠다는 기대는 그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다.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첫째로 필요한 것은 기업들이 사용한 화학물질 취급 정보다. 그런데 2013년 기준 국내 기업들 중 86% 가량이 화학물질 정보를 ‘영업 비밀’을 이유로 공개하길 거부했다. 이것들은 정말로 영업상 중요해서 비밀이었을까. 아니다. 심지어 회사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려둔 정보까지 공개 요구 시 영업비밀이라고 우기는 일도 있었다. 공개하라는 강제가 없으니 그냥 감추는 것이다. 2015년 화관법 개정 시행 이후로는 공개 정보 비율이 많이 늘었지만 아직 과제는 많다. 가만 보면 화학물질 정보가 영업비밀일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이 일반인들 사이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저자는 미국 환경부를 방문했을 때의 경험을 들려준다. 저자는 미국 환경부 직원을 통해 미국에서는 영업미밀 인정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미국은 회사가 영업비밀을 주장하여 얻고자 하는 이득, 즉 시장 내 독점적 지위보다 제품 구매자가 제품 정보를 온전히 이해하고 가격과 안전과 성능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더 우선시한다. 정부가 영업비밀을 인정해주는 것은 기업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라고 본다. 이 차이인 것이다. 이렇게 상식적인 일이 왜 우리 사회에서는 그토록 어려웠을까. 결국 권력이 누구 편인가의 문제이다. 소비만 안전해지는 길은 없다 생산을 바꿔야 모두가 안전해진다 저자 김신범은 처음에 노동자들에게서 발생하는 직업성 암의 원인을 추적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 노동조합에 들어가 활동하다 깨달은바, 노동자들이 처한 여러 위험들을 노동조합을 통해 스스로 해결하도록 도와야겠다고 생각하고 금속노조 내 ‘취약노동자분과’를 만들어 건강권 캠페인들을 추진한다. 많이 알려진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환경미화원에게 씻을 권리를> 등이 그가 추진한 캠페인들이다. 이후 우연한 계기로 화학물질 연구자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는 관련 연구조사뿐 아니라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발암물질목록> 만드는 작업을 시작으로, 여러 알권리운동과 조례제정운동 등을 벌이며 국내 화학물질 관리 체계를 정의롭게 바꾸고자 힘써왔다. 그는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를 만나는 일로 이력을 시작하여, 지역을 만나고, 소비자를 만나면서 접점을 넓혀왔다. 화학물질 연구자이면서 그의 관심은 늘 노동자, 마을, 이웃이다. 여러 영역을 거친 끝에 그가 말하는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해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생산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는 석면 베이비파우더 사건을 기억한다. 갓난아기를 위한 제품에서 치명적인 석면이 검출된 사건이다. 이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베이비파우더 제품에서 석면이 검출됐다면, 그걸 만든 현장 노동자들도 석면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제품 생산 현장에서부터 안전을 규제했다면 저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예도 말해보자. 만약 공장에서 독성물질을 사용하고 있다면 누출사고가 발생 시 지역주민에게 피해가 미친다. 문제가 이러하다면 무엇부터 해결해야 할까? 굴뚝을 감시하는 것인가? 주변 하수도 감시를 철저히 하는 것인가? 보다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해법은 공장의 독성물질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이것부터 시작해야 문제가 차례로 해결될 수 있다. 생산에 주목하고 생산을 바꾸자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저자는 이러한 가르침을 전해준 이들로 켄 가이저 교수 등을 책에서 소개하기도 한다. 발암물질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엄청난 영감과 영향을 준 국제암연구소의 로렌초 토마티스 역시 각별히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스승으로 소개하는 저들의 공통점은 화학물질 자체만이 아니라 늘 이웃에 관심을 기울이고, 어떤 경우에도 결코 탐욕의 편에 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 자신을 믿자! 긴 화학물질 이야기의 끝에서 찾은 결론이 놀라울 수도 있다. 저자는 우리 자신을 믿자고 말한다. 2009년에 직접 나서서 힘을 모아 <발암물질목록1.0>을 만들고 발표할 때도 실감했던 바다. 정부에게, 혹은 힘 있는 누군가에게 조르기만 한다고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직접 나서서 움직일 때 함께할 이들이 나타난다. 저자는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큰 목표 역시 이와 같이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전망한다. 그리고 생산 따로 소비 따로 동떨어지지 말고 계속 만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화학물질 문제는 개인들이 각자 똑똑해져서 안전해지기에는 한계가 많다. 전문가도 낱낱의 화학물질을 다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며 우리는 일상 속에서 무방비의 순간들에 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화학물질, 비밀은 위험하다》는 곧 ‘너의 안전이 나의 안전’임을 설득한다. 같이 안전해지는 것만이 진짜 안전이라고 알려준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 자신의 힘을 믿고, 우리가 원하는 안전에 대해 같이 목소리 내자고 말을 건넨다. 지은이 소개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 발암물질을 조사하고, 시민과 노동자를 위한 화학물질 알권리 정책을 만드는 연구자이며,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쓰는 활동가다. 2016년 국회 가습기살균제 특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마을 만들기 사업에 던지는 질문》(공저), 《환경정의, 네가 뭔지 알고 싶어: 우리와 다음을 생각하는 청소년 환경정의 교과서》(공저) 등이 있다. 추천의 말 달걀에 살충제가 있고 생리대에 발암물질이 있다는 뉴스에 화가 나는가? 당신의 혈액에는 달걀과 생리대에서 발견된 것보다 더 위험하고 더 많은 유해물질이 있을지 모른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유해물질 사고의 희생자가 자신이 아니어서 안도했다면 이제 이 책을 제대로 만나보시라. – 고혜미(방송작가 · PD) 국내 화학물질 관리 시스템이 자리잡는 과정에 중요한 변곡점이 하나 있다. 그 변곡점이 바로 김신범이다. 그가 있었기에 노동자, 어린이, 여성을 아우르는 전체적인 화학물질 관리 체계를 고민할 수 있었다. – 고금숙(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 팀장)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우리는 감추는 자가 범인이라는 진실을 알았다. 이토록 무겁고 두려운 진실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끊이지 않는 산단 화학물질 사고에서도 확인했다. 20년 넘는 잠복기간이 지나 피해가 발생한 석면 피해자와 삼성반도체 피해자들이 증인이다. 그래서 비밀은 위험하다. – 최준호(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 가습기살균제, 생리대 사건 등에서 보듯 기업은 스스로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가 위험에 맞서 함께 외치고 행동할 때다. – 한은영(울산울주아이쿱생협 이사) 노동자이면서 지역주민이면서 부모이기도 한 우리가 나설 때, 화학물질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걸 이 책은 보여준다. “위험이 확인되지 않았으면 안전”한 것이 아니라 “안전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위험”한 것이다. – 나현선(전국금속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국장) 이 책은 생활 속에서 가장 널리 쓰이면서도 사회문제로서는 관심 밖이던, 화학물질이 대한 인식의 간극을 담백하게 메워줄 것이다. 감시자로서의 ‘당신’에게는 훌륭한 화학물질 책이 될 것이고, 위험한 사회를 걱정하는 ‘당신’에게는 안전한 사회를 향하는 사회학 책이 될 것이다. – 윤은상(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이 책은 화학물질에 둘러싸여 사는 우리의 불안이 과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의심이야말로 정당하다고 위로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안전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이 있음을 알려준다. 화학물질이 불안한 당신에게 권한다. – 배보람(녹색연합 평화생태팀 활동가) 2011년 이른 봄, 저자가 일상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유해화학물질을 줄여보자며 학부모단체를 찾아왔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교육단체에서 무슨 유해물질을 고민한단 말인가, 싶었다. 그 의구심의 순간이 이제는 안전한 교육환경을 만드는 초석으로 바뀌었다. 한국의 유해화학물질 정책과 제도를 바꿔내는 저자의 발걸음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 박수미(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사무국장) 10여 년을 함께하며 저자의 현장에 대한 애정과 일에 대한 열정을 느꼈다. 그 애정과 열정의 산물인 이 책이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 현재순(《일과건강》 기획국장) 이 책에는 저자가 현장에서 오롯이 경험하여 도출한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이 생생하게 설명되어 있다.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기꺼이 동참할 독자들이 많아지리라는 좋은 예감이 든다. 의지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고 실행이 필요한데, 그 실행의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 이선임(서울아이쿱생협 이사장) 차례 머리말 제1장. 화학물질을 만나다 나무가 우거진 수원캠퍼스에서 시작된 여행 원진레이온 피해자를 만나다 가난보다 더 무서운 노동 노동자들이 화나는 진짜 이유 답이 없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곁 일터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제2장. 거짓 지식에서 벗어나다 다시 맡은 화학물질 일 로렌초 토마티스와 국제암연구소 1과 2를 둘러싼 싸움 로렌초 토마티스, 국제암연구소의 변질에 맞서다 발암물질 목록을 작성하자 발암물질 감시운동에 들어서다 제3장. 일터에서 발생하는 암 암은 왜 논쟁을 일으킬까? 금속노조, 발암물질 조사를 시작하다 9,044개 제품 중 47% 숫자 뒤의 진실 우리도 금지물질 목록을 만들자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법 발암물질 없는 사업장, 톡식프리 타타대우상용차 우리 아버지 좀 도와주세요 0.01%만 직업성 암 환자? 직업성 암 환자는 수천 명이 넘을 것 서랍 속 자료를 꺼내 당사자에게 제공하라 제4장. 생산과 소비는 만나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다 베이비파우더 속 석면 ‘발암물질감시’ 운동에서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운동으로 2016년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현장에서 이제야 맞추어진 퍼즐 보스턴에서 얻은 깨달음 제5장. 당신의 마을은 안녕하십니까 물고기가 죽었다고? 화를 내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발암물질 때문에 화난 주민들 발암물질 사용, 기업의 권리인가? 발암물질은 줄여야 한다 알권리를 다시 생각한다 비밀에 대하여 마을과 공장이 너무 가깝다 제6장.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세상 화학물질의 위협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 절망 뒤에 찾아온 희망 생각의 틀을 바꾸자 ‘우리’가 나설 때 바뀐다 엄마 아빠인 당신에게 드리는 제안 지역주민인 당신에게 드리는 제안 노동자인 당신에게 드리는 제안 엄마 아빠이며, 지역주민이며, 노동자인 당신에게 드리는 제안 원하는 것은 말할 때 이루어진다
- 책 만들기 책 (초판) | 포도밭출판사
170×240mm┃112쪽┃16,000원 책 만들기 책 지은이: 최진규 책 소개 ‘나만의 책 한 권’을 직접 만들어요 종이책, 리플릿, 웹자보, 전자책 만들기 초간단 익힘책 자신만의 콘텐츠로 직접 책을 만들고 싶은 바람을 가진 사람들이 점차 많아집니다. 하지만 편집 디자인 프로그램이 낯설고 작업 과정이 생소해 어려움을 겪기도 하죠. 이 책은 직접 디자인 프로그램을 익혀 책 만들기에 도전하는 이들을 위한 초간단 익힘책입니다. 인디자인(InDesign) 및 시길(Sigil) 다루는 법과 편집 디자인 절차를 익히도록 구성했습니다. 책자 및 리플릿, 웹자보 만들기와 전자책 만드는 법을 안내합니다. 저자는 출판 편집자로 12년을 일했고 프리랜스 책 디자이너 활동을 같이한 지는 6년째입니다. 디자인 전문 강좌나 미술 관련 수업을 들은 적 없이 무작정 디자인 작업을 시작한 점이 남다른 이력이죠. 편집 디자인의 내용과 절차를 안다는 것 하나만 믿고서, 인디자인 참고서만 몇 권을 펼쳐놓고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독학하는 초심자’였던 저자는 책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만의 책 만들기를 시작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여 이 책을 썼습니다. 보도자료 ‘나만의 책 한 권’을 직접 만들어요 이제 ‘메이커’들의 시대라고도 하죠? 자기 필요를 스스로 구현하는 일, 특히 손수 물건을 만드는 일에 대한 주목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출판에서도 그러한 흐름이 눈에 띕니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창작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예전에 비하면 훨씬 손쉽게 다룰 수 있는 편집 디자인 프로그램과 소량 부수도 괜찮은 품질로 저렴하게 인쇄할 수 있는 제작 환경 덕분에 누구든 의지가 있다면 큰 부담 없이 책 만들기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특색을 가진 작은 서점들이 늘어나면서 자신의 출판물을 알릴 창구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게도 편집 디자인 작업이 처음일 때는 적잖은 시행착오와 예기치 않은 오류를 만납니다. 이 책은 그러한 실수를 최대한 줄이면서 ‘내 책 한 권 만들기’라는 목표를 이루도록 돕고자 합니다. 최대한 간단하게, 가능한 매끄럽게, 어렵지 않은 책부터 한 권 두 권을 만들어보면서 핵심 도구와 절차를 익히도록 구성했습니다. 8페이지 중철제본, 16페이지 무선제본 책자 만들기로 첫발을 떼고 나서는 리플릿과 웹자보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간단한 전자책을 만드는 과정으로 안내합니다. 인디자인, 핵심 기능부터 찬찬히 익혀요 대표적인 책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어도비(Adobe)사의 인디자인(InDesign)이 있습니다. 인디자인 교재가 많이 나와 있는데, 인디자인의 수많은 기능이 빼곡히 망라된 책은 아무래도 초심자로서는 살펴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책 만들기 책』은 인디자인의 많은 도구와 기능 중에서 핵심적인 것을 간추리고, 매끄러운 편집 디자인 절차에 따라 내용을 구성했습니다. 작업 도구를 숙달하는 것만큼이나 바람직한 흐름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죠. 무엇이 일의 처음이고, 무엇이 마무리인지를 알면 책을 만드는 일이 더는 막막하지 않습니다. 이를 익히고 나면 보다 정확하고 효과적인 디자인에 한발 다가갈 수 있죠. 이제는 종이책 못지않은 독서 수단이 된 전자책 만드는 방법도 담았습니다. 다만 복잡한 작업이 필요한 전자책 제작이 아니라 기본적인 요소로 이루어진 텍스트형 전자책 만들기 방법을 소개합니다. 전자책 만들기 챕터에서는 인디자인이 아닌 시길 프로그램을 사용합니다. 좋은 디자인의 원칙 『책 만들기 책』에서는 내용 틈틈이 좋은 디자인을 위한 원칙들을 소개합니다. 절대적인 원칙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좋게 인식할 수 있는 자간, 행간, 글꼴 등의 기준들이 있습니다. 책을 만들 때 누구든 이에 대해 고민하여 결과물을 만들지만, 마땅한 기준을 전혀 알지 못한 채라면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고 자칫 결과물에도 아쉬움이 남겠죠. 좋은 디자인을 위한 나름의 기준을 정리하여 공유하고, 작업할 때 주로 어떤 점을 고민하면 좋을지에 대한 경험을 담았습니다. ‘책 디자인, 나도 해보고 싶다’는 이들을 위하여 저자는 2006년에 출판 편집자로 일을 시작해 지금도 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편 2012년부터 책 디자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어깨 너머로 디자이너의 작업을 보면서 줄곧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어느 날 이윽고 직접 책 디자인을 해보기로 결심했다고 해요. 그리고 지금껏 그때 결심하길 참 잘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만들고 싶은 바를 이렇게 저렇게 구상하고,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손을 움직여 그것이 눈앞에 나타나도록 하는 디자인 작업에서 많은 기쁨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쓴 이유도 바로 ‘손수 만드는 기쁨’을 더 많이 나누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책 속에서 저는 편집자로 출판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디자이너의 작업 파일을 볼 때마다 어찌나 그 일을 직접 해보고 싶던지요. 그러다 6년 전 어느 날 한 출판사로 무작정 디자인 시안을 만들어 보냈습니다. 결국 채택은 안 되었지만 시안을 만든 일 자체가 참 뿌듯했어요. 몇 번 더 도전해서 드디어 ‘내가 디자인한 첫 책’이 생겼고 지금까지 책 디자인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처음 일을 시작할 당시 저는 인디자인을 다루는 데 서툴렀습니다. 그런데도 작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책 만드는 과정을 경험에 비춰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후로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끝나는지를 제대로 알기 위해 더 많은 애를 썼습니다. 부족한 인디자인 다루는 솜씨는 필요할 때마다 방법을 찾으며 연마했습니다. 초심자가 ‘책 만들기’를 배우는 방법으로, 인디자인의 많은 기능을 섭렵하는 쪽보다 단순한 책이더라도 매끄러운 과정을 통해 만들어내고 손에 쥐는 경험을 여러 번 쌓는 쪽이 더 중요하고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인디자인 교재라기보다는 ‘책 만들기 익힘책’이라 생각하고 적었습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제가 책 만들기를 익힌 방법을 녹여 내용을 구성했습니다. 얇고 간단한 중철제본 책을 만들어보고, 다음으로 좀 더 요소가 있는 무선제본 책을 만들어봅니다. 여기까지 해보면 응용력이 생겨서 이후에 어떤 두껍고 복잡한 책을 만들더라도 막막하지 않습니다. 책 만들며 익힌 도구들이면 충분히 리플릿, 웹자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전자책은 시길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니 도구가 다르지만 책 만드는 과정에는 동일한 점이 있습니다. 작업 과정을 익히면 몇 가지 낯선 도구의 사용법을 익히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나만의 책 한 권’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한 권 다음에는? 더 많은 책을 오래도록 꾸준히 만들어 여럿에게 나눠주시길. 그 시작에 이 책이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서문에서 차례 서문 시작하기 전에 step 1_ 8페이지 중철제본 step 2_ 16페이지 무선제본 step 3_ 리플릿 / 웹자보 step 4_ 전자책 지은이 소개 최진규 충북 옥천에서 포도밭출판사를 운영하고 책을 펴낸다. 편집자로 출판일을 시작했고, 책 디자인을 같이한 지는 6년째다. 땡땡책협동조합에서 조합원으로 활동하며 출판물 및 웹사이트 디자인을 협업하고, 인디자인 배움 강좌를 진행한다. 지은 책으로『출판, 노동, 목소리』(공저)가 있다.
- 라인스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38-0 (93380) 출간일: 2024년 3월 14일 정가: 23,000원 제본: 무선 쪽수: 368쪽 판형: 145×210mm 분야: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류학/고고학 > 인류학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 > 문화연구/문화이론 국내도서 > 사회 정치 > 생태/환경 > 생태/환경 일반 라인스 : 선의 인류학 지은이: 팀 잉골드 옮긴이: 김지혜 시작도 끝도 없으며,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선(line)에 대한 인류학 탐구 막다른 곳 너머 ‘더 먼 곳’을 향해 열리는 선의 여정 학제, 문화,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방대한 책 심오하고 창조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선 인류학의 시작 걷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 그리기, 쓰기의 공통점은? 모두 선을 따른다는 점이다. 『라인스』는 이처럼 일상생활 속, 역사 속, 세계 속 어디든 존재하는 선을 탐구한다. 심오하고 창조적인 관점을 통해 과감하게 사유하는 팀 잉골드는 이 책을 시작으로 ‘선 인류학’을 전개해나간다. 그는 열린 길을 따르며 움직임 속에서 성장해나가는 행로(wayfaring) 방식을 매혹적으로 제시한다. 이 책은 학문 세계에 몰두하는 연구자뿐만 아니라, 음악가와 화가, 서예가와 장인,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 에게 새로운 길을 엮는 매듭이자 또 다른 길을 향해 열리는 고리가 될 것이다. 선을 따라 이어지는, 끝도 시작도 없는 이야기로서의 세계가 펼쳐진다. 걷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 그리기, 쓰기의 공통점은? 모두 선을 따른다는 점이다 『라인스』(Lines)는 영국의 인류학자 팀 잉골드가 2007년에 출간한 그의 대표작이다. 1948년생인 팀 잉골드는 1970년대부터 연구 활동을 했는데, 2007년 환갑에 이르러 그동안의 연구 주제들과 자신의 화두를 집약해 『라인스』를 출간하면서 마침내 ‘선 인류학’의 시작을 알렸다. 잉골드는 『라인스』 출간을 통해 자신이 ‘인류학과 결별하는 것이 아닌가’ 되묻고는 이 시점부터 자신이 비로소 선을 연구하는 사람, 즉 선학자(linealogist)가 되었다고 말한다. 잉골드는 『라인스』 출간 이후 『산다는 것』(Being Alive, 2011), 『만들기』(Making, 2013),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The Life of Lines, 2015), 『조응』(Correspondences, 2020) 등을 잇따라 출간하는데, 실제 『라인스』 출간 이후 그의 논의들은 모두 선에 대한 고찰 속에서 펼쳐진다. 『라인스』는 ‘선 인류학’이라는 창조적인 흐름의 시작에 있는 기념적인 책으로서, 삶과 생명에 대한 심오한 관점을 제시하며 역사, 문화, 예술, 기술, 생태, 진화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풍부한 고찰을 선보인다. 은유도, 이론의 대상도 아닌, 실제의 ‘선’을 탐구하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세상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된다” 『라인스』에서 탐구하는 선은 은유로 표현된 선이 아니며, 이론을 구성하는 대상으로서의 선도 아니다. 잉골드는 우리 일상 속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실제의 ‘선’을 탐구한다. 그래서 선이라는 낯선 주제는 처음에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이것이 정말 인류학의 연구 대상일 수 있을까? 선의 탐구가 사람과 사물에 대해, 역사적 시간과 일상생활에 대해 과연 무언가 말해줄 수 있을까? 잉골드는 세계를 동적인 만들기의 과정으로 파악한다. 때문에 사람과 사물에 대한 연구 역시 그것들을 독립된 존재로서 파악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되고, 그 연구는 그들을 구성하는 선을 따르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여긴다. 또한, 사람들의 삶의 내부에서 여정을 시작해 열린 길을 따르며 관계들 속에서 조응하며 만들어나가는 성장의 실천, 그 자체가 인류학이라 여긴다. 『라인스』에는 선을 따르며 나아가는 행로의 실천이 중요한 삶의 방식으로 제시되는데, 잉골드에게 이것은 인류학 실천이기도 하다. 『라인스』는 이러한 잉골드의 사유와 실천이 만들어낸 하나의 매듭과 같은 작품이다. 인류학자 마크 에버트는 『라인스』를 평가하며,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세상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그의 말마따나 『라인스』를 읽고 나면 걷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처럼 우리가 매일 같이 수행하는 활동의 의미조차도 전적으로 새롭게 지각하게 된다. 나아가 “생명은 점에 가둬지지 않는다. 생명은 선을 따라 나아간다”는 말로 표현되는, ‘끝이 시작으로 이어지는’ 존재의 방식에 눈을 뜨게 된다. 세계 속의 선을 알아차리고 따르는 경험은 ‘산다는 것’에 대한 관점을 바꾼다. 이에 잉골드는 주저함 없이 강조한다. “정말로 선은 세상을 바꿀 힘을 지니고 있다”고. 행로의 구불구불한 선처럼 끝과 시작이 이어지는 여섯 장의 이야기 1장 언어·음악·표기법 1장에서 잉골드는 자신이 어떤 이유로 선을 연구하게 되었는지를 밝히며 논의를 시작한다. 사실상 선과는 무관하게도, 처음 잉골드를 사로잡았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말과 노래를 구별하게 됐는가”라는 질문. 과거에는 음악이 무엇보다도 ‘가사의 울려 퍼짐’이었고, 언어란 ‘말소리’로 이해되었던 것에 반해 오늘날에는 음악에서 가사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게 되었고, 언어란 이제 말소리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일종의 ‘의미 체계’가 되었다고 잉골드는 지적한다. 그리하여 이 변화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음악은 말이 없게 되고, 언어는 침묵하게 됐다.” 어째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언어의 침묵’이 발생한 이유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잉골드는 구술문화가 문자문화로 이행하던 시기의 변화들을 조사한다. 이때 잉골드는 언어의 침묵이 ‘쓰기’가 이해되는 방식의 변화, 즉 쓰기가 손으로 하는 기입으로 이해되다가 어느 시점부터 말의 언어구성 기술로 바뀌어 이해되기 시작한 변화와 관련 있음에 주목한다. 이 점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쓰기의 역사’를 살피는 과정에서는, 쓰기의 역사란 보다 폭넓게는 ‘표기법의 역사’에 포함된다는 점을 확인한다. 그리고 표기법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을 때, 표기법은 다름 아니라 선으로 구성됨을 깨닫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잉골드는 선의 생산과 의미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2장 자취·실·표면 2장에서는 선과 선이 그려지는 표면의 관계를 살펴본다. 선의 탐구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선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선이 새겨지는 표면과의 관계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선의 역사를 살피려면 선과 표면 사이의 변화하는 관계를 살펴야 한다. 때문에 2장에서는 표면이 탐구 대상이 된다. 잉골드는 표면 탐구에 앞서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던진다. 선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선의 주요한 두 가지 분류를 제시한다. 바로 ‘실’과 ‘자취’다. 실과 자취는 표면을 만들기도 하고 표면을 없애기도 하면서 움직임과 성장의 선을 만들어나간다. 3장 위로·가로질러·따라서 3장에서는 선과 표면의 관계가 변형된 결과들을 살펴본다. 3장에는 비판적 논의가 포함된다. 무엇에 대한 비판일까. ‘위로’의 움직임과 ‘가로질러’의 움직임에 대한 비판이다. 여기서 잉골드는 먼저 ‘산책’과 ‘조립체’ 사이의 구별을 사례로 제시한다. 산책은 몸짓의 자취인 반면 조립체는 점대점연결장치로 만든 인공물이다. 점대점연결장치 방식은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변형시키고, 환경을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점거하는 곳으로 지각하게 한다. 잉골드가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하여 살아 있는 존재들이 땅에 거주하는 가장 기본적인 양상”이라 생각하는 방식은 바로 ‘따르는’ 움직임의 방식이며, 잉골드는 이를 행로(wayfaring)라고 표현한다. 3장에서 잉골드는 교점을 직선으로 잇는 연결망 방식과 운송의 방식을 비판하면서, 그물망이라는 얽힘의 구역에서 선을 따르며 살아가는 존재 방식을 이야기한다. 잉골드에 따르면, 존재들은 움직임과 성장이 통합된 행로의 방식을 실천함으로써 세계에 거주한다. 4장 계보의 선 4장에서 살펴보는 것은 ‘계보의 선’이다. 계보의 선이라는 주제에서 즉각 떠오르는 사례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등장하는 도식, 즉 생명 진화를 묘사한 계보도이다. 잉골드는 찰스 다윈이 이 도식을 그리면서 ‘선을 따라가는 삶’이 아닌 ‘각각의 점 안에 있는 삶’을 그렸다고 말한다. 계보도를 구성하는 ‘점선’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 점선이 자명하게 드러내는 바, 이 계보의 선은 생명선도 아니고 인간에 대한 줄거리조차 아니다. 잉골드는 이처럼 선의 관점을 통해 역사 속에서 ‘진화’ 개념이 어떻게 다뤄져왔는지를 검토한다. 5장 그리기·쓰기·캘리그래피 5장에서는 다시 ‘쓰기’ 주제로 돌아간다. 잉골드는 그리기와 쓰기에서의 몸짓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쓰기가 본래 의미대로 기입의 실천으로 이해되는 한 그리기와 쓰기 사이에 엄밀한 구분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 그리기와 쓰기를 다른 것으로 이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고찰하면서 잉골드는 (앞서 논의한 말과 노래의 분리를 포함한) 이 ‘현대적인 분리’를 추동하는 이분법, 즉 기술과 예술 사이의 이분법을 지적한다. 6장 선이 직선이 되는 법 6장에서는 ‘선의 으스스한 유령’, 즉 직선을 고찰한다. 선이 반드시 곧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왜, 어떻게, 우리의 인식 속에서 선은 반드시 직선이어야만 하는 것이 되었을까. 잉골드는 직선이 근대성의 도상이 되었다고 말하며, 직선의 역사적인 근원을 쫓는다. 잉골드는 직선을 수수께끼라고 표현한다. 직선은 표면을 지배하지만 그 무엇도 연결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종류의 움직임이나 몸짓도 체현하지 않는다. 더불어 근대성의 확실성이 의심받는 상황에 처하면 한때 점과 점을 잇던 직선은 조각나버린다. “선들로 가득 차 있는 세계 속에서 다시금 세계를 엮어나가는 몸짓” 책의 말미에는 『라인스』와 선 인류학의 맥락과 의미를 상세히 해설하는 역자 후기를 실었다. 이 ‘초대장’ 같은 글에서 역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특별히 내가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성장’에 대한 것이다. 개발주의와 자본주의로 점철된 세계에서 ‘성장’의 의미는 고도의 테크노사이언스와 자본화, 규모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이러한 파국적인 상황에 저항하는 많은 이들은 ‘탈성장(degrowth)’이라는 탈출구를 추구하곤 한다. 그 개념은 나름대로 매우 유용한 시사점을 남기지만 나는 잉골드의 시도가 훨씬 더 대담하다고 생각한다. 잉골드는 우리의 ‘성장’이 무엇인지 다시금 사유하고, 결정론적인 성장이 결코 성장이 아니었음을 밝힌다. 성장의 욕구와 욕망을 긍정하며 재전유하면서 우리는 삶과 세계를 다시 직조하는 내파의 가능성도 확인하게 된다. […] 선은 오직 다시금 찾아지고 따라가질 때 새로운 세계를 열게 만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선을 통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는 것이고, 그 ‘새로운’ 길은 ‘따라가는 것’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것은 비어 있는 공간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선들로 가득 차 있는 세계 속에서 다시금 세계를 엮어나가는 몸짓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도는 세계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현대의 경향과는 사뭇 다르다. 행로의 여정은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의미 있다.” 지은이 소개 팀 잉골드 Tim Ingold 영국의 인류학자. 1948년 출생. 애버딘 대학교 사회인류학과 명예교수이며 영국학사원과 에딘버러 왕립학회 회원이다. 1970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사회인류학 학사학위를, 1976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연구를 위해 핀란드 북동부의 스콜트 사미족을 현장 조사하며 스콜트 사미족 공동체의 생태 적응, 사회 조직 및 민족 정치를 연구했다. 이후 헬싱키 대학교를 거쳐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강의했다. 멘체스터 대학교에서는 북극 북부 민족 연구와 더불어 순록 무리와 사냥에 대한 연구를 이어나갔다. 이 연구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 인간-동물 상호작용의 개념, 수렵 채집 사회와 목축 사회의 비교 인류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후 잉골드는 19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인류학, 생물학, 역사학 분야에서 ‘진화’ 개념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연구했으며,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언어와 기술의 연관성에 관심을 가지고 기술과 예술의 인류학을 통합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1988년 이후로 잉골드는 생태인류학 연구와 강의를 진행하는 한편, 지각 체계에 대한 제임스 깁슨의 연구에 영향을 받아 인류학과 심리학에 생태학적 접근법을 통합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환경 지각과 숙련된 실천이라는 주제를 연결하는 연구를 통해 2000년에 『환경 지각』(The Perception of The Environment)을 출간했다. 2002년부터 잉골드는 환경 지각에 관한 초기 연구에서 비롯한 세 가지 주제, 즉 첫째로는 보행자 움직임의 역동성, 둘째로는 실천의 창의성, 셋째로는 글쓰기의 선형성을 주제로 탐구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사회적 삶과 경험에서 움직임, 지식, 기술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했다. 이 연구로 2007년에 『라인스』(Lines)를 출간했다. 이후 인류학, 고고학, 예술, 건축학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인간과 인간이 거주하는 환경의 관계를 탐구하여 2013년에 『만들기』(Making)를 출간했다. 이외에도 서른 권 이상의 인류학 저서를 출간했다. 2018년 대학 교수직에서 은퇴한 후 독립 학자로서 계속 연구하고 집필하고 있다. 옮긴이 소개 김지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해양쓰레기와 함께 세계 짓기: 지구적 해양보전에서 나타나는 존재들의 연합과 분열」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학잡지 『Littor』에 「해양쓰레기 탐사기」(2022)를 연재했고,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2022), 『비재현적 방법론: 연구를 재상상하기』(2023)를 공역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에서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추천사 이 책은 숲길에서 족보까지, 글쓰기 행위에서 패턴 있는 실내 장식까지, ‘선’이라는 이토록 간단한 낱말로 엮은 무수한 의미에 대해 심오하고 풍부하며 매혹적인 사색을 제공한다. 학제, 문화,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방대한 책. 이 책을 읽는다면 컴퓨터 사용이나 여행을 다녀오는 행위의 의미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 스티븐 로즈(Steven Rose), 오픈 유니버시티 신경과학과 명예교수 팀 잉골드가 제시하는 매혹적인 미로를 통해 길을 따라가기 전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선이 존재하는지, 우리가 그 선들을 구분하지 않아 얼마나 잘못 가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 메리 미즐리(Mary Midgley), 뉴캐슬 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세상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된다. 행려가 세계를 여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독자들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하던 때와 같을 수 없을 것이다. — 마크 에버트(Mark Ebert), 서스캐처원 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학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서 “그 위에 글을 조금 쓰겠다”던 저자의 야망은 매혹적으로 달성됐다. — 스티븐 풀(Steven Poole), 「가디언」 기자 본문 중에서 이 학문[인류학]은 존재가 언제나 다른 방식으로도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을 지닌 비교학이며, 현재 상태의 존재로는 결코 안주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비판학이다. -22쪽 걷기, 직조하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 노래하기, 그리기, 쓰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이 모든 것들이 이러저러한 선을 따라 진행한다는 점이다. 이 책의 목적은 선의 비교 인류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의 기초를 세우는 데 있다. 내가 아는 한, 이러한 종류의 것은 시도된 적이 없었다. -23쪽 행려(wayfarer)는 끊임없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더 엄격하게 말하자면 그는 그의 움직임이다. 위에서 보았던 예시에서 이누이트족의 경우처럼 행려는 세계 속에서 여행의 선으로 예시된다. -159쪽 나는 행로가 인간과 비인간들을 모두 포함하여 살아 있는 존재들이 땅에 거주하는 가장 기본적인 양상이라고 생각한다. -170쪽 거주민은 세계가 지속적으로 탄생하는 바로 그 과정 속에서, 그 안으로부터 탄생에 참여하는 사람이자, 삶의 흔적을 남기며 세계의 무늬와 질감에 기여하는 사람이다. -170쪽 길 위에 있는 행려는 언제나 어디엔가 있지만, 그 모든 ‘어딘가’는 다른 어딘가로 가는 도중에 있다. 거주하는 세계는 이러한 길들로 이루어진 얽힌 모양의 그물망이며, 삶이 그것들을 따라 나아가면서 지속적으로 직조된다. -174쪽 거주민의 지식은 한마디로 말하면, 따라가면서 통합된다. -183쪽 이야기로 말해지는 것들은 말하자면 존재한다기보다는 발생한다. 즉 각각은 계속 진행해가는 활동의 순간이다. 한마디로 이것들은 객체가 아니라 이야깃거리이다. -185쪽 나는 작가가 걷기와 상응하는 것을 수행하길 그만두었을 때 낱말이 조각으로 환원되고 결과적으로 파편화된다고 주장한다. -191~192쪽 정주민은 장소를 점령한다. 반면 유목민은 점령에 실패한다. 하지만 행려는 실패한 점령자나 주저하는 점령자가 아니라 성공한 거주자이다. 그들은 사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때때로 상당히 먼 거리를 폭넓게 여행하고, 이 움직임을 통해 그들이 지나간 각 장소의 계속되는 형성에 기여한다. 요컨대 행로는 장소가 없는 것도 장소에 묶인 것도 아니라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205쪽 삶은 가두어지지 않고, 오히려 관계들의 무수한 선을 따라 세계 사이로 길을 누비듯이 나아간다. -209쪽 요컨대 생명의 생태학은 실과 자취의 생태학이지 교점과 연결장치의 생태학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의 탐구 주제는 유기체와 그들의 외부 환경 사이의 관계들이 아니라 그들 각자가 걸려든 삶의 방식을 따라가는 관계들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간추리자면 생태학은 선으로서의 삶에 대한 학문이다. -209쪽 생명은 점에 가둬지지 않는다. 생명은 선을 따라 나아간다. -213쪽 행로의 선은 거주의 실천과 그것이 수반하는 우회적인 움직임을 통해 성취되는 것으로 장소적(topian)이다. 반면에 진보적인 전진이라는 거대 서사에 의해 추동된 근대성의 직선은 무장소적(utopian)이며, 탈근대성의 파편화된 선은 탈장소적(distopian)이다. -330쪽 정말로 선은, 삶처럼 끝이 없다. 삶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길을 따라 일어나는 그 모든 흥미로운 일들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신이 갈 수 있는 더 먼 곳이 있기 때문이다. -333쪽 차례 감사의 글 라우틀리지 클래식 에디션 서문 들어가며 1장 언어·음악·표기법 2장 자취·실·표면 3장 위로·가로질러·따라서 4장 계보의 선 5장 그리기·쓰기·캘리그래피 6장 선이 직선이 되는 법 역자 후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보도자료 다운로드
- 요리 활동 | 포도밭출판사
2016. 3. 31 출간 / 121×188mm / 192쪽 / 12,000원 / ISBN 979-11-952770-5-6 (03810) 요리 활동 어떤 싸움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일상이 중요하니까 지은이: 박영길 보도자료 “자, 식사부터 하세요” 살 만한 세상, 좋은 일상을 향한 우리의 싸움이 더 오래가도록! 지치지 않는 일상을 만들어가는 ‘공생의 요리’를 선보인다 쿡방의 시대, 쿡방에 없는 ‘공생의 요리’를 선보인다 요새 방송 프로그램의 대세는 ‘쿡방’ 즉, 요리 방송이라고 한다. 하얀 두건을 쓴 셰프가 앞치마를 휘날리며 현란한 칼질을 뽐내는 장면은 이제 흔한 이미지다. 그들이 만들어낸 요리는 고급스럽고 까다로운 입맛을 자랑하는 평가자의 입에 들어가 결국 그들의 값비싼 탄성과 함께 완성된다. 그런데 요리의 세계가 꼭 이런 것일까. 『요리 활동』은 값비싼 메뉴를 혼자서 음미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요리의 행복을 선보인다. 저자 박영길은 고된 하루의 활동을 마친 이웃들과 든든한 일상을 나누고자 ‘공생의 요리’를 만든다. 이 책은 돈이 없어도 풍족하게 즐기는 요리들, 험난한 하루의 끝에서도 깊은 위로를 주는 박영길의 요리들을 소개한다. 요리사가 아닌 ‘활동가’의 반자본주의적(?) 요리책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 265-17번지. 이곳에는 지역의 활동 단체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이 운영하는 공간인 ‘마을카페 이따’가 있다.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은 6년 전, 지역의 공부방 교사들이 뜻을 합쳐 만든 단체다(공룡은 ‘공부해서 용 되자’의 줄임말이다). 공룡의 활동 모토는 ‘반자본주의, 일상성, 공동체성’이다. 첫째, 돈과 효율성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살아보자. 둘째, 혼자 할 수 없는 일은 함께하자. 셋째, 활동과 삶이 괴리되지 않도록 서로의 일상을 돌보자는 것이 이곳이 만들어진 동기이자 목표다. 공룡 활동가들은 이 세 가지를 중요한 가치로 삼으면서 지역과 마을을 중심으로 삶과 작업, 일상과 교육을 연결하는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요리 활동』의 저자 박영길은 바로 이곳 공룡을 만든 활동가 중 하나다. 그는 자본과 권력의 횡포에 맞서 힘든 싸움을 하는 지역의 노동자와 활동가들을 마을카페 이따로 초대하거나 때로는 현장에 찾아가 요리를 선사한다. 지역 공부방 활동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온 지역 청소년들도 이곳에서 밥과 요리를 나눈다. 이곳은 카페일 뿐만 아니라 ‘지역 꼬뮌학교 동동’이라는 인문학 수업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공룡 활동가들이 운영하는 이 거점 공간은 켄 로치 감독의 영화 <지미스 홀>에 나오는 마을 공간처럼, 지역의 ‘래디컬 스페이스’로 자리잡고 있다. 저자는 자격증이 있는 요리사가 아니다. 당연히 식당 혹은 주방을 가진 셰프도 아니다. 하지만 이웃들과 연대하는 노동자 및 활동가 들에게 그는 그 어떤 유명 셰프보다 귀한 요리사다. 『요리 활동』에는 저자가 그들과 나눈 요리들, 그리고 그 소중한 시간들의 기록이 담겨 있다. 요리를 통해 기억하는 가난해도 기꺼운 삶의 풍경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에게 ‘요리는 무엇일까?’를 자문해본다. 그 대답의 하나는 저자에게 있어 요리란 부모와 함께 살아온 시간들에 대한 기억 행위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저자의 요리 이야기 중 절반 이상에 부모와의 추억들이 스며 있다. 이제 70대 노인이 되어버린 부모, 그래서 그분들의 하루하루가 곧 멈출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는 나에게, 요리는 부모를 기억하고 내 몸에 그들의 삶을 각인시키는 훈련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머니의 조리법들, 아버지가 해주던 음식들… 가난하던 그 옛날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었던 어떤 음식에 대한 기억들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재현하는 도구로 내게 요리만 한 것이 없는 듯하다. <들어가며 – 일상의 재구성을 위한, 요리 그리고 나>, 9쪽 그리고 요리를 통해 저 시간들을 되살리면서 확인하는 것은, 비록 가난했지만 그 가난을 행복하게 ‘요리’하며 살았던 저분들의 힘과 지혜다. 그 덕분에 저자는 어린 시절의 가난을 불행으로 떠올리는 게 아니라 반대로 ‘행복감의 원천’으로 떠올린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확인한다. “그 가난하던 시절에 뚝딱뚝딱 맛있는 걸 만들어주시던 어머니가 선물해준 행복한 세계가 지금 나에게도 여전히 힘을 북돋워준다. 나는 비록 돈이 없어도, 함께 활동하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어 나누어 먹는 즐거움이 있는 한 내 삶 역시 지속될 수 있다고 강하게 믿는다. 나는 그런 믿음을 부모님의 삶에서 배운 것 같다.” 험난한 세상, 무너지는 일상 하지만 잘 먹고 잘 싸우자 세상이 험난해도 그것을 버틸 수 있는 힘은 다시 소소한 일상으로부터 나온다. 저자는 요리가 비록 소소하지만 일상을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버팀목이라고 믿는다. 요리를 통해 일상이 무너지려는 순간을 버티고, 나아가 일상생활을 살 만한 것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저자가 부모로부터 배운 것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소소한 일상을 지키고, 일상에서의 작은 행복들을 잘 ‘요리’하는 일은 어쩌면 거대한 이데올로기 투쟁만큼 강력할 수 있다. 요리는 언제나 일상이다. 어머니가 식당 찬모로 생계를 꾸리는 모습을 보며 자란 어린 시절부터, 각자 활동을 하다가 저녁이면 공룡에 모여 저녁 한 끼를 해결하는 공룡 활동가들을 위해 뜨끈한 국과 맛있는 술안주 하나 만들어놓고 밤 직장에 출근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요리는 언제나 일상생활의 소소한 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작은 한 부분이라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버티며 살아가는 것, 나는 이러한 태도가 일상성이라는 가치를 지키는 지극히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 거대한 시스템과 싸우면서도 작은 일상들을 무시하지 않고, 거기에서부터 어울리고 연대하며 새로운 것들을 꿈꾸는 생성의 장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 이것이 내가 공룡 활동가들과 요리를 함께 만들고 먹는 일에 욕심을 부리는 이유이다. 요리는 언제나 일상이다. 그리고 날마다의 일상을 재구성하고자 나는 오늘도 요리를 한다. <들어가며 – 일상의 재구성을 위한, 요리 그리고 나>, 10-11쪽 재료가 부족해도 좋다, 정통이 아니어도 좋다 음식이 품고 있는 삶이 더 중요하다 〈치킨 가라아게〉 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릴 적 서울 사는 외사촌들이 놀러오자 저자의 어머니는 호기롭게 닭을 튀겨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만든 것은 토막낸 닭에 치킨 파우더를 묻혀 튀긴 ‘치킨’이 아니라 시골 식으로 닭 한 마리를 통째로 튀긴 ‘통닭’이었다. 당연히 외사촌들은 실망스러워했고, 어머니는 “서울 것들이라서 참 까탈스럽네” 하고 볼멘소리를 뱉으신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외식은 못 시켜도 무엇이든 손수 만들어 먹일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던 어머니는 곧 어머니식의 ‘치킨’을 개발해 자식들을 먹인다. “이게 도시에서 먹는 치킨이라는 거야.” 귀여운 허세도 빼놓지 않으신다. 이 글의 저자 역시 종종 자신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의 심지어 먹어보지도 못한 요리를 만든다. 흔히 본고장에서 그곳의 맛과 문화를 배우고 돌아와야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다는 정통파 입장에서 ‘야매’도 이런 야매가 없다. 저자는 자신이 ‘가라아게(전분을 살짝 묻혀 튀기는 요리)’라 부르며 만들던 일본식 닭튀김 요리가 실은 ‘고로모아게(튀김옷을 입혀 튀기는 요리)’에 가까움을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한국을 방문한 일본 친구에게 ‘아게다시도후’라는 일본 요리를 해준 뒤 ‘일본의 아게다시도후와 다르지만 더 맛있다’는 다행스러운(?) 평가를 듣고 마음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저자는 왜 자꾸 이런 요리들을 만드는 걸까? 저자가 농담처럼 말하듯이 단순히 허세 때문일까? 저자는 이탈리아에서 정통 현지 음식을 먹어보고 거꾸로 정통을 너무 의식하지 말자는 깨달음을 얻는다. 정통보다 소중한 것은 결국 그 음식이 품고 있는 삶이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정통이라는 요리들도 결국 각 동네에 흔한 재료들로 대충 만들다보니 정통이 된 게 아닐까 싶다. (…) 결국 이탈리아에 가서 현지 음식을 먹어 보고 느낀 것은, 요리를 할 때 정통 방식이라는 것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있는 재료들을 써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요리법으로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굳이 어딘가의 혹은 누구의 정통 방식을 따라하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게 만들 수 있다. 우리가 부러워해야 하는 건 요리 비법도 아니고 세계적인 메뉴들도 아니다. 그것을 가능케 한 자산들 즉, 동네 치즈, 동네 와인, 동네 수제햄 같은 자산이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식생활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그 지역 사람들의 일상이 바로 우리가 부러워하고 본받아야 하는 지점이 아닌가 싶다. <토르텔리니>, 95~96쪽 차례 들어가며 _ 일상의 재구성을 위한, 요리 그리고 나 1장 _ 나, 식당 찬모의 아들 칼국수 돼지고기 두루치기 무쌈만두 굴국밥과 굴전 짜장 붕어찜 김치 볶음밥 김치 요리 개떡 된장국 수육 두루치기 스키야키 단호박 해물찜 콩나물국 치킨 가라아게 약밥과 약식빵 오삼 불고기 2장 _ 너와 나의 무너지지 않는 일상을 위하여 물 마리니에르 아쿠아파자 토르텔리니 크림 파스타 어향동구 돼지고기 부추 숙주 볶음 애호박찜 짬뽕 돼지족발 아게다시도후 3장 _ 뜨끈한 양식, 뜨거운 연대 묵밥과 연잎밥 고갈비 여주 볶음 ① 여주 볶음 ② 볶음 고추장 곱창구이 고로케 부야베스 깐풍기 수삼 튀김과 송사리 튀김 짜조 4장 _ 오늘도 내일도, 우리가 함께 요리를 먹는다는 것 무밥 꼬꼬뱅 매생이 굴국밥 사천식 해물 파스타 유린기 토마토 치킨 커리 계란찜과 계란말이 꼬치구이 꽃게 저자 소개 박영길 서울에서 품팔이 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와 식당 찬모로 일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없는 살림에 먹고는 살아야 해서 아버지 고향 동네로 이사했다. 그 덕분에 가난한 소작농 자식으로 무탈하게 살아왔다.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어릴 때부터 가내 농업에 동원되었다. 농사일로 항상 바쁜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내게 자기가 먹을 음식은 자기가 직접 해먹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고등학생 때부터 자취를 하면서 혼자 밥 해먹는 일에 더욱 익숙해졌다. 충북 청주에서 사람들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을 만들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방 일에 재미를 붙였다. 정성을 듬뿍 쏟은 요리보다는 뚝딱 만들어서 여러 사람이 먹고 즐기는 주점 요리가 편하다. 한마디로 소중한 한 명을 위한 요리보다는 여럿이 나누는 요리가 더 편한, 묘한 습성이 생겨버렸다. 요리하길 좋아하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내가 식당 찬모였던 자신의 손맛을 이었다고 좋아하시는데 아버지는 내가 하는 요리가 하나같이 근본 없는 요리라며 싫어하신다. 현재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의 서류상 대표이자 주방 담당이다. 청소년 인문학 수업을 맡고 있으며 ‘지역 꼬뮌학교 동동’의 진행자이기도 하다. 낮에는 앞에 적은 일들을 하고, 밤에는 사회적기업 ‘삶과 환경’의 수거원으로 일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충북평등지부 삶과환경 분회 사무장을 맡고 있다. 땡땡책협동조합의 이사로도 일한다. 공저로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삶창)가 있다. 책 속에서 우리들을 과연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를 오래 고민하면서, 특히 일상의 재구성이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소위 공동체를 표방하며 일상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결국 의식주의 문제에서부터 어떤 일상들을 함께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다 공동체적인 성격을 강화하고자 선택한 것이 바로 ‘식사 공동체’였다. 애초에는 공룡을 ‘활동가 네트워크’ 형태의 공동체로 생각했었기에 처음부터 주거 공동체 수준의 실험을 하기는 부담스러웠고, 각자 자신의 활동 영역도 명확한 터라 일종의 생산/소비 공동체의 성격을 부여하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보다 구체적인 일상의 경험으로써 함께 요리하고 먹는 경험을 나누는 ‘식사 공동체’의 성격을 만드는 것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어릴 때부터 해오던 요리라는 행위가 어쩌면 특별한 무엇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런저런 요리를 하면서 요리가 몸에 익듯이 요리를 통한 생각들도 익어온 듯싶다. <들어가며 – 일상의 재구성을 위한, 요리 그리고 나>, 6쪽 요즘 들어 요리사라는 직업군이 각광받는 듯하다. 하얀 앞치마와 흰 두건을 두른 요리사가 온갖 감각을 자극하는 화려한 음식들을 화면 가득 선보이면 사람들은 요리가 근사한 로맨스라도 되는 것처럼 흥분한다. 그러면서 요리사라는 직업도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스타 요리사들은 근사해 보인다. 연예인처럼 동경의 대상이 된 그들의 화려한 성공 스토리를 보고 있자면 요리도 마냥 근사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내가 아는 어느 식당에도 그런 근사한 요리사는 없다. 있다손 치더라도, 적어도 나는 그런 요리사가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아주 유명한 요리사가 운영하는 맛집을 갔다 해도 말이다. 그 식당 주방에서 실제 요리를 하는 사람은 근사한 요리사가 아니라 피곤에 절어 바삐 움직이는 주방 아주머니 혹은 소위 찬모다. 그이들이 음식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요리를 좋아한다. 요리를 해서 누군가와 맛있게 먹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한 음식들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떠올리는 걸 좋아한다. 아니, 어머니를 바라보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는 건지도, 아니면 식당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머니에게 괜히 짜증을 냈던 기억들을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온종일 식당 일에 지친 어머니가 집에 돌아와 내가 좋아하는 짜장면을 만들어주면서 미소짓던 짧은 순간, 그 모습을 절대 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언젠가부터 요리를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요리사의 아들이 아니라 식당 찬모의 아들이다. <1장 – 나, 식당 찬모의 아들>, 19~22쪽 “너 밥은 해먹고 다니냐?“ “매번 해먹는데 오늘만 바빠서 건너 뛴 거에요” “도대체 무얼 먹고 사는데?” “김치 먹고 살지. 왜요?” “이놈 새끼가. 그러니까 김치로 뭘 해먹고 사냐고?” “볶아 먹거나 그냥 먹거나 하지. 왜요?” “그러니까 김치가 있는데 왜 그지같이 살아? 용돈은 다 뭐하고? 응?” “그러니까 김치만 줬는데 뭘 더 해먹어요. 도대체!” “에휴. 내가 못 살아. 에휴.” 이런 대화 후에 어머니는 그야말로 김치 요리를 했다. 어머니의 김치 요리란 이런 식이다. 김치에 닭 넣고 끝. <김치 요리>, 46~47쪽 “영길아… 그래서 요즘 뭐 읽냐?” “요즘 키에르케고르 읽어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뭐?” “아, 그러니까 철학책 읽는다고요.” “그런데 왜 죽는 병이야?” “죽는 병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병…. 그냥… 절망에 대한 책이에요.” “너 요즘 힘드냐? 집이 요모양 요꼴이라 쪽팔리냐? 응? 그래서 힘들어?” “아, 뭔소리야…. 그냥 읽는 책이라고요.” “에휴, 가난이 웬수지… 에휴….”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냥 누구나 다 읽는 책이야, 내 나이 땐… 엄마도 참 내.” “그러니까 이놈아. 가난한 집 자식이 쓸데없이 자존심만 세면 겉멋에 빠져 사는겨. 알어?” 조개찜이 그렇다. 조개찜 만드는 법은 그냥 조개를 푹 삶는 게 다다. 만드는 법에 전혀 특별할 게 없지만 엄청 맛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개찜 요리는 여기에 청양고추를 한 개 정도만 넣어서 삶듯이 쪄내는 조개찜이다. 그런데 물론 이렇게만 먹어도 맛있지만 손님 대접용으로는 조금 밋밋하달까? 이왕 요리를 했으면 뽐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뭔가 아쉽달까? 어머니 말씀대로 그것이 겉멋이고 쓸데없는 짓이라도 말이다. 그래서 괜히 겉멋을 부리고 싶을 때면 이 간단한 조개찜을 엄청난 요리로 부풀려서 해보곤 한다. <아쿠아파자>, 90~91쪽 커리는 재료만 제대로 갖추면 요리하는 사람에 따라서 맛이 크게 변하지 않는 안정적인 요리다. 커리의 강한 맛 때문에 융통성이 많지 않다는 뜻인데, 한편으로는 그만큼 실패할 확률도 적음을 의미한다. 오일 두른 솥에 마늘을 넣고 살짝 볶다가 양파와 피망을 넣고 볶은 후 토막 낸 닭을 넣고 볶는다. 이때 고춧가루를 넣어서 함께 볶으면 닭에 매운 맛이 배는데, 그렇다고 너무 많이 넣으면 맛이 탁해지니 대신 고추기름을 조금 넣어서 매운 풍미를 돋운다. 그러고 닭이 어느 정도 익을 때까지 볶다가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는다. 원래 생토마토를 넣으면 좋지만 재료값이 비싸니 토마토 페이스트를 한 병정도 넣고 생토마토는 5개 정도 조각 내서 넣으면 적당하다. 그런 후에 타지 않을 정도로 물을 조금 넣고 닭이 익을 때까지 끓이다가 마지막에 커리가루를 넣어 맛과 농도를 조절하면 된다. 토마토 치킨 커리에서 중요한 건, 토마토 페이스트 맛이 강해서 커리의 매운 맛이 죽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닭과 야채를 볶을 때 매운 맛이 잘 배도록 고추기름을 충분히 넣어 잘 볶는 게 팁이라면 팁이다. <토마토 치킨 커리>, 178~179쪽 나는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 그렇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다들 제대로 된 삶이란 엄청난 것들로 이뤄지고, 그런 엄청난 것들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와서가 아닐까. 그러니 당연하게도 노력하지 않고 얻는 것들은 별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노력하지 않고 뭔가를 얻는 건 죄스럽고, 그런 걸 좋아하면 나쁜 사람이라도 된 듯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한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엄청난 것들만 바라보며 살다가는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아예 영원히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심지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걸 노력하다가 망쳐버리기가 일쑤다. 언젠가 보선이 계란프라이를 예술적으로 반숙하는 방법을 묻길래 나는 아주 단순하게 일러줬다. “덜 익었을 때 불을 꺼.” (…) 이게 뭐가 대단한 거라고 노력에 노력을 더할까 싶다. <계란찜과 계란말이>, 181~183쪽
- 그을린 얼굴로 웃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18-2 (03800) 출간일: 2021년 4월 26일 정가: 13,000원 제본: 무선 쪽수: 192쪽 판형: 130×205mm 분야: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국내도서 > 에세이 > 독서에세이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여성학/젠더 > 여성문제 국내도서 > 사회정치 > 여성/젠더 > 페미니즘 그을린 얼굴로 웃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지은이: 김예림 책 소개 만 스무 살의 김예림은 스물두 살이 되기까지 2년 동안 자신이 선 자리에서 바라보는 페미니즘을, 세상을, 21세기를, 스무 편의 글로 기록했다.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으로서, 연고도 없는 비수도권 지역에 혼자 살며 일을 시작한 여성으로서, 김예림은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시작한 페미니즘 공부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예림은 할 말은 많지만 도무지 입술이 움직여지지 않는 이들에게 자신이 읽은 스무 권의 책을 소개한다. 그가 책 속에서 만난 과거 여자들의 목소리는 현재에 만나는 바로 곁의 여자들의 목소리와 겹치고 포개진다. 그리고 저절로 입술을 떼고 말문을 열게 한다. 김예림은 이 놀라운 경험을 함께하자고 청한다. 그리고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이토록 멋진 날이 왔다’고 외칠 수 있기를 함께 희망하자며 팔을 끌어당긴다. 보도자료 페미니즘이 뭐야? 김예림이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단순했다. 누군가 “페미니즘이 뭐야?”라고 물을 때 대꾸할 나름의 답을 찾고 싶었다. 여성우월주의니, 여자 일베니 하면서 페미니즘을 조롱하는 일이 흔했지만 김예림은 궁금했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건 꼭 페미니즘뿐만이 아니었다. 여성으로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상황을 겪는 순간마다 과연 어찌해야 옳은지 알고 싶었다. 이를 테면 “여자애니까 다리를 오므려야지!” 같은 말을 듣는 순간, 햇볕 아래서 일하다 얼굴이 그을렸는데 누군가 자꾸만 “왜 이렇게 시꺼멓게 탔어?”라고 묻는 순간에는 어찌 해야 좋단 말인가. 모르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즐거운 섹스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쩌다 임신을 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누군가 함부로 나를 만진 기억이 하루가 지나도 떨쳐지지 않을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그래서 김예림은 더 공부하고 싶었다. 만 스무 살의 김예림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충북 옥천에 집을 구해 살며 낮에는 잡지사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밤 시간과 휴일을 이용해 공부해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주 작은 페미니즘학교 탱자’라는 곳이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곳이 김예림의 페미니즘 교실이 되었다. 탱자에서는 매주 책을 정해 읽고, 한 달에 한 번씩 에세이를 썼다. 엄마의 가사노동, 몸에 남은 브래지어 자국, 직장에서 겪은 일, 꾸밈노동 등이 글감이 되었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여성의 참정권 운동부터 제2물결 페미니즘까지, 여성의 가사노동부터 육식의 성정치까지, 다양한 앎의 파도를 오르내리며 1년을 보냈다. 퇴근 후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와 책장을 넘기다 보면 아침 해가 떠오르는 날이 잦았다. 내가 선 자리에서 페미니즘 이어 말하기 이 책에 모은 글들은 그런 날들의 기록이다. 대학에 가지 않은, 비수도권에 사는, 여성 청년 노동자로서 김예림은 자기가 선 자리에서 바라보는 페미니즘을, 세상을, 21세기를 기록했다. 그 글들에는 페미니즘 저서들을 통해 생각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이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김예림이 책 속에서 만난 과거 여자들의 목소리는 현재에서 만나는 바로 곁의 여자들의 목소리와 겹치고 포개진다. ‘앎’의 이야기가 절반, ‘삶’의 이야기가 절반을 이룬다. 김예림의 ‘앎’은 삶의 연료가 된다. 다시 ‘삶’의 시간은 앎을 해석하는 재료가 된다. 시대는 과연 변하고 있을까. 세상은 과연 나아지고 있을까. 어떤 면에서 나아지는 것 같아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변화는 무척 더디고 때로는 뒤로 후퇴하는 듯도 하다. 김예림은 너무 늦지 않게 외치고 싶은 말이 있다. 21세기가 다 가기 전에 새 시대에 꼭 어울리는 언어로 이렇게 외칠 날을 고대한다. “이 멋진 날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왔구나!” 하고. 그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믿음으로 김예림은 계속 공부한다. 앎을 그리고 삶을. 이슬아 작가의 추천사 이것은 책으로 자신을 지키는 사람의 이야기다. 김예림은 남루한 날에 떠올릴 남루하지 않은 이야기를 모은다. 과거의 여자들에게서 건져 올린 말과 글을 어젯밤 꿈처럼 기억하고 옮겨 적는다. 지난 역사 속 여자들의 웃음과 눈물이 자신에게 자국으로 남기를 바라서다. 그는 살아본 적 없는 시대의 여자들로부터도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는 걸 안다. 영원해 보이는 조건, 태어난 나라, 인종, 성별, 지역, 계급을 어떻게 뛰어넘을지 고민하며 읽고 쓴다. 그의 집은 오래된 여자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하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워도 책들이 말을 건다. 그러자 꾹 닫힌 그의 입술이 저절로 열린다. 그렇게 열린 말문으로 이 책이 쓰여졌다. 김예림이라는 작가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배움은 그를 주저앉게 하는 동시에 일으키고 헤엄치게 한다. 한국의 비수도권에 사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여성 청년 노동자로서 김예림은 ‘자기만의 방’ 바깥의 이야기를 쓰려 한다. 이토록 멋진 날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왔다고, 너무 늦지 않게 말하기 위해서다. ― 이슬아 (작가, 헤엄 출판사 대표) 김예림이 소개하는 스무 권의 책 1.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2. 『여성의 권리 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3.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4.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글로리아 스타이넘 5. 『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6. 『맨박스』, 토니 포터 7. 『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8. 『성의 변증법』,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9. 『육식의 성정치』, 캐럴 제이 애덤스 10.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11. 『젠더 무법자』, 케이트 본스타인 12. 『거부당한 몸』, 수전 웬델 13. 『일탈』, 게일 루빈 14. 『시스터 아웃사이더』, 오드리 로드 15.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16. 『페미니즘 위대한 역사』, 조앤 스콧 17.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마리아 미즈, 베로니카 벤홀트-톰젠 18. 『기록되지 않은 노동』,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19. 『하나이지 않은 성』, 뤼스 이리가레 20. 『페미니즘 탐구생활』, 게일 피트먼 지은이 소개 김예림 1998년에 안산에서 태어났다. 노동자 부모 아래서 가난한 줄도 외로운 줄도 모르고 자랐다. 궁금한 게 많았던 열네 살의 나는 겁 없이 대안학교에 지원했고, 시간이 흘러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자기 깜냥을 깨달은 대안학교 졸업생이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는 내 깜냥으로 먹고살아야 했다. 스무 살에 지역 잡지사에서 기자 일을 시작했다. 하루 걸러 웃고 울면서 2년 반을 보냈다. 이렇게 일만 하며 살다가는 고독사하여 바싹 마른 미라로 발견되겠구나 싶었던 어느 날, 숨구멍을 찾았다. 지리산 자락의 ‘아주 작은 페미니즘학교 탱자’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잔뜩 품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곳에 다니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밤이든 낮이든, 더듬더듬, 띄엄띄엄. 나는 늘 그랬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딘가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 도착한 이유는 나중에 알아챘다. 내 몸과 생각이 현재와 다른 곳을 향할 때마다 이 과정을 반복했다. 이야기는 늘 먼저 도착해 있었고, 내가 지난 이야기를 알아채는 건 나중 일이었다. 그렇게 만난 이야기들을 앞으로 더 정확히 알아가려고 한다. 책 속에서 결과적으로 페미니즘은 내 세계를 바꿨다. 이 책은 내가 대학에 갔다면, 서울에 살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쓴 글을 모은 것이다. 페미니즘 에세이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선 자리에서 바라본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대안학교를 졸업해 세상에 나서고 보니 세상이 내 생각과 너무 다르게 굴러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 자신, 비대학 청년으로서 지역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한 나 자신을 향한 격려다. 이 책에서 만날 여러 저자의 말과 글이 당신에게도 의미 있기를 소망한다. 여기에 곁들인 내 슬픔과 사랑이 당신의 마음 한 구석에 들어앉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당신이 선 자리에서 바라본 세상을 서둘러 적어두기를 청한다. 언젠가 그 기록을 모아, 먼 훗날 어떤 이들의 말과 글과 행동이 오늘을 만들었는지, 우리가 증언하기로 하자. - 「서문」 중에서, 7쪽. 나를 작아지게 할 것만 같은 도시에서 벗어나 지역으로, 그것도 농촌으로 온 내 상상은 이런 거다. 오래된 집을 빌리고, 집의 낡은 곳을 보수하며 웬만한 기술을 익히고, 야심차게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가 어설프고 게으른 손길로 망쳐버리고, 그럼에도 남겨진 소소한 수확에 기뻐하는 것. 토마토 샐러드와 고사리 파스타를 차려놓고 동네 친구들과 먹고 놀다 새로운 모임을 만들어내는 것. 글쓰기 모임이든 독서 모임이든 산악회든 뭐가 됐든 주기적으로 만나고 마시고 얘기하다 이 지역에서 우리 목소리를 내보자고 결심하는 것. 함께하는 사람에게 다정하고, 떠나는 사람을 응원하며, 새로운 사람을 환대하는 일상을 보내는 것.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도 우리는 꽤 치열하게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 보여주는 것, 그렇게 다음 시대를 상상하는 것. 『여성의 권리 옹호』를 읽고서 상상해보는, 지역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권리 옹호다. - 「300년 전 여성의 권리 옹호」 중에서, 24~25쪽. 사람은 모두 누군가의 자국이 남아 있는 존재라고 했다. 내 타고난 생김새, 편한 옷을 자주 입는 나, 맨 얼굴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상태를 좋아하는 나, 특별한 날에는 세련된 옷을 입고 구두를 신는 나, 바쁘고 힘들 때는 곱슬머리가 아무렇게나 흐트러져도 개의치 않는 나의 존재에도 누군가의 자국이 남아 있다. 내가 아름답지 않아서 ‘내게 첫눈에 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체념할 때마다 다시 내 겉모습을 사랑하게 하는 것도 탈코르셋이 아닌 누군가의 자국이다. 내가 어떤 자국을 가장 사랑했는지, 어떤 자국을 내 일부로 남겨두었는지 떠올려보면 내가 매일 여성적 아름다움을 장착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해주었던 이들의 손길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쉽게 자각한다. - 「그을린 얼굴로 웃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중에서, 92쪽. 한국의 성별 이분법과 그에 따른 문화 속에서 나는 어디까지 가짜로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늘 경계를 넘나드는 젠더무법자의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는 그들이 가까운 미래에 ‘분류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닌 ‘경계를 유영하는’ 물고기가 되어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자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고민하는 대신 물고기처럼 아름답고 자유로운 친구를 사귈 테다. 우리는 함께 해가 질 때까지 강가를 떠나지 않으며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을 만큼 오래 헤엄을 칠 테다. - 「너 가짜로 살고 있구나」 중에서, 100쪽. 내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내 노동이 아닌 여행을 떠올린 것은 이제 자기만의 방 바깥의 이야기가 쓰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울프가 20세기에 필요한 이야기를 했다면, 나는 21세기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긴 방황을 위한 넉넉한 돈, ‘자기만의 방’을 떠난 여행에서만큼은 주어진 젠더를 인식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여전히 녹록치 않은 현실 앞에서 ‘그건 너무 이른 이야기’라고 타이른다면, 나는 울프의 말을 다시 빌려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나의 제안이 약간 환상적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픽션의 형식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더욱 좋겠지요.” 적어도 100년 안에 도래할 세상을 그리는 픽션 말입니다. - 「자기만의 방 바깥으로 떠난 여행」 중에서, 136쪽. 지난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어렵고, 무겁게 느껴지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섣불리 내 이름 앞에 붙일 수 없었다. 책으로 수많은 페미니스트를 만나면서도 왜 몰랐을까. 페미니즘은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은 모든 사람을 호명하는 이름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페미니즘에서 도망치는 대신에 페미니즘의 힘을 주장하면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지 상상해보세요”라는 게일 피트먼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나는 책을 덮고, 눈물을 닦고, 오늘에서야 뒤늦은 선언을 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그녀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 「뒤늦은 선언」 중에서, 189쪽. 차례 서문. 책 읽는 내가 선 자리 1. 동굴 밖으로 나와 봐,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야’ 2. 300년 전 여성의 권리 옹호 3. 21세기, 행위하는 인간의 조건 4. 나를 위한 게임 5. 낡은 것은 도태하고 새로운 것은 떠오른다 6. 길 잃은 남자를 위한 친절한 이정표 7. 다정함의 기술 8.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해 9. 육식인의 전복 10. 그을린 얼굴로 웃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11. 너 가짜로 살고 있구나 12. 우리가 앓는 장애 13. 일탈이 일상이 되는 세상을 위하여 14. 이방인의 집 15. 자기만의 방 바깥으로 떠난 여행 16. 혁명의 그늘진 곳을 비추다 17. 자급의 삶을 살고 싶다고요 18. 기록되지 않은 노동자가 고난에 응답하는 법 19. 우리의 입술이 저절로 말할 때 20. 뒤늦은 선언 보도자료 다운 받기
-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20-5 (03330) 출간일: 2021년 6월 18일 정가: 16,000원 제본: 무선 쪽수: 276쪽 판형: 135×210mm 분야: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노동문제 국내도서 > 사회정치 > 사회비평/비판 > 노동문제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사회문제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 기획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지은이 : 김신범, 김원, 윤간우, 이윤근, 임상혁, 임영국, 최영은, 최인자, 한인임, 허승무, 현재순 책 소개 일터에서 노동자가 겪는 사고와 질병, 이 고통을 멈추기 위해 고통에 ‘이름’을 붙이다 노동자는 다만 일이 위험해서 다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위험한 일도 안전한 방식으로 일하면 다치지 않는다. 우리가 안전보다 이윤을, 존중보다 차별을 선택할 때 그 노동의 현장에서 누군가 다치고 죽는다. 일하다 사람이 다치고 병들고 죽는 사회를 멈추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시작해야 할까. 지난 20여 년간 노동자의 고통을 찾아내고 분류하고 측정해서 이름을 붙여온 이들이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사람들이다. 이 책은 노동자가 겪는 고통을 멈추기 위해 고통의 현장을 조사하고, 고통에 이름을 붙여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해온 이들이 전하는, 산재와 직업병 현장에 대한 기록이다. 보도자료 일터에서의 사고와 질병, 그에 맞서온 이들의 이야기 한국은 하루 평균 7명의 산재 사망자가 발생하는 나라다. ‘오늘도 7명이 퇴근하지 못했습니다’는 해시태그 운동은 이 때문에 시작되었다. 구의역의 김군, 태안화력발전소의 김용균, 평택항의 이선호 노동자 사망사고로 노동 현장의 문제와 심각성이 알려지기는 했으나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일하다 사람이 다치고 병들고 죽는 사회를 이제 그만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통을 멈추기 위해서는 우선 고통이 제대로 드러나야 한다. 하지만 공장의 담벼락으로, 어두운 조명으로, 때로는 오해와 편견으로 노동자의 고통은 감춰지고 지워지기 일쑤다. 그래서 노동자의 고통을 애써서 드러내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아픔이 드러나야만 사회가 더 많은 아픔을 나누고 노동의 고통을 키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여 년간 노동자의 고통을 찾아내고 분류하고 측정해서 이름을 붙여온 이들이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사람들이다. 이들은 고통을 드러내고 고통에 이름을 붙여 사회에 알리는 일을 한다. 이들은 발전소나 조선소 노동자뿐 아니라 네일 아티스트, 택배, 청소, 간병 종사자, 영화 스태프, 환경 미화원, 배달원, 경비원, 택시기사, 가축 위생 방역사, 콜센터 노동자, 간호사, 어민, 농민, 국립공원공단 직원 등 다양한 노동자들을 만났다. 이 책은 일하다 병들고 다치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동 현장을 누비며 산업재해 사고 및 직업병 요인을 조사하고 연구해온 이들의 20여 년간의 기록이다. 노동은 위험하다 노동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사용해 일한다. 그러니 노동자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피곤할 수 있고, 때로는 다치거나 병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노동이 신성하다는 이야기는 흔히 하면서도 노동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아프다고 말하려면 용기를 내야 하는 사회. 일 때문에 아픈 게 맞느냐고 의심부터 하고 결국 외면하는 것이 이른바 세상의 ‘상식’이 된 사회의 현실이 노동자를 더욱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 고용하는 자에겐 책임이 있고 고용된 자에겐 권리가 있지만 책임은 너무 가볍고 권리는 너무 멀다. 고통에 이름을 붙여 고통을 드러내다 변화란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 애써서 만드는 것이다. 노동자의 고통은 잘 드러나지 않기에 변화는 더욱 더디게 찾아온다. 근골격계 질환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감정노동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도 있었다. 감춰져 있던 고통에 이름이 생기면 사회가 아픔을 나누고 위험을 줄일 방법을 의논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아픔에 붙은 이름을 부를 때, 노동자의 고통은 더 빨리 줄어들고, 일의 위험도 줄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고통을 찾아내고 분류하고 측정해서 이름을 붙여야 한다. 녹색병원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사람들은 그렇게 노동자의 고통에 하나둘 이름을 붙여왔다. 이 책에는 그들이 만난 노동자들의 고통들과 그 고통에 붙인 이름들이 기록돼 있다. 차별이 아닌 존중이 필요하다: 국가, 기업, 시민의 존중 고통의 이유는 분명하다. 일에는 위험이 있게 마련이지만, 같은 일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위험의 크기가 달라진다.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이 죽는 것이나 발암물질에 더 많이 노출되는 상황은 바로 ‘차별’ 탓이다.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자살률이 높은 것도 마찬가지다. 차별은 일의 위험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라는 강요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차별에 적응하면서 위험을 감수하려고 애쓰다가 병들고 다친다. 고통의 주된 이유는 바로 차별이다. 그래서 차별이 아닌 존중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고 그 아픔을 줄일 방법을 의논하는 것이 바로 존중의 자세다. 산업이나 직업의 설계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예측하고 줄일 방법을 미리 마련하는 것도 존중이다. 노동자가 아프다고 말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는 것도 존중이고, 사업주가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의무를 만드는 것도 존중이다. 존중은 기업의 차원(1부_ 위험은 만들어진다), 국가적 차원(2부_ 죽음도 차별받는 현장) 그리고 시민의 차원(3부_ 드러나지 않기에 더욱 위험한)에서 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노동의 결과만이 아니라 노동의 과정에도 관심을 이 책에는 우리 곁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노동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할 테다. 필자들은 이 책에서 노동자들의 일터를, 그들의 노동을 주목한다. 출근하면서 만나는 아파트 경비 노동자를, 새벽에 집 앞 골목에 다녀간 청소 노동자를, 조금 전에 음식을 전해줬던 배달 노동자를, 식당에서 만난 서비스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우리는 이들을 통해 얻는 노동의 결과에만 관심을 가진 게 아닌가? 이를테면 ‘서비스는 좋았나?’ ‘주문한 물건은 언제 도착하나?’ ‘제품에 하자는 없나?’ 같은 것에만 관심을 갖지 않았나. 이제 노동의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에 보다 관심을 기울일 때다. 우리가 외면하는 노동의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미소 속에 감춰진 서비스 노동자들의 상처받은 마음의 병을, 물건을 받는 기쁨 속에 가려진 택배 노동자들의 온갖 골병들을, 차별이 존재하는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말이다. 필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사람들은 노동을 차별할까?’ ‘존중받는 노동이란 무엇일까?’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당한 노동의 가치는 무엇이고, 왜 그 가치는 인정받지 못할까?’ 필자들이 제시한 답은 각자 다르게 표현되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노동자들의 시각에서 그들의 문제를 이해하고 노동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타인의 노동을 존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제도적 변화를 위하여 노동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뀐다고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대하는 마음과 행동이 변하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진들 현장에서는 절대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좀 더 근원적인 제도적 변화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자를 위한 제도적 변화에서 중요한 지점들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제도적 변화의 중요한 원칙들을 다음 네 가지 구호로 제안한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강화” “노동자 참여권 보장” “노동자 작업중지권 보장” 앞으로 이 구호들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우리 노동현장 어디에서나 공기처럼 작동하는 제도가 되기를 바란다. 기획 소개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직업병 사건인 원진레이온 직업병 사건을 계기로 1999년에 만들어졌다. 연구소는 노동자들의 환경과 건강 실태를 조사하고, 노동자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에 이름을 붙여 세상에 알리고, 일하다 아프고 죽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법과 제도적 대책을 마련하는 활동을 벌인다. ‘피자 30분 배달제 폐지’ ‘마트 노동자에게 휴식 의자 제공하기’ ‘박스에 손잡이 구멍 뚫기’ ‘환경미화원에게 씻을 권리 제공하기’ ‘일터와 삶터에서 발암물질과 환경호르몬 없애기’ 등의 캠페인을 이끌었다. 지은이 소개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발암물질을 조사하고, 시민과 노동자를 위한 화학물질 알권리 정책을 만들고,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활동한다. 지은 책으로 『화학물질, 비밀은 위험하다』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마을 만들기 사업에 던지는 질문』(공저) 등이 있다. 김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화학물질 노출 실태를 조사하고, 산업 현장 인근의 환경오염과 시민들의 건강 영향을 평가하고, 환경호르몬과 같은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활동한다. 공역한 책으로 『사업장 근로자 건강영향조사』 『산업보건학 원론』 『소방공무원 순직재해 NIOSH 조사보고서』 등이 있다. 윤간우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장,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녹색병원에서는 진폐증 환자와 직업성 근골격계 질환자를 치료한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는 크고 작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역학조사를 실시한다. 농어업인의 안전과 건강에 관심이 많아 사고 및 질병 조사 통계 연구를 매년 수행하고 있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 근골격계 질환 및 직업성 암 등의 직업병을 연구하고 노동 환경의 위험성 평가 등의 활동을 한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노동안전특별조사위원회’ 참여 등 여러 사회적 활동을 통해 노동 환경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방사능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에게』(공저) 등이 있다.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 임영국 민주노총 산하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사무처장. 화학·섬유·IT·식품 등의 산업 분야에서 노동자들에게 노조를 공유하고 연결하는 활동을 한다. 노동조합이 일상이 되는 시대를 열어가고자 활동한다. 노동권 사각지대 조직화를 위한 ‘공제회를 품은 노동조합’의 전형을 마련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봉제인공제회 상임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노동조합 조직화 사례 연구』(공저)가 있다. 최영은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환경평가팀장.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의 화학물질 노출을 조사한다. 더 많은 노동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기를 희망한다. 최인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분석팀장. 작업 환경에서 노동자에게 노출되는 화학물질과 일상에서 소비자에게 노출되는 환경호르몬을 분석한다. 사람의 소변과 혈액에서 유해화학물질을 분석하는 바이오모니터링을 통해 몸속의 바디버든(body burden)을 확인하는 연구와 이를 줄이는 활동에 관심에 많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교육팀 책임연구원. 노동자 교육을 담당하며, 근골격계 질환, 직무 스트레스, 감정노동, 과로사 등을 연구한다. 세월호 참사, 구의역 김군 사망사고,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사망사고,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고 등의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지은 논문으로 『공공부문 위험생산의 작업장 정치』 등이 있다. 허승무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근골격계질환센터 인간공학팀장. 사업장의 근골격계 질환 문제를 진단하고 평가하는 일을 하며,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작업 강도, 적정 인력 등의 문제에 인간공학적으로 개입하는 작업을 기획하고 있다. 현재순 《일과건강》 기획국장. 전국 사업장과 주요 산단에서의 화학물질 감시 활동을 기획하고 있으며, 노동자와 시민이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안전보건 환경단체인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건생지사)’에서 활동한다. 지은 논문으로 『화학물질안전관리와 지역사회알권리를 위한 시민사회역할 연구』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제가 입사한 지 1년 안 돼서 손에 화상을 입었었는데 처음엔 별거 아닌 줄 알았다가 일반병원 가서 심각하단 얘길 듣고 화상병원을 찾아서 갔었어요. 손가락 화상은 잘못 치료하면 굽어서 나으니까요. 손에 붕대를 감아서 일단 쉬어야 하니까 진단서를 팩스로 보냈더니 그러면 안 된다면서 굳이 회사에 와서 내라고 하더라고요. 붕대 감은 손을 밑으로 내리면 피가 쏠려 더 아프다고 항상 왼손을 들고 있었는데 그 상태로 혼자 운전하고 야탑까지 갔었네요. (…) 산재는 안 된다며, 저는 잘 모르니까 결국 아빠랑 통화하시곤 병원에 와서 병원비 결제해주고 경위서를 가져왔었어요. 퇴원하고도 통원치료는 계속했고요. 다 공상으로 처리했어요.” ― 프랜차이즈 빵집 노동자 “민원전화 받고 있으면 유리방(사무실)에서 쪽지가 오는데 그거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죠. 시간대별로 팀장 쪽지가 와요. 민원 처리 빨리하라는 거예요. 오래 잡고 있지 말고… 그래서 하루에 이석 시간이 5~10분 정도 밖에 안 돼요. 화장실만 잠깐 갔다 오고 하루 종일 물도 안 먹고 그렇게 일을 했어요.” ― 정부기관 콜센터 노동자 “일하다 보면 저쪽 끝에 있는 팀장이 누군가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막 소리를 질러요. ‘후처리, 후처리!!’ 과거에는 내가 숨이 턱에 차면 홀더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안 받을 수 있는 짬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화 끊자마자 대기 전화가 연결되는 자동 연결체계로 되어 있어요. 쉴 수가 없죠.” ― 인터넷기업 콜센터 노동자 “내 일거수일투족이 컴퓨터에 기록되는 게 무서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심지어 나중에 보면 화장실에 몇 번 갔는지도 알 수 있더라구요. 가끔은 내가 회사가 아닌 닭장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 ― 은행 콜센터 노동자 “저는 이용자의 편의를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장 봐서 식사 준비해드리고 목욕시켜드리고 산책하자고 하면 휠체어 밀고 나가고… 그런데 멀쩡한 가족들 빨래를 해달라는 거예요. 심지어 가족들 심부름해달라는 경우도 있어요. 주말 동안 미뤄놓은 가족들 설거지도 한 적 있어요.” ― 돌봄 노동자 “제 동료는 남성 이용자가 가슴을 만져 놀랐는데 센터에 이야기를 해도 센터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그만두었어요.” ― 돌봄 노동자 “이용자가 치매를 앓고 있는데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하지 못하면 제가 가져갔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저는 일자리를 잃었어요.” ― 돌봄 노동자 “고객이 체크아웃을 해야 하는데 전화를 안 받아서 객실로 올라갔어요. 벨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어 방문을 열었죠. 그랬더니 목을 맨 고객이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거예요. 그 후론 객실 문을 열려면 식은땀부터 흘려요.” ― 호텔 청소 노동자 “고객이 청소를 부탁해 벨을 누르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투숙객이 나체로 서 있는 거예요. 당황해하고 있는데 옷 입을 생각도 안 하고 청소하라고 손짓을 하더라고요. 미친 놈… 그래서 그냥 나왔어요.” ― 호텔 청소 노동자 “있죠. 좀 말하기 그렇지만 관리자 중에서 딜러들이 실수를 하는 경우에 폭언을 굉장히 심하게 하는 경우가 있어요. 손님들 앞에 세워놓고 무안을 주거나 그런 거요. 딜러 입장에서는 실수했다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거든요. 아니면 내려오라고 해가지고… 로커에서도 많은 인원이 쉬어요. 아무리 막내고 아무리 그런 거에 무디다 해도 자기는 앉아 있는 상태에서 사람을 세워놓고 막 소리를 지르거나 질책을 하면 인격 모독이거든요. 근데 그게 공공연하게 이루어져요. 동기들이 있는 데서만 혼나도 스트레스인데 만약 후배가 보고 있거나 많은 인원이… 그런데서 폭언을 일삼으면서 얘가 실수했다는 걸 다 알려버리는 거죠. 그러면 굉장히 스트레스죠. 근무표 봤는데 그런 간부들 하고 같이 짜여 있으면… 그럼 한숨을 푹….” ― 카지노 딜러 노동자 “이게 그래도 할 만한 일인데, 내가 도저히 꼴불견이라 못 봐주겠는 게 있어. 음식물 쓰레기 차 지나가면 코를 막고 얼굴 찡그리는 사람들. 지들이 먹은 건데 그거 냄새난다고 호들갑 떠는 게 제일 짜증나는 거야. 내가 쓰레기 치우려고 가면 피하는 사람들.” ― 환경 미화원 “밀폐된 공간에서 계속 일을 하잖아요. 집에 가서 샤워하면 한 시간 동안 계속 기침 나고 콧물 나요.” ― 네일 아티스트 “큐티클 리무버 자체가 손에 닿으면 각질층이 일어나요. 그러니까 당연히 왼쪽 손은 항상 짓물러 있고 각질 진물 난 것처럼 너덜너덜 그래요. 그러면 손 씻어줘야 하는데….” ― 네일 아티스트 “전주가 없는 곳은 맨홀 속에 망이 깔려 있어요. 이때 전기가 흐르는 경우가 있죠. 맨홀에는 항상 물이 차 있거든요. 오폐수도 있는데 이걸 퍼내고 작업을 해야 해요. 도로 위에 있는 맨홀 작업 때는 차가 다녀야 한다고 빨리하라고 운전자들이 욕하고 그러니까 그냥 야간에 하죠. 야간에는 혼자 작업하는데 밖에서 봐주는 사람도 없어요. 위험하죠. 또 맨홀 깊이가 다 달라요. 사람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목만 넣고 일해야 하는 크기도 있어요. 한여름 우기 때 침수가 잘 되는데 전기 장비를 가지고 가면 침수돼서 꺼지는 경우에는 일을 못해요. 여름철 맨홀에 가스측정 안 하고 들어갑니다. 마스크도 없이…” ― 인터넷 수리 기사 차례 들어가며_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 1부_ 위험은 만들어진다: 기업은 노동자를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가 상자에 손잡이를 달아주세요 조선소, 암의 위험 학교 실험실의 사업주는 누구일까? 태움, 어느 나이팅게일의 죽음 프랜차이즈 빵집, 노동권 사각지대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어” 20년 만에 다시 만난 택시 운전사 중장년 여성들의 전유물, 돌봄노동 상상하라, 화려한 호텔과 카지노의 노동을 발암물질을 없애고 싶은 노동자들 2부_ 죽음도 차별받는 현장: 국가는 노동자를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가 빛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어둠 경사 난 대한민국 영화 시장의 이면 소방관을 쓰러뜨리는 암 1인 1조 작업의 위험, 가축 위생 방역사 ‘작물보호제’라고요? ‘농약’입니다! 노후한 화학시설, 방치된 화약고 시한폭탄을 안고 달리는 화물차 고강도 등산이 직업인 사람들 방치되고 있는 어업인의 근골격계 질환 3부_ 드러나지 않기에 더욱 위험한: 시민은 노동자를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가 환경미화원은 왜 가장 위험한 직업이 되었을까? 아름다움을 만드는 손, 네일 아티스트 플랫폼 노동자는 배달 노동자와 다른 신인류? 방문기사, 집으로 찾아오는 스파이더맨 무제한 노동에 시달리는 경비원, 노인의 일자리 벼랑 끝 택배 노동자 나가며_ 나 또는 우리 가족이 저곳에서 평생 일해도 좋겠는가 발문_ 녹색병원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꿈 보도자료 다운 받기
-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11-3 (03800) 출간일: 2020년 7월 10일 정가: 20,000원 제본: 무선 쪽수: 420쪽 판형: 128×188mm 분야: - 문학 > 장르소설/여성소설/과학소설(SF) - 문학 > 비평/창작/이론 - 인문학 > 영미문화론 - 인문학 > 인문비평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 지은이: 조애나 러스 옮긴이: 나현영 “조애나 러스의 글들은 어처구니없는 관습과 편견에 맞선 20세기 장르 문학사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아직도 유효한 현재형의 질문이자 선언이다” - 듀나 (SF 작가) “조애나 러스는 어째서 여성이 SF를 사랑하는가를 거침없이 말한다. 여성은 SF라는 매개체를 통해 실재하는 다른 세계를 꿈꾼다. 어느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는 세상을. 모든 규칙이 달라진 세상을.” - 김보영 (SF 작가) 책소개 SF 작가이자 비평가, 페미니스트이자 퀴어 활동가였던 조애나 러스의 SF 비평집. SF 장르를 새롭게 정의했으며, 현대 문명과 페미니즘, 여성의 글쓰기와 같은 주제를 SF 장르를 통해 사유한 조애나 러스의 대표적인 글들을 모았다. 거침없는 분석들이 주는 깨달음과 즐거움, 그 속에 가득한 위트와 유머가 독보적이다. 러스는 SF가 젠더 역할과 문화의 구속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정한 ‘놀이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책은 억압과 굴레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여성들, 그리고 SF를 통해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모든 SF 작가와 독자 들에게 남겨진 귀중한 유산이다. 보도자료 낡은 관념들을 박살내는 ‘환상적인 분노’의 통쾌함 “당신의 분노에서는 혁명의 냄새가 납니다. 아니, 아주 오래 묻혀 있다가 막 폭발하려고 부글거리는 화산의 냄새가 나요.” ― 1973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조애나 러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조애나 러스가 SF 장르에, 특히 페미니스트로서 SF 장르에 기여한 바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뉴욕 타임스》는 2011년의 부고 기사에서 그를 “SF의 가장 낯선 외계 생명체, 즉 여성에게 SF를 전달해 준 작가”라고 칭했다. 러스는 페미니즘 SF의 선구자이며 1970년대에 꽃 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이끈 대표적인 작가다. 그는 자신의 소설과 비평을 통해 SF 장르를 새롭게 정의했으며, 현대 문명과 페미니즘, 여성의 글쓰기와 같은 주제를 SF라는 양식을 통해 사유했다. 조애나 러스의 문장은 명징하다. 그리고 명징한 문장은 명징한 사고와 짝을 이룬다. 그는 난독을 부르는 애매모호함을 경멸하며 이 애매모호함이 결국은 남성 연대와 남성 신화를 강화하는 신비화의 전략임을 폭로한다. 러스는 예리하고 엄밀한 분석으로 이 신비화된 낡은 신화들을 해체하는 데 열정을 쏟는다. 러스의 작업은 독자에게 깨달음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안긴다. 거침없는 분석들이 주는 깨달음과 즐거움, 그 속에 가득한 위트와 유머는 조애나 러스의 비평이 가진 독보적인 성격이다. 또 우리는 러스로부터 특별한 열정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앎과 삶을 연결시키려는 열정이다.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기’, 경험한 세상을 ‘다시 보기’, 그리고 이렇게 인지하게 된 현실을 명징한 언어를 통해 표현하기. 이는 러스가 자신의 비평에서 실천해 온 것들이다. 러스는 이 작업을 하면서 드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고 또 당연히 분노해야 함을 일깨웠다. SF를 비평하면서 각종 차별과 배제들,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신비화, 젠더 고정관념과 여성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남성 신화들에 분노하고 저항한 것은 러스에게 있어 SF 장르 역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실천들의 장이었던 까닭이다. 미래를 바라보는 양식으로서의 SF가 과거의 억압과 굴레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이들의 ‘놀이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은 러스가 여성들에게, 그리고 SF를 통해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모든 SF 작가와 독자 들에게 남긴 귀중한 유산이다. SF를 무대로 일어난 1970년대의 성 전쟁 노출증 환자들의 승리 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성차별주의적인 이야기는 소설 속 등장인물이 모두 베텔게우스계 행성에 사는 결정형 생명체라 해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인간이 아니더라도 작가와 독자는 인간이니까요.” - 페미니즘 계간지 《퀘스트(Quest)》와의 1975년 인터뷰에서 페미니즘 SF 비평은 본격적으로 조애나 러스로부터 시작되었다. 러스 이전에도 작가 개인이나 SF 전반의 성차별주의적 경향을 비판하는 남성 비평가들은 있었으나 이들은 1970년대부터 어슐러 K. 르 귄과 조애나 러스, 마지 피어시 등이 불을 댕긴 긴급한 문학적 변화들을 당대의 혁명적 언어인 페미니즘으로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러스는 제아무리 먼 미래와 먼 은하를 배경으로 경이로운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펼쳐 보이는 SF라도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있어서는 교외에 사는 백인 중산층 가정의 젠더 고정관념을 답습함을 비판하면서, 이를 SF적 상상력의 ‘실패’로 규정한다.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의 충돌은 SF 공동체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당시에는 남성 작가로 알려져 있던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작품을 제외하고) 안티페미니즘의 입장에서 성 전쟁을 다룬 10편의 작품을 비판하는 “4장 사랑은 여자를 정복한다: SF에서 일어난 성 전쟁”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활화산 같은 러스의 분노가 이 어리석은 ‘부족’들을 활활 태우는 현장을 보게 된다. 여성이 지배하는 부패하고 무능력한 세계에서 남성 성기라는 ‘성물’의 소유자들이 ‘자연의 승리’를 하게 되어 있는 이 작품들에 러스는 ‘성기 노출증 환자들의 소설’이라는 절묘한 이름을 붙인다. “10장 최근 유행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 대하여”에서는 같은 성 전쟁을 다루면서도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모니크 위티그의 《게릴라들》, 어슐러 K. 르 귄의 《빼앗긴 자들》, 마지 피어시의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와 같은 이 작품들은 새뮤얼 딜레이니의 《트리톤》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 작가가 썼으며, 계급과 정부가 없고, 생태주의적이며 동성애, 이성애, 난혼, 한 여성이 다른 여성과 함께 아기를 갖게 하는 재생산 기술 등 다양한 출산과 양육의 방식이 있는 사회를 보여 준다. 러스는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SF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며, 유토피아를 향한 충동 뒤에는 누군가의 고통이 감춰져 있다고 말한다. 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의 주인공들은 계급과 성, 인종차별을 포함하는 현실의 고통과 대면하며 저항한다. 우리가 맛볼 수 있는 것은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 평행진화해 급진적 유토피아주의로 폭발한 여성 문화의 진수다. 문화의 성은 남성이다. 낡은 신화를 이용하는 한 여자는 쓸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신화라면? “그것은 내 무게 중심을 ‘그(Him)’에게서 ‘나(Me)’로 옮기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난 이것이 예술가가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인 당신이 여성이라면 말이에요.” - 페미니즘 계간지 《퀘스트(Quest)》와의 1975년 인터뷰에서 1부가 주로 SF와 관련된 비평들을 담고 있다면 2부에서는 여성의 글쓰기를 주제로 SF와 모던 고딕이라는 여성 로맨스 장르, 윌라 캐더와 샬럿 퍼킨스 길먼 같은 여성 작가들을 다룬다. “7장 여주인공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는 여자는 왜 글을 쓸 수 없는가”에서 러스는 서구 문학의 플롯은 사실 거의 모두 남자 주인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사나운 짐승을 때려눕히고 자신의 남자다움을 증명하는 이야기, 영웅적인 전투에서 승리하는 이야기, 순진한 여자를 유혹해 임신을 시키는 나쁜 남자의 이야기,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으나 술독에 빠져 지내다 요절한 전설이 되고 마는 시인의 이야기는 모두 남성의 신화다. 즉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문화의 남자와 여자는 단일한 관점에서 문화를 상상한다. 바로 남성의 관점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 페이, 헤밍웨이의 소설 〈프랜시스 매컴버의 짧았던 행복〉에 등장하는 매컴버의 아내, “6장 소년과 개: 최종 해결”에서 할란 엘리슨 원작의 동명의 영화에 등장하는 퀼라 준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여자 주인공들은 결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여자의 이미지에 불과하다. ‘잡년 여신’이 아니면 처녀 희생자로 이분되는 이 여주인공들에게는 어떤 내면도, 동기도 없는데, 이는 이들이 실은 인격이 아니라 투사된 소망이나 두려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남성 신화를 이용하기를 거부한 여성 작가들은 어떤 소설을 쓸 수 있는가? 러스는 버지니아 울프처럼 플롯 없이 서정적인 구조를 쌓아올리거나 샬럿 브론테의 《빌레트》처럼 자기 삶에서 길어 올린 구조를 모델로 삼는 사례들을 소개한다. 여성 작가들은 “11장 ‘여자처럼’ 글쓰기”의 윌라 캐더처럼 자신의 주인공에게 남성의 ‘가면’을 씌우는 전략을 택하기도 한다. 그리고 “9장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에서 우리는 여성 작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약속하는 신화가 태어나는 순간을 목격한다. 메리 셸리는 견딜 수 없는 현실에서 전력을 다해 도망치는 도피자였기에 지금 여기를 담을 수 없거나 담으려 하지 않는 감수성의 통로를 찾아 헤맸다. 바로 《프랑켄슈타인》과 《최후의 인간》의 세계, 오늘날의 우리가 SF라 부르는 사변적이고 미래적인 세계로 이동하는 통로다. 그래서 메리 셸리는 ‘비유기체적 생명체의 탄생’과 ‘자연스러운 파국으로 상상된 세계의 종말’이라는 현대 산업화 시대의 거대한 두 신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러스의 말처럼 “SF에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있었던 셈”이다. 러스의 글에서 우리는 오늘날 한국에서 여성 작가들이 쓴 SF가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SF는 “남자로서의 남자, 여자로서의 여자를 다루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지능과 적응 능력을 다루는 신화”이며, 젠더 역할과 문화의 구속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정한 놀이터이기 때문이다. 지은이 소개 조애나 러스 Joanna Russ SF 작가이자 비평가, 페미니스트이자 퀴어 활동가였던 조애나 러스는 1937년 뉴욕에서 태어나 10대 때부터 SF와 공포소설을 즐겨 읽으며 장르 소설에 담긴 자유와 상상력을 흡수했다. 코넬 대학교에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제자로 영문학 학사 학위를 받고 예일 대학교 드라마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워싱턴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영문학을 가르쳤다. 러스가 막 활동을 시작했던 1960년대에 SF는 소위 ‘백인 이성애자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제2의 물결 페미니즘의 태동으로 가부장적 사회 구조를 전복하고 남성이 규정한 여성성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여성들에게 기성 문학의 규범에서 벗어난 SF는 자신들의 상상력을 실험할 수 있는 새로운 영토로 여겨졌다. 러스는 〈그들이 돌아온다 해도〉(1972), 《알릭스》(1976), 그녀의 가장 큰 문제작인 《여자남성》(1975) 등을 통해 젠더 고정관념에 도전하며 어슐러 K. 르 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마지 피어시 등과 함께 1970년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의 부흥을 이끌었다. 러스는 페미니즘과 영문학, SF, 퀴어 비평까지를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서 소설만큼이나 도발적이고 문제적인 이론서들을 다수 발표했다. 〈SF 속 여성의 이미지〉(1971)에서는 미래나 우주를 무대로 한 실험적인 작품에서마저 젠더 문제에 있어서는 백인 중산층 가정의 고정관념을 답습하는 남성 SF 작가들을 비판했고, 《여성의 글쓰기를 억압하는 법》(1983)에서는 여성의 글쓰기를 무시하고 예외적으로 취급해 온 영문학의 역사를 비판했다.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1995)는 러스가 SF와 여성의 글쓰기를 주제로 쓴 대표적인 글들을 모은 비평집으로 SF 작가로서 그의 목소리가 가장 직접적이고 생생하게 드러나는 책이다. 분노는 그녀가 글을 쓰고 대중 앞에 나서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었지만 말년에는 만성 피로 증후군과 심한 요통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했다. 2011년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옮긴이 소개 나현영 매주 수요일 연남동 카페 본주르에서 ‘여성 작가가 쓴 SF 읽기’ 모임을 하고 있다. 조애나 러스의 책을 시작으로 포도밭출판사의 나선형 시리즈에서 SF, 퀴어, 페미니즘 등에 관한 다양한 책을 기획하고 소개할 예정이다. 옮긴 책으로 《유토피아 실험》, 《무정한 빛》,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 《사일런스: 존 케이지의 강연과 글》, 《낭만주의의 뿌리》(공역)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전적으로 낯선 이야기를 만들어 낸 SF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전적으로 친숙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 SF는 SF가 아니다. 다시 말해, 어떤 작품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참조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과 연결된 모든 참조점이 지나치게 분명하고 직접적일 때, SF적인 특성을 잃은 이 작품은 불신의 유예가 끝난 ‘정직한’ 소설이 되고 말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렇다. “SF는 불가능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아야 한다.” -70~71쪽 〈스타워즈〉에서 욕구는 자부심과 쾌락이다(나는 이것이야말로 ‘재미’가 상징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이것들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은 거칠게 말해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이성애 중심주의, 경쟁과 마초적 특권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특권은 바로 〈스타워즈〉의 관객 대부분이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세계, 자신들이 욕구하는 흥분과 쾌락에 접근하지 못하는 세계를 만들고 있는 주범이다. -89쪽 여기서 ‘광기’라는 말의 의미는 사람들의 삶의 구체적 조건으로부터 유리된 추상적 개념만을 곱씹는 태도를 말한다. ‘광인’들은 왜 이렇게 행동할까. 다른 사람들이 그를 위해 노동해 주는 덕분에 자기 삶의 견고하고 실천적인 세부사항들로부터 격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삶에 대해 생각할 때 이런 실천적인 세부사항을 생략하거나 사소하다고 전제하며 시작한다. 웨스트는 이에 대응하는 여성적 결점을 ‘어리석음’이라 불렀다. 어리석음은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넘어 더 큰 패턴을 보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다. 어리석음은 양말을 깁고, 변기를 닦고, 들판에서 일하는 것이 하늘이 부여한 네 천직이고, 어쨌든 아무도 네가 진짜 결정을 내리도록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들어 온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92~93쪽 테크노필리아와 테크노포비아는 둘 다 가진 자의 태도다. 테크노필리아의 경우 자신이 권력을 갖고 있거나 권력자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테크노포비아의 경우 비록 권력을 잃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어쨌든 자신에겐 권력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 스스로 무력하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이들―여성, 비백인, 빈곤층―은 테크노필리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테크노포비아도 되지 않는다. -98쪽 여기서 논의되는 모든 이야기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다〉를 제외하고) 남성 성기를 자신들의 성물로 삼는다. 이것을 소유한 자에겐 성 전쟁에서의 승리가 보장된다. 따라서 이 승리는 자연의 승리이며, 지성, 성격, 인간성, 겸손, 통찰력, 용기, 계획, 감각, 기술, 심지어 책임감마저 없이 전쟁에 승리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111~112쪽 그리고 공포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리치의 말처럼) 누군가 여기까지 와 본 적이 있으며, 넌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파괴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것들, 섬뜩하고 악마적인 것들을 한사코 부정하는 문화에서 자라난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는 중요한 메시지죠. -154쪽 영화에서 퀼라 준이 사악한 인물로 보인다면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빅의 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 부드러워 쓰다듬어 주고 싶은 여자라는 생물의 애호가들을 기다리는 무시무시한 소식은 여자가 남자의 의견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의견을 갖고 있으며, 섹스를 이용해 남자를 지배할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퀼라의 의존성은 개가 사람에게 의존하는 모습의 패러디다. 퀼라는 빅에게 충성을 바치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가 되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교활하고 기만적이기만 하다. -183쪽 문화의 성은 남성이다. -193쪽 가부장제는 남성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상상하고 그린다. 여성의 문화가 있지만 그것은 지하에 있는 비공식적인 소수 문화로, 우리가 공식적으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 생각하는 것의 작은 구석을 차지한다. 우리 문화의 남자와 여자는 단일한 관점에서 문화를 상상한다. 바로 남성의 관점이다. -194쪽 “…… 소름 끼치는 한 남자의 환영이 누워 있다가 어떤 강력한 기관의 작동으로 생명의 징후를 보이더니 불안정하지만 반쯤 살아 있는 것처럼 요동친다.” 《10억 년의 잔치》에서 (그 역시 SF 작가인) 브라이언 올디스는 위 구절을 인용하며 덧붙인다. “요동치던 것은 바로 SF라는 장르 그 자체였다.” -296쪽 추천사 1960년대와 70년대의 격동기를 거치며 영어권 장르 문학 안팎에서 맹렬하게 투쟁한 페미니스트 작가와 비평가 들의 당시 속내를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조애나 러스의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만큼 좋은 책은 찾기 어렵다. 어떠한 외교적 제스처 없이 정당하기 짝이 없는 날것의 분노를 날카로운 위트에 섞어 기관총처럼 쏘아 대는 러스의 글들은 어처구니없는 관습과 편견과 맞선 20세기 장르 문학사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아직도 유효한 현재형의 질문이자 선언이기도 하다. ― 듀나 (SF 작가) 조애나 러스는 SF 장르를 특정 성별만이 즐긴다는 통념에 명쾌하게 반박하며, 어째서 여성이 SF 장르를 사랑하는가를 거침없이 말한다. 편견과 차별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달리, 여성은 SF라는 매개체를 통해 실재하는 다른 세계를 꿈꾼다. 어느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는 세상을. 모든 규칙이 달라진 세상을. 꿈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창조하며 선언한다. 우리가 아는 모든 현실은 변할 수 있고 또한 변해야 한다고. 그 세계는 바로 이렇게 손에 잡히는 곳에 있다고. 러스는 서문에서 분명하게 선언한다. ‘내가 SF에 특별한 애정을 갖는 것은 SF가 현실을 바꿈으로써 현실을 분석하기’ 때문이라고.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는 바로 그 지점을, SF의 세계가 비유나 은유가 아닌 점을 확실히 말한다. SF의 세계는 ‘문자 그대로 변화한 세상’이며, 물리적으로 실존하는 진실한 세계라는 것을. 이곳은 과거에 없어진 세상도 아니며 현실에 천착하는 세상도 아니다. 여성은 바로 그렇기에 이 세계를 사랑하노라고. ‘문화의 성은 남성’이며 ‘모든 오래된 플롯은 남성적이기에’, 여성은 자신만의 완전히 새로운 플롯을 만들기 위해 SF의 세계로 떠난다. 새로운 사회구조를 향해, 고리타분한 전통과 가치와 문화가 사라지고 바닥부터 새로 창조된 세계를 향해, 때로는 현존하는 젠더 역할이 모두 변화된 세계를 향해. 1930년대에 태어난 작가가 1970년대에 주로 쓴 비평집인데도 불구하고, 이 책의 여러 관점이 현대 한국에 얼마나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가를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SF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영문학과 교수만 빼고.’, 혹은 ‘성차별주의적인 문학의 여성은 오직 불필요하거나 의도적인 행동만을 한다’는 포복절도할 비판은 현대 한국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러스가 분노하며 비판한 각종 성차별적인 판타지를 극단적으로 드러낸 SF들은 지금 현대 한국에서도 계속 경계하며 싸워야 할 것들이기도 하다. 단지 이런 소설들은 한국에서는 SF 유행이 다소 늦어진 덕에 출간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계속 물밑에서만 머물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해 본다. 러스가 레즈비언으로서 말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또한 지극히 현재적이다. 러스는 내가, 내 성별을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부터, 이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을 인지하기도 전부터, 어째서 이 세계에 이토록 매혹되었는지를 격렬하게 일깨워준다. SF는 인생의 모든 순간에, 모든 불합리와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는 순간에, 어딘가 다른 세상이 있으며, 그 세계는 문학적인 은유나 상징 따위가 아니라 실재하는 현실이라고 말해주었다고. 현실이 안락해 마지않은 사람들이 이 세계를 허무맹랑하다며 조롱하기 바쁠 때에 누군가는 그 모든 책에서 매양 세계의 변혁을 꿈꾸었노라고. ― 김보영 (SF 작가) 차례 세라 레퍼뉴의 서문 저자 서문 1부 1장 SF의 미학에 관해 2장 사변: SF에서 가정이란 무엇인가 3장 신비화로서의 SF와 테크놀로지 4장 사랑은 여자를 정복한다(Amor Vincit Foeminam) : SF에서 일어난 성 전쟁 5장 공포소설의 매혹, 러브크래프트 6장 소년과 개: 최종 해결 2부 7장 여주인공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는 여자는 왜 글을 쓸 수 없는가? 8장 누군가 날 죽이려 하는데 그게 아무래도 내 남편인 것 같아 : 모던 고딕 9장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 10장 최근 유행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 대하여 11장 ‘여자처럼’ 글쓰기 : 윌라 캐더 작품에서 정체성은 어떻게 변형되는가 12장 〈누런 벽지〉에 대하여 13장 여학생들끼리의 사랑은 성애적인가? 14장 수전 코플먼에게 보내는 편지 미주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