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란으로 41개 검색됨
- shop | 포도밭출판사
현재 창에 표시할 제품이 없습니다.
-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 포도밭출판사
2018-10-12 출간 | 정가 13,000원 | 200쪽 | 128*188mm | ISBN 979-11-88501-04-5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지은이: 김정선 책 소개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소설의 첫 문장>의 작가 김정선의 첫 소설. 앞서 적은 책들의 저자이면서 스스로 소개하듯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 혹은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 원고를 최소한 세 번 이상 그것도 연이어 꼼꼼히 봐야 하는 일"을 20년 넘게 해온 교정 교열자인 김정선이 우울감에 빠져들 때마다 펼쳐 읽은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대한 리뷰와 자신의 삶이 응축된 이야기를 뒤섞어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그래서 '리뷰소설'이라는 이름을 단 이 원고가 만들어졌다. 작가는 우울이 찾아들면 늦은 시간까지 불을 켜는 도서관 구석 자리나 밤늦은 시간에도 앉을 자리가 있는 24시간 카페 귀퉁이를 찾아 셰익스피어 작품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햄릿』 <헨리 4세>, <오셀로>, <십이야>,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심벨린>, <리어 왕>, <템페스트>의 주인공들과 자신이 함께 등장하는 인생극장을 적어나갔다. 이 책은 독서가이자 서평가이며, 섬세한 솜씨의 문장 수리공인 김정선의 새로운 도전이며, 그의 진수가 담긴 특이점이다. 추천사 이름 모를 포도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읽었다. 완벽히 충족되지 않는데 그렇다고 관둬지지도 않아서 일생 동안 나를 고단하게 만드는 욕망들을 해석해주는 것 같았다. 나와 당신과 우리와 그들의 우울에 이름을 지어주는 것 같기도 했다. 쓸쓸하고도 황홀한 독서였다. 저자의 꿈에서처럼 비단길이었다가 자갈밭이기도 한 삶을 엉덩이로 찧으며 달려가는 기분이다. 그가 안내하는 비극과 희극의 세계가 너무 어지럽고 즐거웠다.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조르고 싶지만 이렇게 아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리 자주 쓰일 수 없지 않을까. 혼자인 밤에 이 책을 또 다시 꺼내볼 듯하다. - 이슬아 (「일간 이슬아」 저자) 책을 읽는 내내 깊고 깊은 마음의 수렁을 생각했다. 그 속에서 나는 아주 작게 있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 등을 말고 웅크려 있는 나. 좋았다. 짙은 어둠이 투명해지는 순간, 울컥하는 고요를 바라보며 뜻하지 않은 위로를 받았으니까. 그 흔한 반성도 다짐도 없는, 경이와 환멸의 삶 한가운데 내가 있음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이아림(<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저자) 저자 소개 김정선 단행본 교정 교열 일을 오래 해오고 있다.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 혹은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 원고를 최소한 세 번 이상 그것도 연이어 꼼꼼히 봐야 하는 일이다. 30년 정도 하면 미치거나 돌이 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멀쩡하다면 일을 제대로 안 한 걸 테니까. 그러니 30년이 되기 전에 이 무간지옥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이런 고민을 제법 진지하게 할 무렵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책들을 읽게 되었는데, 그 결과가 이런 책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하긴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소설의 첫 문장』 등도 다 그렇게 낸 책들이니 말해 뭐하랴. 보도자료 ‘문장 수리공’ 김정선의 첫 소설 그의 진수가 담긴 특이점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소설의 첫 문장』의 작가 김정선의 첫 소설. 앞서 적은 책들의 저자이면서 스스로 소개하듯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 혹은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 원고를 최소한 세 번 이상 그것도 연이어 꼼꼼히 봐야 하는 일”을 20년 넘게 해온 교정 교열자인 김정선이 우울감에 빠져들 때마다 펼쳐 읽은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대한 리뷰와 자신의 삶이 응축된 이야기를 뒤섞어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그래서 ‘리뷰소설’이라는 이름을 단 이 원고가 만들어졌다. 사실 김정선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로 이름을 얻기 한참 전부터 자신이 읽은 책들의 서평을 써왔고 그의 글을 각별히 여기는 독자가 적지 않았다. 그는 2009년부터 수년간 인터넷서점에서 운영하는 서평 블로그에서 ‘후와’라는 닉네임으로 왕성한 활동을 했고, 그때 적은 글들을 추려 2013년에는 『이모부의 서재』를 임호부라는 필명으로 내기도 했다. 교정 교열자로 일한 시간만큼, 아니 그보다 오랜 시간 그는 많은 책을 읽었고, 간혹 건강이 나빠져 글쓰기가 힘들었던 시기를 빼면 항상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왔다. 이 책은 뛰어난 독서가이자 서평가이며, 섬세한 솜씨의 문장 수리공인 김정선의 새로운 도전이며, 그의 진수가 담긴 특이점이다. 우울한 밤들에 읽은 10편의 셰익스피어 희곡 그는 일하는 시간에는 책을 만들고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책을 읽는 삶을 산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가 오래해온 일과가 있다. 심장 수술 이후 뇌병변 장애를 얻은 어머니의 간병이다. 10년도 훌쩍 넘는 짧지 않은 기간, 그는 여타의 일들을 뒤로 하고 홀로 어머니를 모셨다. 한편 오래 전부터 자신을 괴롭혀온 지병인 ‘탈장’과도 싸웠다. 내 몸속 장기 중 하나는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 눈물을 흘리는 대신, 끊임없이 내 몸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애쓰곤 했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 그 장기가 제 위치를 벗어나는 걸 느끼고 손끝을 이용해 몰래 몸 안으로 밀어 넣기를 반복해야 했다. (…) 내 몸속 장기 또한 내 팔다리처럼 중력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해야 하는 건 결코 달가운 경험이랄 수 없었다. 어린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내 몸속 장기가 흘린 눈물이 내 양 볼을 적실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대신, 몸 밖으로 밀고 나오려고 애쓰는 부분만이라도 잘라내버릴 수는 없을까, 고민했었다. 내 손이 아주 예리한 날을 가진 칼이 되는 꿈을 꾸곤 했던가. _36~37쪽 그가 시달려야 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우울감에 깊게 빠져드는 날들. 일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생활조차 어렵게 만드는 우울이 그를 덮쳤다. 여기에 더해 안구건조증마저 심해지자 결국 그는 당분간 교정 교열 일을 쉬겠다고 일터에 통보하고 거의 난생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나타나 그를 붙잡은 것이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그는 셰익스피어를 다시 꺼내 읽게 된 계기를 책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빼 든 책의 첫 문장을 읽고 나는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온몸이 굳어버리는 걸 느꼈다.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 1막 1장의 첫 문장이자 안토니오의 대사. (…) 아마 그때부터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으리라.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라고 중얼거리면서. _105~106쪽 이렇게 시작한 셰익스피어 읽기는 꽤 오랜 시간 이어진다. 그는 『햄릿』 『헨리 4세』 『오셀로』 『십이야』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심벨린』 『리어 왕』 『템페스트』를 차례로 읽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셰익스피어 소설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인생극장’이 그의 머릿속에서 상영되기 시작한다. 그때 작가가 머문 장소는 늦은 시간까지 불을 켜는 도서관 구석 자리일 때도 있고, 밤늦은 시간에도 앉을 자리가 있는 24시간 카페 귀퉁이일 때도 있었다. 이 책은 20년 넘게 교정 교열자로 일해온 저자가 우울감에 시달리는 밤마다 도서관 구석을, 카페 귀퉁이를 찾으며 10편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어나간 오롯한 기록이다.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인생극장’ 속 우울한 나의 분신을 바라보기 다른 작가의 작품이 아닌 ‘셰익스피어’였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작가는 머리말에서 굳이 셰익스피어를 선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뭘 알아서 쓴 글도, 뭔가를 알고 싶어서 쓴 글도 아니다. 다만 내 우울감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쓴 글일 뿐.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책들 또한 마찬가지다. 뭘 알아서 그 책들의 내용에 대해 아는 체를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아는 체를 하고 싶어서 그리 한 것뿐이다. 가끔은 그런 나를 보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을까. _4쪽 ‘그냥 아는 체를 하고 싶어서’ 셰익스피어를 골랐다고 심드렁한 투로 고백하지만 물론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작가는 기념비적인 ‘인생극장’을 창조해 우리에게 선보인 셰익스피어이지만, 정작 셰익스피어 자신은 깊이 우울해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작가는 『로미오와 줄리엣』 4막 2장에 나오는 캐풀릿 가문의 하인에 잠시 주목해본다. 연극을 통틀어 딱 한 번 등장하는 그는 “캐풀릿에게 곧 열릴 결혼식 초청장을 받아 들고 맥없이 나가는 역”을 맡았다. “아주 잠깐 등장하는데다 대사도 없어, 어떤 연구자들은 셰익스피어가 자신이 맡을 깜냥으로 집어넣었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역할이다. 작가는 “모두들 무대 위에서 자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걸 즐길 때, 혼자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그 하인”의 존재에 대해 유심히 생각한다. 그의 존재가 꼭 셰익스피어의 분신 같고, 또한 우울한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아서다. 아니다. 그런 게 아닐지 모른다. 셰익스피어는 우울했던 것이다. 너무 우울했던 나머지, 우울해하는 자신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연극에서 한 음절의 대사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쓸쓸히 무대 밖으로 퇴장하는 자신의 뒷모습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이렇게 중얼거렸으리라. 나는 너를 모른다, 너의 이름도 모르고, 너를 본 적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 또한,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졌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에게. _15쪽 사랑의 맥락, 가족의 맥락 작가는 셰익스피어 리뷰와 자신의 이야기를 두 개의 부에 나누어 담았다. ‘1부 사랑’, ‘2부 가족’이다. 이는 자신의 우울감의 정체를 두 개의 맥락을 통해 반추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사랑의 서사와 가족의 서사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서도 이 두 가지 맥락을 발견한다. 그래서 『햄릿』 『헨리 4세』 『오셀로』 『십이야』 『맥베스』는 사랑의 맥락으로,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심벨린』 『리어 왕』 『템페스트』는 가족의 맥락으로 독해한다. 여기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작가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사랑보다 가족의 맥락에 초점을 두어 독해하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을 통해 자신들의 ‘주어’가 눈뜨도록 했어야 했다. 비록 그 사랑이 호르몬의 장난에 불과한 것이었더라도 말이다. (…) 철천지원수로만 알았던 상대 가문의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면, 그리고 그 사랑이 단지 호르몬의 장난질만은 아니었다면, 그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새롭게 눈을 떴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부여된 ‘주어’의 역할을 다하면서 고통을 감수하고 치욕을 떠안으며 두 가문의 거짓된 화해라도 이끌어냈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 둘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든 죽음을 택하든 그건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하지만 세상에 작별을 고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떠나버림으로써, 그들이 속한 두 가문은 물론 공동체 또한 원죄에 의한 거짓된 화해와 협력이라는 탁한 피를 부여받게 만들었다. 이거야말로 비극이다. 그들에게도 공동체에게도. _97~98쪽 작가의 셰익스피어 독해에는 통상의 접근법 혹은 관점에 반하는 해석이 종종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암세포 같은 인간’이며 ‘불협화음의 소리를 내는 대표격’이자 ‘돈밖에 모르는 더러운 유대인’ 샤일록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떤가. 그러나 샤일록은 안토니오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에겐 정당화를 위협하는 하나의 도전이자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던 셈이다. 샤일록을 제외하면 다른 인물들은 하나같이 결함을 가진 존재들이다. 안토니오는 여러 척의 선단을 한꺼번에 띄우는 무리수를 두고도 태평하기만 한 한심한 사업가이고, 바사리오는 포셔의 사랑을 얻기 위한 여비마저 친구인 안토니오에게 꾸어야 할 만큼 대책 없는 루저다. 한편 포셔는 아버지의 유언을 받든다는 핑계로 순전히 운에 의지해서 자신의 사랑을 결정짓는 몽상가에 불과하다. 이들에 비한다면 샤일록은 온전한 어른이다. 저들이 내뱉는 욕설과 침을 고스란히 맞아가며, 상권이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 돈과 다이아몬드를 움켜쥐고 이자로 자신의 생명을 늘려가는 것만이 스스로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은 존재다. 이 희곡에서 다른 인물들과 달리 지극히 산문적이고 독립적인 대사를 내뱉는 유일한 존재. (…) 뭔가 결함을 가진 존재들은 샤일록이라는 도전을 함께 해결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_113~114쪽 ‘주어’와 ‘술어’의 존재론 이 소설에서 김정선 작가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지점 하나는 자주 ‘주어’를, ‘술어’를 언급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문장을 분석하기 위해 저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읽기 위해 ‘주어’와 ‘술어’를 활용한다. 20년 넘게 교정 교열자로 일한 까닭일까. 그는 주어나 술어, 혹은 동사, 형용사 같은 품사를 도구로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곤 한다. 셰익스피어 작품 주인공들의 서사를 읽을 때는 물론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도 저 도구들이 사용된다. 누군가들의 문장을 오래 들여다본 생애의 주인공인 작가는 ‘주어’나 ‘술어’에 대한 분석을 그저 문장론이 아니라 존재론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햄릿]는 국내외의 모든 갈등과 분쟁을 자신의 왕궁으로 향하게 만든 셈이다. 자신의 왕국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거나 돌파함으로써 대문자 주어 중에서도 가장 크고 강력한 대문자 주어가 될 만반의 준비를 마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강력한 대문자 주어는커녕 자신이 거느려야 할 술어와 내쳐야 할 술어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분열적인 주어가 되고 말았다. _21~22쪽 나 또한 처음부터 이렇게 살려던 건 아니었다. 누군들 우울하고 슬픈 삶이 좋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되고 말았다. 어쩌겠는가. 내가 밤새 주물럭거리는 문장처럼 지우고 다시 쓸 수도 없는 것을. (…) 다만 한 가지 깨달은 건 있다. ‘행복’은 ‘사랑’과 달라서 내가 온전히 주도할 수 없다는 것. ‘사랑하다’는 동사여서 주어인 내가 그 시작과 끝, 처음과 마지막을 온전히 주재할 수 있지만, ‘행복하다’는 형용사여서 주어인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 나는 다만 그 ‘행복한’ 형용, 즉 행복한 그림 안에 들어 있을 때 행복을 느끼고, 그렇지 않을 땐 행복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사랑과 달리 행복은 내가 추구할 수 없으며, 단지 그 상태를 누리고 오래도록 기억할 수밖에 없다는 것. _195~196쪽 “삶은 엉덩이다” 작가를 오래 사로잡은 꿈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엉덩이 꿈’이다. 이 꿈이 알려주는 것은 삶이 비단길만도 아니고 자갈길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삶은 엉덩이다”라는 깨달음을 준다.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희극 10편을 펼쳐놓고 그 위를 내달린 독서의 끝에 남는 깨달음도 그와 같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인생극장 속에서 때로 하염없이 미끄러지고 때로 울퉁불퉁한 바닥을 구른다. 이때 삶이 다만 엉덩이의 문제라는 사실은 곤란함인가 다행스러움인가. 이틀간 앓으면서 나는 내내 똑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 이제까지 꾼 꿈 중에서 그나마 선명하게 기억하는 유일한 꿈이다. 다시 꾸고 싶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꿈이기도 하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꿈. 등장인물은 나 혼자고 배경이랄 만한 것도 없다. 비단을 깔아놓은 듯 매끄러운 바닥을 엉덩이로 하염없이 미끄러지다가 자갈밭처럼 울퉁불퉁한 바닥을 엉덩이를 쿵쿵쿵 찧으며 달려가는 꿈이었다. 비단길이었다가 자갈밭이었다가 다시 비단길이었다가 자갈밭이었다가. 꿈은 말하고 있었다. 네 삶은 비단길이었다가 자갈밭이었다가 다시 비단길이었다가 자갈밭일 것이다. 아니, 꿈이 전한 말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삶은 엉덩이다. 알겠느냐? _29쪽 차례 머리말 • 4 1부 사랑 ‘장기 적출’ 커플 • 10 진눈깨비 • 13 한밤의 셰익스피어 • 16 h와 H 사이에 놓인 남자-『햄릿』 • 19 피리 • 23 포도주 • 27 나는 네가 누구인지 모른다 - 『헨리 4세』 • 31 적출 혹은 누출 • 34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내 몸속 장기가 흘린 눈물이 내 양 볼을 적실 수 있을까 • 36 사랑하는 나와 사랑받는 나 - 『오셀로』 • 40 가면 • 43 “그대는 내게 진실을 말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 48 목소리 • 52 “저는 제가 아니에요” - 『십이야』 • 55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 60 사과꽃이 떨어지는 소리 • 65 만남 • 70 삶에 묶인 끈을 당길 때 • 73 “내 행위를 알려면 나를 몰라야 할 것이오” - 『맥베스』 • 77 내 조바심과 불안을 가져간 여인 • 86 2부 가족 주삿바늘을 피해 숨는 혈관 • 92 관상동맥 - 『로미오와 줄리엣』 • 95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 101 흰 건반과 검은 건반 - 『베니스의 상인』 • 107 결론에서 결론으로 우리를 이끄는 이야기들 • 119 시작과 끝, 그리고 처음과 마지막 • 127 치명적인 맥락, 가족 • 132 아버지의 발바닥 - 『심벨린』 • 137 다시 ‘장기 적출’ 커플 • 141 처음을 위한 깜빡과 마지막을 위한 깜빡 • 149 ‘밖’이 ‘안’이 되고, ‘안’이 ‘밖’이 되는 - 『리어 왕』 • 157 감수성이 균열을 감지할 때 • 164 나처럼은 살지 않겠다 • 170 ‘우리’와 ‘그들’ • 177 ‘우리’가 되기 위해선 마법이 필요하다 - 『템페스트』 • 181 마법의 섬과 거기서 거기인 삶 • 186 나쁜 꿈 • 191 “다음에 다시 봐요 우리” • 195 참고하거나 인용한 책들 • 199
- 요리 활동 | 포도밭출판사
2016. 3. 31 출간 / 121×188mm / 192쪽 / 12,000원 / ISBN 979-11-952770-5-6 (03810) 요리 활동 어떤 싸움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일상이 중요하니까 지은이: 박영길 보도자료 “자, 식사부터 하세요” 살 만한 세상, 좋은 일상을 향한 우리의 싸움이 더 오래가도록! 지치지 않는 일상을 만들어가는 ‘공생의 요리’를 선보인다 쿡방의 시대, 쿡방에 없는 ‘공생의 요리’를 선보인다 요새 방송 프로그램의 대세는 ‘쿡방’ 즉, 요리 방송이라고 한다. 하얀 두건을 쓴 셰프가 앞치마를 휘날리며 현란한 칼질을 뽐내는 장면은 이제 흔한 이미지다. 그들이 만들어낸 요리는 고급스럽고 까다로운 입맛을 자랑하는 평가자의 입에 들어가 결국 그들의 값비싼 탄성과 함께 완성된다. 그런데 요리의 세계가 꼭 이런 것일까. 『요리 활동』은 값비싼 메뉴를 혼자서 음미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요리의 행복을 선보인다. 저자 박영길은 고된 하루의 활동을 마친 이웃들과 든든한 일상을 나누고자 ‘공생의 요리’를 만든다. 이 책은 돈이 없어도 풍족하게 즐기는 요리들, 험난한 하루의 끝에서도 깊은 위로를 주는 박영길의 요리들을 소개한다. 요리사가 아닌 ‘활동가’의 반자본주의적(?) 요리책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 265-17번지. 이곳에는 지역의 활동 단체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이 운영하는 공간인 ‘마을카페 이따’가 있다.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은 6년 전, 지역의 공부방 교사들이 뜻을 합쳐 만든 단체다(공룡은 ‘공부해서 용 되자’의 줄임말이다). 공룡의 활동 모토는 ‘반자본주의, 일상성, 공동체성’이다. 첫째, 돈과 효율성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살아보자. 둘째, 혼자 할 수 없는 일은 함께하자. 셋째, 활동과 삶이 괴리되지 않도록 서로의 일상을 돌보자는 것이 이곳이 만들어진 동기이자 목표다. 공룡 활동가들은 이 세 가지를 중요한 가치로 삼으면서 지역과 마을을 중심으로 삶과 작업, 일상과 교육을 연결하는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요리 활동』의 저자 박영길은 바로 이곳 공룡을 만든 활동가 중 하나다. 그는 자본과 권력의 횡포에 맞서 힘든 싸움을 하는 지역의 노동자와 활동가들을 마을카페 이따로 초대하거나 때로는 현장에 찾아가 요리를 선사한다. 지역 공부방 활동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온 지역 청소년들도 이곳에서 밥과 요리를 나눈다. 이곳은 카페일 뿐만 아니라 ‘지역 꼬뮌학교 동동’이라는 인문학 수업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공룡 활동가들이 운영하는 이 거점 공간은 켄 로치 감독의 영화 <지미스 홀>에 나오는 마을 공간처럼, 지역의 ‘래디컬 스페이스’로 자리잡고 있다. 저자는 자격증이 있는 요리사가 아니다. 당연히 식당 혹은 주방을 가진 셰프도 아니다. 하지만 이웃들과 연대하는 노동자 및 활동가 들에게 그는 그 어떤 유명 셰프보다 귀한 요리사다. 『요리 활동』에는 저자가 그들과 나눈 요리들, 그리고 그 소중한 시간들의 기록이 담겨 있다. 요리를 통해 기억하는 가난해도 기꺼운 삶의 풍경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에게 ‘요리는 무엇일까?’를 자문해본다. 그 대답의 하나는 저자에게 있어 요리란 부모와 함께 살아온 시간들에 대한 기억 행위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저자의 요리 이야기 중 절반 이상에 부모와의 추억들이 스며 있다. 이제 70대 노인이 되어버린 부모, 그래서 그분들의 하루하루가 곧 멈출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는 나에게, 요리는 부모를 기억하고 내 몸에 그들의 삶을 각인시키는 훈련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머니의 조리법들, 아버지가 해주던 음식들… 가난하던 그 옛날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었던 어떤 음식에 대한 기억들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재현하는 도구로 내게 요리만 한 것이 없는 듯하다. <들어가며 – 일상의 재구성을 위한, 요리 그리고 나>, 9쪽 그리고 요리를 통해 저 시간들을 되살리면서 확인하는 것은, 비록 가난했지만 그 가난을 행복하게 ‘요리’하며 살았던 저분들의 힘과 지혜다. 그 덕분에 저자는 어린 시절의 가난을 불행으로 떠올리는 게 아니라 반대로 ‘행복감의 원천’으로 떠올린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확인한다. “그 가난하던 시절에 뚝딱뚝딱 맛있는 걸 만들어주시던 어머니가 선물해준 행복한 세계가 지금 나에게도 여전히 힘을 북돋워준다. 나는 비록 돈이 없어도, 함께 활동하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어 나누어 먹는 즐거움이 있는 한 내 삶 역시 지속될 수 있다고 강하게 믿는다. 나는 그런 믿음을 부모님의 삶에서 배운 것 같다.” 험난한 세상, 무너지는 일상 하지만 잘 먹고 잘 싸우자 세상이 험난해도 그것을 버틸 수 있는 힘은 다시 소소한 일상으로부터 나온다. 저자는 요리가 비록 소소하지만 일상을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버팀목이라고 믿는다. 요리를 통해 일상이 무너지려는 순간을 버티고, 나아가 일상생활을 살 만한 것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저자가 부모로부터 배운 것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소소한 일상을 지키고, 일상에서의 작은 행복들을 잘 ‘요리’하는 일은 어쩌면 거대한 이데올로기 투쟁만큼 강력할 수 있다. 요리는 언제나 일상이다. 어머니가 식당 찬모로 생계를 꾸리는 모습을 보며 자란 어린 시절부터, 각자 활동을 하다가 저녁이면 공룡에 모여 저녁 한 끼를 해결하는 공룡 활동가들을 위해 뜨끈한 국과 맛있는 술안주 하나 만들어놓고 밤 직장에 출근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요리는 언제나 일상생활의 소소한 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작은 한 부분이라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버티며 살아가는 것, 나는 이러한 태도가 일상성이라는 가치를 지키는 지극히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 거대한 시스템과 싸우면서도 작은 일상들을 무시하지 않고, 거기에서부터 어울리고 연대하며 새로운 것들을 꿈꾸는 생성의 장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 이것이 내가 공룡 활동가들과 요리를 함께 만들고 먹는 일에 욕심을 부리는 이유이다. 요리는 언제나 일상이다. 그리고 날마다의 일상을 재구성하고자 나는 오늘도 요리를 한다. <들어가며 – 일상의 재구성을 위한, 요리 그리고 나>, 10-11쪽 재료가 부족해도 좋다, 정통이 아니어도 좋다 음식이 품고 있는 삶이 더 중요하다 〈치킨 가라아게〉 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릴 적 서울 사는 외사촌들이 놀러오자 저자의 어머니는 호기롭게 닭을 튀겨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만든 것은 토막낸 닭에 치킨 파우더를 묻혀 튀긴 ‘치킨’이 아니라 시골 식으로 닭 한 마리를 통째로 튀긴 ‘통닭’이었다. 당연히 외사촌들은 실망스러워했고, 어머니는 “서울 것들이라서 참 까탈스럽네” 하고 볼멘소리를 뱉으신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외식은 못 시켜도 무엇이든 손수 만들어 먹일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던 어머니는 곧 어머니식의 ‘치킨’을 개발해 자식들을 먹인다. “이게 도시에서 먹는 치킨이라는 거야.” 귀여운 허세도 빼놓지 않으신다. 이 글의 저자 역시 종종 자신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의 심지어 먹어보지도 못한 요리를 만든다. 흔히 본고장에서 그곳의 맛과 문화를 배우고 돌아와야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다는 정통파 입장에서 ‘야매’도 이런 야매가 없다. 저자는 자신이 ‘가라아게(전분을 살짝 묻혀 튀기는 요리)’라 부르며 만들던 일본식 닭튀김 요리가 실은 ‘고로모아게(튀김옷을 입혀 튀기는 요리)’에 가까움을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한국을 방문한 일본 친구에게 ‘아게다시도후’라는 일본 요리를 해준 뒤 ‘일본의 아게다시도후와 다르지만 더 맛있다’는 다행스러운(?) 평가를 듣고 마음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저자는 왜 자꾸 이런 요리들을 만드는 걸까? 저자가 농담처럼 말하듯이 단순히 허세 때문일까? 저자는 이탈리아에서 정통 현지 음식을 먹어보고 거꾸로 정통을 너무 의식하지 말자는 깨달음을 얻는다. 정통보다 소중한 것은 결국 그 음식이 품고 있는 삶이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정통이라는 요리들도 결국 각 동네에 흔한 재료들로 대충 만들다보니 정통이 된 게 아닐까 싶다. (…) 결국 이탈리아에 가서 현지 음식을 먹어 보고 느낀 것은, 요리를 할 때 정통 방식이라는 것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있는 재료들을 써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요리법으로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굳이 어딘가의 혹은 누구의 정통 방식을 따라하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게 만들 수 있다. 우리가 부러워해야 하는 건 요리 비법도 아니고 세계적인 메뉴들도 아니다. 그것을 가능케 한 자산들 즉, 동네 치즈, 동네 와인, 동네 수제햄 같은 자산이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식생활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그 지역 사람들의 일상이 바로 우리가 부러워하고 본받아야 하는 지점이 아닌가 싶다. <토르텔리니>, 95~96쪽 차례 들어가며 _ 일상의 재구성을 위한, 요리 그리고 나 1장 _ 나, 식당 찬모의 아들 칼국수 돼지고기 두루치기 무쌈만두 굴국밥과 굴전 짜장 붕어찜 김치 볶음밥 김치 요리 개떡 된장국 수육 두루치기 스키야키 단호박 해물찜 콩나물국 치킨 가라아게 약밥과 약식빵 오삼 불고기 2장 _ 너와 나의 무너지지 않는 일상을 위하여 물 마리니에르 아쿠아파자 토르텔리니 크림 파스타 어향동구 돼지고기 부추 숙주 볶음 애호박찜 짬뽕 돼지족발 아게다시도후 3장 _ 뜨끈한 양식, 뜨거운 연대 묵밥과 연잎밥 고갈비 여주 볶음 ① 여주 볶음 ② 볶음 고추장 곱창구이 고로케 부야베스 깐풍기 수삼 튀김과 송사리 튀김 짜조 4장 _ 오늘도 내일도, 우리가 함께 요리를 먹는다는 것 무밥 꼬꼬뱅 매생이 굴국밥 사천식 해물 파스타 유린기 토마토 치킨 커리 계란찜과 계란말이 꼬치구이 꽃게 저자 소개 박영길 서울에서 품팔이 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와 식당 찬모로 일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없는 살림에 먹고는 살아야 해서 아버지 고향 동네로 이사했다. 그 덕분에 가난한 소작농 자식으로 무탈하게 살아왔다.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어릴 때부터 가내 농업에 동원되었다. 농사일로 항상 바쁜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내게 자기가 먹을 음식은 자기가 직접 해먹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고등학생 때부터 자취를 하면서 혼자 밥 해먹는 일에 더욱 익숙해졌다. 충북 청주에서 사람들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을 만들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방 일에 재미를 붙였다. 정성을 듬뿍 쏟은 요리보다는 뚝딱 만들어서 여러 사람이 먹고 즐기는 주점 요리가 편하다. 한마디로 소중한 한 명을 위한 요리보다는 여럿이 나누는 요리가 더 편한, 묘한 습성이 생겨버렸다. 요리하길 좋아하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내가 식당 찬모였던 자신의 손맛을 이었다고 좋아하시는데 아버지는 내가 하는 요리가 하나같이 근본 없는 요리라며 싫어하신다. 현재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의 서류상 대표이자 주방 담당이다. 청소년 인문학 수업을 맡고 있으며 ‘지역 꼬뮌학교 동동’의 진행자이기도 하다. 낮에는 앞에 적은 일들을 하고, 밤에는 사회적기업 ‘삶과 환경’의 수거원으로 일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충북평등지부 삶과환경 분회 사무장을 맡고 있다. 땡땡책협동조합의 이사로도 일한다. 공저로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삶창)가 있다. 책 속에서 우리들을 과연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를 오래 고민하면서, 특히 일상의 재구성이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소위 공동체를 표방하며 일상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결국 의식주의 문제에서부터 어떤 일상들을 함께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다 공동체적인 성격을 강화하고자 선택한 것이 바로 ‘식사 공동체’였다. 애초에는 공룡을 ‘활동가 네트워크’ 형태의 공동체로 생각했었기에 처음부터 주거 공동체 수준의 실험을 하기는 부담스러웠고, 각자 자신의 활동 영역도 명확한 터라 일종의 생산/소비 공동체의 성격을 부여하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보다 구체적인 일상의 경험으로써 함께 요리하고 먹는 경험을 나누는 ‘식사 공동체’의 성격을 만드는 것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어릴 때부터 해오던 요리라는 행위가 어쩌면 특별한 무엇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런저런 요리를 하면서 요리가 몸에 익듯이 요리를 통한 생각들도 익어온 듯싶다. <들어가며 – 일상의 재구성을 위한, 요리 그리고 나>, 6쪽 요즘 들어 요리사라는 직업군이 각광받는 듯하다. 하얀 앞치마와 흰 두건을 두른 요리사가 온갖 감각을 자극하는 화려한 음식들을 화면 가득 선보이면 사람들은 요리가 근사한 로맨스라도 되는 것처럼 흥분한다. 그러면서 요리사라는 직업도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스타 요리사들은 근사해 보인다. 연예인처럼 동경의 대상이 된 그들의 화려한 성공 스토리를 보고 있자면 요리도 마냥 근사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내가 아는 어느 식당에도 그런 근사한 요리사는 없다. 있다손 치더라도, 적어도 나는 그런 요리사가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아주 유명한 요리사가 운영하는 맛집을 갔다 해도 말이다. 그 식당 주방에서 실제 요리를 하는 사람은 근사한 요리사가 아니라 피곤에 절어 바삐 움직이는 주방 아주머니 혹은 소위 찬모다. 그이들이 음식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요리를 좋아한다. 요리를 해서 누군가와 맛있게 먹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한 음식들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떠올리는 걸 좋아한다. 아니, 어머니를 바라보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는 건지도, 아니면 식당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머니에게 괜히 짜증을 냈던 기억들을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온종일 식당 일에 지친 어머니가 집에 돌아와 내가 좋아하는 짜장면을 만들어주면서 미소짓던 짧은 순간, 그 모습을 절대 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언젠가부터 요리를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요리사의 아들이 아니라 식당 찬모의 아들이다. <1장 – 나, 식당 찬모의 아들>, 19~22쪽 “너 밥은 해먹고 다니냐?“ “매번 해먹는데 오늘만 바빠서 건너 뛴 거에요” “도대체 무얼 먹고 사는데?” “김치 먹고 살지. 왜요?” “이놈 새끼가. 그러니까 김치로 뭘 해먹고 사냐고?” “볶아 먹거나 그냥 먹거나 하지. 왜요?” “그러니까 김치가 있는데 왜 그지같이 살아? 용돈은 다 뭐하고? 응?” “그러니까 김치만 줬는데 뭘 더 해먹어요. 도대체!” “에휴. 내가 못 살아. 에휴.” 이런 대화 후에 어머니는 그야말로 김치 요리를 했다. 어머니의 김치 요리란 이런 식이다. 김치에 닭 넣고 끝. <김치 요리>, 46~47쪽 “영길아… 그래서 요즘 뭐 읽냐?” “요즘 키에르케고르 읽어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뭐?” “아, 그러니까 철학책 읽는다고요.” “그런데 왜 죽는 병이야?” “죽는 병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병…. 그냥… 절망에 대한 책이에요.” “너 요즘 힘드냐? 집이 요모양 요꼴이라 쪽팔리냐? 응? 그래서 힘들어?” “아, 뭔소리야…. 그냥 읽는 책이라고요.” “에휴, 가난이 웬수지… 에휴….”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냥 누구나 다 읽는 책이야, 내 나이 땐… 엄마도 참 내.” “그러니까 이놈아. 가난한 집 자식이 쓸데없이 자존심만 세면 겉멋에 빠져 사는겨. 알어?” 조개찜이 그렇다. 조개찜 만드는 법은 그냥 조개를 푹 삶는 게 다다. 만드는 법에 전혀 특별할 게 없지만 엄청 맛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개찜 요리는 여기에 청양고추를 한 개 정도만 넣어서 삶듯이 쪄내는 조개찜이다. 그런데 물론 이렇게만 먹어도 맛있지만 손님 대접용으로는 조금 밋밋하달까? 이왕 요리를 했으면 뽐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뭔가 아쉽달까? 어머니 말씀대로 그것이 겉멋이고 쓸데없는 짓이라도 말이다. 그래서 괜히 겉멋을 부리고 싶을 때면 이 간단한 조개찜을 엄청난 요리로 부풀려서 해보곤 한다. <아쿠아파자>, 90~91쪽 커리는 재료만 제대로 갖추면 요리하는 사람에 따라서 맛이 크게 변하지 않는 안정적인 요리다. 커리의 강한 맛 때문에 융통성이 많지 않다는 뜻인데, 한편으로는 그만큼 실패할 확률도 적음을 의미한다. 오일 두른 솥에 마늘을 넣고 살짝 볶다가 양파와 피망을 넣고 볶은 후 토막 낸 닭을 넣고 볶는다. 이때 고춧가루를 넣어서 함께 볶으면 닭에 매운 맛이 배는데, 그렇다고 너무 많이 넣으면 맛이 탁해지니 대신 고추기름을 조금 넣어서 매운 풍미를 돋운다. 그러고 닭이 어느 정도 익을 때까지 볶다가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는다. 원래 생토마토를 넣으면 좋지만 재료값이 비싸니 토마토 페이스트를 한 병정도 넣고 생토마토는 5개 정도 조각 내서 넣으면 적당하다. 그런 후에 타지 않을 정도로 물을 조금 넣고 닭이 익을 때까지 끓이다가 마지막에 커리가루를 넣어 맛과 농도를 조절하면 된다. 토마토 치킨 커리에서 중요한 건, 토마토 페이스트 맛이 강해서 커리의 매운 맛이 죽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닭과 야채를 볶을 때 매운 맛이 잘 배도록 고추기름을 충분히 넣어 잘 볶는 게 팁이라면 팁이다. <토마토 치킨 커리>, 178~179쪽 나는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 그렇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다들 제대로 된 삶이란 엄청난 것들로 이뤄지고, 그런 엄청난 것들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와서가 아닐까. 그러니 당연하게도 노력하지 않고 얻는 것들은 별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노력하지 않고 뭔가를 얻는 건 죄스럽고, 그런 걸 좋아하면 나쁜 사람이라도 된 듯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한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엄청난 것들만 바라보며 살다가는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아예 영원히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심지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걸 노력하다가 망쳐버리기가 일쑤다. 언젠가 보선이 계란프라이를 예술적으로 반숙하는 방법을 묻길래 나는 아주 단순하게 일러줬다. “덜 익었을 때 불을 꺼.” (…) 이게 뭐가 대단한 거라고 노력에 노력을 더할까 싶다. <계란찜과 계란말이>, 181~183쪽
- 그을린 얼굴로 웃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18-2 (03800) 출간일: 2021년 4월 26일 정가: 13,000원 제본: 무선 쪽수: 192쪽 판형: 130×205mm 분야: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국내도서 > 에세이 > 독서에세이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여성학/젠더 > 여성문제 국내도서 > 사회정치 > 여성/젠더 > 페미니즘 그을린 얼굴로 웃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지은이: 김예림 책 소개 만 스무 살의 김예림은 스물두 살이 되기까지 2년 동안 자신이 선 자리에서 바라보는 페미니즘을, 세상을, 21세기를, 스무 편의 글로 기록했다.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으로서, 연고도 없는 비수도권 지역에 혼자 살며 일을 시작한 여성으로서, 김예림은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시작한 페미니즘 공부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예림은 할 말은 많지만 도무지 입술이 움직여지지 않는 이들에게 자신이 읽은 스무 권의 책을 소개한다. 그가 책 속에서 만난 과거 여자들의 목소리는 현재에 만나는 바로 곁의 여자들의 목소리와 겹치고 포개진다. 그리고 저절로 입술을 떼고 말문을 열게 한다. 김예림은 이 놀라운 경험을 함께하자고 청한다. 그리고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이토록 멋진 날이 왔다’고 외칠 수 있기를 함께 희망하자며 팔을 끌어당긴다. 보도자료 페미니즘이 뭐야? 김예림이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단순했다. 누군가 “페미니즘이 뭐야?”라고 물을 때 대꾸할 나름의 답을 찾고 싶었다. 여성우월주의니, 여자 일베니 하면서 페미니즘을 조롱하는 일이 흔했지만 김예림은 궁금했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건 꼭 페미니즘뿐만이 아니었다. 여성으로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상황을 겪는 순간마다 과연 어찌해야 옳은지 알고 싶었다. 이를 테면 “여자애니까 다리를 오므려야지!” 같은 말을 듣는 순간, 햇볕 아래서 일하다 얼굴이 그을렸는데 누군가 자꾸만 “왜 이렇게 시꺼멓게 탔어?”라고 묻는 순간에는 어찌 해야 좋단 말인가. 모르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즐거운 섹스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쩌다 임신을 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누군가 함부로 나를 만진 기억이 하루가 지나도 떨쳐지지 않을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그래서 김예림은 더 공부하고 싶었다. 만 스무 살의 김예림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충북 옥천에 집을 구해 살며 낮에는 잡지사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밤 시간과 휴일을 이용해 공부해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주 작은 페미니즘학교 탱자’라는 곳이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곳이 김예림의 페미니즘 교실이 되었다. 탱자에서는 매주 책을 정해 읽고, 한 달에 한 번씩 에세이를 썼다. 엄마의 가사노동, 몸에 남은 브래지어 자국, 직장에서 겪은 일, 꾸밈노동 등이 글감이 되었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여성의 참정권 운동부터 제2물결 페미니즘까지, 여성의 가사노동부터 육식의 성정치까지, 다양한 앎의 파도를 오르내리며 1년을 보냈다. 퇴근 후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와 책장을 넘기다 보면 아침 해가 떠오르는 날이 잦았다. 내가 선 자리에서 페미니즘 이어 말하기 이 책에 모은 글들은 그런 날들의 기록이다. 대학에 가지 않은, 비수도권에 사는, 여성 청년 노동자로서 김예림은 자기가 선 자리에서 바라보는 페미니즘을, 세상을, 21세기를 기록했다. 그 글들에는 페미니즘 저서들을 통해 생각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이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김예림이 책 속에서 만난 과거 여자들의 목소리는 현재에서 만나는 바로 곁의 여자들의 목소리와 겹치고 포개진다. ‘앎’의 이야기가 절반, ‘삶’의 이야기가 절반을 이룬다. 김예림의 ‘앎’은 삶의 연료가 된다. 다시 ‘삶’의 시간은 앎을 해석하는 재료가 된다. 시대는 과연 변하고 있을까. 세상은 과연 나아지고 있을까. 어떤 면에서 나아지는 것 같아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변화는 무척 더디고 때로는 뒤로 후퇴하는 듯도 하다. 김예림은 너무 늦지 않게 외치고 싶은 말이 있다. 21세기가 다 가기 전에 새 시대에 꼭 어울리는 언어로 이렇게 외칠 날을 고대한다. “이 멋진 날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왔구나!” 하고. 그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믿음으로 김예림은 계속 공부한다. 앎을 그리고 삶을. 이슬아 작가의 추천사 이것은 책으로 자신을 지키는 사람의 이야기다. 김예림은 남루한 날에 떠올릴 남루하지 않은 이야기를 모은다. 과거의 여자들에게서 건져 올린 말과 글을 어젯밤 꿈처럼 기억하고 옮겨 적는다. 지난 역사 속 여자들의 웃음과 눈물이 자신에게 자국으로 남기를 바라서다. 그는 살아본 적 없는 시대의 여자들로부터도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는 걸 안다. 영원해 보이는 조건, 태어난 나라, 인종, 성별, 지역, 계급을 어떻게 뛰어넘을지 고민하며 읽고 쓴다. 그의 집은 오래된 여자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하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워도 책들이 말을 건다. 그러자 꾹 닫힌 그의 입술이 저절로 열린다. 그렇게 열린 말문으로 이 책이 쓰여졌다. 김예림이라는 작가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배움은 그를 주저앉게 하는 동시에 일으키고 헤엄치게 한다. 한국의 비수도권에 사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여성 청년 노동자로서 김예림은 ‘자기만의 방’ 바깥의 이야기를 쓰려 한다. 이토록 멋진 날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왔다고, 너무 늦지 않게 말하기 위해서다. ― 이슬아 (작가, 헤엄 출판사 대표) 김예림이 소개하는 스무 권의 책 1.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2. 『여성의 권리 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3.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4.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글로리아 스타이넘 5. 『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6. 『맨박스』, 토니 포터 7. 『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8. 『성의 변증법』,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9. 『육식의 성정치』, 캐럴 제이 애덤스 10.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11. 『젠더 무법자』, 케이트 본스타인 12. 『거부당한 몸』, 수전 웬델 13. 『일탈』, 게일 루빈 14. 『시스터 아웃사이더』, 오드리 로드 15.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16. 『페미니즘 위대한 역사』, 조앤 스콧 17.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마리아 미즈, 베로니카 벤홀트-톰젠 18. 『기록되지 않은 노동』,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19. 『하나이지 않은 성』, 뤼스 이리가레 20. 『페미니즘 탐구생활』, 게일 피트먼 지은이 소개 김예림 1998년에 안산에서 태어났다. 노동자 부모 아래서 가난한 줄도 외로운 줄도 모르고 자랐다. 궁금한 게 많았던 열네 살의 나는 겁 없이 대안학교에 지원했고, 시간이 흘러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자기 깜냥을 깨달은 대안학교 졸업생이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는 내 깜냥으로 먹고살아야 했다. 스무 살에 지역 잡지사에서 기자 일을 시작했다. 하루 걸러 웃고 울면서 2년 반을 보냈다. 이렇게 일만 하며 살다가는 고독사하여 바싹 마른 미라로 발견되겠구나 싶었던 어느 날, 숨구멍을 찾았다. 지리산 자락의 ‘아주 작은 페미니즘학교 탱자’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잔뜩 품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곳에 다니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밤이든 낮이든, 더듬더듬, 띄엄띄엄. 나는 늘 그랬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딘가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 도착한 이유는 나중에 알아챘다. 내 몸과 생각이 현재와 다른 곳을 향할 때마다 이 과정을 반복했다. 이야기는 늘 먼저 도착해 있었고, 내가 지난 이야기를 알아채는 건 나중 일이었다. 그렇게 만난 이야기들을 앞으로 더 정확히 알아가려고 한다. 책 속에서 결과적으로 페미니즘은 내 세계를 바꿨다. 이 책은 내가 대학에 갔다면, 서울에 살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쓴 글을 모은 것이다. 페미니즘 에세이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선 자리에서 바라본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대안학교를 졸업해 세상에 나서고 보니 세상이 내 생각과 너무 다르게 굴러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 자신, 비대학 청년으로서 지역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한 나 자신을 향한 격려다. 이 책에서 만날 여러 저자의 말과 글이 당신에게도 의미 있기를 소망한다. 여기에 곁들인 내 슬픔과 사랑이 당신의 마음 한 구석에 들어앉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당신이 선 자리에서 바라본 세상을 서둘러 적어두기를 청한다. 언젠가 그 기록을 모아, 먼 훗날 어떤 이들의 말과 글과 행동이 오늘을 만들었는지, 우리가 증언하기로 하자. - 「서문」 중에서, 7쪽. 나를 작아지게 할 것만 같은 도시에서 벗어나 지역으로, 그것도 농촌으로 온 내 상상은 이런 거다. 오래된 집을 빌리고, 집의 낡은 곳을 보수하며 웬만한 기술을 익히고, 야심차게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가 어설프고 게으른 손길로 망쳐버리고, 그럼에도 남겨진 소소한 수확에 기뻐하는 것. 토마토 샐러드와 고사리 파스타를 차려놓고 동네 친구들과 먹고 놀다 새로운 모임을 만들어내는 것. 글쓰기 모임이든 독서 모임이든 산악회든 뭐가 됐든 주기적으로 만나고 마시고 얘기하다 이 지역에서 우리 목소리를 내보자고 결심하는 것. 함께하는 사람에게 다정하고, 떠나는 사람을 응원하며, 새로운 사람을 환대하는 일상을 보내는 것.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도 우리는 꽤 치열하게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 보여주는 것, 그렇게 다음 시대를 상상하는 것. 『여성의 권리 옹호』를 읽고서 상상해보는, 지역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권리 옹호다. - 「300년 전 여성의 권리 옹호」 중에서, 24~25쪽. 사람은 모두 누군가의 자국이 남아 있는 존재라고 했다. 내 타고난 생김새, 편한 옷을 자주 입는 나, 맨 얼굴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상태를 좋아하는 나, 특별한 날에는 세련된 옷을 입고 구두를 신는 나, 바쁘고 힘들 때는 곱슬머리가 아무렇게나 흐트러져도 개의치 않는 나의 존재에도 누군가의 자국이 남아 있다. 내가 아름답지 않아서 ‘내게 첫눈에 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체념할 때마다 다시 내 겉모습을 사랑하게 하는 것도 탈코르셋이 아닌 누군가의 자국이다. 내가 어떤 자국을 가장 사랑했는지, 어떤 자국을 내 일부로 남겨두었는지 떠올려보면 내가 매일 여성적 아름다움을 장착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해주었던 이들의 손길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쉽게 자각한다. - 「그을린 얼굴로 웃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중에서, 92쪽. 한국의 성별 이분법과 그에 따른 문화 속에서 나는 어디까지 가짜로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늘 경계를 넘나드는 젠더무법자의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는 그들이 가까운 미래에 ‘분류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닌 ‘경계를 유영하는’ 물고기가 되어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자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고민하는 대신 물고기처럼 아름답고 자유로운 친구를 사귈 테다. 우리는 함께 해가 질 때까지 강가를 떠나지 않으며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을 만큼 오래 헤엄을 칠 테다. - 「너 가짜로 살고 있구나」 중에서, 100쪽. 내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내 노동이 아닌 여행을 떠올린 것은 이제 자기만의 방 바깥의 이야기가 쓰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울프가 20세기에 필요한 이야기를 했다면, 나는 21세기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긴 방황을 위한 넉넉한 돈, ‘자기만의 방’을 떠난 여행에서만큼은 주어진 젠더를 인식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여전히 녹록치 않은 현실 앞에서 ‘그건 너무 이른 이야기’라고 타이른다면, 나는 울프의 말을 다시 빌려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나의 제안이 약간 환상적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픽션의 형식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더욱 좋겠지요.” 적어도 100년 안에 도래할 세상을 그리는 픽션 말입니다. - 「자기만의 방 바깥으로 떠난 여행」 중에서, 136쪽. 지난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어렵고, 무겁게 느껴지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섣불리 내 이름 앞에 붙일 수 없었다. 책으로 수많은 페미니스트를 만나면서도 왜 몰랐을까. 페미니즘은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은 모든 사람을 호명하는 이름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페미니즘에서 도망치는 대신에 페미니즘의 힘을 주장하면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지 상상해보세요”라는 게일 피트먼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나는 책을 덮고, 눈물을 닦고, 오늘에서야 뒤늦은 선언을 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그녀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 「뒤늦은 선언」 중에서, 189쪽. 차례 서문. 책 읽는 내가 선 자리 1. 동굴 밖으로 나와 봐,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야’ 2. 300년 전 여성의 권리 옹호 3. 21세기, 행위하는 인간의 조건 4. 나를 위한 게임 5. 낡은 것은 도태하고 새로운 것은 떠오른다 6. 길 잃은 남자를 위한 친절한 이정표 7. 다정함의 기술 8.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해 9. 육식인의 전복 10. 그을린 얼굴로 웃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11. 너 가짜로 살고 있구나 12. 우리가 앓는 장애 13. 일탈이 일상이 되는 세상을 위하여 14. 이방인의 집 15. 자기만의 방 바깥으로 떠난 여행 16. 혁명의 그늘진 곳을 비추다 17. 자급의 삶을 살고 싶다고요 18. 기록되지 않은 노동자가 고난에 응답하는 법 19. 우리의 입술이 저절로 말할 때 20. 뒤늦은 선언 보도자료 다운 받기
-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20-5 (03330) 출간일: 2021년 6월 18일 정가: 16,000원 제본: 무선 쪽수: 276쪽 판형: 135×210mm 분야: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노동문제 국내도서 > 사회정치 > 사회비평/비판 > 노동문제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사회문제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 기획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지은이 : 김신범, 김원, 윤간우, 이윤근, 임상혁, 임영국, 최영은, 최인자, 한인임, 허승무, 현재순 책 소개 일터에서 노동자가 겪는 사고와 질병, 이 고통을 멈추기 위해 고통에 ‘이름’을 붙이다 노동자는 다만 일이 위험해서 다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위험한 일도 안전한 방식으로 일하면 다치지 않는다. 우리가 안전보다 이윤을, 존중보다 차별을 선택할 때 그 노동의 현장에서 누군가 다치고 죽는다. 일하다 사람이 다치고 병들고 죽는 사회를 멈추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시작해야 할까. 지난 20여 년간 노동자의 고통을 찾아내고 분류하고 측정해서 이름을 붙여온 이들이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사람들이다. 이 책은 노동자가 겪는 고통을 멈추기 위해 고통의 현장을 조사하고, 고통에 이름을 붙여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해온 이들이 전하는, 산재와 직업병 현장에 대한 기록이다. 보도자료 일터에서의 사고와 질병, 그에 맞서온 이들의 이야기 한국은 하루 평균 7명의 산재 사망자가 발생하는 나라다. ‘오늘도 7명이 퇴근하지 못했습니다’는 해시태그 운동은 이 때문에 시작되었다. 구의역의 김군, 태안화력발전소의 김용균, 평택항의 이선호 노동자 사망사고로 노동 현장의 문제와 심각성이 알려지기는 했으나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일하다 사람이 다치고 병들고 죽는 사회를 이제 그만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통을 멈추기 위해서는 우선 고통이 제대로 드러나야 한다. 하지만 공장의 담벼락으로, 어두운 조명으로, 때로는 오해와 편견으로 노동자의 고통은 감춰지고 지워지기 일쑤다. 그래서 노동자의 고통을 애써서 드러내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아픔이 드러나야만 사회가 더 많은 아픔을 나누고 노동의 고통을 키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여 년간 노동자의 고통을 찾아내고 분류하고 측정해서 이름을 붙여온 이들이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사람들이다. 이들은 고통을 드러내고 고통에 이름을 붙여 사회에 알리는 일을 한다. 이들은 발전소나 조선소 노동자뿐 아니라 네일 아티스트, 택배, 청소, 간병 종사자, 영화 스태프, 환경 미화원, 배달원, 경비원, 택시기사, 가축 위생 방역사, 콜센터 노동자, 간호사, 어민, 농민, 국립공원공단 직원 등 다양한 노동자들을 만났다. 이 책은 일하다 병들고 다치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동 현장을 누비며 산업재해 사고 및 직업병 요인을 조사하고 연구해온 이들의 20여 년간의 기록이다. 노동은 위험하다 노동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사용해 일한다. 그러니 노동자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피곤할 수 있고, 때로는 다치거나 병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노동이 신성하다는 이야기는 흔히 하면서도 노동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아프다고 말하려면 용기를 내야 하는 사회. 일 때문에 아픈 게 맞느냐고 의심부터 하고 결국 외면하는 것이 이른바 세상의 ‘상식’이 된 사회의 현실이 노동자를 더욱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 고용하는 자에겐 책임이 있고 고용된 자에겐 권리가 있지만 책임은 너무 가볍고 권리는 너무 멀다. 고통에 이름을 붙여 고통을 드러내다 변화란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 애써서 만드는 것이다. 노동자의 고통은 잘 드러나지 않기에 변화는 더욱 더디게 찾아온다. 근골격계 질환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감정노동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도 있었다. 감춰져 있던 고통에 이름이 생기면 사회가 아픔을 나누고 위험을 줄일 방법을 의논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아픔에 붙은 이름을 부를 때, 노동자의 고통은 더 빨리 줄어들고, 일의 위험도 줄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고통을 찾아내고 분류하고 측정해서 이름을 붙여야 한다. 녹색병원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사람들은 그렇게 노동자의 고통에 하나둘 이름을 붙여왔다. 이 책에는 그들이 만난 노동자들의 고통들과 그 고통에 붙인 이름들이 기록돼 있다. 차별이 아닌 존중이 필요하다: 국가, 기업, 시민의 존중 고통의 이유는 분명하다. 일에는 위험이 있게 마련이지만, 같은 일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위험의 크기가 달라진다.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이 죽는 것이나 발암물질에 더 많이 노출되는 상황은 바로 ‘차별’ 탓이다.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자살률이 높은 것도 마찬가지다. 차별은 일의 위험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라는 강요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차별에 적응하면서 위험을 감수하려고 애쓰다가 병들고 다친다. 고통의 주된 이유는 바로 차별이다. 그래서 차별이 아닌 존중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고 그 아픔을 줄일 방법을 의논하는 것이 바로 존중의 자세다. 산업이나 직업의 설계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예측하고 줄일 방법을 미리 마련하는 것도 존중이다. 노동자가 아프다고 말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는 것도 존중이고, 사업주가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의무를 만드는 것도 존중이다. 존중은 기업의 차원(1부_ 위험은 만들어진다), 국가적 차원(2부_ 죽음도 차별받는 현장) 그리고 시민의 차원(3부_ 드러나지 않기에 더욱 위험한)에서 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노동의 결과만이 아니라 노동의 과정에도 관심을 이 책에는 우리 곁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노동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할 테다. 필자들은 이 책에서 노동자들의 일터를, 그들의 노동을 주목한다. 출근하면서 만나는 아파트 경비 노동자를, 새벽에 집 앞 골목에 다녀간 청소 노동자를, 조금 전에 음식을 전해줬던 배달 노동자를, 식당에서 만난 서비스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우리는 이들을 통해 얻는 노동의 결과에만 관심을 가진 게 아닌가? 이를테면 ‘서비스는 좋았나?’ ‘주문한 물건은 언제 도착하나?’ ‘제품에 하자는 없나?’ 같은 것에만 관심을 갖지 않았나. 이제 노동의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에 보다 관심을 기울일 때다. 우리가 외면하는 노동의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미소 속에 감춰진 서비스 노동자들의 상처받은 마음의 병을, 물건을 받는 기쁨 속에 가려진 택배 노동자들의 온갖 골병들을, 차별이 존재하는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말이다. 필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사람들은 노동을 차별할까?’ ‘존중받는 노동이란 무엇일까?’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당한 노동의 가치는 무엇이고, 왜 그 가치는 인정받지 못할까?’ 필자들이 제시한 답은 각자 다르게 표현되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노동자들의 시각에서 그들의 문제를 이해하고 노동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타인의 노동을 존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제도적 변화를 위하여 노동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뀐다고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대하는 마음과 행동이 변하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진들 현장에서는 절대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좀 더 근원적인 제도적 변화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자를 위한 제도적 변화에서 중요한 지점들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제도적 변화의 중요한 원칙들을 다음 네 가지 구호로 제안한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강화” “노동자 참여권 보장” “노동자 작업중지권 보장” 앞으로 이 구호들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우리 노동현장 어디에서나 공기처럼 작동하는 제도가 되기를 바란다. 기획 소개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직업병 사건인 원진레이온 직업병 사건을 계기로 1999년에 만들어졌다. 연구소는 노동자들의 환경과 건강 실태를 조사하고, 노동자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에 이름을 붙여 세상에 알리고, 일하다 아프고 죽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법과 제도적 대책을 마련하는 활동을 벌인다. ‘피자 30분 배달제 폐지’ ‘마트 노동자에게 휴식 의자 제공하기’ ‘박스에 손잡이 구멍 뚫기’ ‘환경미화원에게 씻을 권리 제공하기’ ‘일터와 삶터에서 발암물질과 환경호르몬 없애기’ 등의 캠페인을 이끌었다. 지은이 소개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발암물질을 조사하고, 시민과 노동자를 위한 화학물질 알권리 정책을 만들고,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활동한다. 지은 책으로 『화학물질, 비밀은 위험하다』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마을 만들기 사업에 던지는 질문』(공저) 등이 있다. 김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화학물질 노출 실태를 조사하고, 산업 현장 인근의 환경오염과 시민들의 건강 영향을 평가하고, 환경호르몬과 같은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활동한다. 공역한 책으로 『사업장 근로자 건강영향조사』 『산업보건학 원론』 『소방공무원 순직재해 NIOSH 조사보고서』 등이 있다. 윤간우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장,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녹색병원에서는 진폐증 환자와 직업성 근골격계 질환자를 치료한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는 크고 작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역학조사를 실시한다. 농어업인의 안전과 건강에 관심이 많아 사고 및 질병 조사 통계 연구를 매년 수행하고 있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 근골격계 질환 및 직업성 암 등의 직업병을 연구하고 노동 환경의 위험성 평가 등의 활동을 한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노동안전특별조사위원회’ 참여 등 여러 사회적 활동을 통해 노동 환경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방사능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에게』(공저) 등이 있다.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 임영국 민주노총 산하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사무처장. 화학·섬유·IT·식품 등의 산업 분야에서 노동자들에게 노조를 공유하고 연결하는 활동을 한다. 노동조합이 일상이 되는 시대를 열어가고자 활동한다. 노동권 사각지대 조직화를 위한 ‘공제회를 품은 노동조합’의 전형을 마련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봉제인공제회 상임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노동조합 조직화 사례 연구』(공저)가 있다. 최영은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환경평가팀장.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의 화학물질 노출을 조사한다. 더 많은 노동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기를 희망한다. 최인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분석팀장. 작업 환경에서 노동자에게 노출되는 화학물질과 일상에서 소비자에게 노출되는 환경호르몬을 분석한다. 사람의 소변과 혈액에서 유해화학물질을 분석하는 바이오모니터링을 통해 몸속의 바디버든(body burden)을 확인하는 연구와 이를 줄이는 활동에 관심에 많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교육팀 책임연구원. 노동자 교육을 담당하며, 근골격계 질환, 직무 스트레스, 감정노동, 과로사 등을 연구한다. 세월호 참사, 구의역 김군 사망사고,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사망사고,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고 등의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지은 논문으로 『공공부문 위험생산의 작업장 정치』 등이 있다. 허승무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근골격계질환센터 인간공학팀장. 사업장의 근골격계 질환 문제를 진단하고 평가하는 일을 하며,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작업 강도, 적정 인력 등의 문제에 인간공학적으로 개입하는 작업을 기획하고 있다. 현재순 《일과건강》 기획국장. 전국 사업장과 주요 산단에서의 화학물질 감시 활동을 기획하고 있으며, 노동자와 시민이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안전보건 환경단체인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건생지사)’에서 활동한다. 지은 논문으로 『화학물질안전관리와 지역사회알권리를 위한 시민사회역할 연구』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제가 입사한 지 1년 안 돼서 손에 화상을 입었었는데 처음엔 별거 아닌 줄 알았다가 일반병원 가서 심각하단 얘길 듣고 화상병원을 찾아서 갔었어요. 손가락 화상은 잘못 치료하면 굽어서 나으니까요. 손에 붕대를 감아서 일단 쉬어야 하니까 진단서를 팩스로 보냈더니 그러면 안 된다면서 굳이 회사에 와서 내라고 하더라고요. 붕대 감은 손을 밑으로 내리면 피가 쏠려 더 아프다고 항상 왼손을 들고 있었는데 그 상태로 혼자 운전하고 야탑까지 갔었네요. (…) 산재는 안 된다며, 저는 잘 모르니까 결국 아빠랑 통화하시곤 병원에 와서 병원비 결제해주고 경위서를 가져왔었어요. 퇴원하고도 통원치료는 계속했고요. 다 공상으로 처리했어요.” ― 프랜차이즈 빵집 노동자 “민원전화 받고 있으면 유리방(사무실)에서 쪽지가 오는데 그거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죠. 시간대별로 팀장 쪽지가 와요. 민원 처리 빨리하라는 거예요. 오래 잡고 있지 말고… 그래서 하루에 이석 시간이 5~10분 정도 밖에 안 돼요. 화장실만 잠깐 갔다 오고 하루 종일 물도 안 먹고 그렇게 일을 했어요.” ― 정부기관 콜센터 노동자 “일하다 보면 저쪽 끝에 있는 팀장이 누군가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막 소리를 질러요. ‘후처리, 후처리!!’ 과거에는 내가 숨이 턱에 차면 홀더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안 받을 수 있는 짬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화 끊자마자 대기 전화가 연결되는 자동 연결체계로 되어 있어요. 쉴 수가 없죠.” ― 인터넷기업 콜센터 노동자 “내 일거수일투족이 컴퓨터에 기록되는 게 무서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심지어 나중에 보면 화장실에 몇 번 갔는지도 알 수 있더라구요. 가끔은 내가 회사가 아닌 닭장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 ― 은행 콜센터 노동자 “저는 이용자의 편의를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장 봐서 식사 준비해드리고 목욕시켜드리고 산책하자고 하면 휠체어 밀고 나가고… 그런데 멀쩡한 가족들 빨래를 해달라는 거예요. 심지어 가족들 심부름해달라는 경우도 있어요. 주말 동안 미뤄놓은 가족들 설거지도 한 적 있어요.” ― 돌봄 노동자 “제 동료는 남성 이용자가 가슴을 만져 놀랐는데 센터에 이야기를 해도 센터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그만두었어요.” ― 돌봄 노동자 “이용자가 치매를 앓고 있는데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하지 못하면 제가 가져갔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저는 일자리를 잃었어요.” ― 돌봄 노동자 “고객이 체크아웃을 해야 하는데 전화를 안 받아서 객실로 올라갔어요. 벨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어 방문을 열었죠. 그랬더니 목을 맨 고객이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거예요. 그 후론 객실 문을 열려면 식은땀부터 흘려요.” ― 호텔 청소 노동자 “고객이 청소를 부탁해 벨을 누르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투숙객이 나체로 서 있는 거예요. 당황해하고 있는데 옷 입을 생각도 안 하고 청소하라고 손짓을 하더라고요. 미친 놈… 그래서 그냥 나왔어요.” ― 호텔 청소 노동자 “있죠. 좀 말하기 그렇지만 관리자 중에서 딜러들이 실수를 하는 경우에 폭언을 굉장히 심하게 하는 경우가 있어요. 손님들 앞에 세워놓고 무안을 주거나 그런 거요. 딜러 입장에서는 실수했다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거든요. 아니면 내려오라고 해가지고… 로커에서도 많은 인원이 쉬어요. 아무리 막내고 아무리 그런 거에 무디다 해도 자기는 앉아 있는 상태에서 사람을 세워놓고 막 소리를 지르거나 질책을 하면 인격 모독이거든요. 근데 그게 공공연하게 이루어져요. 동기들이 있는 데서만 혼나도 스트레스인데 만약 후배가 보고 있거나 많은 인원이… 그런데서 폭언을 일삼으면서 얘가 실수했다는 걸 다 알려버리는 거죠. 그러면 굉장히 스트레스죠. 근무표 봤는데 그런 간부들 하고 같이 짜여 있으면… 그럼 한숨을 푹….” ― 카지노 딜러 노동자 “이게 그래도 할 만한 일인데, 내가 도저히 꼴불견이라 못 봐주겠는 게 있어. 음식물 쓰레기 차 지나가면 코를 막고 얼굴 찡그리는 사람들. 지들이 먹은 건데 그거 냄새난다고 호들갑 떠는 게 제일 짜증나는 거야. 내가 쓰레기 치우려고 가면 피하는 사람들.” ― 환경 미화원 “밀폐된 공간에서 계속 일을 하잖아요. 집에 가서 샤워하면 한 시간 동안 계속 기침 나고 콧물 나요.” ― 네일 아티스트 “큐티클 리무버 자체가 손에 닿으면 각질층이 일어나요. 그러니까 당연히 왼쪽 손은 항상 짓물러 있고 각질 진물 난 것처럼 너덜너덜 그래요. 그러면 손 씻어줘야 하는데….” ― 네일 아티스트 “전주가 없는 곳은 맨홀 속에 망이 깔려 있어요. 이때 전기가 흐르는 경우가 있죠. 맨홀에는 항상 물이 차 있거든요. 오폐수도 있는데 이걸 퍼내고 작업을 해야 해요. 도로 위에 있는 맨홀 작업 때는 차가 다녀야 한다고 빨리하라고 운전자들이 욕하고 그러니까 그냥 야간에 하죠. 야간에는 혼자 작업하는데 밖에서 봐주는 사람도 없어요. 위험하죠. 또 맨홀 깊이가 다 달라요. 사람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목만 넣고 일해야 하는 크기도 있어요. 한여름 우기 때 침수가 잘 되는데 전기 장비를 가지고 가면 침수돼서 꺼지는 경우에는 일을 못해요. 여름철 맨홀에 가스측정 안 하고 들어갑니다. 마스크도 없이…” ― 인터넷 수리 기사 차례 들어가며_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 1부_ 위험은 만들어진다: 기업은 노동자를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가 상자에 손잡이를 달아주세요 조선소, 암의 위험 학교 실험실의 사업주는 누구일까? 태움, 어느 나이팅게일의 죽음 프랜차이즈 빵집, 노동권 사각지대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어” 20년 만에 다시 만난 택시 운전사 중장년 여성들의 전유물, 돌봄노동 상상하라, 화려한 호텔과 카지노의 노동을 발암물질을 없애고 싶은 노동자들 2부_ 죽음도 차별받는 현장: 국가는 노동자를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가 빛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어둠 경사 난 대한민국 영화 시장의 이면 소방관을 쓰러뜨리는 암 1인 1조 작업의 위험, 가축 위생 방역사 ‘작물보호제’라고요? ‘농약’입니다! 노후한 화학시설, 방치된 화약고 시한폭탄을 안고 달리는 화물차 고강도 등산이 직업인 사람들 방치되고 있는 어업인의 근골격계 질환 3부_ 드러나지 않기에 더욱 위험한: 시민은 노동자를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가 환경미화원은 왜 가장 위험한 직업이 되었을까? 아름다움을 만드는 손, 네일 아티스트 플랫폼 노동자는 배달 노동자와 다른 신인류? 방문기사, 집으로 찾아오는 스파이더맨 무제한 노동에 시달리는 경비원, 노인의 일자리 벼랑 끝 택배 노동자 나가며_ 나 또는 우리 가족이 저곳에서 평생 일해도 좋겠는가 발문_ 녹색병원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꿈 보도자료 다운 받기
-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 | 포도밭출판사
ISBN: 979-11-88501-11-3 (03800) 출간일: 2020년 7월 10일 정가: 20,000원 제본: 무선 쪽수: 420쪽 판형: 128×188mm 분야: - 문학 > 장르소설/여성소설/과학소설(SF) - 문학 > 비평/창작/이론 - 인문학 > 영미문화론 - 인문학 > 인문비평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 지은이: 조애나 러스 옮긴이: 나현영 “조애나 러스의 글들은 어처구니없는 관습과 편견에 맞선 20세기 장르 문학사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아직도 유효한 현재형의 질문이자 선언이다” - 듀나 (SF 작가) “조애나 러스는 어째서 여성이 SF를 사랑하는가를 거침없이 말한다. 여성은 SF라는 매개체를 통해 실재하는 다른 세계를 꿈꾼다. 어느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는 세상을. 모든 규칙이 달라진 세상을.” - 김보영 (SF 작가) 책소개 SF 작가이자 비평가, 페미니스트이자 퀴어 활동가였던 조애나 러스의 SF 비평집. SF 장르를 새롭게 정의했으며, 현대 문명과 페미니즘, 여성의 글쓰기와 같은 주제를 SF 장르를 통해 사유한 조애나 러스의 대표적인 글들을 모았다. 거침없는 분석들이 주는 깨달음과 즐거움, 그 속에 가득한 위트와 유머가 독보적이다. 러스는 SF가 젠더 역할과 문화의 구속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정한 ‘놀이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책은 억압과 굴레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여성들, 그리고 SF를 통해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모든 SF 작가와 독자 들에게 남겨진 귀중한 유산이다. 보도자료 낡은 관념들을 박살내는 ‘환상적인 분노’의 통쾌함 “당신의 분노에서는 혁명의 냄새가 납니다. 아니, 아주 오래 묻혀 있다가 막 폭발하려고 부글거리는 화산의 냄새가 나요.” ― 1973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조애나 러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조애나 러스가 SF 장르에, 특히 페미니스트로서 SF 장르에 기여한 바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뉴욕 타임스》는 2011년의 부고 기사에서 그를 “SF의 가장 낯선 외계 생명체, 즉 여성에게 SF를 전달해 준 작가”라고 칭했다. 러스는 페미니즘 SF의 선구자이며 1970년대에 꽃 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이끈 대표적인 작가다. 그는 자신의 소설과 비평을 통해 SF 장르를 새롭게 정의했으며, 현대 문명과 페미니즘, 여성의 글쓰기와 같은 주제를 SF라는 양식을 통해 사유했다. 조애나 러스의 문장은 명징하다. 그리고 명징한 문장은 명징한 사고와 짝을 이룬다. 그는 난독을 부르는 애매모호함을 경멸하며 이 애매모호함이 결국은 남성 연대와 남성 신화를 강화하는 신비화의 전략임을 폭로한다. 러스는 예리하고 엄밀한 분석으로 이 신비화된 낡은 신화들을 해체하는 데 열정을 쏟는다. 러스의 작업은 독자에게 깨달음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안긴다. 거침없는 분석들이 주는 깨달음과 즐거움, 그 속에 가득한 위트와 유머는 조애나 러스의 비평이 가진 독보적인 성격이다. 또 우리는 러스로부터 특별한 열정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앎과 삶을 연결시키려는 열정이다.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기’, 경험한 세상을 ‘다시 보기’, 그리고 이렇게 인지하게 된 현실을 명징한 언어를 통해 표현하기. 이는 러스가 자신의 비평에서 실천해 온 것들이다. 러스는 이 작업을 하면서 드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고 또 당연히 분노해야 함을 일깨웠다. SF를 비평하면서 각종 차별과 배제들,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신비화, 젠더 고정관념과 여성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남성 신화들에 분노하고 저항한 것은 러스에게 있어 SF 장르 역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실천들의 장이었던 까닭이다. 미래를 바라보는 양식으로서의 SF가 과거의 억압과 굴레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이들의 ‘놀이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은 러스가 여성들에게, 그리고 SF를 통해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모든 SF 작가와 독자 들에게 남긴 귀중한 유산이다. SF를 무대로 일어난 1970년대의 성 전쟁 노출증 환자들의 승리 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성차별주의적인 이야기는 소설 속 등장인물이 모두 베텔게우스계 행성에 사는 결정형 생명체라 해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인간이 아니더라도 작가와 독자는 인간이니까요.” - 페미니즘 계간지 《퀘스트(Quest)》와의 1975년 인터뷰에서 페미니즘 SF 비평은 본격적으로 조애나 러스로부터 시작되었다. 러스 이전에도 작가 개인이나 SF 전반의 성차별주의적 경향을 비판하는 남성 비평가들은 있었으나 이들은 1970년대부터 어슐러 K. 르 귄과 조애나 러스, 마지 피어시 등이 불을 댕긴 긴급한 문학적 변화들을 당대의 혁명적 언어인 페미니즘으로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러스는 제아무리 먼 미래와 먼 은하를 배경으로 경이로운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펼쳐 보이는 SF라도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있어서는 교외에 사는 백인 중산층 가정의 젠더 고정관념을 답습함을 비판하면서, 이를 SF적 상상력의 ‘실패’로 규정한다.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의 충돌은 SF 공동체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당시에는 남성 작가로 알려져 있던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작품을 제외하고) 안티페미니즘의 입장에서 성 전쟁을 다룬 10편의 작품을 비판하는 “4장 사랑은 여자를 정복한다: SF에서 일어난 성 전쟁”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활화산 같은 러스의 분노가 이 어리석은 ‘부족’들을 활활 태우는 현장을 보게 된다. 여성이 지배하는 부패하고 무능력한 세계에서 남성 성기라는 ‘성물’의 소유자들이 ‘자연의 승리’를 하게 되어 있는 이 작품들에 러스는 ‘성기 노출증 환자들의 소설’이라는 절묘한 이름을 붙인다. “10장 최근 유행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 대하여”에서는 같은 성 전쟁을 다루면서도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모니크 위티그의 《게릴라들》, 어슐러 K. 르 귄의 《빼앗긴 자들》, 마지 피어시의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와 같은 이 작품들은 새뮤얼 딜레이니의 《트리톤》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 작가가 썼으며, 계급과 정부가 없고, 생태주의적이며 동성애, 이성애, 난혼, 한 여성이 다른 여성과 함께 아기를 갖게 하는 재생산 기술 등 다양한 출산과 양육의 방식이 있는 사회를 보여 준다. 러스는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SF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며, 유토피아를 향한 충동 뒤에는 누군가의 고통이 감춰져 있다고 말한다. 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의 주인공들은 계급과 성, 인종차별을 포함하는 현실의 고통과 대면하며 저항한다. 우리가 맛볼 수 있는 것은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 평행진화해 급진적 유토피아주의로 폭발한 여성 문화의 진수다. 문화의 성은 남성이다. 낡은 신화를 이용하는 한 여자는 쓸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신화라면? “그것은 내 무게 중심을 ‘그(Him)’에게서 ‘나(Me)’로 옮기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난 이것이 예술가가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인 당신이 여성이라면 말이에요.” - 페미니즘 계간지 《퀘스트(Quest)》와의 1975년 인터뷰에서 1부가 주로 SF와 관련된 비평들을 담고 있다면 2부에서는 여성의 글쓰기를 주제로 SF와 모던 고딕이라는 여성 로맨스 장르, 윌라 캐더와 샬럿 퍼킨스 길먼 같은 여성 작가들을 다룬다. “7장 여주인공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는 여자는 왜 글을 쓸 수 없는가”에서 러스는 서구 문학의 플롯은 사실 거의 모두 남자 주인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사나운 짐승을 때려눕히고 자신의 남자다움을 증명하는 이야기, 영웅적인 전투에서 승리하는 이야기, 순진한 여자를 유혹해 임신을 시키는 나쁜 남자의 이야기,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으나 술독에 빠져 지내다 요절한 전설이 되고 마는 시인의 이야기는 모두 남성의 신화다. 즉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문화의 남자와 여자는 단일한 관점에서 문화를 상상한다. 바로 남성의 관점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 페이, 헤밍웨이의 소설 〈프랜시스 매컴버의 짧았던 행복〉에 등장하는 매컴버의 아내, “6장 소년과 개: 최종 해결”에서 할란 엘리슨 원작의 동명의 영화에 등장하는 퀼라 준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여자 주인공들은 결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여자의 이미지에 불과하다. ‘잡년 여신’이 아니면 처녀 희생자로 이분되는 이 여주인공들에게는 어떤 내면도, 동기도 없는데, 이는 이들이 실은 인격이 아니라 투사된 소망이나 두려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남성 신화를 이용하기를 거부한 여성 작가들은 어떤 소설을 쓸 수 있는가? 러스는 버지니아 울프처럼 플롯 없이 서정적인 구조를 쌓아올리거나 샬럿 브론테의 《빌레트》처럼 자기 삶에서 길어 올린 구조를 모델로 삼는 사례들을 소개한다. 여성 작가들은 “11장 ‘여자처럼’ 글쓰기”의 윌라 캐더처럼 자신의 주인공에게 남성의 ‘가면’을 씌우는 전략을 택하기도 한다. 그리고 “9장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에서 우리는 여성 작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약속하는 신화가 태어나는 순간을 목격한다. 메리 셸리는 견딜 수 없는 현실에서 전력을 다해 도망치는 도피자였기에 지금 여기를 담을 수 없거나 담으려 하지 않는 감수성의 통로를 찾아 헤맸다. 바로 《프랑켄슈타인》과 《최후의 인간》의 세계, 오늘날의 우리가 SF라 부르는 사변적이고 미래적인 세계로 이동하는 통로다. 그래서 메리 셸리는 ‘비유기체적 생명체의 탄생’과 ‘자연스러운 파국으로 상상된 세계의 종말’이라는 현대 산업화 시대의 거대한 두 신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러스의 말처럼 “SF에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있었던 셈”이다. 러스의 글에서 우리는 오늘날 한국에서 여성 작가들이 쓴 SF가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SF는 “남자로서의 남자, 여자로서의 여자를 다루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지능과 적응 능력을 다루는 신화”이며, 젠더 역할과 문화의 구속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정한 놀이터이기 때문이다. 지은이 소개 조애나 러스 Joanna Russ SF 작가이자 비평가, 페미니스트이자 퀴어 활동가였던 조애나 러스는 1937년 뉴욕에서 태어나 10대 때부터 SF와 공포소설을 즐겨 읽으며 장르 소설에 담긴 자유와 상상력을 흡수했다. 코넬 대학교에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제자로 영문학 학사 학위를 받고 예일 대학교 드라마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워싱턴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영문학을 가르쳤다. 러스가 막 활동을 시작했던 1960년대에 SF는 소위 ‘백인 이성애자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제2의 물결 페미니즘의 태동으로 가부장적 사회 구조를 전복하고 남성이 규정한 여성성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여성들에게 기성 문학의 규범에서 벗어난 SF는 자신들의 상상력을 실험할 수 있는 새로운 영토로 여겨졌다. 러스는 〈그들이 돌아온다 해도〉(1972), 《알릭스》(1976), 그녀의 가장 큰 문제작인 《여자남성》(1975) 등을 통해 젠더 고정관념에 도전하며 어슐러 K. 르 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마지 피어시 등과 함께 1970년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의 부흥을 이끌었다. 러스는 페미니즘과 영문학, SF, 퀴어 비평까지를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서 소설만큼이나 도발적이고 문제적인 이론서들을 다수 발표했다. 〈SF 속 여성의 이미지〉(1971)에서는 미래나 우주를 무대로 한 실험적인 작품에서마저 젠더 문제에 있어서는 백인 중산층 가정의 고정관념을 답습하는 남성 SF 작가들을 비판했고, 《여성의 글쓰기를 억압하는 법》(1983)에서는 여성의 글쓰기를 무시하고 예외적으로 취급해 온 영문학의 역사를 비판했다.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1995)는 러스가 SF와 여성의 글쓰기를 주제로 쓴 대표적인 글들을 모은 비평집으로 SF 작가로서 그의 목소리가 가장 직접적이고 생생하게 드러나는 책이다. 분노는 그녀가 글을 쓰고 대중 앞에 나서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었지만 말년에는 만성 피로 증후군과 심한 요통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했다. 2011년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옮긴이 소개 나현영 매주 수요일 연남동 카페 본주르에서 ‘여성 작가가 쓴 SF 읽기’ 모임을 하고 있다. 조애나 러스의 책을 시작으로 포도밭출판사의 나선형 시리즈에서 SF, 퀴어, 페미니즘 등에 관한 다양한 책을 기획하고 소개할 예정이다. 옮긴 책으로 《유토피아 실험》, 《무정한 빛》,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아나키스트 인류학의 조각들》, 《사일런스: 존 케이지의 강연과 글》, 《낭만주의의 뿌리》(공역)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전적으로 낯선 이야기를 만들어 낸 SF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전적으로 친숙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 SF는 SF가 아니다. 다시 말해, 어떤 작품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참조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과 연결된 모든 참조점이 지나치게 분명하고 직접적일 때, SF적인 특성을 잃은 이 작품은 불신의 유예가 끝난 ‘정직한’ 소설이 되고 말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렇다. “SF는 불가능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아야 한다.” -70~71쪽 〈스타워즈〉에서 욕구는 자부심과 쾌락이다(나는 이것이야말로 ‘재미’가 상징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이것들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은 거칠게 말해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이성애 중심주의, 경쟁과 마초적 특권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특권은 바로 〈스타워즈〉의 관객 대부분이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세계, 자신들이 욕구하는 흥분과 쾌락에 접근하지 못하는 세계를 만들고 있는 주범이다. -89쪽 여기서 ‘광기’라는 말의 의미는 사람들의 삶의 구체적 조건으로부터 유리된 추상적 개념만을 곱씹는 태도를 말한다. ‘광인’들은 왜 이렇게 행동할까. 다른 사람들이 그를 위해 노동해 주는 덕분에 자기 삶의 견고하고 실천적인 세부사항들로부터 격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삶에 대해 생각할 때 이런 실천적인 세부사항을 생략하거나 사소하다고 전제하며 시작한다. 웨스트는 이에 대응하는 여성적 결점을 ‘어리석음’이라 불렀다. 어리석음은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넘어 더 큰 패턴을 보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다. 어리석음은 양말을 깁고, 변기를 닦고, 들판에서 일하는 것이 하늘이 부여한 네 천직이고, 어쨌든 아무도 네가 진짜 결정을 내리도록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들어 온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92~93쪽 테크노필리아와 테크노포비아는 둘 다 가진 자의 태도다. 테크노필리아의 경우 자신이 권력을 갖고 있거나 권력자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테크노포비아의 경우 비록 권력을 잃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어쨌든 자신에겐 권력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 스스로 무력하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이들―여성, 비백인, 빈곤층―은 테크노필리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테크노포비아도 되지 않는다. -98쪽 여기서 논의되는 모든 이야기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다〉를 제외하고) 남성 성기를 자신들의 성물로 삼는다. 이것을 소유한 자에겐 성 전쟁에서의 승리가 보장된다. 따라서 이 승리는 자연의 승리이며, 지성, 성격, 인간성, 겸손, 통찰력, 용기, 계획, 감각, 기술, 심지어 책임감마저 없이 전쟁에 승리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111~112쪽 그리고 공포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리치의 말처럼) 누군가 여기까지 와 본 적이 있으며, 넌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파괴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것들, 섬뜩하고 악마적인 것들을 한사코 부정하는 문화에서 자라난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는 중요한 메시지죠. -154쪽 영화에서 퀼라 준이 사악한 인물로 보인다면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빅의 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 부드러워 쓰다듬어 주고 싶은 여자라는 생물의 애호가들을 기다리는 무시무시한 소식은 여자가 남자의 의견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의견을 갖고 있으며, 섹스를 이용해 남자를 지배할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퀼라의 의존성은 개가 사람에게 의존하는 모습의 패러디다. 퀼라는 빅에게 충성을 바치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가 되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교활하고 기만적이기만 하다. -183쪽 문화의 성은 남성이다. -193쪽 가부장제는 남성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상상하고 그린다. 여성의 문화가 있지만 그것은 지하에 있는 비공식적인 소수 문화로, 우리가 공식적으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 생각하는 것의 작은 구석을 차지한다. 우리 문화의 남자와 여자는 단일한 관점에서 문화를 상상한다. 바로 남성의 관점이다. -194쪽 “…… 소름 끼치는 한 남자의 환영이 누워 있다가 어떤 강력한 기관의 작동으로 생명의 징후를 보이더니 불안정하지만 반쯤 살아 있는 것처럼 요동친다.” 《10억 년의 잔치》에서 (그 역시 SF 작가인) 브라이언 올디스는 위 구절을 인용하며 덧붙인다. “요동치던 것은 바로 SF라는 장르 그 자체였다.” -296쪽 추천사 1960년대와 70년대의 격동기를 거치며 영어권 장르 문학 안팎에서 맹렬하게 투쟁한 페미니스트 작가와 비평가 들의 당시 속내를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조애나 러스의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만큼 좋은 책은 찾기 어렵다. 어떠한 외교적 제스처 없이 정당하기 짝이 없는 날것의 분노를 날카로운 위트에 섞어 기관총처럼 쏘아 대는 러스의 글들은 어처구니없는 관습과 편견과 맞선 20세기 장르 문학사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아직도 유효한 현재형의 질문이자 선언이기도 하다. ― 듀나 (SF 작가) 조애나 러스는 SF 장르를 특정 성별만이 즐긴다는 통념에 명쾌하게 반박하며, 어째서 여성이 SF 장르를 사랑하는가를 거침없이 말한다. 편견과 차별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달리, 여성은 SF라는 매개체를 통해 실재하는 다른 세계를 꿈꾼다. 어느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는 세상을. 모든 규칙이 달라진 세상을. 꿈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창조하며 선언한다. 우리가 아는 모든 현실은 변할 수 있고 또한 변해야 한다고. 그 세계는 바로 이렇게 손에 잡히는 곳에 있다고. 러스는 서문에서 분명하게 선언한다. ‘내가 SF에 특별한 애정을 갖는 것은 SF가 현실을 바꿈으로써 현실을 분석하기’ 때문이라고.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는 바로 그 지점을, SF의 세계가 비유나 은유가 아닌 점을 확실히 말한다. SF의 세계는 ‘문자 그대로 변화한 세상’이며, 물리적으로 실존하는 진실한 세계라는 것을. 이곳은 과거에 없어진 세상도 아니며 현실에 천착하는 세상도 아니다. 여성은 바로 그렇기에 이 세계를 사랑하노라고. ‘문화의 성은 남성’이며 ‘모든 오래된 플롯은 남성적이기에’, 여성은 자신만의 완전히 새로운 플롯을 만들기 위해 SF의 세계로 떠난다. 새로운 사회구조를 향해, 고리타분한 전통과 가치와 문화가 사라지고 바닥부터 새로 창조된 세계를 향해, 때로는 현존하는 젠더 역할이 모두 변화된 세계를 향해. 1930년대에 태어난 작가가 1970년대에 주로 쓴 비평집인데도 불구하고, 이 책의 여러 관점이 현대 한국에 얼마나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가를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SF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영문학과 교수만 빼고.’, 혹은 ‘성차별주의적인 문학의 여성은 오직 불필요하거나 의도적인 행동만을 한다’는 포복절도할 비판은 현대 한국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러스가 분노하며 비판한 각종 성차별적인 판타지를 극단적으로 드러낸 SF들은 지금 현대 한국에서도 계속 경계하며 싸워야 할 것들이기도 하다. 단지 이런 소설들은 한국에서는 SF 유행이 다소 늦어진 덕에 출간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계속 물밑에서만 머물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해 본다. 러스가 레즈비언으로서 말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또한 지극히 현재적이다. 러스는 내가, 내 성별을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부터, 이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을 인지하기도 전부터, 어째서 이 세계에 이토록 매혹되었는지를 격렬하게 일깨워준다. SF는 인생의 모든 순간에, 모든 불합리와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는 순간에, 어딘가 다른 세상이 있으며, 그 세계는 문학적인 은유나 상징 따위가 아니라 실재하는 현실이라고 말해주었다고. 현실이 안락해 마지않은 사람들이 이 세계를 허무맹랑하다며 조롱하기 바쁠 때에 누군가는 그 모든 책에서 매양 세계의 변혁을 꿈꾸었노라고. ― 김보영 (SF 작가) 차례 세라 레퍼뉴의 서문 저자 서문 1부 1장 SF의 미학에 관해 2장 사변: SF에서 가정이란 무엇인가 3장 신비화로서의 SF와 테크놀로지 4장 사랑은 여자를 정복한다(Amor Vincit Foeminam) : SF에서 일어난 성 전쟁 5장 공포소설의 매혹, 러브크래프트 6장 소년과 개: 최종 해결 2부 7장 여주인공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는 여자는 왜 글을 쓸 수 없는가? 8장 누군가 날 죽이려 하는데 그게 아무래도 내 남편인 것 같아 : 모던 고딕 9장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 10장 최근 유행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 대하여 11장 ‘여자처럼’ 글쓰기 : 윌라 캐더 작품에서 정체성은 어떻게 변형되는가 12장 〈누런 벽지〉에 대하여 13장 여학생들끼리의 사랑은 성애적인가? 14장 수전 코플먼에게 보내는 편지 미주 찾아보기
- 소개 | 포도밭출판사
포도밭출판사는 충북 옥천에 있는 작은 출판사입니다. 2014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옥천에 포도 농가가 많아서 저희 이름도 ‘포도밭출판사’라고 지었습니다. 인문, 사회과학, 인류학, 문학, 예술 분야의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나선형’ 시리즈를 통해서 SF 작품을 꾸준히 펴낼 계획입니다. 한여름 포도밭의 이랑을 걷다 보면 포도송이에 알이 빽빽하게 찬 게 보이지요. 송이에 든 알이 너무 빽빽하면 한 알 두 알 빼내어 알이 골고루 넉넉하게 크도록 솎는데, 그런 식으로 포도송이를 살피고 매만지며 이랑 이쪽에서 저쪽으로 왔다갔다 하는 포도밭의 노동이 종이에 빼곡히 적힌 글자들을 훑고 다듬어 책으로 내놓는 출판사의 노동과 닮은 데가 있다고 믿으며, 그래서 포도밭출판사라는 이름을 좋아합니다. 포도밭출판사 / 나선형 Podobat Publishing Company / Spiral 29049 충북 옥천군 옥천읍 성신로 16, 필성주택 202호 Unit 202, 16 Seongsin-ro, Okcheon-eup, Ogcheon, Chungcheongbuk-do, Korea 전화. 070-7590-6708 팩스. 0303-3445-5184 이메일. podobatpub@gmail.com 홈페이지. podobat.co.kr
- 우리는군대를거부한다 | 포도밭출판사
2014-05-15 출간 | 정가 10,000원 | 반양장본 | 264쪽 | 140*225mm | ISBN : 9791195277018 우리는 군대를 거부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53인의 소견서 엮은이: 전쟁없는세상 책소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53인의 소견서들을 원고로 엮었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14년에 걸친 기록들이다. 2001년 오태양 씨의 병역거부선언이 있기 전까지, 이들의 병역거부는 주로 ‘집총 거부’의 의지로만 부각되었다. 그러나 병역거부의 이유로 선언된 것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한국의 병역거부운동이 병영국가 한국의 곪아 터진 여러 부분들에 제각기 얼마나 힘차게 맞서왔는지를 알게 된다. 개인의 신원을 인권 침해 이상으로 심각하게 구속하는 군사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만이 아니다. 미국의 명분 없는 침략전쟁이었던 이라크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한 정부, 죄 없는 시민들을 폭력으로 진압하도록 지시하는 군대, 평택 대추리, 제주 강정, 그리고 밀양에서 국가 폭력을 자행하는 불의의 권력,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얼룩진 부당한 현실 등이 모두 이들 ‘병역거부자’들이 맞서 싸워온 상대들이다. 보도자료 “언제까지 총으로 살인을 연습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 젊은이들이 감옥에 가야 합니까?” “인간을 이렇게 단순하고, 복종적이고, 극단적으로 만드는 일이 강제적으로 일어나도 괜찮은 것일까? 이것이 과연 어쩔 수 없는 문제인가?” “우리가 이루고 있는 공동체는 우리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져야 합니다” 병영국가 한국에 정면으로 반(反)하는 ‘용감한 겁쟁이’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53인의 소견서 군대 대신 감옥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호와의증인 신자들 외에도 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그리고 반군사주의 및 반국가주의 신념에 따라, 또한 소수자운동, 인권운동, 생명사상 등의 맥락에서 입영을 거부하는 이들이다. 이 책은 이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중에서 53인이 작성한 소견서들을 원고로 엮었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14년에 걸친 기록들이다. 2001년 오태양부터 2014년 최근 강길모까지, 시대와 정체성 들에 따른 다양한 변화 2001년 오태양 씨의 병역거부선언이 있기 전까지, 이들의 병역거부는 주로 ‘집총 거부’의 의지로만 부각되었다. 그러나 병역거부의 이유로 선언된 것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한국의 병역거부운동이 병영국가 한국의 곪아 터진 여러 부분들에 제각기 얼마나 힘차게 맞서왔는지를 알게 된다. 개인의 신원을 인권 침해 이상으로 심각하게 구속하는 군사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만이 아니다. 미국의 명분 없는 침략전쟁이었던 이라크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한 정부, 죄 없는 시민들을 폭력으로 진압하도록 지시하는 군대, 평택 대추리, 제주 강정, 그리고 밀양에서 국가 폭력을 자행하는 불의의 권력,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얼룩진 부당한 현실 등이 모두 이들 ‘병역거부자’들이 맞서 싸워온 상대들이다. 부당한 국가 현실에 대한 치밀한 기록, 스스로 처벌과 차별이 따르는 삶에 뛰어든 청년들의 격정적 말과 사유 이 책을 엮은 평화단체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인 여옥 씨는 말한다. “어느 것 하나 쉽게 적힌 글이 없다. 수감을 앞두고 두려움과 걱정에 망설이고 또 망설이는 그 마음,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며 고민으로 지새우는 수많은 밤, 읽을 사람들의 표정과 질문을 상상하며 수도 없이 고친 노력들이 소견서마다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글들은 그 모든 걱정과 고민과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은 숨길 수 없었던 고백이자 도전이고,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설레고 긴장되는 편지들이다.” 2005년에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감옥에 다녀온 이용석 씨는 이렇게도 말한다. “살면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글 하나를 쓰기 위해 그렇게 많은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 하나하나에 신경을 쏟아붓는 일은 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무겁고, 비장하지만, 그게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병역거부자들이 짊어진 역사의 무게가 아닌가 한다.” 이 소견서들을 접한 한 독자는 “이 글들이 바로 우리 시대의 가장 뜨거운 시(詩)가 아닐까”라고 말한다. 자신이 품은 생각과 실천하려는 바를, 강고한 현실 앞에서 떨리는 심정을 견디며 우렁차게 외친 말들이기에, 다른 어떤 글들과 비교할 수 없는 감상이 가능해지는 듯하다. 병역거부운동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가야할 길 「세계인권선언」에 적힌 ‘사상·양심·종교의 자유’에 따르자면, 병역을 거부하는 뜻을 가진 이들에게 대체복무 혹은 사회복무의 기회가 있어야 하지만, 국내 상황은 아직도 요원하다. 그리하여 현재에도 ‘총으로 살인을 연습할 수 없다’는 이들은 ‘사상·양심·종교의 자유’를 구속당하며 철창에 갇히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내외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병역거부자를 예외 없이 감옥으로 보내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그런 이유 탓에 전 세계 병역거부 수감자 중 한국의 수감자 수가 압도적이다. 안전장치 없이 급격히 기울어만 가는 한국사회에서, 서로를, 나아가 생명과 공동체를 지키려는 이들의 행보는 이토록 힘겹다. 이들은 굳건한 외침을 통해, 전쟁 및 국가폭력이 낳고 있는 무참한 현실을 다시금 돌아보길 요구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이들이 내딛는 ‘평화의 행보’에 동참하면서, 더이상 철창에 갇히는 양심이 없도록 제도개혁에 힘써야 할 것이다. 다가오는 5월 15일은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또 한번의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엮은이 소개 전쟁없는세상 평화주의자.반군사주의자들의 네트워크. 2003년에 병역거부자들의 모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군사 주의와 전쟁에 저항하는 다양한 활동(병역거부 캠페인, 비폭력 프로그램, 무기거래 반대 캠페인, 제주해군기지 건설 저지 캠페인 등)을 하고 있다. 모든 전쟁은 인간성을 파 괴하는 범죄일 뿐이며,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 더 많은 문제들을 발생시킨다고 생각한다. 전쟁이 일상적인 차별과 착취의 결과물이듯, 평화 역시 일 상적인 노력의 결과물이다. 전쟁없는세상은 전쟁을, 그리고 전쟁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을 우리 일상과 사회구조에서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홈페이지 http://www.withoutwar.org ) 차례 책을 엮으며.4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란 무엇인가.8 2001 ~ 2005 병역거부선언.13 2006 ~ 2009 병역거부선언.93 2010 ~ 2014 병역거부선언.167
- 사회적경제의 발견 | 포도밭출판사
정가 13,000원 | 264쪽 | 135*210mm | ISBN : 9791195277032 사회적경제의 발견 나중이 아니라 지금 행복한 경제! 엮은이: 충남연구원 보도자료 경제 규모는 커지는데 왜 삶은 점점 더 빈곤해질까? 우리는 언제까지 자신을 희생하며 불행하게 살아야 할까? 우리의 행복, 우리 스스로 돌보며 살 수 없을까? 삶 속의 사회적경제를 발견하라! 시장경제는 빙산의 일각! 이것이 진짜 경제다 우리는 시장경제가 압도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빠르고 편리한’ 온갖 서비스가 제공되고, 지갑만 열면 ‘싸고 다양한’ 물건을 언제든 구할 수 있는 세상이다. 지갑이 두툼하기만 하면 아쉬울 것이 없는 세상. 하지만 지갑을 채우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만만치 않다. 지갑이 얄팍해졌을 때 마주치는 현실은 더 엄혹하기만 하다. 그래서 개인들은 돈벌이를 멈추면 곧 끝장날 것처럼 위태로운 심정마저 느낀다. 어느덧 ‘경제’란 돈벌이를 성공적으로 추구하지 못하는 사람을 궁지로 모는 현실의 속성이 되었다. 이러한 경제에 압도된 사회는, 정치든 문화든 손쉽게 돈벌이의 수단으로 환원시켜나간다. 이는 어느 어두운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의 일면이다. 그런데 이렇게 불길한 힘이 가속화돼가는 와중에 ‘진짜 경제’를 성찰하고 실험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가 압도돼 있는 시장경제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반전(反轉)을 전파하는 이들, 자기 자신과 주변에서부터 ‘상호성’ ‘호혜성’ ‘신뢰’ ‘관계’ ‘순환’ 등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이들. 삶 속에서 사회적경제를 발견하고 구현해가는 이웃들이다. 사회적경제를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생활하려면 많은 물건과 서비스가 필요하다. 혼자나 가족이 물건과 서비스를 직접 장만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교환하거나 구매할 수도 있다. 시장과 경제가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 아닐까? 이 책에서 다뤄지는 사례들은 흔히 우리가 경제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나 돈으로만 매개했던 삶을 다른 방식으로 꾸려간 사례들이다.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기존의 시장 구매와는 다른 방식으로 마련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와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며 사회를 바꿔가고 있는 이야기들이다.”(13쪽, <들어가며>에서) 『사회적경제의 발견』은 사회적경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소개한다. 사회적경제의 실천 사례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란 무엇인가’란 논의가 활발한 와중에 이 책은 오히려 이론에서 눈을 돌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그 모습을 찾는다. 그 이유는 사회적경제가 애초에 삶 속에서 능동적으로 가꿔지는 것이지 이론을 좇아 구성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사회적경제 사례들을 ‘돌보다 / 알리다 / 먹다 / 낫다 / 만들다 / 다니다 / 일하다 / 배우다 / 만나다 / 묵다 / 벌다 / 헤어지다’라는 구분을 통해 소개한다. 이 구분은 생애의 흐름 속에서 마주치는 기본적인 필요들이기도 하다. 여기 소개하는 사회적경제 사례들은 인간의 기본적 필요들을 시장경제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충족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으며 각각 공동육아, 지역언론, 로컬푸드, 대안의료, 적정기술, 공정여행, 사회적 일자리, 마을학교, 네트워킹 공간, 대안주거, 지역금융, 협동장례 등의 방식으로 대표된다. 흔히 사회적경제 영역이라고 하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을 우선 떠올리는데, 이 책의 사례 중에는 주식회사의 이야기도 두 편이나 들어 있다. ‘(주)옥천신문사’와 ‘(주)즐거운밥상’이다. 사업체의 형태가 무엇이냐를 따지기에 앞서 ‘사람을 중시하며, 민주적인 운영을 통해, 공동체의 공공성과 지속성을 강화하는가’라는 기준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돈이 아니라 이웃을 선택하라 “하늘과 땅만 보고 농사만 지으면 되는 줄 알았지요. 땀 흘려 지은 농산물 어데로 가는지도 모르고 누구한테 얼마에 파는지도 도무지 알 수 없었지요. 내 이웃이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것이 우리네 농산물이었지요. 같이 나누고 싶은데, 믿음으로 건네고 싶은데, 대도시의 공판장과 유통회사들은 가격을 후려치면서 모양 좋은 것만 가져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연과 사람을 생각하는, 옥천의 친환경농업하시는 분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습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던 거지요. 우리가 농사짓는 땅이 있는 곳, 옥천을 살려내고 싶었습니다. 땅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고 그렇게 지역도 살리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름하여 ‘옥천살림’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84~85쪽, <옥천살림협동조합> 편에서) 돈의 힘이 압도하는 세상에서 다시금 우리의 행복을 우리 스스로 돌보며 사는 방법. 이 책에 담긴 사례들이 보여주는 선택지는 바로 ‘이웃’이다. 나아가 ‘지역’이고 ‘공동체’다. 우리가 잘 아는 말로 “한 아이가 자라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온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우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온 마을을 가꾼다. “만인은 일인을 위해, 일인은 만인을 위해”라는 사회적경제의 주요한 이념에도 그러한 뜻이 잘 담겨 있다. 책에 실린 사례 중 한 곳인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사명은 “자신을 돌보라, 서로를 돌보라 그리고 공동체를 돌보라”라고 한다. 돈이 아니라 이웃을 선택한다는 것은, 우리가 삶에서 충족하고자 하는 다양한 필요를 저 메마른 돈에만 맡기지 않고 더 능동적으로 가꾸겠다는 ‘의지’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웃의 삶을 고민하기 시작하고, 구체적인 만남을 도모하면서 일어난 변화의 예시들이 바로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이웃들과 직접 만든 공동육아어린이집, 살기 불편한 데도 전월세 인상 때문에 주인 눈치만 보던 청년들이 함께 만든 주택협동조합, 지역의 건강한 먹거리를 우리 지역부터 공급하자며 세운 로컬푸드협동조합, 학교와 지역을 연결하며 지역과 공동체를 재생하려는 교육사회적기업, 일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교류를 넘어 일터를 공유하며 자원과 삶의 재분배를 꿈꾸는 동네협동조합, 여행자와 주민이 서로 배우고 생각하며 지속 가능한 삶을 모색하는 여행협동조합, 중앙언론이 알려주지 않는 지역 주민을 위한 소식을 스스로 전파하는 지역신문,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지역경제의 디딤돌을 만드는 신용협동조합, 지역 자원을 활용해 에너지 복지를 실현하는 적정기술협동조합, 병의 치료를 넘어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려는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복마전이 되어버린 장례 문화를 바로잡고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는 공제조합 등의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적극적인 선택과 의지가 필요할 때다 시장경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얼굴을 맞댈 기회를 줄이지만 사회적경제는 그런 기회를 더욱더 늘리려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삶을 좌우하지 않도록 사회적경제는 일하고 소비하는 손들이 서로를 드러내고 만나길 원한다. 만나고, 서로의 처지를 공유하고, 다른 선택지를 찾는 과정에서 또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가 다르게 살 수 있는 힘을 배양한다. 하지만 사회적경제의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현실 속에서 사회적경제는 시장경제와 함께 존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시장경제의 힘이 압도적으로 세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경제의 영역을 넓히고 그 힘을 키운다는 건 중립이 아니라 어느 편을 정해서 서는 우리들의 선택을 필요로 한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사례들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현실이다. 이미 존재하기에 좋은 길잡이가 되고, 최소한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살펴볼 좌표가 되어준다. 그리고 ‘나중이 아니라 지금의 행복’을 추구하는 (때로는 험난한) 발자취들이다. 그런데 이 길은 당연히 홀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이 책이 독자를 설득하고자 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함께하자, 같이 살자.” 차례 발간사 “사회적경제라는 말이 너무 어려워요” • 5 들어가며 사회적경제란 무엇일까 / 하승우 • 10 돌보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자라는 공동육아 공동육아협동조합 모여라어린이집 / 강윤정 • 21 알리다 믿을 만한 신문, 아무리 봐도 없다고요? (주)옥천신문사 / 정순영 • 42 먹다 마을과 농민의 만남, 먹거리를 지켜라 옥천살림협동조합 / 권단 • 69 낫다 동네에 마음 편히 찾아갈 ‘주치의’가 있나요?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 조세종 • 90 만들다 건강한 에너지를 직접 만드는 ‘작은 손’ 작은손적정기술협동조합 / 박춘섭 • 109 다니다 허물없이 드나들며 순환하는 공정여행 너나드리협동조합 / 김억수 • 126 일하다 우리의 일터, 이곳의 진짜 주인은 우리죠 (주)즐거운밥상 / 장효안 • 139 배우다 마을이 성장시키는 학교, 그 안에서 자라는 아이들 충남교육연구소 / 조성희 • 166 만나다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마을 공간 공간 사이 / 김종수, 장동순 • 187 묵다 집세 버느라 집에 있을 시간이 없다고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 홍은일 • 204 벌다 일인은 만인을, 만인은 일인을 위하는 금융 논골신용협동조합 / 유영우 • 222 헤어지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 지혜로 뭉친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 / 배한호 • 238 나오며 백견, 불여일행 / 하승우 • 253 지은이 소개 강윤정 천안NGO센터 센터장, 사회적기업 북카페산새 이사, 천안아산한겨레두레협동조합 이사, 충남사회경제네트워크 이사, 천안시 작은도서관협의회 운영위원. 정순영 <옥천신문> 전 편집국장. 옥천순환경제공동체 사무국장. 권단 옥천 주민. 조세종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대전사회적기업협의회 회장,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교육위원. 박춘섭 충남연구원 충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책임연구원. 김억수 너나드리협동조합 전 대표이사, (사)서천생태문화학교 상임이사. 장효안 충남연구원 충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전 책임연구원. 협동조합 우리동네 이사. 조성희 충남교육연구소 사무국장. 김종수 충남연구원 충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센터장. 장동순 천안아산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협동조합 우리동네 사무국장, 공간 사이 총괄 매니저. 홍은일 충남연구원 충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 연구원. 유영우 논골신용협동조합 이사장, 한국협동사회경제연대회 공동대표, 서울협동조합협의회 이사 겸 조직위원장. 배한호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한 한의사. 천안아산한겨레두레협동조합 이사장,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연합회 감사. 하승우 땡땡책협동조합 이사장, 교육공동체 벗 이사. 자치와 자급의 삶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 오후 네 시의 풍경 | 포도밭출판사
지은이: 김정선 ISBN: 979-11-88501-07-6 (03810) 출간일: 2019년 4월 5일 정가: 13,000원 제본: 반양장 쪽수: 272쪽 판형: 128×188mm 분야: 에세이 > 한국에세이 오후 네 시의 풍경 지은이: 김정선 책소개 오후 네 시에, 우리는 ‘누구’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오후 네 시’를 응시하다 살아 있다는 것이 어색한 이들에게 보내는 신호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의 저자 김정선이 5년간 쓴 60편의 에세이. 저자는 ‘평생을 남의 삶을 살 듯, 시차 적응에 실패한 여행자처럼 살아온’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시간이 오후 네 시라고 말한다. 하루를 마감하기엔 이르고, 뭔가를 다시 시작하기엔 이미 늦은 시간. 살아 있으나 죽은 시간. 그런 오후 네 시마다 그는 고개를 들고 풍경을 보았다. 그리고 쓸 수 있을 때마다 한 자 한 자 썼다. 이 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오후 네 시의 존재’인 그가 응시하는 세상의 이야기다. 그리고 오후 네 시면 어색하게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는, 문득 살아 있다는 것을 어색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보내는 찌릿찌릿한 신호다. 보도자료 살아 있음이 어색한, ‘오후 네 시의 존재’들에게 보내는 신호 사람들은 내게 혼자 일하니 외롭겠다고 말하지만, 혼자 일하긴 해도 그 때문에 외로운 건 아니다. (…) 저자나 번역자, 편집자는 물론 디자이너까지 자신의 창의성이나 아이디어를 책에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지만 교정 교열자인 나는 그럴 수 없다. 내가 일한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되니까. 마치 그 옛날 빈방에 홀로 앉아 까맣게 잊혔던 그때처럼, 나는 존재하면서도 존재감이 없어야 한다. 혼자라고 느끼기에 맞춤한 조건이 아닌가. —「홀로, 나와 함께」 중에서, 64쪽 저자는 누군가의 원고를 서너 번 이상 꼼꼼히 들여다봐야 하는 교정 교열자로 일한다. 하지만 타고난 성정은 지독한 덤벙이임을 고백한다. 심장 수술 후유증으로 몸 한쪽이 자유롭지 않은 어머니 간병은 그에게 주어진 중요한 일과다. 그는 왜인지 여럿이 함께 있을 때면 혼자라고 느끼고, 마침내 혼자가 되면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 든다. 책과 타인의 문장들은 그에게 자주 소외감을 안기지만, 이제 그것들은 여러 의미에서 떠날 수 없는 거처나 다름없다. 그는 오랫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살았다고 회고한다. ‘존재하면서도 존재감이 없어야 하는’ 교정 교열 작업처럼 자신의 정체성도 그렇게 닮아온 걸까. 늦게 잠들고 늦게 깨는 일상 탓에 그에게는 ‘오후 네 시’ 즈음이 특별하다. 오후 네 시는 어떤 시간인가. 하루를 마감하기엔 이르고, 뭔가를 다시 시작하기엔 이미 늦은 시간. 살아 있으나 죽은 시간. 그래서 어색한 시간. 하지만 가만 보면 의외로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 작가는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시간이 오후 네 시라고 말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오후 네 시에 나는, 너는 어떤 존재인가. 그것이 궁금한 작가는 이 ‘특별한 유형지’ 같은 오후 네 시의 풍경들을 응시한다. 그리고 자신이 본 세상의 이야기를 발신한다. 오후 네 시면 어색하게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는, ‘오후 네 시의 존재’들을 향해. 돌아보면 내게 집은 늘 어두웠고 거리는 필요 이상으로 밝았다 돌아보면 내게 집은 늘 어두웠고 거리는 필요 이상으로 밝았다. 하여 나는 집에선 불행한 척해야 했고, 거리에선 행복한 척해야 했다. 나는 그게 내게 주어진 삶에 적응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집으로 가는 길」 중에서, 98쪽 김정선 작가는 ‘아침형 인간이었던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 낮에는 어머니 간병을 하고, 늦은 오후부터 교정 교열 일을 시작한다. 간병 뒷정리와 이런저런 집안일을 겸하며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 찾아온다. 적막을 쫓으려고 때 지난 오락 프로그램 재방송을 소리를 낮춰 틀어두기도 한다. 자세를 고쳐 앉고 교정지 위로 시선을 떨구다 문득 시계를 보면 어느새 새벽녘. 늦게 잠들고 늦게 눈을 뜬다. 다른 생활을 선택할 방도는 잘 없다. 어머니를 모실 사람이 자신뿐이라서. 그러다 2010년경에 인터넷 서점 블로그를 시작했다. 남의 삶을 살다가 비로소 자기 삶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드는 무렵이 ‘오후 네 시’여서일까. 블로그 이름은 ‘오후 네 시의 풍경’이라고 지었다. 오후 네 시. 일반적으로는 근무 시간의 말미. 뭔가를 끝내기도 뭔가를 시작하기도 애매한 느낌이 지배하는 시간. 작가는 ‘오후 네 시’를 창구 삼아 5년 가까이 차곡차곡 글을 썼다. 집의 어둠과 거리의 밝음, 그리고 그사이의 어스름을 응시하는 자신에 대해서. 슬픔에 붙들린 자는 하염없이 나열한다 슬픔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나열하는 것이다. 예고 없이 찾아드는 오열로 슬픔을 처리하지 못하고 오랜 슬픔에 붙들려 있는 자는 무언가를 하염없이 나열한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나열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나열한다. 그것은 의미 없는 행위에 불과하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중심을 뺏는 것이랄까. 분노나 희열에 사로잡힌 자가 중심에 집착하는 것과 달리 슬픔에 잠긴 자는 그 중심이 버겁기만 하다. —「나열하는 자의 슬픔」 중에서, 176쪽 쓰는 행위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오열로 슬픔을 처리하지 못하고 오랜 슬픔에 붙들려 있는 자’는 작가 자신이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나열하기’다. 특별한 의미를 담지 않고 나열하기. 하지만 이로써 버겁기만 한 ‘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슬픔에 잠겼을 때, 슬픔에 짓눌리지 않기 위한 행위로 작가가 글쓰기를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26년째 교정 교열자로 살고 있지만 사실은 지독한 덤벙이 워낙 멍한 채로 지내기 일쑤여서 이것저것 잃어버리는 게 장기 아닌 장기던 시절이었다. 실내화 주머니에 실내화는 물론 우산이며 필통, 장갑 등등 그 당시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모두 모으면 문구점 하나는 거뜬히 차렸을 것이다. (…) 물론 지금도 그러는 건 아니다.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까. 글쎄, 그보다는 남이 쓴 글을 한 자 한 자 확인해야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게 맞지 싶다. 그사이에 다시 확인해보고 따져보고 점검해보고 그래도 안심하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를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며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는 일이 습관이 된 탓이리라. —「신발 한 짝」 중에서, 168~169쪽 누군가 쓴 원고를 한 자 한 자 꼼꼼히, 못해도 서너 번 이상 거푸 들여다봐야 하는 교정 교열 일. 그 일을 26년째 하고 있으며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등의 책을 내며 ‘교정의 숙수’ ‘문장 수리공’ 등의 이름까지 얻은 저자는 의외로 자신이 지독한 덤벙이라고 고백한다. 어릴 적 학교에 갔다가 어딘가 신발 한 짝을 벗어두고 맨발로 집에 돌아왔을 정도로. 밖에 나가면 무엇이든 잃어버리고 돌아오기 일쑤이던 아이. 그는 ‘나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를 속으로 연발하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다고 한다. ‘괜찮다고,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뿐만 아니라 같이 신발 한 짝을 벗어버리고 나란히 터덜터덜 걸어보겠다고 한다. 본성대로 살지 못하고 가슴 졸이는 삶이 얼마나 아픈지 알기 때문에. 타인의 문장들 속 세상이 외롭고, 좋았다 나중에 고등학생이 되어 읽은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에서 나는 이런 문장과 만났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신기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신기하게 만드는 것이 글인 줄 알았더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거꾸로다. 모든 글은 신기한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신기한 것이다. —「소설 이야기, 둘」 중에서, 194~195쪽 리베카 솔닛은 그의 책 『멀고도 가까운』에서 글쓰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라고. 언뜻 불가능한 일, 하지만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가는 행위가 다름 아니라 글쓰기다. ‘책’은 그 신기하고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 벌어지는 현장이다. 독자이자 교정 교열자로서 김정선 작가는 많은 시간을 그 현장에 머문다. 그리고 스스로도 글을 쓴다. 외롭고, 어색하고, 좋은 순간들에 대해. 지은이 소개 김정선 아침형 인간이었던 적이 없다. 내 인생에서 오전은 대개 비몽사몽간에 지나가버린 시간들이었다. 그렇다고 밤의 삶을 흥겹게 산 것도 아니니, 내 삶을 굳이 규정하자면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오후의 삶 정도가 되지 않을까. 교정 교열자로 살면서 5년 가까이 ‘오후 네 시의 풍경’이라는 인터넷 서점 블로그를 운영한 적이 있다.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소설의 첫 문장』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등의 책을 냈다. 추천사 김정선 작가를 내 맘대로 하나의 표현에 집어넣을 수 있다면 ‘어색함’이라는 단어를 고르겠다. 그는 어색해하는 사람이다. 모든 것이 어색해서,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서, 모든 것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 자기 자신을 꼭 닮아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채로 어색할 뿐인 오후 네 시라는 시간 속에 자신의 모든 어색한 순간을 담아 놓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한 일은 생뚱맞지만 오후 네 시에 알람을 맞추는 것이었다. 한동안 매일 오후 네 시가 되면 알람이 울리고, 알람이 울리면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금 내 앞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는지를 살폈다. 출출해서 누룽지를 끓여 먹는데 알람이 울리기도 했고, 지하철 안에서 졸다가 알람에 깨기도 했다. 보통 알람은 대단치 않은 순간들에 울렸다. 그래도 그때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살아 있다’는 것이 되게 어색하게 느껴져서 시시한 순간에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자주 짓곤 했다. 그러던 지난 일요일에는 ‘리스본’이라는 작은 책방에서 친구에게 선물할 시집을 고르고 있는데 알람이 울렸다. 고개를 드니 통유리 밖으로 푸른 하늘이 보였고 그 아래로 모처럼 화창한 오후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의 발걸음이 유유하게 움직였다. 마침 손에 들려 있던, 친구를 위한 선물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시집 위로 고개를 떨구며 나는 ‘살아 있다는 거 너무 좋은 거네’라고 생각했다. 김정선 작가의 다른 책들을 읽을 때처럼 이번에도 나는 그가 무심한 듯 흘린 활자들을 그냥 천천히 따랐다. 이제 이 책은 다 읽어버렸지만, 하루 한 번 고개를 들고 나의 세계를 어색하게 바라보는 이 책이 남긴 규칙은 계속 이어가 보려고 한다. 알람이 울린다. 고개를 들 시간이다. - 요조(뮤지션, 책방무사 대표) 책 속에서 성인이 되어서도 여럿이 함께 있을 때 오히려 혼자라고 느끼고, 마침내 내 거처로 돌아와 혼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혼자에서 벗어났다고 느끼는 버릇은 여전했다. (…) 일을 하다가 쉴 때나 하루 일을 마치고 내 거처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혼자인 상태에서 벗어나 ‘나’와 단둘이 있게 되는데, 물론 이런 상황이 좋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외로움이란 나와 단둘이 남은 상황을 어색해하는 정서고, 고독감이란 그 상황을 즐기는 정서라고 한다면, 외로움을 느낄 때도 적지 않으니까. —「홀로, 나와 함께」 중에서, 64~65쪽 나는 그 사내가 마치 세상의 멱살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몸을 부여잡고 흔들며 묻고 싶어졌다. 어떻게 살면 되는 건데요, 대체 난 뭘 하면 되냐구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멱살을 내게 내어준 채로 외려 나를 흔들어댈 것만 같았다. 그걸 몰라서 물어? 정말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고? —「키키키」 중에서, 81쪽 어지간해서는 거짓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다. 윤리적 기준에 따라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 말하자면 정직함이란, 밖에서 나를 바라보는 무수한 눈들을 당당히 마주보는 것이다. 반면 솔직함은 내 안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단 하나의 눈과 마주하는 것이고. 이건 또 하나의 나인 경우도 있고 나조차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저 시선 그 자체인 경우도 있다. 밖에서 나를 보는 무수한 눈들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지만(눈 한번 질끈 감으면 그만이다), 내 안의 시선은 눈을 감는 순간 더 선명하게 보인다. —「과연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까?」 중에서, 88쪽 일에 지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새벽길, 문득 올려다본 감청색 하늘에 달이 떠 있다. 대보름달이라 유난히 밝고 둥그런 달. 아, 달이구나. 나는 하루 종일 글자를 들여다보느라 잔뜩 충혈이 된 눈으로 달을 보았다. 진짜 달이었다.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산다는 이야기 속의 달이 아니라 진짜 달. (…) 너무 동그래서 외려 달 같지 않아, 그저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지는 달. 갑자기 내가 세상 모든 이야기의 바깥에 슬쩍 비켜서 있는 것만 같았다. —「달을 보았다」 중에서, 101쪽 간혹 도서관에서 교정지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혹은 도서관 밖 벤치에 앉아 있다가, 그 자세 그대로 내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더 이상 내가 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는 두려움에 휩싸이는 것이다. 어떤 때는 삼십 초에 불과하지만, 어떤 때는 오 분 가까이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고개를 약간 기울이거나 세운 채로 혹은 펜을 손에 쥔 채로, 아니면 다리를 꼰 채로 영원히 그대로 굳어질 것만 같다. 그러다가 나는 깨닫는다. 내가 마침내 스스로를 나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아니, 슬픔이 나를 나열하고 있다는 것을. —「나열하는 자의 슬픔」 중에서, 176~177쪽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갔을 때 나는 무섭도록 말이 없는 학생이 되었다. 그냥 멍한 표정으로 학교와 집을 왔다 갔다 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걷다가 하굣길에 선배에게 경례를 붙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뺨을 맞기도 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해 겨울 아버지는 또 양복값을 받지 못했고, 60권짜리 한국문학전집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이광수에서 시작되는 그 책들을 나는 겨울방학 동안 한 권씩 읽어나갔다. 그리고 교보문고를 다니며 용돈으로 책을 사기 시작했다. 톨스토이로 시작되는 소설책들을. —「소설 이야기, 하나」 중에서, 192~193쪽 차례 여는 글 1장 오늘은 우는 날 탈장 10초 비는 사람의 마음과 부딪칠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왜 죽였냐고요? “하늘에게도 정이 있다면 하늘 역시 늙을 것이다” 책 이야기 총각무와 김 그리고 숭늉 냅킨과 절편 오늘은 우는 날 홀로, 나와 함께 찌릿찌릿 전파사 중독, 그 교차로에 갇히다 키키키 악마는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상의 한 점 2장 깜빡 잊었다 과연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까? 세 번이나 살아야 한다고? 머릿속의 벽돌 집으로 가는 길 달을 보았다 나와 우리 안과 밖 우체국에서 악마가 말했다, 내가 아니라 깜빡 잊었다 기억의 집 수건 공동체 가을 풍경 잡스러움에 대하여 어려운 일과 힘든 일 3장 질문과 답 엄지손가락 우거지된장국 문상 이등병 신발 한 짝 메커니즘 칠집 김씨 나열하는 자의 슬픔 치욕과 사랑 소설 이야기, 하나 소설 이야기, 둘 소설 이야기, 셋 우울한 편지 질문과 답 곤경에서 벗어나다 4장 아름다운 구석 사랑의 감수성, 하나 사랑의 감수성, 둘 사랑의 감수성, 셋 고량주와 까마귀 황두수 이야기 낮과 밤 국어사전의 사랑법 “나는 휴일마다 죽을 것이다” 가장 감동적인 서문 세상에서 가장 짧은 주문 다른 것이 없지는 않다 외주 교정자로 살아가기 감자전과 김치죽 어떤 것들 아름다운 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