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SBN: 979-11-88501-21-2 (03800)
출간일: 2021년 8월 16일
정가: 17,000원
제본: 무선
쪽수: 340쪽
판형: 130×210mm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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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
지은이 : 김정선
책 소개
살면서 한번쯤은 누리고 싶은, 세계 문학 전집을 읽는 시간
무작정 읽기 시작하여 일 년간 야금야금 100권을 읽고 쓰다
세계 문학 전집을 벗 삼아 마음의 터널 통과하기
사는 곳은 대전.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단 둘, 동생과 친구 P. 함께 사는 생명은 연필선인장 ‘연필이’가 유일하다. 누구의 이야기일까.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열 문장 쓰는 법』 등을 펴낸 김정선 작가의 ‘근황’이다. 건강 문제로 25년 가까이 해온 교정 교열 일을 그만두게 된 그는 작년 2020년에 서울 살이를 정리하고 대전으로 이사했다. 건강을 추스르기 위해 하루 2시간씩 산책하기로 다짐한 것과 더불어 그가 시작한 일은 세계 문학 전집을 읽는 것이었다. 서점에 가면 늘 세계 문학 전집 코너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마치 잘사는 이웃집 바라보듯이 선망의 눈길이 되곤 했던 그. 마침 따로 할 일도 없는 차에 그는 죽기 전에 언젠가 나도 한 번 해봤으면 하고 바라던, 세계 문학 전집 읽기에 착수했다. 이 ‘세계 문학 전집 읽기’ 여정은 일 년을 채웠고, 모두 100권(작품 수로는 70편)의 책을 읽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몸무게를 떠받치던 소파가 좋이 10센티미터는 주저앉았다고 한다. 그와 함께 세계 문학 읽기 여정을 떠나보자.
보도자료
따로 할 일이 없어 세계 문학 전집을 읽다
김정선 작가의 신작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이 출간되었다. 김정선 작가는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열 문장 쓰는 법』 등 베스트셀러를 펴내며 뛰어난 교정 교열자로 이름을 알렸는데 그에 비해 덜 알려진 사실. 그는 자기만의 색을 가진 산문가이기도 하다. 김정선 작가다운 산문들을 엮어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오후 네 시의 풍경』 등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오랜 시간 교정 교열자로 일했는데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현재는 모든 일을 그만두었다. 그러면서 서울 살이를 정리하고 대전으로 이사했다. 2020년 여름, 대전 이사와 더불어 그가 시작한 일은 바로 세계 문학 전집 읽기다.
서점에 가면 늘 세계 문학 전집 코너 앞에 발길을 멈추고 마치 잘사는 이웃집 바라보듯이 선망의 눈길로 책들을 쳐다보곤 했다는 그. 마침 따로 할 일도 없는 차에 그는 죽기 전에 언젠가 나도 한 번 해봤으면 하고 바라던 그 일에 착수했다. 김정선 작가는 세계 문학 전집을 읽는 이유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붙이거나 그 일의 가치를 확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세계 문학 전집을 왜 읽어야 하는지, 읽으면 무엇이 좋은지 말하지 않는다. 다만 본인이 이 일을 시작한 이유를 전할 뿐이다.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다고. 따로 할 일이 없었다고.
세계 문학 읽기가 나의 본령, 작품들을 벗 삼아 마음의 터널 통과하기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는 25년 가까이 상당한 권수의 문학 작품을 손본 뛰어난 교정 교열자이고 특히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 주력하던 일이 바로 세계 문학 작품들의 교정 교열이었다. 그가 비로소 어깨에 짊어져온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되면서 바로 떠올린 일이 세계 문학 읽기인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세계 문학 읽는 일이 자신의 본령인 것처럼 여겨진다고 말한다.
더불어 김정선 작가에게 세계 문학을 읽는 일은 우울감을 버티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어느 장에 이르러 문득 ‘마음의 터널’에 대해 털어놓는다.
또다시 터널을 통과했다. 마음의 터널. 이번엔 이틀짜리로 짧지 않은 터널이었다.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 비교적 짧은 터널을 지날 때도 있고 이삼 일 동안 이어지는 제법 긴 터널을 지날 때도 있다. 때로는 짧은 터널이 연이어 나타날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자칫 출구를 못 찾을지도 모르는 동굴이 아니라 터널을 지날 뿐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버티고 있다. - 204쪽
우울의 터널을 통과하는 방법으로써 그는 세계 문학과의 씨름을 선택했다. 아니, 씨름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겠다. 일 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100권의 책을 읽고 이를 기록했으니 작업 강도가 상당했을 텐데 그는 이 일을 그다지 어려워하지 않았다. 우울한 날은 우울한 대로, 친구가 찾아와서 좋은 날은 좋은 기분 그대로, 춥거나 더운 날에는 또 그날의 날씨가 시키는 대로, 그는 세계 문학 작품들과 친구처럼 지내자는 마음으로 한 해를 보냈다. 그 결과로 70편의 글이 쓰였고 마침내 이 책이 만들어졌다.
도서 정보, 작품 한 토막, 줄거리 소개와 김정선의 목소리를 담았다
매 편 원고의 구성은 무척 단순하다. 세계 문학 작품 제목과 지은이, 옮긴이, 출판사, 출간 연도를 표기한 후, 해당 작품에서 고른 인용구 한 토막이 등장한다. 작가의 문체, 작품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한 토막을 고르기도 했고, 핵심 장면이 펼쳐지는 한 토막을 고르기도 했다. 비록 짤막한 글귀이지만 이를 통해 해당 작품과 독자 자신의 궁합이 맞을지 아닐지를 슬며시 판단해볼 수도 있으리라.
그런 다음 김정선 작가의 목소리가 한두 문단을 차지한다. 작가의 일상 등이 담긴 매우 짧은 에세이가 작품 이야기 전에 등장하는 것이다. 짧은 에세이 뒤에는 두어 쪽 분량의 작품 줄거리 소개가 이어진다. 그러고 마지막으로 김정선 작가가 한 번 더 말을 건다. 그렇게 두어 문단의 소감이 적힌 후에 글이 끝난다. 70편 대부분 이와 같은 구성을 따른다.
작품 이야기 전에 실리는 짧은 에세이에서는 김정선의 일상이 엿보인다. 우울감을 겪는 이야기, 약을 끊고 지내보려는 이야기, 약을 다시 복용하는 이야기, 친구를 만난 이야기, 연필선인장과 함께 사는 이야기, 동생과 나눈 대화, 오래 간병한 어머니를 떠올리는 이야기, 스스로 말하는 ‘나’의 이야기 등등. 이 이야기들에는 김정선 작가가 내보이는 ‘마음’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날그날 그의 마음이 읽기로 선택한 작품 이야기가 곧 이어진다. 말했듯이 작품에 대한 두어 쪽 분량의 줄거리 소개가 이어지는데, 교과서에 실릴 듯한 줄거리 요약과는 다르다. 김정선 작가의 관점에서 작품을 독해하기 때문. 그래서 줄거리 소개라고 한 이 대목들은 김정선 작가 방식의 짧은 해제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김정선 작가는 자신의 일상과 세계 문학 작품 이야기를 함께 들려준다. 이 덕분에 세계 문학 전집을 읽는다는, 쉽지만 않은 도전이 어쩐지 자연스럽고 편안한 일로 여겨진다. 문학과 친구가 되는 일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김정선 작가가 보여주는 세계 문학 전집 읽기의 가장 큰 특징과 매력은 이것이 아닐까. 문학을 벗 삼아 하루를 보내는 모습, 문학과 친구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세계 문학을 읽는 일의 의미를 그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와 시간을 함께하는 일의 의미를 굳이 설명까지 할 필요는 없으니까.
야금야금 읽어온 100권, 앞으로 두 권 더 기획
2020년 6월 말부터 2021년 3월 초까지, 일 년이 못 되는 시간(정확히는 8개월 반) 동안, 김정선 작가는 권수로는 1백 권, 작품 수로는 70편을 읽고 그 감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지금은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을 집필 중이다.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는 총 세 권의 시리즈로 기획하고 있다. 다음 책은 2022년 여름 출간 예정이다.
김정선이 읽은 70편의 작품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페스트』, 알베르 카뮈
『콜레라 시대의 사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백 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위대한 개츠비』,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파멜라』, 새뮤얼 리처드슨
『클러리사 할로』, 새뮤얼 리처드슨
『화산 아래서』, 맬컴 라우리
『리어 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삶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점원』, 버나드 맬러머드
『그린게이블즈의 빨강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테레즈 데케루』, 프랑수아 모리아크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변신』, 프란츠 카프카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베니스의 상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나자』, 앙드레 브르통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푸른 꽃』, 노발리스
『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데미안』,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만연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
『맥베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모렐의 발명』,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전원 교향악』, 앙드레 지드
『좁은 문』, 앙드레 지드
『주홍 글자』, 너새니얼 호손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채털리 부인의 연인』,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로미오와 줄리엣』, 윌리엄 셰익스피어
『소송』, 프란츠 카프카
『성』, 프란츠 카프카
『지킬 박사와 하이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워더링 하이츠』, 에밀리 브론테
『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제인 에어』, 샬럿 브론테
『암흑의 핵심』, 조지프 콘래드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사양』, 다자이 오사무
『미하엘 콜하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악의 꽃』, 샤를 보들레르
『전쟁과 평화』, 레프 톨스토이
『카탈로니아 찬가』, 조지 오웰
『모비 딕』, 허먼 멜빌
『마의 산』 , 토마스 만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이성과 감성』, 제인 오스틴
『위대한 유산』, 찰스 디킨스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
『아Q정전』, 루쉰
『소리와 분노』, 윌리엄 포크너
『한 여인의 초상』, 헨리 제임스
『보이지 않는 인간』, 랠프 앨리슨
『적과 흑』, 스탕달
『목로주점』, 에밀 졸라
『삼대』, 염상섭
지은이 소개
김정선
이십 대 후반부터 오십 대 중반까지 단행본 출판물 교정 교열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오후 네 시의 풍경』 등의 책을 냈다. 지금은 대전에서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끼적이며 산다.
책 속에서
임대인이 전화를 해서는 아무래도 집을 내놓아야겠단다. 날벼락 같은 얘기에 어리둥절했다. 이사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사정사정하는 말을 들어보니 세금이 꽤 많이 나와서 실제 집주인인 언니네 부부가 감당하기 어려워한다는 것. 잘 얘기해서 원래 2년 계약이었던 걸 1년으로 바꾸었다. 집은 마음에 쏙 들었지만 등기상의 집주인과 임대인이 다른 게 영 찜찜하던 차였기에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그러고 나니 기운이 쪽 빠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제야 어색하기만 하던 이 집에 비로소 정이 가는 느낌이었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별 탈 없이 평온한 날들이 이어지면 그걸 누리기보다 외려 어색하고 불안해하다가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그제야 이게 내 삶이지, 하고 안정감을 찾는 심리. 왜 이 모양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1911~2002)가 1950년에 펴낸 소설 『삶의 한가운데』를 펼쳤다.
- 70~71쪽, 「누구나 언제든 삶의 한가운데를 산다」 중에서
대전에서 새로 만난 의사는 여성분인데 환자들이 많아서 시간에 쫓길 법한데도 대화를 유도하려 애써주고 약도 줄여주겠노라고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종국에는 약을 먹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고마웠다. 나 또한 어쨌든 과거는 우당탕탕 지나버렸고 지금이 내 평생 가장 편안한 시간인데 이렇게 약에 의존하면서 보내고 싶지 않노라고 답했다. 사실이다. 젊은 날로는 단 일 초도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지금의 내가 좋으니까.
독일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가 1774년에 펴낸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는다.
- 75쪽, 「우당탕탕 지나가 버린 젊은 시절」 중에서
어릴 때부터 누군가의 특별한 행동을 곧잘 흉내 내곤 했다. 친구들 앞에 뽐내듯 그런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식의 흉내였다.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닮고 싶은 상대의 습관을 모방했으리라. 아니면 닮고 싶은 사람은 아니지만 특정한 행동이 나도 모르게 배어들 듯 옮겨 왔을 수도 있고. 그렇다 보니 과연 이게 내 것인가 싶어질 때도 많았다. 말투도 그렇고 표정도 그렇고 심지어는 걸음걸이까지. 아, 방금 이 행동은 예전에 아무개의 행동이랑 비슷한데, 하고 불현듯 떠오를 때면 내가 여러 사람의 삶을 동시에 살고 있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가 1605년에 펴낸 소설 『돈키호테』를 읽고 있다.
- 78쪽, 「흉내 내기」 중에서
의사에게 약을 먹어도 자꾸 증세가 반복된다고 전하면서 마치 어느 외진 곳에서 장기 투숙자로 살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내 삶을 살고 있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도 했다. 의사는 증세가 나타날 때의 심리 상태를 꼬치꼬치 묻고는 약을 추가해 주었다. 계속 줄여 나갈 줄 알았는데 다시 약이 늘고 말았다.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모리아크(1885~1970)가 1927년에 펴낸 소설 『테레즈 데케루』를 읽는다.
- 98쪽, 「외진 곳에 불시착한 영혼」 중에서
서울 자취방으로 나와 살기 전엔 부천에서 13년 가까이 어머니 간병을 하며 지냈다. 집안 살림도 하고 어머니와 같이 병원 생활도 하고 훈련도 시켜드리고. 몸의 반쪽을 쓰지 못하게 된 어머니를 일으켜 세우는 게 내 목표였다. 간병이 길어지면 간병하는 사람의 고생은 점점 부각되고 간병을 받는 사람의 고달픔은 잊히게 된다. 일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게 된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맡기고 따로 나와 살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동안 알게 되었다. 다시 그 시간만큼 누군가를 간병하는 것과 누군가에게 간병을 받는 것 중 택하라면, 다시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전자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아무튼 고령의 아버지에게 맡기고 나온 터라 언제 다시 돌아갈지 몰라 서울에서는 변변한 가구도 없이 지낼 수밖에 없었다. 1년만이라도 이렇게 지내보자 했던 게 어느새 4년이 되어버렸다.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가 1984년에 펴낸 소설 『연인』을 읽는다.
- 132쪽, 「내 연인은 슬픔」 중에서
나를 잃어버릴 정도로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도 없고 그만큼 증오해 본 적도 없다. 무엇보다 내가 품는 그 사랑과 증오의 감정을 믿지 못한다. 얼마나 오래갈지도 모르겠고. 약을 먹게 된 뒤로는 더더욱 그렇다. 이 책에 쓸데없이 줄거리를 요약해 나열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나를 못 믿겠어서. 다 읽고도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이 들기 때문이랄까. 그러니 확인이 필요하다. 물론 되도록 짧게 정리하려고 애쓰고는 있지만.
미국 작가 너새니얼 호손(1804~1864)이 1850년에 펴낸 소설 『주홍 글자』를 읽는다.
- 162쪽, 「사랑과 증오의 세 꼭짓점」 중에서
또다시 터널을 통과했다. 마음의 터널. 이번엔 이틀짜리로 짧지 않은 터널이었다.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 비교적 짧은 터널을 지날 때도 있고 이삼 일 동안 이어지는 제법 긴 터널을 지날 때도 있다. 때로는 짧은 터널이 연이어 나타날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자칫 출구를 못 찾을지도 모르는 동굴이 아니라 터널을 지날 뿐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버티고 있다. 다행히 아직은 잠을 잘 자는지라 터널일 뿐이라는 믿음을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다시 기운을 차리고 식욕도 되찾고 난 뒤에 터널에 들어서기 직전까지 읽던 책을 마저 읽고 한 번 더 읽었다. 독일 작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가 1910년에 펴낸 소설 『말테의 수기』다.
- 204쪽, 「나는 나를 보았을까?」 중에서
계절이 바뀌었고, ‘코로나 19’는 3차 대유행을 맞았다. 그 와중에도 연필선인장은 열다섯 개의 새로운 마디를 틔워냈다. 동생은 오르내리면서도 잘 버티고 있고, 나는 몇 번의 터널을 더 지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병원에 가서 비상약을 받아왔다. 그리고 태어난 해를 포함해서 쉰다섯 번째 생일을 ‘연필이’와 함께 보냈다.
‘연필이’는 내가 지어준 연필선인장의 이름이다. 가끔 가볍게 쓰다듬으면서 말을 걸기도 한다. “너나 나나 이번 겨울을 잘 나야 할 텐데.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1909~1948)가 1948년에 펴낸 소설 『인간 실격』을 읽는다.
- 222쪽, 「출구 없는 세상에 갇힌 아들」 중에서
도시 생활의 가장 큰 특징은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것 아닐까. 도시 생활의 매력이기도 하고 맹점이기도 하다. 또 하나가 있다면 아마도 시간이지 싶다. 도시인들이 발명한 도시의 시간. 절기에 따라 생활과 풍경을 변화시키지만 결국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농촌의 시간이 아니라, 깎이고 잘리고 덧붙여지고 치솟고 무너지고 흐르다가 고여서 썩으면서도 원래의 모습 같은 건 간직하고 있지 않은 도시의 시간. 도시의 익명성과 도시만의 시간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또 하나의 발명품이 바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도시에 살면서 도시인의 발명품인 소설 읽기를 즐기는 나는 도시인이 맞지 싶다.
프랑스 시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1821~1867)가 1857년에 펴낸 시집 『악의 꽃』을 읽는다.
- 245쪽, 「도시와 시간」 중에서
차례
들어가며 : 살면서 한번쯤은 누리고 싶은, 세계 문학 전집을 읽는 시간
2020, 여름
노인과 소년 :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마스크는 언제 벗을 수 있을까? : 『페스트』, 알베르 카뮈
긴 장마처럼 : 『콜레라 시대의 사랑』 1·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아니야, 결코 가볍지 않아!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순전히 얼음 때문에 : 『백 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북북서로 미쳤다고? :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 무슨 호사인가 : 『위대한 개츠비』,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외진 곳의 장기 투숙자 :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직 편지글로만 : 『파멜라』 1·2, 새뮤얼 리처드슨
재난지원금 덕분에 : 『클러리사 할로』 Ⅰ~Ⅷ, 새뮤얼 리처드슨
술 냄새와 책 냄새 진동하는 소설 : 『화산 아래서』, 맬컴 라우리
현명해져야 하는 건 리어일까 나일까? : 『리어 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가면의 진실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권력은 나눌 수 없는 걸까? :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누구나 언제든 삶의 한가운데를 산다 : 『삶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우당탕탕 지나가 버린 젊은 시절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흉내 내기 : 『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성공한 속편은 없는 걸까? : 『돈키호테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2020, 가을
가을의 문턱에서 만난 도스토옙스키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3,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을 다시 쓴다면? : 『점원』, 버나드 맬러머드
도와줘요, 빨강머리 앤! : 『그린게이블즈의 빨강머리 앤』 1~10, 루시 모드 몽고메리
외진 곳에 불시착한 영혼 : 『테레즈 데케루』, 프랑수아 모리아크
집에 돌아가는 길 :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합의와 치욕 : 『변신』, 프란츠 카프카
쓸쓸하다 :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세상이 너무 지겨워! : 『베니스의 상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세상의 모든 하루 :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발작적인 아름다움 : 『나자』, 앙드레 브르통
무서워라!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세계와 나 : 『푸른 꽃』, 노발리스
내 연인은 슬픔 : 『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크로머는 어떻게 살았을까? : 『데미안』, 헤르만 헤세
청춘의 비가(悲歌) :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정신의 과장된 삶 : 『만연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
권력과 반역은 한 쌍이다 : 『맥베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기계와 불멸 : 『모렐의 발명』,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기만 없는 사랑이 가능할까? : 『전원 교향악』, 앙드레 지드
비겁한 사랑 : 『좁은 문』, 앙드레 지드
사랑과 증오의 세 꼭짓점 : 『주홍 글자』, 너새니얼 호손
고(故) 박지선 씨를 기억하며 :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어떤 섹스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 『채털리 부인의 연인』 1·2,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철없는 사랑과 공동체의 운명 : 『로미오와 줄리엣』, 윌리엄 셰익스피어
“개 같군!” : 『소송』, 프란츠 카프카
이 사람, 대체 정체가 뭘까? : 『성』, 프란츠 카프카
악을 품은 선과 선을 품은 악 : 『지킬 박사와 하이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연필선인장과 히스 : 『워더링 하이츠』, 에밀리 브론테
나는 나를 보았을까? : 『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제인 에어와 다락방의 여인 : 『제인 에어』, 샬럿 브론테
2020, 겨울
이야기의 핵심에 감추어진 것 : 『암흑의 핵심』, 조지프 콘래드
출구 없는 세상에 갇힌 아들 :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출구 없는 세상에서 자기 혁명을 꿈꾸는 딸 : 『사양』, 다자이 오사무
자비 없는 냉담한 서술자 : 『미하엘 콜하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창조주여, 나는 네 주인이다. 순종하라!” :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도시와 시간 : 『악의 꽃』, 샤를 보들레르
근대 소설의 최대치 : 『전쟁과 평화』 1~4, 레프 톨스토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 『카탈로니아 찬가』, 조지 오웰
아무래도 소설 같지 않은 : 『모비 딕』, 허먼 멜빌
이야기의 보수성 : 『마의 산』 상·하, 토마스 만
탁월한 서술자와 완벽한 구성 :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의 그늘 아래서 : 『이성과 감성』, 제인 오스틴
천박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 『위대한 유산』 1·2, 찰스 디킨스
행복은 정말 다른 곳에 있는 걸까? :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미리 만나 보는 현대 소설 : 『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
독자를 만들어야 하는 작가의 운명 : 『아Q정전』, 루쉰
포크너, 포크너! : 『소리와 분노』, 윌리엄 포크너
고급 심리소설의 초상 : 『한 여인의 초상』 1·2, 헨리 제임스
문학이란 무엇인가 : 『보이지 않는 인간』 1·2, 랠프 앨리슨
쥘리엥 소렐은 뫼르소의 모델일까? : 『적과 흑』 1·2, 스탕달
‘빈곤 포르노’ 속에 버려진 인물들 : 『목로주점』 1·2, 에밀 졸라
소설가 염상섭 : 『삼대』, 염상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