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BN: 979-11-88501-18-2 (03800)
출간일: 2021년 4월 26일
정가: 13,000원
제본: 무선
쪽수: 192쪽
판형: 130×205mm
분야: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국내도서 > 에세이 > 독서에세이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여성학/젠더 > 여성문제
국내도서 > 사회정치 > 여성/젠더 > 페미니즘
그을린 얼굴로 웃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지은이: 김예림
책 소개
만 스무 살의 김예림은 스물두 살이 되기까지 2년 동안 자신이 선 자리에서 바라보는 페미니즘을, 세상을, 21세기를, 스무 편의 글로 기록했다.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으로서, 연고도 없는 비수도권 지역에 혼자 살며 일을 시작한 여성으로서, 김예림은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시작한 페미니즘 공부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예림은 할 말은 많지만 도무지 입술이 움직여지지 않는 이들에게 자신이 읽은 스무 권의 책을 소개한다. 그가 책 속에서 만난 과거 여자들의 목소리는 현재에 만나는 바로 곁의 여자들의 목소리와 겹치고 포개진다. 그리고 저절로 입술을 떼고 말문을 열게 한다. 김예림은 이 놀라운 경험을 함께하자고 청한다. 그리고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이토록 멋진 날이 왔다’고 외칠 수 있기를 함께 희망하자며 팔을 끌어당긴다.
보도자료
페미니즘이 뭐야?
김예림이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단순했다. 누군가 “페미니즘이 뭐야?”라고 물을 때 대꾸할 나름의 답을 찾고 싶었다. 여성우월주의니, 여자 일베니 하면서 페미니즘을 조롱하는 일이 흔했지만 김예림은 궁금했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건 꼭 페미니즘뿐만이 아니었다. 여성으로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상황을 겪는 순간마다 과연 어찌해야 옳은지 알고 싶었다. 이를 테면 “여자애니까 다리를 오므려야지!” 같은 말을 듣는 순간, 햇볕 아래서 일하다 얼굴이 그을렸는데 누군가 자꾸만 “왜 이렇게 시꺼멓게 탔어?”라고 묻는 순간에는 어찌 해야 좋단 말인가. 모르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즐거운 섹스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쩌다 임신을 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누군가 함부로 나를 만진 기억이 하루가 지나도 떨쳐지지 않을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그래서 김예림은 더 공부하고 싶었다.
만 스무 살의 김예림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충북 옥천에 집을 구해 살며 낮에는 잡지사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밤 시간과 휴일을 이용해 공부해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주 작은 페미니즘학교 탱자’라는 곳이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곳이 김예림의 페미니즘 교실이 되었다.
탱자에서는 매주 책을 정해 읽고, 한 달에 한 번씩 에세이를 썼다. 엄마의 가사노동, 몸에 남은 브래지어 자국, 직장에서 겪은 일, 꾸밈노동 등이 글감이 되었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여성의 참정권 운동부터 제2물결 페미니즘까지, 여성의 가사노동부터 육식의 성정치까지, 다양한 앎의 파도를 오르내리며 1년을 보냈다. 퇴근 후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와 책장을 넘기다 보면 아침 해가 떠오르는 날이 잦았다.
내가 선 자리에서 페미니즘 이어 말하기
이 책에 모은 글들은 그런 날들의 기록이다. 대학에 가지 않은, 비수도권에 사는, 여성 청년 노동자로서 김예림은 자기가 선 자리에서 바라보는 페미니즘을, 세상을, 21세기를 기록했다. 그 글들에는 페미니즘 저서들을 통해 생각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이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김예림이 책 속에서 만난 과거 여자들의 목소리는 현재에서 만나는 바로 곁의 여자들의 목소리와 겹치고 포개진다. ‘앎’의 이야기가 절반, ‘삶’의 이야기가 절반을 이룬다. 김예림의 ‘앎’은 삶의 연료가 된다. 다시 ‘삶’의 시간은 앎을 해석하는 재료가 된다.
시대는 과연 변하고 있을까. 세상은 과연 나아지고 있을까. 어떤 면에서 나아지는 것 같아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변화는 무척 더디고 때로는 뒤로 후퇴하는 듯도 하다. 김예림은 너무 늦지 않게 외치고 싶은 말이 있다. 21세기가 다 가기 전에 새 시대에 꼭 어울리는 언어로 이렇게 외칠 날을 고대한다. “이 멋진 날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왔구나!” 하고. 그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믿음으로 김예림은 계속 공부한다. 앎을 그리고 삶을.
이슬아 작가의 추천사
이것은 책으로 자신을 지키는 사람의 이야기다. 김예림은 남루한 날에 떠올릴 남루하지 않은 이야기를 모은다. 과거의 여자들에게서 건져 올린 말과 글을 어젯밤 꿈처럼 기억하고 옮겨 적는다. 지난 역사 속 여자들의 웃음과 눈물이 자신에게 자국으로 남기를 바라서다.
그는 살아본 적 없는 시대의 여자들로부터도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는 걸 안다. 영원해 보이는 조건, 태어난 나라, 인종, 성별, 지역, 계급을 어떻게 뛰어넘을지 고민하며 읽고 쓴다. 그의 집은 오래된 여자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하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워도 책들이 말을 건다. 그러자 꾹 닫힌 그의 입술이 저절로 열린다. 그렇게 열린 말문으로 이 책이 쓰여졌다.
김예림이라는 작가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배움은 그를 주저앉게 하는 동시에 일으키고 헤엄치게 한다. 한국의 비수도권에 사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여성 청년 노동자로서 김예림은 ‘자기만의 방’ 바깥의 이야기를 쓰려 한다. 이토록 멋진 날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왔다고, 너무 늦지 않게 말하기 위해서다.
― 이슬아 (작가, 헤엄 출판사 대표)
김예림이 소개하는 스무 권의 책
1.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2. 『여성의 권리 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3.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4.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글로리아 스타이넘
5. 『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6. 『맨박스』, 토니 포터
7. 『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8. 『성의 변증법』,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9. 『육식의 성정치』, 캐럴 제이 애덤스
10.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11. 『젠더 무법자』, 케이트 본스타인
12. 『거부당한 몸』, 수전 웬델
13. 『일탈』, 게일 루빈
14. 『시스터 아웃사이더』, 오드리 로드
15.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16. 『페미니즘 위대한 역사』, 조앤 스콧
17.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마리아 미즈, 베로니카 벤홀트-톰젠
18. 『기록되지 않은 노동』,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19. 『하나이지 않은 성』, 뤼스 이리가레
20. 『페미니즘 탐구생활』, 게일 피트먼
지은이 소개
김예림
1998년에 안산에서 태어났다. 노동자 부모 아래서 가난한 줄도 외로운 줄도 모르고 자랐다. 궁금한 게 많았던 열네 살의 나는 겁 없이 대안학교에 지원했고, 시간이 흘러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자기 깜냥을 깨달은 대안학교 졸업생이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는 내 깜냥으로 먹고살아야 했다. 스무 살에 지역 잡지사에서 기자 일을 시작했다. 하루 걸러 웃고 울면서 2년 반을 보냈다.
이렇게 일만 하며 살다가는 고독사하여 바싹 마른 미라로 발견되겠구나 싶었던 어느 날, 숨구멍을 찾았다. 지리산 자락의 ‘아주 작은 페미니즘학교 탱자’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잔뜩 품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곳에 다니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밤이든 낮이든, 더듬더듬, 띄엄띄엄.
나는 늘 그랬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딘가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 도착한 이유는 나중에 알아챘다. 내 몸과 생각이 현재와 다른 곳을 향할 때마다 이 과정을 반복했다. 이야기는 늘 먼저 도착해 있었고, 내가 지난 이야기를 알아채는 건 나중 일이었다. 그렇게 만난 이야기들을 앞으로 더 정확히 알아가려고 한다.
책 속에서
결과적으로 페미니즘은 내 세계를 바꿨다. 이 책은 내가 대학에 갔다면, 서울에 살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쓴 글을 모은 것이다. 페미니즘 에세이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선 자리에서 바라본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대안학교를 졸업해 세상에 나서고 보니 세상이 내 생각과 너무 다르게 굴러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 자신, 비대학 청년으로서 지역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한 나 자신을 향한 격려다.
이 책에서 만날 여러 저자의 말과 글이 당신에게도 의미 있기를 소망한다. 여기에 곁들인 내 슬픔과 사랑이 당신의 마음 한 구석에 들어앉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당신이 선 자리에서 바라본 세상을 서둘러 적어두기를 청한다. 언젠가 그 기록을 모아, 먼 훗날 어떤 이들의 말과 글과 행동이 오늘을 만들었는지, 우리가 증언하기로 하자.
- 「서문」 중에서, 7쪽.
나를 작아지게 할 것만 같은 도시에서 벗어나 지역으로, 그것도 농촌으로 온 내 상상은 이런 거다. 오래된 집을 빌리고, 집의 낡은 곳을 보수하며 웬만한 기술을 익히고, 야심차게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가 어설프고 게으른 손길로 망쳐버리고, 그럼에도 남겨진 소소한 수확에 기뻐하는 것. 토마토 샐러드와 고사리 파스타를 차려놓고 동네 친구들과 먹고 놀다 새로운 모임을 만들어내는 것. 글쓰기 모임이든 독서 모임이든 산악회든 뭐가 됐든 주기적으로 만나고 마시고 얘기하다 이 지역에서 우리 목소리를 내보자고 결심하는 것. 함께하는 사람에게 다정하고, 떠나는 사람을 응원하며, 새로운 사람을 환대하는 일상을 보내는 것.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도 우리는 꽤 치열하게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 보여주는 것, 그렇게 다음 시대를 상상하는 것. 『여성의 권리 옹호』를 읽고서 상상해보는, 지역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권리 옹호다.
- 「300년 전 여성의 권리 옹호」 중에서, 24~25쪽.
사람은 모두 누군가의 자국이 남아 있는 존재라고 했다. 내 타고난 생김새, 편한 옷을 자주 입는 나, 맨 얼굴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상태를 좋아하는 나, 특별한 날에는 세련된 옷을 입고 구두를 신는 나, 바쁘고 힘들 때는 곱슬머리가 아무렇게나 흐트러져도 개의치 않는 나의 존재에도 누군가의 자국이 남아 있다. 내가 아름답지 않아서 ‘내게 첫눈에 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체념할 때마다 다시 내 겉모습을 사랑하게 하는 것도 탈코르셋이 아닌 누군가의 자국이다. 내가 어떤 자국을 가장 사랑했는지, 어떤 자국을 내 일부로 남겨두었는지 떠올려보면 내가 매일 여성적 아름다움을 장착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해주었던 이들의 손길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쉽게 자각한다.
- 「그을린 얼굴로 웃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중에서, 92쪽.
한국의 성별 이분법과 그에 따른 문화 속에서 나는 어디까지 가짜로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늘 경계를 넘나드는 젠더무법자의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는 그들이 가까운 미래에 ‘분류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닌 ‘경계를 유영하는’ 물고기가 되어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자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고민하는 대신 물고기처럼 아름답고 자유로운 친구를 사귈 테다. 우리는 함께 해가 질 때까지 강가를 떠나지 않으며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을 만큼 오래 헤엄을 칠 테다.
- 「너 가짜로 살고 있구나」 중에서, 100쪽.
내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내 노동이 아닌 여행을 떠올린 것은 이제 자기만의 방 바깥의 이야기가 쓰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울프가 20세기에 필요한 이야기를 했다면, 나는 21세기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긴 방황을 위한 넉넉한 돈, ‘자기만의 방’을 떠난 여행에서만큼은 주어진 젠더를 인식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여전히 녹록치 않은 현실 앞에서 ‘그건 너무 이른 이야기’라고 타이른다면, 나는 울프의 말을 다시 빌려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나의 제안이 약간 환상적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픽션의 형식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더욱 좋겠지요.” 적어도 100년 안에 도래할 세상을 그리는 픽션 말입니다.
- 「자기만의 방 바깥으로 떠난 여행」 중에서, 136쪽.
지난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어렵고, 무겁게 느껴지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섣불리 내 이름 앞에 붙일 수 없었다. 책으로 수많은 페미니스트를 만나면서도 왜 몰랐을까. 페미니즘은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은 모든 사람을 호명하는 이름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페미니즘에서 도망치는 대신에 페미니즘의 힘을 주장하면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지 상상해보세요”라는 게일 피트먼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나는 책을 덮고, 눈물을 닦고, 오늘에서야 뒤늦은 선언을 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그녀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 「뒤늦은 선언」 중에서, 189쪽.
차례
서문. 책 읽는 내가 선 자리
1. 동굴 밖으로 나와 봐,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야’
2. 300년 전 여성의 권리 옹호
3. 21세기, 행위하는 인간의 조건
4. 나를 위한 게임
5. 낡은 것은 도태하고 새로운 것은 떠오른다
6. 길 잃은 남자를 위한 친절한 이정표
7. 다정함의 기술
8.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해
9. 육식인의 전복
10. 그을린 얼굴로 웃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11. 너 가짜로 살고 있구나
12. 우리가 앓는 장애
13. 일탈이 일상이 되는 세상을 위하여
14. 이방인의 집
15. 자기만의 방 바깥으로 떠난 여행
16. 혁명의 그늘진 곳을 비추다
17. 자급의 삶을 살고 싶다고요
18. 기록되지 않은 노동자가 고난에 응답하는 법
19. 우리의 입술이 저절로 말할 때
20. 뒤늦은 선언